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두려운 반지하의 악몽

기청제라도 지내야 하나

[일요시사 취재2팀] 옥지훈 기자 = 수해 악몽이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기준 11년간 큰 수해가 없었던 서울 수도권 지역 일대에 기록적인 폭우로 물이 차 극심한 피해를 봤다.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은 침수로 지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사망했다. 침수 피해가 없었던 지역은 유일하게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빗물터널)’이 있는 양천구 일대였다.

당시 서울시는 빗물터널을 7곳에 공사할 계획이었는데, 오세훈 시장이 물러난 이후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하자 예산 등을 이유로 양천구 한 곳에만 빗물터널을 만들었다. 박 전 시장은 빗물터널을 과도한 토건 사업으로 봤다. ‘안전불감증’은 국민이 아닌 정치권에 있다.

임시방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마철을 앞두고 서울 상습 침수지역을 방문해 침수피해 방지 대책을 점검했다. 앞서 오 시장은 침수피해 대책으로 2032년까지 상습 침수지역 6곳에 빗물터널을 건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하루 최대 강수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신대방동에는 비공식 기록이지만 381.5mm가 쏟아졌다. 서울기상관측소에 공식 관측되는 서울 기상 대푯값인 공식 기록 354.7mm(1920년 8월 2일)를 넘어섰다. 강남 일대에서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강수량으로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고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같은 달 8~9일 사이에 폭우로 사망자만 10명이다. 

이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침수 피해에 대한 대책을 내놨다. 서울시는 박원순 전 시장 재임 당시 백지화된 빗물터널 계획을 재수립했다. 그러나 막대한 사업비 문제로 차질을 빚고 있다. 2032년까지 예상 책정된 총 6곳의 사업비 규모만 모두 1조5000억원이다. 2011년 당시 총 7곳의 지역 빗물터널 사업비는 8529억원이었다.


당초 12년 전 계획서 한 곳이 줄었는데도 사업비가 두 배가량 차이가 난다. 사업이 미뤄지면서 용역비와 부지 확보 비용, 지하 시설물 이전 비용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심도 빗물터널 공사는 속도를 내도 최소 4년 이상 걸린다. 우선 강남역·도림천·광화문 일대빗물터널은 올 하반기 중 착공해 2027년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이어 해당 계획이 완료되면 사당역·한강로·길동 빗물터널은 2032년까지 추가로 조성할 방침이다. 당초 2030년까지 건립하겠다는 계획서 2년 연장됐다.

‘강남 침수’ 이후 쏟아진 대책
빗물 배수터널 첫 삽도 못 떠

오 시장은 신림공영차고지 빗물저류조 건설 현장과 빗물펌프장 등에 점검을 나섰다. 빗물저류조는 저장한 빗물을 비가 그친 뒤 방류해 저지대 침수를 예방하는 시설이다. 서울시는 빗물터널은 공사 기간이 길어 임시방편으로 2025년 공사 완료 예정인 빗물저류조를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침수 방지용 물막이판 설치 대상인 1만5291가구 중 3414가구(22.3%)에만 물막이판 설치가 완료됐다. 하수도 역류방지기만 설치한 가구까지 합해도 6310가구(40.2%)에 불과하다. 시는 해당 집주인들이 집값 하락과 수해 지역 낙인 효과를 우려해 설치를 거부하는 탓에 상당 기간 소요되고 있다고 밝혔다.

저지대는 침수에 취약하다. 강남은 집중호우로 주변 물이 몰려들면 침수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와 서초구 등은 강남역 주변 저지대에 배수관로 및 하수암거를 설치해 침수 피해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하수암거는 배수를 위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만들어진다.

실제로 강남 저지대서 빗물을 처리할 하수도가 부족했고 맨홀이 이탈하면서 하수도가 역류해 빗물이 더 차오르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수도관은 빗물터널이 착공하면 저지대서 빗물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수도권 도심지역은 통신케이블, 도시가스 배관 등 지하매립시설이 많아 이전 공사도 병행하기 때문에 공사 기간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슈퍼 엘니뇨 현상이 극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엘니뇨는 평년 해수면 온도가 0.5도 높아지는 경우를 뜻한다. 슈퍼 엘니뇨는 온도가 2도나 상승하는 현상이다.  엘니뇨는 자연현상이지만, 슈퍼 엘니뇨는 지구온난화를 동반한 현상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향후 기후 예측은 쉽지 않다. 이에 기후재난에 대한 대비와 적응이 필요하다.

미루고 미루다 사업비만 늘어
재난 대비 인프라 확충 시급

재난 피해보상지원금은 딜레마에 빠지기 십상이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포항지역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자고 입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10년 만에 개산예비비 500억을 편성해 피해 구제에 투입했다.

그러나 포항지역 이재민들은 보상지원금을 알아보려고 지자체를 통해 문의했지만 해결이 쉽지 않았다. 보상금 신청부터 수령하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매년 봄철 산불 화재나 여름철 수해 피해 등 지원금을 통한 보상도 중요하지만, 재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인프라 조성이 더욱 필요하다.

서울시는 빗물터널 완공까지 침수 피해 대응에 나서 재난 대응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도입된 침수 예·경보제를 시행하고, 강남역·대치역·이수역 사거리 3곳은 침수취약도로 사전통제 서비스를 운영한다. 침수 예·경보가 발령되면 이웃주민이 반지하에 사는 재해약자를 대피시키는 동행 파트너도 현재 반지하 거주 재해약자 954가구와 2391명의 매칭을 완료했다.

침수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빗물받이다. 배수관로 초입인 빗물받이가 담배꽁초 등 쓰레기로 가득 차 물이 배수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남·관악·영등포구 등 자치구들이 지난해 폭우 때 빗물받이가 쓰레기로 막혀 제대로 빗물이 내려가지 못해 침수 피해를 봤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시내에만 빗물받이 55만8000여개 있다. 대로변 등에 설치된 빗물받이는 기계를 활용해 내부 이물질을 흡입하도록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해 폭우 피해를 막기 위해 올해 빗물받이 전담 관리자를 포함해 2만3000여명을 투입했지만, 빗물받이 수가 많아 청소 직후에도 금방 쓰레기가 쌓여 관리가 쉽지 않다.

2027년까지

환경부 관계자는 “도시 침수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하수관로로 빗물이 빠져나가는 초입인 빗물받이가 막힘 없이 관리돼야 한다”며 “침수 예방을 위해서는 지자체의 노력과 빗물받이에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는 등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집중 호우 기간(7~9월)에는 시민들에게 ‘빗물받이에 쓰레기 투기하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메시지를 발송할 예정이다. 

<ojh34522@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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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