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문]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펼쳐진 지 어느덧 7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는 스스로 코딩하는 AI를 개발했고, 이외에도 AI 챗봇인 ‘이루다’ 시리즈가 출시되는 등 어마어마한 기술적 성취가 있었는데요.
이에 따라 ‘인간이 AI에게 밥그릇을 뺏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 역시 짙어졌습니다.
기존에는 ‘AI에게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을 변호사·의사·세무사 등의 전문직이나 캐셔 등 단순 반복 직업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낮은 직업’을 그림·소설 등 인간의 창의력을 이용한 문화예술 분야로 보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AI가 예술계부터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Space Opera Theater)’라는 제목을 가진 이 그림은 제이슨.M.앨런의 작품으로, 지난 8월 미국에서 개최된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아트 부문 1위 수상작입니다.
한동안 세계 예술계의 ‘뜨거운 감자’이기도 했는데요.
그 이유는 이 그림을 그린 주체가 앨런이 아니라 AI였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죠.
앨런은 ‘미드저니’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7월 출시된 미드저니는 원하는 문장을 입력하면 단 몇 초 만에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기능을 가졌는데요. ‘달리(Dall-E)’, ‘딥드림(Deep Dream)’, ‘노벨 AI(Novel AI)’ 등과 같은, 이른바 ‘그림 AI’입니다.
이들은 이미지의 주제와 더불어 구체적인 스타일과 화풍까지 정할 수 있고, 다소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만들 수도, 웹소설 등의 표지로 이용되는 만화 이미지를 생성할 수도 있습니다.
즉 앨런이 직접 창작한 건 ‘그림’이 아닌 ‘문장’뿐. 그는 해당 문장의 내용을 따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1위 작품을 포함한 출품작 3개를 만들기 위해 80시간 이상을 소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누리꾼들은 ‘앨런의 작품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격렬한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원작자가 그림에 단 한 번의 붓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일각에서는 “예술은 죽었다”는 비판까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앨런이 미드저니를 사용한 사실을 사전에 밝혔고, 박람회 측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모든 예술 행위를 용인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그의 수상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림 AI들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순식간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걸까요?
사실 이들이 그린 그림은 창작이라기보다 수많은 이미지를 학습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즉 기존 작품의 특징을 모방하고 조합하는 ‘빅데이터 짜깁기’에 해당하는데요. 이에 따라 AI의 작품을 ‘표절’로 간주하는 시선 역시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초의 AI 화가’로 알려진 ‘오비어스’는 13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그려진 1만5000점의 초상화를 분석해 데이터화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려진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는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43만2500달러(한화 5억원)에 낙찰됐는데요. 작품의 오른쪽 하단에는 화가의 서명 대신, 그림 제작에 쓰인 알고리즘 공식이 적혀 있었습니다.
2022년 출시된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의 경우 창작자가 소스로 사용할 그림을 제시하면 해당 그림의 구도와 색채를 기반으로 새로운 그림으로 변환해줍니다.
따라서 아주 간단한 낙서를 섬세한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으며, 장난스러운 밈 이미지를 입력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운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예술의 과도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I로 만든 예술 작품은 과연 개인의 창작물일까요? 혹은 기존의 스타일을 교묘하게 조합한 표절작일까요?
기술의 무궁무진한 발전에 따라 인류가 해결해야 할 난제 역시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총괄: 배승환
기획: 강운지
구성&편집: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