<현장르포> ‘무법 중고차’ 인천 매매단지 가보니…

“우리도 좀 먹고살자”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팔아야 하는데 누가 도로에 내놓겠어요.” 한 인천 남동구 소재 중고차 단지의 매매업자는 이같이 말했다. 상품 차량이 매매단지에 전부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도로에 불법주차된 차량이 중고차 매매업자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며칠간 비가 퍼붓던 지난 18일 오후 12시. 인천 남동구에 있는 간석자동차매매단지 앞을 찾았다. 인근에는 국가산업단지(이하 산단)가 있다. 공장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지만 시설 낙후와 인프라 부족으로 청년층 기피 대상이 됐다. 산단 근처는 식사할만한 편의시설도 찾기 어려웠다. 1970년대 국가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활력을 잃은 채 을씨년스러웠다.

빼곡한 
상품들

매매단지 옆에는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자동차 공업사들이 줄 서 있었다. 도로에는 번호판이 떼어져 있는 차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장기간 방치된 차량 옆을 보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발길이 끊긴 인도는 보도블럭이 튀어나와 나뒹굴고 있었다.

중고차 업체서 매물로 내놓은 차들이 도로를 침범했다. 지난해 말 자동차 할부 금융 금리 하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중고차 시장 거래가 급감했다. 업체마다 불어나는 중고차 재고를 쌓아둘 곳이 사라진 것이다.

도로 양쪽을 가득 메운 차는 수리받기 위해 대기 중인 차량들이었다. 수리 대기 중인 차량은 상가 단지 안에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자동차공업사가 많다 보니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상가 한 건물에 많게는 3곳이 영업 중이었다. 근처 모든 상가 간판에는 외제차 수리 전문, 자동차 광택, 소모품 교체 등 자동차공업사 관련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도로 옆 인도를 피해 나무가 우거진 공터를 지나던 공장 인부는 “하도 옛날부터 차들이 도로에 서 있어서 걸어 다닐 곳이 못 된다”며 “어차피 여기는 사람이 잘 다니는 곳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도로로 걸어 다니기도 한다”고 말했다. 

매매단지에 들어가야 할 상품 차량이 주차할 공간이 없어 도로 안 공터에 있는 상품 차량도 눈에 띄었다. 도로 바로 안쪽 사유지에 있는 차에는 매매단지에 위치한 업주 명함이 꽂혀 있었다. 자동차관리법에는 타인 사유지에 방치한 차량을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가 강제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시행령에는 최소 두 달은 방치해야 강제 처리 대상으로 규정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일대 차로 점거
허위 매물 업자 탓에 쌓인 편협한 시선

매매단지 앞 도로는 타 구청 관할이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도로 한쪽은 인천 서구청 관할인 데다 매매단지가 위치한 도로는 남동구청 관할이다. 또 매매단지 뒤편은 미추홀구 관할이다.

인천 서구청 주차단속팀 관계자는 “서구청 관할 지역 도로에 나와 있는 차량을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있지만 과태료를 적용하는 곳은 남동구청 관할”이라며 “사실상 도로가 6차선이어서 1차선에 주차된 차량이 통행을 방해한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전시 차량이기 때문에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말했다.

남동구청 주차단속팀 관계자는 “차가 무단으로 주차되고 있는데 몇 가지 정비업소가 수리 차원서 정비 대기 중인 전시 차량은 시정명령을 내려 20일간 유예기간을 준다”며 “현재도 집중적으로 단속 중인 지역이라 구민들이 통행하시는 데 불편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매매사업조합서 10년 넘게 일했다는 A씨는 “차를 10년 넘게 관례처럼 도로에 세워두기도 하는데 거의 다 정비를 맡긴 차다. 차 한 대에 월 5만원 정도 지불하고 공터에 세워두기도 한다”며 “길가에 이렇게 세워 두면 구청 직원들이 수시로 단속이 오는데도 차라리 과태료를 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공업사는 사고 차량뿐만 아니라 차를 직접 몰고 찾아온 고객 차량도 점검해야 한다. 심지어 공업사도 모르는 견인차가 사고 차량을 놓고 가기도 한다.

사고 난 차량 중 폐차 비용보다 견인 비용이 더 드는 경우도 있다. 중고차매매단지와 자동차공업사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무단으로 주차된 차 하나 정도는 익숙한 분위기다.

A씨는 “누가 갖다 놓는지도 모르는 오래된 차들이 있다. 차들을 끌어 놓고 접수하기 전에 그냥 가는 경우도 있다”며 “폐차장에 가면 최소 수십만원 정도 받는데. 공업사에 수리 대기 중인 차들도 있고, 고객들 소유 차도 있고 오래된 차들은 누구 소유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나빠진 
이미지

A씨는 도로에 상품 차량이 나와 있는 것을 두고 중고차 업자에게 마이너스 요인이라 꼬집었다. 그는 “예전에는 고객이 오면 차를 직접 가져와서 보여주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요즘은 고객들이 직접 상품 차량이 있는 곳으로 직접 확인한다”며 “저렇게 도로에 있는 상품 차량이니 업소용 차량이니 고객들이 매매단지 들렀다가 저 상태를 보면 누가 사겠느냐? 절대 안 산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이 안정화되자 자동차 할부 금리가 5%대로 하락하면서 자동차 할부 금융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캐피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자동차 금융 부문에 토스·카카오페이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진출하면서 시장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캐피탈사는 0%대 초저금리 프로모션을 내놓으면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 할부 금리가 안정화되자 중고차 수요도 오르는 모양새다. 그러나 A씨는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예전에 매매 사업이 호황이었을 때는 중고차를 사다가 좀 수리해서 고객들한테 판매했다. 요즘은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며 “현재도 2년 사이에 인천 지역 매매업자만 37곳이 그만뒀다”고 말했다.

인천자동차매매사업조합에 가입한 조합원 명단에 따르면 지난 6월 말까지 소속된 업체는 138곳에 불과하다. 2021년 8월에는 175곳이었다. 현재 가입된 업체 중에서도 6곳이 휴·폐업 수순을 밟았다.

업체당 매매 딜러는 평균 20~25명 정도 된다. 중고차에 관한 소비자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고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자 업계 상황이 더 나빠졌다. A씨는 “상사당 딜러가 한 25명서 20명 정도 된다. 2년 사이 800명의 딜러가 없어졌다”며 “가족까지 생각하면 몇 명이 지금 못 먹고 사는 건가”라고 토로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하반기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다. 판매 개시 시점은 오는 10월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가 처음 중고차 시장 진출을 시도한 건 2020년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풀리면서다. 하지만 기존 중고차 업계의 반발로 계속 이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한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에 소속된 조합인 경기자동차매매사업조합 용인시 지부와 오토허브 입주자 협의회 회원사들은 지난 3월 릴레이 시위를 진행한 바 있다. 연합회에 따르면 2017년 오픈한 오토허브 중고차 매매단지에는 현재 기존 중고차 판매 사업체 70개가 입점해 있다.

당시 연합회는 “현대차가 중고차 매매업에 진출하며 상생을 언급하고 있다”며 “소상공인들이 입주해 있는 기존 중고차 매매단지 안에 입점하는 것은 상생이란 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고차 시장을 책임지던 중소업체들은 한숨이 늘었다. 대기업이 매매단지에 들어오게 되면 대자본을 앞세워 경쟁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침수차를 불법으로 판매하는 업체가 발각되면서 이미지는 더 나빠졌다. 간석매매단지서 중고차 판매업을 하고 있는 양모씨는 최근 민원과 언론 매체 보도에 오해가 있다고 토로했다.

양씨는 “사고 난 차들이 도로에 있는 게 업자들도 너무 보기 싫어서 한 번씩 얘기는 했었다. 꼭 이렇게 놔둬야 하냐”며 “일반 시민들이 보시기에 중고차 매매단지가 크게 있으니까 괜히 저거 수리해서 무사고로 파는 거 아닌가 그런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 매체 보도에 오해가 있다고도 했다. 공업사에 맡기기 위해 전시된 차량까지 중고차 매매단지에 있는 업자 소유인 것처럼 전달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랬든 저랬든 사실 핑계다. 상품 차량이 나가 있으면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매매단지 안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30여대밖에 안 된다”며 “30대 갖고는 사업운영이 안 되기 때문에 외부에다 다 얻어서 쓰고 예전에는 문학경기장 쪽에다가도 얻어 쓰기까지 했다. 지금은 얻을 데가 없다”고 설명했다.


양씨는 몇몇 상품 차량이 밖에 나와 있는 건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전국 어느 매매단지도 중고차를 전부 수용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전에는 간석매매단지 앞 공터에 위치한 창고에 상품 차량을 보관할 수 있었다. 

“단지에 상품 차량 전부 수용 못 해서…”
계속된 부지 확보 노력에도 오해 쌓여 

하지만 현재 공터는 흰색 패널로 둘러싸여 있다. 패널에 붙여진 안내문에는 지난해 12월 자로 “불법 점유자, 동산 적치자, 자동차 무단 주차한 차들은 즉시 퇴거”라고 쓰여져 있다. 한 매매업자는 2년 치 유료 주차비를 내고도 보증금조차 돌려받지 못했다.

양씨는 “땅 관리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부지에 주차할 거면 보증금하고 월세를 내라고 했다”며 “차는 많은데 지금은 차가 줄어서 이 정도다. 전에는 훨씬 많아서 아쉬운 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한 7~8년 됐다며 보증금 회수를 못 받은 업체들이 꽤 된다고 회상했다. 땅주인이라고 주장하던 관리인은 땅 지분 소송서 패소해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부지 관련 명도 소송을 진행했던 법무법인 중원종합 관계자는 “실질적인 소유자가 부지 관련 명도소송서 승소해 기존에 있는 건물은 철거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실질적인 부지 소유자를 만나 상품 차량 몇 대를 수용할 수 있는지 회의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는 “앞 공터 주인과 계속 연락을 취하다가 관계자를 만나는 데만 거의 반년이 걸렸다”며 “현재 차 몇 대를 더 보관할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공터에 주차하려는 상품 차량은 몇 ㎞ 떨어진 유료 주차장에 보관돼있다. 고객들을 상담하는 단지서 상품 차량이 있는 주차장까지 가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실제 도로에 있는 상품 차량은 소수다. 

중고차 매매단지 옆에 2중, 3중 주차된 차량은 근처 B 마트 고객들 차량으로 B 마트 앞은 더 혼잡했다. 해당 마트 손님들은 길가에 무단 주차하고 마트로 뛰어들었다. 도로 6차선 중 중앙선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주차 단속 차량서 내린 구청 관계자들은 불법주차한 차량에 과태료 딱지를 붙였다.

차들이 멈춰서고 혼잡해지자 무단횡단도 벌어졌다. 한 손님은 카트에 상품을 가득 담은 상태로 6차선을 건너다 상품을 전부 쏟기도 했다. 다른 손님은 2차로에 주차돼있는 차 뒤로 주차하면서 주차요원에게 주차 가능 여부를 묻기도 했다. 그러자 주차 요원이 “주차하시면 안 된다. 한 바퀴 돌고 와야 한다”고 고지하자 화를 내기도 했다.

“우리도
자영업자”

해당 마트는 파격적인 할인율로 손님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인근 주민들은 최근 불법주차 관련 단속이 증가한 이유를 두고 마트 앞에 불법주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트 손님으로 보이는 주민은 “바나나 한송이를 1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정육점 코너 고기들도 다른 대형마트보다 반값이나 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 물건을 실었다. 공업사 사고 차량이 전시된 장소 옆이었다.

<ojh34522@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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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후폭풍은 엄청났다. 생전 걸음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경찰서를 드나들었고 송사를 치르느라 법정을 오갔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법원에서 날아온 문서 한 장에서 시작됐다. 어떤 실수는 손쓸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시에는 실수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갔다가 뒤늦게 알아채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상황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수습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계약이 이뤄진 상태라면 더더욱 원상복구가 쉽지 않다. 김모씨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놀라서 해줬다가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7월 김씨는 경기도 광주의 한 빌라에 거주할 목적으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2017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2년, 보증금은 2억200만원으로 했다. 해당 빌라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김씨가 전세 계약을 맺은 후 임대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새로운 임대인이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씨는 전세 계약 기간 만료 후인 2019년 9월 해당 빌라에 임차권등기를 마쳤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임차주택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면서 이사할 수 있는 제도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차주택에 거주할 때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로도 대항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 퇴거하게 되면 이사하는 곳으로 주소를 옮겨야 하니 임차권등기명령을 통해 대항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차권등기명령은 등기부등본에 기재되는 만큼, 강한 대항력을 가진다”고 부연했다. 다시 말해 등기부등본에 임차권등기명령이 기재돼있다는 것은 세입자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지만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김씨가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서 운영하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에 가입해 뒀다는 사실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은 전세 계약이 종료됐을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전세보증금을 HUG가 대신 돌려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HUG가 임차인에게 먼저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청구하는 방식이다. 김씨는 2019년 10월 HUG로부터 전세보증금 전액인 2억200만원을 받았다. 전세 살다 보증금 못 받아 전세보증금 보험으로 구제 이후 김씨는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했고 해당 빌라와 관련한 일은 새카맣게 잊고 지냈다. 그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HUG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았으니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9년 이후 5년여 동안 해당 빌라와 관련해 김씨에게까지 영향이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사이 해당 빌라의 주인이 바뀌는 등 소유권 변동이 일어났지만 김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 그러다 지난해 11월 김씨에게 임차권등기명령 취소 신청서가 날아들었다. 김씨는 “법원에서 문서가 송달돼 크게 당황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 문서에 기재된 번호로 연락했더니 7년 전 전세로 살았던 빌라의 집주인이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집주인이 임차권등기를 말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갑자기 법원에서 종이가 날아오고 소송을 제기한다는 말에 덜컥 겁을 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임차권등기 말소를 위한 서류를 직접 떼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 가져다줬다고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20일 김씨가 해당 빌라에 걸어놨던 임차권등기가 말소됐다. 해당 빌라에 김씨가 행사할 수 있던 권한이 소멸한 것이다. 동시에 집주인으로서는 등기부등본이 깨끗해지는 효과를 얻게 됐다. 이렇게 되면 세입자를 구하는 일도 수월해진다. 줄줄이 꼬였다 이때 김씨가 간과한 사실은 HUG의 존재였다. 김씨가 해당 빌라의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임차권등기를 말소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세입자가 돈을 받은 뒤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주는 게 실제 일반적인 절차다. 이 과정에서도 공인중개사 등 부동산 전문가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까지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김씨는 전세보증금을 HUG에서 받았다. HUG 입장에서는 해당 빌라의 집주인에게 2억200만원 즉, 돌려받아야 할 돈이 있는 상황에서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으로 말소해버린 것이다. 동시에 김씨가 배당 순위에서 밀리게 되면서 HUG는 대위변제한 보증금을 회수할 방법이 요원해졌다. 여기에 은행, 지자체 등 후순위 채권자들도 있는 상황이다. 김씨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HUG 경기관리센터(이하 HUG 경기센터)는 “모든 임차인은 HUG에 대위변제를 받으면서 대위변제증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가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을 당시 작성한 대위변제증서에는 ‘본인(김씨)은 HUG가 대위변제금 및 제반 비용을 회수할 때까지 HUG의 동의 없이 주택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겠으며 본인의 주택임차권등기 말소로 인해 HUG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할 것을 확약한다’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HUG 경기센터는 “HUG는 대위변제 물건을 경매에 넘겨서 배당을 회수하는데 임차권등기명령을 무단 말소하면 경매에서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HUG에 연락했으면 대신 응소해 임차권등기를 지켰을 텐데 당시 김씨가 연로해 이런 생각을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낙장불입 그러나… 김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집주인이) 내가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았기 때문에 임차권등기를 말소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본인(집주인)이 손해를 보고 있다. 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나를 속였다”며 “내 입장에서는 전세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주인 말에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김씨가 집주인과 해당 빌라의 채권자들에게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피고(집주인)가 원고(김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의적인 기망행위를 했다거나 그로 인해 김씨가 신청 취하 행위 자체에 착오에 빠져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김씨의 “속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현재 김씨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HUG 경기센터는 대위변제한 보증금 회수를 위해 일단 김씨의 부동산 등에 가압류를 걸어둔 상태다. 그러면서도 김씨의 상황을 참작하고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임차권등기 무단 말소 무효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HUG 측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한번도 진행한 적 없는 소송이라고 한다. “억울하다” 법원 인정 안 해 HUG, 구제 위해 소송 제기 HUG 경기센터는 “그동안 임차권등기가 말소되면 복구할 가능성이 없는 것(낙장불입)으로 보고 임차인 손해배상 청구로 업무를 진행해 왔는데, ‘임차권등기 말소 무효 소송을 통해 원상복구 가능성이 있다’는 법률 자문이 있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송이 HUG의 승소로 종결돼 임차권등기가 부활하면 김씨에 대한 구제가 가능하다. 이때 김씨는 소송 실비만 부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HUG 경기센터가 제기한 소송은 김씨에게 해당 빌라에 걸려 있던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HUG가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만큼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도 HUG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김씨의 임차권등기 말소 행위는 무효라는 게 골자다. HUG 경기센터는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 말소하면서 채권 선순위로 올라온 은행, 세무서, 지자체 등이 김씨의 억울함을 헤아려 대승적인 차원에서 응소하지 않길 기대하고 있지만, 이들은 김씨가 별도로 제기했던 소송에 모두 대응한 전력이 있어 HUG가 제기한 소송에도 응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HUG가 김씨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대신 구제를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이들 후순위 채권자들도 집주인의 허위 소송에 안타깝게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한 김씨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전해왔다. 실제 김씨가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은행 한 곳은 대응하지 않았다. 순간 실수 인정될까? 김씨는 집주인과 채권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의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HUG와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법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일이 벌어지고 HUG로부터 연락을 받고 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며 “재산은 (가압류로) 묶였고 소송비용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