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러닝머신 타는 미국인 빈센트씨 사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2.12 13:20:59
  • 호수 14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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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겨울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러닝머신을 타는 외국인이 있다. 그의 얼굴은 사뭇 진지하다 못해 외로워 보인다. 그의 이름은 시치 잔 빈센트(Sichi John Vincent). 함께 미국에서 살던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와 사라져 버렸다. 그는 두 아이를 찾기 위해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은 2012년 12월13일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에 가입했다. 이에 앞서 이행을 위한 이틀 전인 12월11일 법률 제11529호로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 이행에 관한 법률’(이하 헤이그법)을 제정해 2013년 3월1일 발효했다. 헤이그 국제 아동탈취협약은 한쪽 부모가 일방적으로 불법 탈취한 아동을 신속히 본국으로 반환하고 면접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약으로 세계적으로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면서 만들어졌다. 

계속되는 
제자리걸음

특히 문제는 국제결혼의 파탄 때 발생한다. 이혼 시 한 명의 배우자가 아동을 해외로 탈취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한 명의 부모가 아동의 신원을 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아동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상황에 처한다.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은 이런 방식으로 불법 탈취된 아동의 신속한 반환과 면접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만 이 협약이 아동의 양육권‧면접교섭권을 결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한국은 이 협약이 적용되는 사안에 대한 아동의 소재를 발견하면 즉시 협약 적용과 관련한 국내 법률의 일반적 정보 제공을 해야 한다. 그 밖에 협약에서 규정한 지원 등 행정적 지원업무는 법무부 법무실 국제법무과에서 담당한다.


한국 헤이그법 4조에는 한국은 법무부 장관을 지정하고, 위 법률 제3조는 각 국가기관이 헤이그 아동탈취사건에 관해 신속한 처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총 65개 나라가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에 가입했다. 따라서 한국은 국제아동탈취 사건에 관해 신속히 처리해 탈취된 아동이 반환되도록 협조해야 할 국제법, 국내법상의 의무를 진다. 특히 주무 부서인 법무부는 각 국가기관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아동이 신속하게 반환되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특히 헤이그법 제14조에는 ‘법원은 아동 반환에 관한 사건의 심판 청구일 또는 조정 신청일부터 6주 이내에 결정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청구인 또는 법무부 장관의 신청에 따라 그 지연 이유를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하지만 한국은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을 지키고 있지 않다. 미국 국무성이 지난 6월 발행한 ‘헤이그 아동탈취협약 체약국 협약 이행 연례 보고서’에는 한국이 15개 불이행 국가 중 하나로 등재돼있다. 

토니 블링큰(An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6월 위 미국 국무성 연례 보고서에서 “협약국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유로 그들의 약속을 저버리는 국가가 있다. 우리는 기술지원, 훈련 및 정보 공유를 통해 이들 국가가 협약상의 의무를 준수하도록 돕고자 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증명하듯이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지서 살던 아내 두 아이 데리고 한국행
그 뒤 감감무소식…가족 찾으려 1인 시위

이날 헤이그협약 체약국 중 불이행 국가로 한국을 포함한 11개 국가인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벨리즈 ▲브라질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온두라스 ▲페루 ▲루마니아 ▲트리니다드도바가 등재됐다. 비체약국 국가 중에는 ▲요르단 ▲이집트 ▲인도 ▲아랍에미리트를 문제 국가로 등재했다.


위 연례 보고서에는 ‘지난해에도 한국은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을 불이행했다. 한국의 법 집행관은 반복적으로 탈취 건에 대한 집행에 실패했다. 이런 실패의 결과로 헤이그 아동탈취협약에 따른 탈취 아동 반환 요청의 50%가 12개월 이상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고 지적됐다.

특히 한 개의 사건은 법 집행관이 반환 명령의 집행에 실패해 12개월 이상 정체됐다. 남겨진 부모는 반환 명령의 집행을 위한 법 절차에서 몇 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럼에도 반환이 지연되고 있다. 아동을 탈취한 부모가 자발적으로 협약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는 이상 지난해에 이어 헤이그 아동 반환 사건의 판결은 전혀 집행되지 않았다. 이는 한국이 불이행 국가에 등재된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돼있다.

미 국무부 연례 보고서가 지적한 ‘12개월 이상 정체된 사건’은 바로 52세 미국인 남성 시치 잔 빈센트(Sichi John Vincent)의 사건이다. 그는 2013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로 여행 온 한국인 여성 A씨와 결혼했다. 2017년 1월29일 첫째 아이가 태어났고, 2018년 12월10일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A씨는 결혼을 통해 영주권을 얻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2019년 11월11일이다. A씨는 빈센트씨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잠시 다녀온다며 미국을 떠났다. 그 후로 A씨는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거절했다. 

당시 곧 둘째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빈센트씨는 A씨에게 “2019년 12월10일에는 미국으로 돌아와달라. 그리고 상황이 안 되면 크리스마스 전이라도 돌아와달라”고 이메일로 부탁했지만, A씨는 이를 거절했다. 

다가가고
싶어도…

빈센트씨는 형인 스티브와 함께 한국으로 향했다. A씨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둘째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함께했다. 마침내 A씨는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빈센트씨는 A씨의 약속을 믿고 2019년 12월13일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A씨가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는 2020년 3월2일자 샌프란시스코행 항공권이었다. 빈센트씨는 아이들과 A씨가 함께 미국 집으로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출국 이틀 전, A씨는 일방적으로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 

빈센트씨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법원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양육권을 얻고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A씨는 온라인으로 재판에 참여했다.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A씨에게 “미국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온다면 A씨도 양육권이 있는 것으로 판결을 내리겠다. 하지만 만약 A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오지 않으면, 양육권은 빈센트씨가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A씨는 끝내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했다. 2020년 8월4일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빈센트씨에게 아이들의 법적‧물리적 양육권을 단독으로 부여했다.


이렇게 빈센트씨는 두 아이의 법적인 보호자가 됐다. 이제는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에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빈센트씨는 바로 미국 국무부에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을 신청했고, 이 같은 사실은 한국 법무부에도 전달됐다. 동시에 아동 반환에 관한 소송이 한국 법원에서도 진행됐다.

한국 법원은 “A씨는 빈센트씨가 알코올중독자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본인과 아이들이 미국으로 반환될 경우 육체적·정신적 위험이 가해지거나 견디기 힘든 상황에 처할 거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독 양육자
만날 수 없다

그러나 법원은 “A씨가 제출한 자료는 빈센트씨가 알코올중독자라고 주장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헤이그법 제12조 제4항 제4조는 적절한 연령을 따져 아동의 의견을 고려해 반환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사건 본인의 나이는 만 4세, 만 2세로 반환 청구를 기각할만한 사유가 없다”고 답했다.

이어 “A씨는 아이들과 본인이 이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반환 예외 사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헤이그법 제12조 제4항 제1조에 따른 것인데, 심판청구가 불법적인 이동으로부터 1년이 경과한 후에 제기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판결은 지난 6월2일에 결정났다.

법원의 판결을 받은 지 6개월이 지났다. 빈센트씨는 아직도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려가지 못했고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강제적 집행을 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상황이다. 빈센트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소송 중에는 오히려 면접교섭을 할 수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10월부터 빈센트씨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6일, 서울시 지하철 영등포역 2번 출구 앞에서 시위 중인 빈센트씨를 만났다. 빈센트씨는 영등포역 2번 출구 앞 길 한복판에 가정용 러닝머신을 가져와서 타고 있었다. 러닝머신에는 서툰 글씨로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있다.

빈센트씨는 러닝머신을 타고 있었고, 러닝머신 앞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패널로 세워져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은 빈센트씨를 보고 무슨 시위인지 물었다. 

실효성 없는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
“이미 불이행 국가 낙인” 내용이 뭐길래…

몇몇 시민은 빈센트씨에게 “힘내세요” “아이들을 꼭 만날 수 있을 거예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자신이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물어보는 시민도 있었고 러닝머신을 타면서 힘을 주기도 했다.

빈센트씨는 <일요시사>에 “지금 나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가거나 아이들을 못 보는 상황”이라며 “특히 10일은 둘째 아이의 생일이다. A씨 측 변호사에게 아이의 선물을 전해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길거리에서 러닝머신을 타는 것은 ‘제자리걸음 시위’다. 나의 현실이 러닝머신을 타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것과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내가 아동 반환 청구소송에서 승소했으니, 법원 관계자가 동행해 아이들을 데려와야 한다. 보통 미국은 헤이그법에 따라 한 달 안에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며 “아이들이 빨리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서 적응해야 된다는 취지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과 나는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그렇다고 법원이 A씨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서울가정법원은 A씨가 아동 반환 의무를 불이행해서 감치로서는 최장기간인 30일의 감치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A씨는 여전히 빈센트씨와 자녀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다. 현재 빈센트씨는 A씨와 아이들의 거주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 대해 IPG Legal 법률사무소 민지원 변호사는 “한국은 유아 인도나 유아 반환 집행인이 평소 유체동산 인도, 부동산 명도‧철거‧퇴거 등을 동시에 집행한다. 그러니 집행인이 아동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어 유아 인도나 유아 반환이 실효성 있게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부모의 권리만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 변호사는 “집행관이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누구랑 살고 있니?’ 등 질문으로 함께 살 사람을 결정하도록 한다. 부모를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아동학대에 가깝다”며 “법원은 아동복지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했는데, 집행관이 아동심리에 무지해 아동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집행 자체가 
아동학대 과정”

그러면서 “그런데도 법을 개정하거나,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없어 상황이 매우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A씨 측 법률사무소에도 질문을 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원은 학계에서 정립된 법을 따르고, 강제집행은 법원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강제집행에 대해 소극적이다. 아이가 현장에서 집행을 거부하면 집행할 수 없다. 이 부분은 가족법이 바뀌어야 해결된다”고 답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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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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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