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윤석열정부 1년 성적표

검찰로 시작해 검찰로 끝났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윤석열정부 취임 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각종 문제가 터져 나와도 가까스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었으나 앞으로가 문제다. 가시적인 결과를 내놔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서다. 시점이 시점인 만큼 전 정부 탓도 할 수 없다. 윤정부는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민생 문제 등을 해결하고, 대선 공약들을 잘 지킬 수 있을까?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 50%로 시작하며 정권교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외교, 대통령실의 인사, 경제 문제 등 여러 악재들로 인해 꾸준히 지지율이 하락해왔다. 이런 가운데 어느덧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있다. 1년 동안 윤 대통령은 여러 개혁을 목표로 달려왔다. 

그러나 윤석열표 개혁들은 어쩐지 쉽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힌 대북정책, 외교, 경제, 부동산, 복지, 대통령실 인사 분야를 키워드로 선정해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북

윤정부의 대북정책은 문재인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다. 문정부서 북한과 대화를 끊임없이 하려 했던 것과 비교하면 윤정부 들어선 공식적인 대화 자체가 한 번도 없었다. ‘담대한 구상’은 윤 대통령이 대선 기간 때부터 끊임없이 강조해온 목표로 취임식서 “비핵, 평화, 번영의 한반도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던 바 있다.

윤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도발 수위는 더 높아졌으며, 횟수는 더 잦아졌다. 최근에는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윤정부는 ‘핵은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기조가 뚜렷하다. 앞선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이 1년 내 핵무장이 가능한 기술을 보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윤정부와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됐다고 보고 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처럼 적대적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맞다. 차이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과 위협으로 규정하는 데 있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면 모든 대화가 불가능하다”며 “어떤 지원을 하게 된다고 해도 독이 든 사과다. 윤정부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은 이명박정부 시기에 비핵·개방·3000과 비슷한 논리”라고 분석했다.

정 실장은 “과거 문정부도 사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선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는데, 현 정부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제시하고 있는 탓에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핵·개방·3000은 북한의 핵 폐기 결단을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남북한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프로젝트다. 결국 과거의 논리를 현 정부서 상당히 흡사하게 구상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 6명에 물으니…
“못하고 있다” 이구동성

그는 “과거 문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지나치게 매달렸다. 긍정적인 것은 이번 정부가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핵 보유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한미동맹은 굳건해야 하지만 우리 안보를 한미동맹에 의존하면 북한의 핵 공포하에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유엔 안보리 제재가 채택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동안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해도 제재가 채택이 되지 않았다. 북한으로선 지금이 마음 놓고 무기 시험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이런 탓에 추후 남북 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외교

윤정부는 문정부의 외교정책을 한미동맹 약화, 대중 굴종 외교, 주종의 남북 관계라는 프레임으로 적극적으로 공격해왔다. 윤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는 상생과 공영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나라를 살리는 경제, 안보 확립, 국격에 걸맞은 기여다.

최근 전 세계적인 외교 기조는 ‘안보가 경제’라는 측면보다는 ‘경제가 안보’라는 흐름이 강하다. 그러나 미국의 도·감청 사건, 한일정상회담에서는 굴욕 외교라는 후폭풍이 거셌다. 직전 한미정상회담도 윤 대통령에게는 양국 간 동맹 강화라는 기조에도 불구하고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힘쓰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경제 들러리였다는 혹평까지 내려진다.

중국, 러시아와는 더욱 사이가 틀어진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서 적대적 행위에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러시아는 한국과의 무역 규모가 15위고, 중국은 한국이 상당량의 중간재를 수출하는 국가다. 앞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당시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한국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던 바 있는 만큼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 교수는 “한마디로 진영 편향 외교다. 미국과 일본만 만났다. 겉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다른 국가와의 협상이나 어젠다가 없다. 중국과 30분 만난 건 상견례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 후보 시절 국익을 앞세워 실리외교를 하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윤정부가 결국 변수를 찾아내지 못하고 미국, 일본도 이익이 없으면 한국을 설득시킬 이유가 사라진다.

앞서 연속적인 정상회담서 윤정부는 외교적 성과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가시적 성과를 위해서는 우리가 ‘자율성’을 갖고 서로 이익을 취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은 미국에 133조원 투자를 약속하고 왔던 반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은 뒤통수를 맞고 왔다. 

대북, 핵 보유하는 방향으로 가야?
외교, 진영 편향…자율성 가져야

김 교수는 “외교 옵션이 점점 적어지는 추세다. 이렇게 되면 결국 친구는 아무리 잘못해도 친구라는 논리밖에 세워지지 않는다”며 “실리를 따르지 않고, 같은 진영인지만 눈치 보면 일본이 (과거사를)반성하지 않고, 미국에는 요구하지 못한 채 다 줘버리는 상황만 생긴다. 원자력도 윤정부가 내세우는 주요 사업 중 하나인데 이러다가는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복합기업으로 불리는 웨스팅하우스는 한국 정부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미국 에너지부에 낸 체코 원전 수술 신고서가 반려되면서, 협력 의향서까지 체결한 폴란드 원전 수출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윤정부가 적극적으로 미국 정부와 공조 강화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려고는 하고 있으나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는 윤정부가 인수위 기간 마련한 국정운영의 큰 줄기 중 하나다. 경제 체질을 선진시켜 혁신 성장의 디딤돌을 놓고, 핵심전략산업 육성으로 경제 재도약을 견인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또 현 세대의 희생,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개혁 과제들도 미루지 않고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윤정부 출범 이후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반도체 산업은 침체기로 빠져 들었고, 수출은 꾸준히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적자 상황까지 벌어졌고, 원화 가치마저 하락했다. 민생경제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해 “처참하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코로나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그렇지 않다”며 “10여년 동안 이런 국면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은 경제위기다. 위기를 덮고, 가리는 데 급급해 해결책이 안 나온다”고 평가했다. 

우 교수는 한국의 재정도 위기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세수가 다 걷히지 않았을 뿐더러, 감세 상황까지 벌어져 10년 동안 최저라고 분석했다.

경제위기로 정부는 지출을 줄이거나 돈을 빌리거나 때론 국채를 발행해야 할 수도 있다. 경제가 보통인 상황에선 지출을 줄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불경기 때는 정부가 나서 돈을 인위적으로 풀어야 한다. 


경제, 처참…역경기적 정책 필요
부동산, 액션은 긍정…속도 조절 

우 교수는 “정부가 돈을 못 쓰게 한다. 추경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추경호 부총리와 윤 대통령이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경제가 안 좋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할 역할이 있는데 못하는 것”이라며 “경제는 늘 실질을 찾아가기 때문에 문제가 터진다. 물구덩이가 마르기 시작하면 가장자리부터 마른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괜찮지만 서민경제는 굉장히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역경기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통상 경기가 좋을 때는 정부의 역할은 크지 않으며 정부의 개입 시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한마디로 경제를 평탄화시키는 작업에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문정부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6번이나 대책을 내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정부지 집값은 붙들지 못했다. 부동산 문제는 지난 대선서 가장 주목받았던 의제로 윤 대통령 역시 자신있게 대책을 내놨다.

분양시장 규제로 로또 청약을 막고, 재건축·재개발 규제로 조합원의 과다이익을 막겠다는 게 골자였다. 세금 규제, 주택 보유 매매 부담을 늘려 주택시장의 수요를 조절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주택은 5년간 270만호를 전국에 짓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액션을 취하는 부분은 긍정적이나 통상 ‘공급 부족’이라는 말은 실제 집이 부족한 게 아니라 집값이 오를 때 나오는 이야기”라며 “파격적인 조세 규제 완화, 부동산 세제개편 부분도 이야기한 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보유세는 조금씩 내려가고 있는데 거래세 같은 게 낮아진 걸로 보이지 않는다. 양도세도 거의 그대로다”고 진단했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겸임 교수 역시 속도가 느리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한 교수는 “특이적 요소가 너무 많이 개입돼있다. 긍정적인 면은 있을 수 있지만, 시장 왜곡을 일으키고 있다. 속도 조절 측면을 지키지 않았다”며 최 교수와 비슷하게 규제 완화 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수위를 조절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그립을 쥐었다는 셈이다.

복지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역대 정부서 출산율 해결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늘 역부족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정부를 거치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 무려 200조원이 넘는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연금개혁도 마찬가지다. 적립금은 전 세계 2위 수준인 1000조원이지만 2050년경 고갈이 예상된다. 현재 연금개혁은 3대 개혁 중 하나로 선정해 추진 중이지만, 문제는 적잖은 저항이 예상돼 정부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선 연금개혁을 두고 끊임없이 손을 대겠다고 말해왔으나 늘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되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어떤 정당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았다. 

복지, 전환·혁신 없으면 그대로
인사, 검찰공화국 총선 때 위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혁안이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선거 직전에 진영 논리가 생겨왔다. 복지개혁은 후세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여전히 복지 분야는 알박기 때문에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다. 정책을 생산하는 통로 틀 자체가 동맥경화에 걸린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복지정책이 좋다, 나쁘다는 치열한 논쟁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결국 복지정책 분야에서는 1년 평가도 의미가 없다. 정책 생산 과정 자체가 정체돼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통상 복지제도를 건드리기 위해서는 집권 초기에 정책들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공약을 내세우기 급급했던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정치권도 알고 있었고, 연금개혁특위도 있었다. 그러나 특위 마지막 회의서 나온 얘기가 그동안의 논의를 정리했다는 수준이다.

한국의 평균 국민연금 급여액은 60만원 수준으로 기여금은 노동자 9%, 회사 9%인데 소득 대체율은 40%밖에 안 된다. 국내총생산(GDP), 국민총생산(GNP) 대비 공적 복지예산은 낮은 수준에 속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어느 정권이든 동일했다. 윤정부도 방향 전환, 혁신이 없으면 앞으로 4년은 그대로 간다. 그 사이에 우리 복지는 더 후퇴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며 “곧 1년이 지나고, 행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끝났을 시점이다. 어젠더를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여러 가지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

윤정부는 정권 시작 초기부터 대통령실 인사와 관련된 문제가 상당했다. 측근, 검찰 출신의 인선은 여론 악화의 주범이었다. 국정운영 부정 평가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부분도 바로 ‘인사 문제’였다.

최근에는 아예 검사 출신 측근들을 총선에 대거 투입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인수위 시절 전문성을 갖고, 능력 있는 인재를 널리 등용시키겠다고 밝힌 것과는 다르게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검찰 출신을 우대했다는 평가서 자유로울수 없어 보인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내각이나 대통령실 비율로 따져봤을 때는 얼마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핵심 요직에 앉힌 부분을 살필 필요가 있다. 검사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상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 문제는 차기 총선서 분명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지지율이 높으면 탕평 인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국 정치권으로 (검찰 출신을)진입시키기 위해 무리한 공천이 진행되면 위험 요인”이라고 우려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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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수사’ 공수처·검찰 엇박자 내막

‘윤석열 수사’ 공수처·검찰 엇박자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공수처가 검찰과의 줄다리기를 끝냈다. 대통령 기소권이 없는 공수처로서는 검찰의 요청을 쉽사리 거절할 수 없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구속이라는 성과를 거뒀으나 사건 이첩을 막을 순 없었던 셈이다. 오히려 공수처가 시간 끌기에 나섰다면 자칫 수사 자체가 꼬여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에 비협조로 일관했다. 불법 수사로 규정하면서 제 무덤을 파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 측은 사건이 검찰로 이첩되면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기관 쇼핑’ 논란을 자처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친정을 믿겠다는 무리수로 해석된다. 수사는 끝났는데… 공수처는 지난달 22일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윤 대통령을 체포한 뒤 제대로 된 수사나 조사를 이어가지 못했다. 조사를 거부하는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은 이날까지 총 세 차례나 불발됐다. 앞서 공수처는 구인 시도 첫날인 같은 달 20일, 윤 대통령이 완강하게 거부하자 대치만 하다가 6시간 만에 철수했다. 전날에는 탄핵 심판 변론을 마친 윤 대통령을 상대로 구인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이 외부 진료를 받고 오후 9시가 넘어 복귀하면서 무산됐다. 인권 보호 규정상 오후 9시 이후 심야 조사는 피의자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체포 당일인 지난달 15일 첫 대면조사 때부터 모든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7차례에 걸친 출석 및 조사 요구를 모두 거부한 셈이다. 공수처는 최근 언론 공지를 통해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려고 했으나 대통령실은 오후 3시쯤 집행을 불승인했고 관저 압수수색은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해 오후 4시50분쯤 집행 중지했다”고 밝혔다. 공수처의 압수수색은 윤 대통령이 사용했던 비화폰 서버 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였다. 경찰도 같은 이유로 대통령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으나 대통령경호처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비화폰을 통해 군·경찰에 “국회에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 “문짝을 도끼로 부숴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 등의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전날 탄핵 심판 3차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해 “계엄 당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공수처는 지난달 23일 과천청사에서 윤 대통령 내란혐의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서울중앙지검에 공소제기(기소) 요구 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판·검사나 경무관 이상 경찰관만 직접 기소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지난해 12월3일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직무권한을 남용해 경찰 국회 경비대 소속 경찰관들과 계엄군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국회의원들의 계엄 해제 요구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도 있다. 공, 불법 수사 규정 강제구인도 실패 어쩔 수 없이 이첩…구속 제외 성과 ‘0’ 공수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및 국방부 조사본부의 공조가 없었다면 오늘 수사 결과는 발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검찰청 역시 공수처의 이첩 요청권에 응해 사건을 적시에 이첩하고 이후 다수의 조서 및 공소장 관련 자료 등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도 공수처에는 비상계엄과 관련된 피의자들 및 관련자들 사건이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대상자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책임 있는 수사 대상자는 모두 의법 조치될 수 있도록 수사를 엄정히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측은 아직 검찰 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바 없다. 이들은 “검찰에 사건이 이첩된 이후 판단하겠다”며 유보해 왔다. 공수처 조사와 달리 검찰 조사엔 응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수사기관의 수사를 계속 거부할 명분이 부족할 뿐 아니라 향후 재판 과정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검찰 수사 분위기를 봐가며 수사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며 “검찰과 공수처의 갈등을 이용해 일부분 협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자신의 친정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종 기소권을 가진 검찰 조사 단계에선 구치소 방문 조사 등 최소 범위로 응하되,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전면 부인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거 노태우·전두환·노무현·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검찰 조사에 응했던 바 있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은 구속 이후엔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 조사 거부 명분으로 내세웠던 ‘내란죄 수사권’을 다시 꺼내 들며 검찰 조사도 거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위고하 막론하고 윤 대통령 측은 지금까지 공수처와 검찰 모두 법적으로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으며, 내란죄 수사권은 경찰만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검찰이 윤 대통령 조사를 시도하는 것은 ‘불법 수사’라며 공수처 수사를 거부해 온 것과 대응 방식이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권이 없는 기관에 협조도 안 했는데 검찰에 협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애초 검찰도 윤 대통령에 대해 강하게 수사해 왔고 그런 검찰에 윤 대통령이 크게 실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달 검찰의 소환조사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변론일에 출석해 여론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검찰은 구속 기간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실무 관행을 고려해 연장을 신청했다. 판사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면 10일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구속 기간을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연장 허가 시 구속 만료 시점은 오는 5일로 예상된다. 검찰은 이날 전후로 윤 대통령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검찰은 공수처와 별도로 지난해 12월18일부터 12·3 비상계엄 사건을 수사해 왔다. 김 전 장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 핵심 관련자 10명을 군검찰과 함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 밖에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등 비상계엄 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과 군·경찰 간부들도 조사하며 윤 대통령 혐의를 다졌다. 후배들이 나설 차례 검찰은 그간 확보한 물적·인적 증거를 토대로 윤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캐물을 계획이다. 최 대행에게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을 지시했는지, 곽·이 전 사령관 등에게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위해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는지, 주요 인사 체포를 지시했는지, 총기 사용을 지시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따져 물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윤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부르기보다는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조사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면조사가 이뤄지면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친정인 검찰 후배들과 마주 앉아 조사받게 된다. 윤 대통령은 사법연수원 23기로, 특수본부장인 박 고검장은 29기, 김종우 차장은 33기다. 수사팀 최순호 중앙지검 형사3부장은 국정 농단 수사팀서 당시 팀장이던 윤 대통령 지휘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우선 윤 대통령에 대한 혐의 다지기를 위해 국방부 조사본부를 압수수색했다. 검찰 특수본은 지난달 23일, 요인 체포조 편성 및 운영 혐의와 관련해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비상계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김명수 전 대법원장 등 정계와 법조계 주요 인사 14명에 대한 체포조 운영 정황을 포착해 최근까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 전 장관의 공소장에 체포조 운영 정황을 상세히 적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 전 장관의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충암고 후배 여 전 사령관은 박헌수 국방부 조사본부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령 선포됐으니까 너희 수사관 100명 우리한테 보내줘야 한다”며 지원을 요구했다. 이에 국방부 조사본부는 요인 체포조를 위해 조사본부 차원서 100명의 수사관을 동원했다고 보고 있다. 체포조에는 방첩사 수사관 50명과 경찰 수사관 100명도 동원됐다고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헌재 여론전 윤 믿을 건 친정뿐? 검 “대면조사 필요…봐주기 없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네진 쪽지도 핵심 물적 증거다. 지난달 22일 민주당이 공개한 해당 쪽지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제목 아래 ▲예비비 조속 편성 ▲국회 관련 각종 운용자금 완전 차단 ▲국가비상 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민주당은 이 쪽지를 윤 대통령이 최 대행에게 직접 전달했다며 “최 대행은 명백한 내란 공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측은 해당 쪽지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국회를 위헌적으로 해산하려 한 핵심 증거라고 보고 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헌법재판소 변론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란 쪽지를 기재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냐”고 묻자, “저는 준 적도 없고, 나중에 계엄 해제 뒤 한참 있다가 언론서 메모가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며 부인했다. 쪽지의 존재가 처음 드러난 건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 현안 질의서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최 대행이 “윤 대통령이 저를 보시더니 ‘참고하라’며 옆에 누군가가 자료를 하나 줬는데, 접혀 있었다”는 발언부터였다. 이날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대통령께서 직접 주셨냐”는 질문에, 최 대행은 “대통령이 직접 주시진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대행은 “한 장짜리 자료인데, 접혀있었다”며 “제 직원(기재부 차관보)한테 ‘이것 가지고 있어’라고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4일 새벽 1시쯤 기재부 간부회의를 한 뒤, 차관보가 저한테 ‘아까 주신 문건이 있다’고 말해 확인했고, ‘비상계엄 상황서 유동성 확보를 잘 해라’라는 문장이 기억이 난다”고 답했다. 다만 최 대행에게 쪽지를 건네준 인사가 누구인지까지는 국회 회의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최 대행은 해당 문서를 계엄 해제 이후 폐기하지 않고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최 대행의 과거 발언을 살펴보면, 윤 대통령의 “쪽지를 준 적도 없다”는 말은 최소한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최 대행에게 직접 건네지 않은 것은 맞지만, 그 존재를 언론을 보고 알았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최 대행의 “참고하라고 했다”는 발언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휴가도 반납 혐의 다지기 전날 국회 비상계엄 국정조사 청문회서도 윤 대통령의 쪽지를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윤 대통령이 쪽지를 직접 준 게 맞다”고 증언했고, 한 총리는 “전체적인 것들을 기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11명 중 한 총리를 포함해 최 대행 등 7명을 조사했고 박성재 법무부 장관도 소환조사했다”고 전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