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㉝한국의 유별난 불구자 천시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5.18 08:35:31
  • 호수 14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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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후후훗, 그래도 좋은 탈을 쓰고 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죠. 아까 사다리 얘길 하셨는데, 난 가능하다면 그런 사다리를 기어올라 인간이 한 번 돼보고 싶어요.” 

“사다리란 비유적인 것이니까요. 인간이면서도 스스로 추락하는 자가 있는 반면 인간의 참모습을 찾아 올라가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한 발짝 한 발짝 올라가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하 세계로 성큼성큼 직접 내려가 죄인들을 위로해 주는 분도 많고요. 문제는 사다리의 양 끝에 있기보다, 포기하지 않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그 과정이 목표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롭지 않을까 싶어요.” 

괴물인

그는 말이 없었다. 술도 마시지 않고 고개를 수그린 채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침묵을 지켰다. 난 무르춤해져 몇 마디 더 덧붙여 주절거렸다. 

“저는 그게 진정한 연금술이라 생각해요. 섣불리 황금을 만든다거나 신이 되려 노심초사하거나 악마가 돼 권력을 휘두르려고 획책하다가 미치광이로 추락해버린 목적 욕망주의자들이 많잖아요.” 


“병신….” 

그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게 병신 아닌가요? 사다리를 올라가 보려고 지랄치는 자체가 병신 아닐까요? 난 역시 생긴 대로 괴물인으로 사는 게 가장 어울릴 것 같군요. 사다리란 명색은 좋지만 허울 좋은 망상에 불과할 뿐인걸….” 

“아니죠. 심리적인 사다리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에스컬레이터도 있으니까요. 불구자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 그게 바로 인간적인 에스컬레이터가 아닐까 싶은데 말예요.” 

“꿈 같은 세상이네요.” 

“이상스럽게도 한국 사람들이 유달리 불구자를 천시하고, 그러다 보니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뿐 아니라 심리적 인프라도 열악한 것 같아요. 자기가 직접 한 번 당해봐야 겨우 깨닫는 이기적이고 감상적인 관심…. 자기가 강한 자에게 핍박당하다 보니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고, 예전엔 부국강병 경제개발의 역군 시대에 대열에서 이탈된 낙오자는 병신으로 취급받았을 테니까요.”


“아마 스스로 못나서 자기보다 못한 장애인을 멸시하며 자존감을 세웠는지도 모르죠 뭐. 참으로 강한 인권 선진국의 경우와는 반대 현상인 것 같아요. 비유하자면… 아니, 현실적으로… 육신은 멀쩡하면서 영혼과 정신과 마음이 불구인 괴물 장애인들이 판을 치는 사회가 이 위대한 대한민국이죠. 사실은 그게 더 큰 병인데 아예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더욱더 이른바 자기계발을 하면서 폭주 중이니….”

“그런 얘길 들어도 별 감흥이 없네요. 희망도 없이, 그냥 살아갈 밖에…. 난 차라리 내 몸뚱이보다 토끼 닮았다는 이 땅덩어리가 때때로 가끔 더 처량스럽고 가엾게 느껴지더군. 흐흐흣….” 

“네? 뭐라구요?”

장애인 관한 사회적·심리적 인프라 열악
육신은 멀쩡, 정신은 불구인 게 더 큰 병

“하긴 뭐 얼토당토 않은 내 자신의 서글픈 망상이겠지.” 

“술 안주론 현실보다는 망상이 더 좋겠죠.” 

“흠, 그럴까? 내 생각엔 이 한반도 땅이 토낀지 호랑이 형상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등허리에 큰 상처를 입은 채 절규하는 꼽추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요. 아마 내 신세 때문이겠지만. 대륙을 향한 포효라기보다 박제돼 버린 구슬픈 소리 없는 비명…. 내 등의 혹은, 흐흐, 남북한 사이의 철조망 또는 불신과 증오이기도 하고 두 쪽 체제의 암종 같기도 해. 흥,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구?”

“이름만 거창스럽지 사실은 사기꾼들의 양두구육식의 집단이 아닌가 싶어. 내가 무식해서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쪽 다 국민과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간판을 내걸어 놓았으면 어느 정도 생색은 내야잖수, 응? 그런데 나라 주인은 온갖 고생을 다 시키면서, 지도급입네 하시는 인사들은 최고급 주루 꼭대기에 올라앉은 채 온갖 부귀영화 미색을 다 누리며 떵떵거리는 개판이 저 건국 이후 오늘 이날 이때까지 이어지는 판국이잖냐 말여!”

“ 거짓과 가짜. 우리가 북한을 북괴라고 욕하지만 제 얼굴 낯짝에 침뱉기 꼬락서니지 뭐 별것 있겠수? 양두구육 식의 저 거짓 고루 누각 명월옥을 뒤집어 엎어 버려라! 그러기 전엔 결코 변하지 않으며 통일도 오지 않는다! 흐흣, 좀 과격했나?”

사실 좀 과격한 느낌이엇으나 난 내색하지 않고 쓴웃음만 지었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상 현실적으로 이 한반도 땅도 무척 고통스러울 거예요.” 

“아, 언제 이 비굴한 설움과 고통스러운 삶이 종막을 내릴 수 있을까. 이 암종 같은 혹은 아마 내가 죽기 전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시대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으니 만큼 희망을 갖고 암종을 떼내어 버릴 날을 기다리며 암중모색해야겠지요. 사실 귀금속의 연금술이든 마음의 연금술이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쉽다면 연금술이란 말을 붙이지도 않았겠죠 뭐.” 

“정신과 육신 사이를 가로막은 채 헐뜯는 이 혹을 어떻게 하면 스르르 녹여서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몸을 치료하기가 어려울 땐 마음속 혹부터 떼내어 버리라는 성현님들의 말씀을 따라 나름 꽤 애써 봤지만 쉬운 노릇이 아니더군요.” 

“그런데 유한한 내 목숨과 영원해야 할 이 땅을 무심결에 한 번 비교해보니, 어렵더라도 역시 한 숨 한 숨, 한 땀 한 땀, 한 걸음 반 걸음씩이나마 호흡하며 걸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현실의 혹과 철조망이 두꺼울수록 내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모아….” 

혹의 암종

“비유 얘기가 나왔으니 드는 생각인데 그 마음은 남북의 지도자입네 하는 자들이 아니라 일반 국민과 인민의 영혼이라는 느낌이군요.” 

“당연히 그렇겠죠. 혹의 암종 속에 과연 무연이 들어 있을까요. 그리고 내 마음의 암종 속엔….”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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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