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노아파발’ 전국구 수상한 조폭 동향

형님시대 가고 야자시대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일본 정재계를 주름잡던 야쿠자들이 좀도둑 신세가 됐다. 한 야쿠자 출신 60대는 과수원서 과일을 훔치다 걸리기도 했다. 야쿠자를 향한 관심도가 시들해졌고, 조직원들이 노쇠화에 접어들면서다. 이른바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1990년대 일본은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정재계가 연루된 야쿠자를 대거 소탕했다. 이후 젊은 조직원들은 궁핍해진 삶에 조직을 떠났다. 야쿠자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 5년간 취직할 수도 없다. 반면 국내에선 아직 조폭이 판을 치며 각종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국민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 신준호 부장검사는 2020년 10월 서울 하얏트호텔서 난동을 부린 조직폭력배 윤모씨 등 1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달 기소했다. 이들은 윤씨와 수노아파 부두목급으로 알려진 최씨가 모그룹 회장이 운영하는 사모펀드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자 모 회장이 인수한 호텔서 난동을 부렸다.

조직원이 
120명이나?

당시 수노아파 조직원들은 호텔 레스토랑서 밴드 공연 중이던 악단과 앉아 있던 손님들에게 나흘간 난동을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 모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전신의 문신을 드러낸 채 단체 사우나를 이용하거나, 객실서 흡연하는 등 위협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경찰은 모그룹이 이들을 고소하면서 수사를 시작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보완 수사 과정서 사건과 관련 있는 수노아파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 합숙소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펼쳤다.

검찰은 수노아파 규모가 더 확장된 것으로 보고 조직원이 120명가량 될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번 하얏트호텔 사건으로 핵심 조직원을 대거 구속하면서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수노아파를 포함한 폭력조직에 조직원으로 가입해 활동만 하더라도 범죄단체조직죄 혐의로 처벌받는다.


범죄단체조직죄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구성하거나 조직원으로 활동할 때 적용된다. 

이에 검찰은 수노아파에 신규 가입해 활동한 행동대원 27명도 범죄단체조직죄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2016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수노아파에 가입해 윤씨와 최씨의 지시에 따라 사건에 가담했다.

경찰은 윤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고소 취하가 반영돼 기각됐다. 경찰은 윤씨 등 12명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해 현재 풀려나 재판을 받고 있으며 윤씨는 수노아파 조직원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번 난동 사건이 단순 업무방해가 아닌 중대 폭력조직 사건으로 판단해 재수사에 돌입했다. 수노아파 강남 합숙소와 운영 유흥주점 등 6곳을 압수수색했고, 이들의 단합대회 첩보들을 입수해 연락책을 구속 수사하면서 조직 구성과 규모가 새롭게 밝혀졌다.

검찰은 모 회장과 모그룹의 불법 행태 관련 수사도 이어갈 방침이다. 모 회장의 4000억원 대 배임 혐의 및 사모펀드 관련 의혹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매각 입찰 방해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 해외 도피 상태인 모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 및 여권 무효화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폭력조직도 세대교체? 
양성소 ‘또래 모임’

검찰은 모 회장 귀국을 압박하기 위해 수노아파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CCTV, 계좌·통화내역 재분석을 통해 수노아파 합숙소 2곳, 조직원 운영의 유흥주점 등을 파악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수사 과정서 수노아파가 경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도 20여명 이상의 신규 조직원을 추가 모집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행동대원으로 새로 가입한 조직원 21명도 범죄단체조직 혐의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조직원 39명이 기소되고, 주요 가담자들이 구속되면서 고령자들을 제외한 주요 활동 조직원들이 사법처리 대상이 돼 조직 재건에는 장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의 주요 폭력조직들이 계파를 초월한 이른바 ‘또래모임’이라 불리는 정기모임을 통해 연대를 강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수사 과정서 조직원들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SNS 등에서 확보한 사진을 공개했다.

검찰은 또래모임이 전국 주요 조직폭력배들이 모인 정기 회합이라고 내다봤다. 조직폭력배들은 계파 상관없이 온·오프라인상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각 조직끼리 연대를 강화해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요즘 조폭들은 예전처럼 계파별로 패권 다툼을 하거나 정면승부를 하게 되면 모든 조직이 와해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소위 전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며 “대신 성매매 같은 불법 사업을 여럿이 참여하면서 서로 연대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조직이더라도 경쟁이 아닌 공생관계로 함께 군림한다는 것이다.

계파 상관없이 
정기적인 모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또래모임은 ‘00년생 모임’ 같이 태어난 연령별로 형성된다. 조직이 달라도 해당 모임을 통해 음성적인 사업을 함께 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10여개의 연합이 있고 유사시에는 각 또래모임을 동원하는 식으로 조직돼있다”고 설명했다.

또래모임 중 이제 막 성인이 된 조직원들로 구성된 모임도 있었다. 2004년대생으로 구성된 ‘04모임’은 소위 ‘대기조’라고 불린다. 이들은 불법 성매매 업소 운영과 대포통장 유통업 등을 하면서 수익을 올리고 미성년자들을 포섭해 대기조로 만들어 세대를 확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또래모임을 두고 “전국구서 각 지역 1등이라고 불리는 조직들만 모인 모임”이라며 “나름 지역서 1등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어울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모임 자체가 범법 행위로 볼 수 없지만, 또래모임 명단이나 모임을 가진 행태는 추후 조폭 수사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검찰이 관리하는 폭력조직원 명단을 통해 기존 가입 여부와 최근 가입 여부를 가려 이들이 연루된 범죄를 조폭 관련 범죄인지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닌 올 하반기에 대대적인 조직폭력배 관련 수사 단서 발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수노아파는 국내 10대 조직 중 하나로 알려진다. 1980년대 목포서 결성된 후 1996년 해당 지역 내에서 패권 싸움을 하던 ‘오거리파’와 마찰을 빚고 오거리파 행동대장 김모씨를 살해하면서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조폭 소탕’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와해된 세력들 다시 뭉친다
10대 가담 지난 5년간 최대

경찰은 수배령을 내려 사건에 가담한 조직원들을 체포해 살해 혐의로 구속했다. 수노아파 부두목과 조직원으로 수배됐던 장모씨와 김모씨는 광주 시내서 경찰의 검문을 받자 위조된 신분증을 제시했다가 공문서 위조 혐의 등으로 긴급 체포됐다.

이후 1997년 6월 법원 판결을 통해 범죄조직으로 등록돼 관리대상이 됐다. 그 뒤 와해된 조직이 2000년대 들어서 세력을 서울로 확장해 전국 10대 폭력조직으로 몸집을 키웠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조직원은 65명 정도 규모로 지역 다른 조직폭력배들도 규합해 ‘연합수노아파’를 만들었다.

이들은 흉기들을 합숙소에 배치하고 차량을 대기시켰다가 이권에 개입할 때마다 곧바로 출동해 무차별 폭행을 행사했다. 조직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호텔 나이트클럽과 건설 공사장, 유흥업소 등 음성적인 사업에 이권을 얻기 위해 개입해왔다.

수노아파는 2002년 12월에는 인천 소재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 대표를 흉기로 위협해 17억원 상당의 지분을 갈취했다. 또 경기도 용인과 인천 등 수도권 일대 아파트 공사장서 28억원 상당의 철거 공사권을 빼앗는 등 총 51억원가량을 갈취했다. 당시 조직원 규모만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은 2006년 수노아파 일당에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검거에 나섰다. 이번 하얏트 호텔 사건과 관련 있는 최씨는 당시에도 조직 부두목으로 활동했다. 당시 경찰은 최씨 등 42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도주한 두목 염씨 등 19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에 나섰다.

10여개 조직
연합 움직임

이들은 2002년 초부터 서울 강남, 마포구 등 일대 4곳의 합숙소를 운영하면서 조직원들을 관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른 체구의 조직원에게는 하루에 6끼를 먹게 하고 인형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는 연습까지 하면서 이권 개입에 힘을 실었다.

수노아파 행동강령에는 조직원이 구속 수감될 경우 윗선서 변호사 선임 비용을 부담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합숙소 부근에서는 조직원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수노아파는 1990년대 중반 와해됐지만, 지방 조직폭력배 세력을 흡수하면서 2000년대 초반 연합수노아파를 결성했다. 이후 행동대장을 포함한 주요 조직원들이 10년 만에 또다시 검거되면서 조직이 사그라드는 듯했으나, 최근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해 폭력 등 범죄행위로 경찰에 붙잡힌 조직폭력배 중 10대가 전년 대비 2배 넘게 증가했다. 조직원들 사이서 세대교체와 신규 유입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지난 3월에 “지난해 조직폭력 범죄 검거 인원이 3231명으로 전년(3027명) 대비 6.7% 늘었다”고 밝혔다. 연령대별 검거 인원 중 60% 가까이가 20~30대고, 40~50대가 35%가량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직에 가담한 10대 조직원은 210명으로 전년(98명) 대비 112명이나 늘었다. 같은 기간 신규 가입해 활동하다 붙잡힌 조직원은 244명으로 전년(203명) 대비 31명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조폭 세계서도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텔 난동사건 전말은?
각 조직끼리 연대 강화

지난해 광주지역 한 폭력조직은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10대 중·고등학생들에게 조직에 가입하라고 꼬드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10대들에게 고가의 의류와 식사를 사주는 등 호감을 얻고 조직에 가입하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심 한복판서 폭력 조직간 싸움이 벌어져 38명의 조직원들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6명은 10대의 미성년자로 소년보호사건 처분을 받았다.

폭력 조직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10대를 폭행한 조직폭력배들에게 법원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0대 A군은 조직폭력배가 되고 싶다며 알고 지내던 조직을 찾아갔다. 그러나 며칠 뒤 조직생활을 하다가 같은 폭력조직 선배에게 “조직생활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자, 이들은 이에 격분해 A군을 폭행한 것이다.

조직폭력배들에 관한 동경이 늘면서 범죄에 연루돼 검거되는 10~20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10대 조직폭력배 가담률은 5년 새 최고치다. 경찰청은 조직폭력배 명단을 다시 구축해 전담수사팀을 중심으로 특별단속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특별단속 외에도 변종 조직폭력배 활동에 대한 수사 관리체계를 유지할 계획이다. 

이른바 ‘조직폭력배 출신 유튜버’ 등이 생산하는 불법 콘텐츠가 관리 대상이다. 전·현직 조직폭력배들이 출연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청소년들이 모방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해당 유튜버들은 조직폭력배 생활 당시 무용담으로 범죄행위를 미화하고 경찰 수사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방 세력들
흡수해 확장

경찰은 해당 조직폭력배들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하나의 수입원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5년간 청소년들이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조폭 유튜버들이 미화한 범죄 경험담을 접하고 나서 조폭 가담률이 늘고 있다”면서 “해당 인터넷 방송 채널에 아무리 연령제한을 걸어도, 부모님이나 지인 등의 계정을 빌려 시청하기 때문에 이를 단속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ojh34522@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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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