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안철수 오른팔 박선숙 역할론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26 11: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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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도 원순처럼… "정공법으로 대통령 만든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저는 안철수 원장의 새로운 변화와 함께 하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그의 진심을 믿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선거전략통'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이 무소속 안철수 캠프의 선거총괄 역으로 자리를 옮겨 '안철수의 오른팔'을 자청했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 가운데 안 전 원장 캠프에 합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선숙 전 의원이 어떤 인생사를 거쳐왔는지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출마 선언 다음 날인 지난 20일 민주통합당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이 무소속 안철수 전 원장의 대선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박 전 의원의 공식 명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안 전 원장의 선거를 총괄하는 선거대책위원장 격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측 인사가 안 전 원장 쪽으로 자리를 옮긴 최초의 인물이 됐다.

DJ정부 때 인연
"진정성 믿는다"

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며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해 시대의 무거운 숙제를 감당하기로 결심한 이상 안 원장의 새로운 변화에 함께하겠다"며 "당의 지도부와 문재인 후보,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해온 동료들과 저를 아껴주셨던 당원 동지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결정이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라는 큰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길 바라고 또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박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 당시 정보화시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안 전 원장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고, 그때 안 전 원장을 만나 우리 사회와 이웃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종종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의 진심을 믿는다"며 안 전 원장과의 오랜 인연을 설명했다. 

이날 박 전 의원은 안 전 원장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자리에 동행해 바로 곁에서 수행하며 대선정국이 끝날 때까지 안 전 원장 옆자리를 지킬 것을 예고했다.


박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실 공보기획비서관에 이어 최초의 여성 대변인을 지냈고 참여정부에선 2년간 환경부 차관을 역임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당시엔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선대위본부장을 맡았고,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전략홍보부장, 2008년 18대 총선, 2012년 19대 총선의 선거대책본부장 등을 연달아 맡으며 선거분야의 '기획·전략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또 지난 4·11 총선에 앞서 야권연대 협상 실무단 대표를 맡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단일화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민주당 선거전략통서 안캠프 선대위원장
최초의 청와대 여성대변인 "일 잘한다"

지난 20일 민주통합당은 박 전 의원이 안 전 원장 측 대선캠프에 합류한 데 대해 '개인의 선택'이라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음 날 우상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이 분이 사심을 갖고 친정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 아니고, 좀 더 큰 판을 만들어보겠다는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어서 (민주당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의원이 안 전 원장에게 조력을 했다는 사실은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1995년 이후 오랫동안 민주당에서 활동해 온 박 전 의원이 대선을 앞두고 당의 후보와 경쟁을 펼쳐야 하는 안 전 원장 측으로 간 데 대해 서운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가 '용광로 선대위'를 약속했지만, 이 부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선 과정에서 불만이 쌓인 비문세력이 안 전 원장 쪽으로 연합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히 박 전 의원이 소속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평련은 고 김근태 상임고문계 인사들의 모임으로 민주통합당 내 최대 계파인 만큼 앞으로 안 전 원장의 우군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박 전 의원의 이탈에 따라 전·현직 의원들의 추가 이탈이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박 전 의원이 향후 예상되는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민주화에 청춘 바친
'386세대' 선두주자

안 전 원장 측 캠프의 선거를 총괄하게 된 박 전 의원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청춘을 불사른 '386세대'다.
그는 1960년 경기도 포천의 한 기지촌에서 태어나 미군이 철수하면서 동네 전체가 쇠락하는 걸 목격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유치원이 없는 동네라서 다섯 살 반에 초등학교를 입학했고,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서울 이주를 결행한 덕분에 중·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닐 수 있었다.


박 전 의원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역사학과에 진학해 친구 따라 야학에 갔다가 학생운동을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70년대 학번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유신 체제하에서 성장하면서 '내가 살아생전에 민주주의 된 나라를 볼 수 있을까'라는 절망 속에서 숨 쉴 곳을 마련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1983년 박 전 의원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 참여하게 되고 이때 김근태 고문과 인연을 맺게 된다. 박 전 의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민청련을 비공개 의사결정구조에서 민주적으로 토론해서 결정하되 정치적 탄압은 공개된 지도부가 감당하도록 만든 조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김 고문이 민청련을 조직·활동하다 온갖 고문을 받고 고초를 당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민청련 소속이었던 박 전 의원도 학생운동을 하다 군인에게 잡혀 많이 맞았다고 회상했다. 박 전 의원은 그 당시 너무나도 두렵고 끔찍했지만 김 고문을 비롯해 선배들 여럿이 고문당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 일들을 버텨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81년에 유인물 만들어 뿌렸다가 대공분실에 잡혀가 온몸을 구타당했고 85년 구로 동맹파업 지지시위 당시엔 닭장차 안에서 불을 꺼놓고 군인들의 군홧발에 사정없이 짓밟혔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밥값' 위해
의정활동 힘껏 해야 해

박 전 의원은 김 고문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다 정치에 떠밀리듯 들어오게 된 것이라 한다. 김 고문이 정치계에 입문하고 후배들이 선배를 돕기 위해 팀을 만들면서 박 전 의원의 정치인생도 시작된 것. 그렇게 넉 달간 함께 일하다가 1995년 6월 첫 지방선거 당시 김 고문은 박 전 의원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추천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대변인 및 공보수석으로 청와대를 지키며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박 전 의원은 이후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으로 활동하며 김 고문과 각별한 사이가 된다.

국회에는 지난 18대 때 비례대표로 입성해 경제금융 관련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1위 평가를 받는가 하면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등 '일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박 전 의원은 18대 국회를 '최악의 몸싸움 국회, 난장판 국회'라고 정의하면서도 '보이스피싱 피해보전금 지급에 관한 특별법안'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입법화한 것을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갈 때쯤 대개가 짐을 싸느라 분주할 때도 박 전 의원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저축은행 비리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박 전 의원은 2011년엔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이 선정한 2011년 국정감사 우수 의원상 수상했고 대규모 유통업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에 기여한 공로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일 잘한다는 칭찬을 두고 박 전 의원은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최소한의 밥값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전 의원은 올해 4·11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이 민주당의 정권교체를 향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낼 수 없어 나라도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화제가 됐다. 박 전 의원은 당시 서울 동대문갑 후보로 거론됐지만 본인이 고사한 뒤 어떤 당직도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비례대표 초선인 그를 두고 '쉬운 지역구'를 받으려 한다는 뒷말도 무성했지만 불출마 선언으로 그러한 비판을 단칼에 쳐낸 것이다. 그 이후 박 전 의원은 야권연대 협상 실무단 대표를 맡아 야권 단일화를 주도했다.

고 김근태 고문과의 인연이 정치에 발들인 계기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MB와 한나라당의 복사판"

그러다 박 전 의원은 한명숙 전 총리의 요청을 받고 공천 파문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임종석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의 후임으로  4·11 총선을  총괄 지휘했다. 당시 박 전 의원은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불렸다. 그러나 새누리당에 기운 선거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이에 박 전 의원은 가장 먼저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 자리를 사퇴했다.

당시 박 전 의원은 "민주당의 여러 미흡한 점으로 인해,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충분히 받아 안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 결과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위원장의 새누리당이 지난 4년간 벌여왔던 문제를 국민이 용인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지금까지 대외활동을 자제해 왔다.

박 전 의원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박원순 범야권 단일화 후보 캠프에 민주당 몫으로 합류해 기획과 전략을 짰다. 이 같은 이력을 보면 향후 '문재인·안철수'단일화 논의에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의원은 학생민주화운동, 환경부 차관, 국회의원 등 민주화 운동과 행정부, 그리고 입법부 모두를 두루 경험했다. 그런 그에게 각 영역에서 공통되는 핵심 가치를 물으니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대답했다. 그 연장선에는 휴머니티라고 하는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공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 전 의원은 지난 3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운동을 할 때와 정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생각의 차이가 늘 존재했고 그것들을 좁혀가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를 좁히고자 하는 것이 정치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가까이 있는 동료의 의견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수인 국민의 생각과 바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냐"며 "생각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없애기 위해 싸우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대선을 두고는 "대선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박근혜 후보의 새누리당과 MB의 한나라당은 정말 다른 것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박 후보가 협력하지 않았으면, MB는 4대강도 부자감세도 재벌 편들기도 할 수 없었다. 박 후보의 새누리당은 전혀 새롭지 않은 MB와 한나라당의 복사판으로 본다.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해진다"고 말해 박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정권 이양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정치의 과정은
차이를 좁히는 것

박 전 의원은 정치 판세를 읽는 눈이 탁월하고, 선거 전략을 내놓는 데 있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대변인을 맡아본 이력 때문인지 언론관계도 매끄럽게 처리한다는 호평을 듣는 편이다. 또 박 전 의원은 예의를 중시하면서도 재치가 넘쳐 생전의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보궐선거를 통해 인연을 맺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신임도 남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8대 대통령 선거 80여 일을 앞두고 박 전 의원은 안 전 원장의 든든한 오른팔로 활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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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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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