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노아파발’ 전국구 수상한 조폭 동향

형님시대 가고 야자시대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일본 정재계를 주름잡던 야쿠자들이 좀도둑 신세가 됐다. 한 야쿠자 출신 60대는 과수원서 과일을 훔치다 걸리기도 했다. 야쿠자를 향한 관심도가 시들해졌고, 조직원들이 노쇠화에 접어들면서다. 이른바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1990년대 일본은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정재계가 연루된 야쿠자를 대거 소탕했다. 이후 젊은 조직원들은 궁핍해진 삶에 조직을 떠났다. 야쿠자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 5년간 취직할 수도 없다. 반면 국내에선 아직 조폭이 판을 치며 각종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국민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 신준호 부장검사는 2020년 10월 서울 하얏트호텔서 난동을 부린 조직폭력배 윤모씨 등 1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달 기소했다. 이들은 윤씨와 수노아파 부두목급으로 알려진 최씨가 모그룹 회장이 운영하는 사모펀드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자 모 회장이 인수한 호텔서 난동을 부렸다.

조직원이 
120명이나?

당시 수노아파 조직원들은 호텔 레스토랑서 밴드 공연 중이던 악단과 앉아 있던 손님들에게 나흘간 난동을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 모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전신의 문신을 드러낸 채 단체 사우나를 이용하거나, 객실서 흡연하는 등 위협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경찰은 모그룹이 이들을 고소하면서 수사를 시작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보완 수사 과정서 사건과 관련 있는 수노아파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 합숙소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펼쳤다.

검찰은 수노아파 규모가 더 확장된 것으로 보고 조직원이 120명가량 될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번 하얏트호텔 사건으로 핵심 조직원을 대거 구속하면서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수노아파를 포함한 폭력조직에 조직원으로 가입해 활동만 하더라도 범죄단체조직죄 혐의로 처벌받는다.


범죄단체조직죄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구성하거나 조직원으로 활동할 때 적용된다. 

이에 검찰은 수노아파에 신규 가입해 활동한 행동대원 27명도 범죄단체조직죄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2016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수노아파에 가입해 윤씨와 최씨의 지시에 따라 사건에 가담했다.

경찰은 윤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고소 취하가 반영돼 기각됐다. 경찰은 윤씨 등 12명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해 현재 풀려나 재판을 받고 있으며 윤씨는 수노아파 조직원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번 난동 사건이 단순 업무방해가 아닌 중대 폭력조직 사건으로 판단해 재수사에 돌입했다. 수노아파 강남 합숙소와 운영 유흥주점 등 6곳을 압수수색했고, 이들의 단합대회 첩보들을 입수해 연락책을 구속 수사하면서 조직 구성과 규모가 새롭게 밝혀졌다.

검찰은 모 회장과 모그룹의 불법 행태 관련 수사도 이어갈 방침이다. 모 회장의 4000억원 대 배임 혐의 및 사모펀드 관련 의혹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매각 입찰 방해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 해외 도피 상태인 모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 및 여권 무효화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폭력조직도 세대교체? 
양성소 ‘또래 모임’

검찰은 모 회장 귀국을 압박하기 위해 수노아파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CCTV, 계좌·통화내역 재분석을 통해 수노아파 합숙소 2곳, 조직원 운영의 유흥주점 등을 파악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수사 과정서 수노아파가 경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도 20여명 이상의 신규 조직원을 추가 모집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행동대원으로 새로 가입한 조직원 21명도 범죄단체조직 혐의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조직원 39명이 기소되고, 주요 가담자들이 구속되면서 고령자들을 제외한 주요 활동 조직원들이 사법처리 대상이 돼 조직 재건에는 장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의 주요 폭력조직들이 계파를 초월한 이른바 ‘또래모임’이라 불리는 정기모임을 통해 연대를 강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수사 과정서 조직원들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SNS 등에서 확보한 사진을 공개했다.

검찰은 또래모임이 전국 주요 조직폭력배들이 모인 정기 회합이라고 내다봤다. 조직폭력배들은 계파 상관없이 온·오프라인상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각 조직끼리 연대를 강화해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요즘 조폭들은 예전처럼 계파별로 패권 다툼을 하거나 정면승부를 하게 되면 모든 조직이 와해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소위 전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며 “대신 성매매 같은 불법 사업을 여럿이 참여하면서 서로 연대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조직이더라도 경쟁이 아닌 공생관계로 함께 군림한다는 것이다.

계파 상관없이 
정기적인 모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또래모임은 ‘00년생 모임’ 같이 태어난 연령별로 형성된다. 조직이 달라도 해당 모임을 통해 음성적인 사업을 함께 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10여개의 연합이 있고 유사시에는 각 또래모임을 동원하는 식으로 조직돼있다”고 설명했다.

또래모임 중 이제 막 성인이 된 조직원들로 구성된 모임도 있었다. 2004년대생으로 구성된 ‘04모임’은 소위 ‘대기조’라고 불린다. 이들은 불법 성매매 업소 운영과 대포통장 유통업 등을 하면서 수익을 올리고 미성년자들을 포섭해 대기조로 만들어 세대를 확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또래모임을 두고 “전국구서 각 지역 1등이라고 불리는 조직들만 모인 모임”이라며 “나름 지역서 1등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어울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모임 자체가 범법 행위로 볼 수 없지만, 또래모임 명단이나 모임을 가진 행태는 추후 조폭 수사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검찰이 관리하는 폭력조직원 명단을 통해 기존 가입 여부와 최근 가입 여부를 가려 이들이 연루된 범죄를 조폭 관련 범죄인지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닌 올 하반기에 대대적인 조직폭력배 관련 수사 단서 발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수노아파는 국내 10대 조직 중 하나로 알려진다. 1980년대 목포서 결성된 후 1996년 해당 지역 내에서 패권 싸움을 하던 ‘오거리파’와 마찰을 빚고 오거리파 행동대장 김모씨를 살해하면서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조폭 소탕’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와해된 세력들 다시 뭉친다
10대 가담 지난 5년간 최대

경찰은 수배령을 내려 사건에 가담한 조직원들을 체포해 살해 혐의로 구속했다. 수노아파 부두목과 조직원으로 수배됐던 장모씨와 김모씨는 광주 시내서 경찰의 검문을 받자 위조된 신분증을 제시했다가 공문서 위조 혐의 등으로 긴급 체포됐다.

이후 1997년 6월 법원 판결을 통해 범죄조직으로 등록돼 관리대상이 됐다. 그 뒤 와해된 조직이 2000년대 들어서 세력을 서울로 확장해 전국 10대 폭력조직으로 몸집을 키웠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조직원은 65명 정도 규모로 지역 다른 조직폭력배들도 규합해 ‘연합수노아파’를 만들었다.

이들은 흉기들을 합숙소에 배치하고 차량을 대기시켰다가 이권에 개입할 때마다 곧바로 출동해 무차별 폭행을 행사했다. 조직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호텔 나이트클럽과 건설 공사장, 유흥업소 등 음성적인 사업에 이권을 얻기 위해 개입해왔다.

수노아파는 2002년 12월에는 인천 소재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 대표를 흉기로 위협해 17억원 상당의 지분을 갈취했다. 또 경기도 용인과 인천 등 수도권 일대 아파트 공사장서 28억원 상당의 철거 공사권을 빼앗는 등 총 51억원가량을 갈취했다. 당시 조직원 규모만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은 2006년 수노아파 일당에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검거에 나섰다. 이번 하얏트 호텔 사건과 관련 있는 최씨는 당시에도 조직 부두목으로 활동했다. 당시 경찰은 최씨 등 42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도주한 두목 염씨 등 19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에 나섰다.

10여개 조직
연합 움직임

이들은 2002년 초부터 서울 강남, 마포구 등 일대 4곳의 합숙소를 운영하면서 조직원들을 관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른 체구의 조직원에게는 하루에 6끼를 먹게 하고 인형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는 연습까지 하면서 이권 개입에 힘을 실었다.

수노아파 행동강령에는 조직원이 구속 수감될 경우 윗선서 변호사 선임 비용을 부담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합숙소 부근에서는 조직원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수노아파는 1990년대 중반 와해됐지만, 지방 조직폭력배 세력을 흡수하면서 2000년대 초반 연합수노아파를 결성했다. 이후 행동대장을 포함한 주요 조직원들이 10년 만에 또다시 검거되면서 조직이 사그라드는 듯했으나, 최근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해 폭력 등 범죄행위로 경찰에 붙잡힌 조직폭력배 중 10대가 전년 대비 2배 넘게 증가했다. 조직원들 사이서 세대교체와 신규 유입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지난 3월에 “지난해 조직폭력 범죄 검거 인원이 3231명으로 전년(3027명) 대비 6.7% 늘었다”고 밝혔다. 연령대별 검거 인원 중 60% 가까이가 20~30대고, 40~50대가 35%가량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직에 가담한 10대 조직원은 210명으로 전년(98명) 대비 112명이나 늘었다. 같은 기간 신규 가입해 활동하다 붙잡힌 조직원은 244명으로 전년(203명) 대비 31명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조폭 세계서도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텔 난동사건 전말은?
각 조직끼리 연대 강화

지난해 광주지역 한 폭력조직은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10대 중·고등학생들에게 조직에 가입하라고 꼬드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10대들에게 고가의 의류와 식사를 사주는 등 호감을 얻고 조직에 가입하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심 한복판서 폭력 조직간 싸움이 벌어져 38명의 조직원들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6명은 10대의 미성년자로 소년보호사건 처분을 받았다.

폭력 조직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10대를 폭행한 조직폭력배들에게 법원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0대 A군은 조직폭력배가 되고 싶다며 알고 지내던 조직을 찾아갔다. 그러나 며칠 뒤 조직생활을 하다가 같은 폭력조직 선배에게 “조직생활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자, 이들은 이에 격분해 A군을 폭행한 것이다.

조직폭력배들에 관한 동경이 늘면서 범죄에 연루돼 검거되는 10~20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10대 조직폭력배 가담률은 5년 새 최고치다. 경찰청은 조직폭력배 명단을 다시 구축해 전담수사팀을 중심으로 특별단속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특별단속 외에도 변종 조직폭력배 활동에 대한 수사 관리체계를 유지할 계획이다. 

이른바 ‘조직폭력배 출신 유튜버’ 등이 생산하는 불법 콘텐츠가 관리 대상이다. 전·현직 조직폭력배들이 출연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청소년들이 모방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해당 유튜버들은 조직폭력배 생활 당시 무용담으로 범죄행위를 미화하고 경찰 수사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방 세력들
흡수해 확장

경찰은 해당 조직폭력배들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하나의 수입원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5년간 청소년들이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조폭 유튜버들이 미화한 범죄 경험담을 접하고 나서 조폭 가담률이 늘고 있다”면서 “해당 인터넷 방송 채널에 아무리 연령제한을 걸어도, 부모님이나 지인 등의 계정을 빌려 시청하기 때문에 이를 단속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ojh34522@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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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