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윤석열정부 1년 성적표

검찰로 시작해 검찰로 끝났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윤석열정부 취임 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각종 문제가 터져 나와도 가까스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었으나 앞으로가 문제다. 가시적인 결과를 내놔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서다. 시점이 시점인 만큼 전 정부 탓도 할 수 없다. 윤정부는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민생 문제 등을 해결하고, 대선 공약들을 잘 지킬 수 있을까?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 50%로 시작하며 정권교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외교, 대통령실의 인사, 경제 문제 등 여러 악재들로 인해 꾸준히 지지율이 하락해왔다. 이런 가운데 어느덧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있다. 1년 동안 윤 대통령은 여러 개혁을 목표로 달려왔다. 

그러나 윤석열표 개혁들은 어쩐지 쉽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힌 대북정책, 외교, 경제, 부동산, 복지, 대통령실 인사 분야를 키워드로 선정해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북

윤정부의 대북정책은 문재인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다. 문정부서 북한과 대화를 끊임없이 하려 했던 것과 비교하면 윤정부 들어선 공식적인 대화 자체가 한 번도 없었다. ‘담대한 구상’은 윤 대통령이 대선 기간 때부터 끊임없이 강조해온 목표로 취임식서 “비핵, 평화, 번영의 한반도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던 바 있다.

윤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도발 수위는 더 높아졌으며, 횟수는 더 잦아졌다. 최근에는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윤정부는 ‘핵은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기조가 뚜렷하다. 앞선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이 1년 내 핵무장이 가능한 기술을 보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윤정부와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됐다고 보고 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처럼 적대적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맞다. 차이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과 위협으로 규정하는 데 있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면 모든 대화가 불가능하다”며 “어떤 지원을 하게 된다고 해도 독이 든 사과다. 윤정부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은 이명박정부 시기에 비핵·개방·3000과 비슷한 논리”라고 분석했다.

정 실장은 “과거 문정부도 사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선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는데, 현 정부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제시하고 있는 탓에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핵·개방·3000은 북한의 핵 폐기 결단을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남북한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프로젝트다. 결국 과거의 논리를 현 정부서 상당히 흡사하게 구상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 6명에 물으니…
“못하고 있다” 이구동성

그는 “과거 문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지나치게 매달렸다. 긍정적인 것은 이번 정부가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핵 보유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한미동맹은 굳건해야 하지만 우리 안보를 한미동맹에 의존하면 북한의 핵 공포하에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유엔 안보리 제재가 채택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동안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해도 제재가 채택이 되지 않았다. 북한으로선 지금이 마음 놓고 무기 시험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이런 탓에 추후 남북 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외교

윤정부는 문정부의 외교정책을 한미동맹 약화, 대중 굴종 외교, 주종의 남북 관계라는 프레임으로 적극적으로 공격해왔다. 윤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는 상생과 공영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나라를 살리는 경제, 안보 확립, 국격에 걸맞은 기여다.

최근 전 세계적인 외교 기조는 ‘안보가 경제’라는 측면보다는 ‘경제가 안보’라는 흐름이 강하다. 그러나 미국의 도·감청 사건, 한일정상회담에서는 굴욕 외교라는 후폭풍이 거셌다. 직전 한미정상회담도 윤 대통령에게는 양국 간 동맹 강화라는 기조에도 불구하고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힘쓰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경제 들러리였다는 혹평까지 내려진다.

중국, 러시아와는 더욱 사이가 틀어진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서 적대적 행위에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러시아는 한국과의 무역 규모가 15위고, 중국은 한국이 상당량의 중간재를 수출하는 국가다. 앞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당시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한국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던 바 있는 만큼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 교수는 “한마디로 진영 편향 외교다. 미국과 일본만 만났다. 겉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다른 국가와의 협상이나 어젠다가 없다. 중국과 30분 만난 건 상견례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 후보 시절 국익을 앞세워 실리외교를 하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윤정부가 결국 변수를 찾아내지 못하고 미국, 일본도 이익이 없으면 한국을 설득시킬 이유가 사라진다.

앞서 연속적인 정상회담서 윤정부는 외교적 성과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가시적 성과를 위해서는 우리가 ‘자율성’을 갖고 서로 이익을 취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은 미국에 133조원 투자를 약속하고 왔던 반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은 뒤통수를 맞고 왔다. 

대북, 핵 보유하는 방향으로 가야?
외교, 진영 편향…자율성 가져야

김 교수는 “외교 옵션이 점점 적어지는 추세다. 이렇게 되면 결국 친구는 아무리 잘못해도 친구라는 논리밖에 세워지지 않는다”며 “실리를 따르지 않고, 같은 진영인지만 눈치 보면 일본이 (과거사를)반성하지 않고, 미국에는 요구하지 못한 채 다 줘버리는 상황만 생긴다. 원자력도 윤정부가 내세우는 주요 사업 중 하나인데 이러다가는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복합기업으로 불리는 웨스팅하우스는 한국 정부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미국 에너지부에 낸 체코 원전 수술 신고서가 반려되면서, 협력 의향서까지 체결한 폴란드 원전 수출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윤정부가 적극적으로 미국 정부와 공조 강화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려고는 하고 있으나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는 윤정부가 인수위 기간 마련한 국정운영의 큰 줄기 중 하나다. 경제 체질을 선진시켜 혁신 성장의 디딤돌을 놓고, 핵심전략산업 육성으로 경제 재도약을 견인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또 현 세대의 희생,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개혁 과제들도 미루지 않고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윤정부 출범 이후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반도체 산업은 침체기로 빠져 들었고, 수출은 꾸준히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적자 상황까지 벌어졌고, 원화 가치마저 하락했다. 민생경제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해 “처참하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코로나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그렇지 않다”며 “10여년 동안 이런 국면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은 경제위기다. 위기를 덮고, 가리는 데 급급해 해결책이 안 나온다”고 평가했다. 

우 교수는 한국의 재정도 위기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세수가 다 걷히지 않았을 뿐더러, 감세 상황까지 벌어져 10년 동안 최저라고 분석했다.

경제위기로 정부는 지출을 줄이거나 돈을 빌리거나 때론 국채를 발행해야 할 수도 있다. 경제가 보통인 상황에선 지출을 줄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불경기 때는 정부가 나서 돈을 인위적으로 풀어야 한다. 


경제, 처참…역경기적 정책 필요
부동산, 액션은 긍정…속도 조절 

우 교수는 “정부가 돈을 못 쓰게 한다. 추경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추경호 부총리와 윤 대통령이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경제가 안 좋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할 역할이 있는데 못하는 것”이라며 “경제는 늘 실질을 찾아가기 때문에 문제가 터진다. 물구덩이가 마르기 시작하면 가장자리부터 마른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괜찮지만 서민경제는 굉장히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역경기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통상 경기가 좋을 때는 정부의 역할은 크지 않으며 정부의 개입 시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한마디로 경제를 평탄화시키는 작업에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문정부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6번이나 대책을 내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정부지 집값은 붙들지 못했다. 부동산 문제는 지난 대선서 가장 주목받았던 의제로 윤 대통령 역시 자신있게 대책을 내놨다.

분양시장 규제로 로또 청약을 막고, 재건축·재개발 규제로 조합원의 과다이익을 막겠다는 게 골자였다. 세금 규제, 주택 보유 매매 부담을 늘려 주택시장의 수요를 조절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주택은 5년간 270만호를 전국에 짓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액션을 취하는 부분은 긍정적이나 통상 ‘공급 부족’이라는 말은 실제 집이 부족한 게 아니라 집값이 오를 때 나오는 이야기”라며 “파격적인 조세 규제 완화, 부동산 세제개편 부분도 이야기한 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보유세는 조금씩 내려가고 있는데 거래세 같은 게 낮아진 걸로 보이지 않는다. 양도세도 거의 그대로다”고 진단했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겸임 교수 역시 속도가 느리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한 교수는 “특이적 요소가 너무 많이 개입돼있다. 긍정적인 면은 있을 수 있지만, 시장 왜곡을 일으키고 있다. 속도 조절 측면을 지키지 않았다”며 최 교수와 비슷하게 규제 완화 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수위를 조절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그립을 쥐었다는 셈이다.

복지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역대 정부서 출산율 해결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늘 역부족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정부를 거치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 무려 200조원이 넘는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연금개혁도 마찬가지다. 적립금은 전 세계 2위 수준인 1000조원이지만 2050년경 고갈이 예상된다. 현재 연금개혁은 3대 개혁 중 하나로 선정해 추진 중이지만, 문제는 적잖은 저항이 예상돼 정부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선 연금개혁을 두고 끊임없이 손을 대겠다고 말해왔으나 늘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되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어떤 정당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았다. 

복지, 전환·혁신 없으면 그대로
인사, 검찰공화국 총선 때 위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혁안이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선거 직전에 진영 논리가 생겨왔다. 복지개혁은 후세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여전히 복지 분야는 알박기 때문에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다. 정책을 생산하는 통로 틀 자체가 동맥경화에 걸린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복지정책이 좋다, 나쁘다는 치열한 논쟁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결국 복지정책 분야에서는 1년 평가도 의미가 없다. 정책 생산 과정 자체가 정체돼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통상 복지제도를 건드리기 위해서는 집권 초기에 정책들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공약을 내세우기 급급했던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정치권도 알고 있었고, 연금개혁특위도 있었다. 그러나 특위 마지막 회의서 나온 얘기가 그동안의 논의를 정리했다는 수준이다.

한국의 평균 국민연금 급여액은 60만원 수준으로 기여금은 노동자 9%, 회사 9%인데 소득 대체율은 40%밖에 안 된다. 국내총생산(GDP), 국민총생산(GNP) 대비 공적 복지예산은 낮은 수준에 속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어느 정권이든 동일했다. 윤정부도 방향 전환, 혁신이 없으면 앞으로 4년은 그대로 간다. 그 사이에 우리 복지는 더 후퇴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며 “곧 1년이 지나고, 행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끝났을 시점이다. 어젠더를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여러 가지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

윤정부는 정권 시작 초기부터 대통령실 인사와 관련된 문제가 상당했다. 측근, 검찰 출신의 인선은 여론 악화의 주범이었다. 국정운영 부정 평가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부분도 바로 ‘인사 문제’였다.

최근에는 아예 검사 출신 측근들을 총선에 대거 투입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인수위 시절 전문성을 갖고, 능력 있는 인재를 널리 등용시키겠다고 밝힌 것과는 다르게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검찰 출신을 우대했다는 평가서 자유로울수 없어 보인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내각이나 대통령실 비율로 따져봤을 때는 얼마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핵심 요직에 앉힌 부분을 살필 필요가 있다. 검사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상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 문제는 차기 총선서 분명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지지율이 높으면 탕평 인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국 정치권으로 (검찰 출신을)진입시키기 위해 무리한 공천이 진행되면 위험 요인”이라고 우려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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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