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격차> “당신도 무연고자 될 수 있다” 소외된 자들의 죽음에 관하여…

[기사 전문]

진행자: 혹시 여러분은 이웃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가요?

홀로 임종을 맞은 뒤 일정 기간 후에 발견되는 죽음인 ‘고독사’. 우리나라의 고독사 사망자는 2019년 659명에서 2021년 953명으로,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즉 사회의 음지에서 일어나는 소외된 죽음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죠.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를 운영하는 유품정리사 김새별씨가 그 현장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김새별(유품정리사): 쉰 아홉 살 드신 남성 분이 고시텔에서 이렇게 돌아가셨어요. 근데 사실 그 나이쯤 되고 그러면 직장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대부분 하시는 일이 청소용역 또는 경비용역.

결국은 이제 회사에서 나오게 되셔서 일이 없으니까, 고시텔에서 본인이 갖고 있는 돈으로... 최소한의 돈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데만 집중을 하셨더라고요. 근데 제가 볼 때는 약주 이런 걸 드시지는 않았는데 굶어서 돌아가신 것 같아요. 아사죠. 많지는 않은데 더러 있어요.


전체적인 통계라고 하긴 그렇지만 제가 느낄 때 40~50대 중장년층의 고독사가 한 70% 정도 되고, 20%가 청년들의 극단적 선택. 한 10%가 노인 고독사죠.

예전에는 독거노인이라 그랬잖아요. 가족이 없는 노인 분들, 혼자 사는 노인 분들. 그런데 지금은 ‘홀몸 노인’이라고 그러죠. 가족이 있어도 혼자 사니까.

홀몸 노인에 대한 어떤 복지가 좋아지고 방문이나 이런 걸 통해서 계속 관리하고, 모니터링하니까 노인 고독사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럼에도 한 10% 정도를 잡는 이유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노인 고독사를 다 막을 순 없어요. 사각(지대)이 없을 수가 없죠.

청년들이 고독사 하는 곳은 90%는 집이 쓰레기장 같고요. 사실 우리가 접근해야 될 부분 중 하나가 ‘고독사, 사회적 문제, 이웃 간의 단절, 가족 간의 단절’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게 ‘주변 사람들이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고 관심 가져 달라’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사실 혼자 사시는 분들이 외부와 단절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스스로 벽을 만들고 다가오지 못하게, 얼굴 한번 보고 인사를 나누려고 해도 너무 차갑고 무서우니까 사람들이 못 다가가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이게 돌아가신 분의 책임이 큰 것 같아요.

진행자: 이외에도 ‘사회적 차별에 의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소외 계층’입니다.

부모를 여의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인 ‘고아’는 그중 큰 영역을 차지하는데요.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가 입을 열었습니다.


조윤환 대표(고아권익연대): 제가 한 일곱 살 여섯, 일곱 살 정도 됐을 때 저보다 한 살 어린 고아 후배가 있었어요. 제 옆에서 이 아이가 죽었어요. 자고 있는데 이 아이가 오줌을 쌌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고아원에서 오줌을 싸면 좀 큰 사건이거든요. “큰일 났다. 빨리 치워!” 그랬는데 근데 이 친구가 안 일어나요. 이유는 간단해요. 너무 추워서 감기로 죽은 거예요. 시설이 너무 안 좋으니까 간단하게 제때 의료 조치조차도 받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했는데... 시설 측에서는 왜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냐? 이 아이가 살아 있어야만 지원금이 이 아이의 이름으로 나오거든요.

재작년에 28세 여성이 죽었던 사건은 너무나 안타깝죠. 연락이 안 돼 실종 신고했는데 사망했다 하더라고요. 경찰서에서. ‘사인이 뭐냐’고 했더니 경찰서에서는 ‘극단적 선택으로 판결하고 있다. 자세한 얘기는 못 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적극적으로 수사를 부탁한다고 했더니 ‘그 부분은 더 이상 우리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고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진상규명을 국가가 책임지고 해야 하는데,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이 너무 안 좋아요. 일반 가정에서 컸다면... 아무리 경찰에서 “수사 제대로 했다”고 해도 끝까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거예요. 근데 고아들은 그렇게 해 줄 사람들도 없고, 국가도 관심이 없어요.

그분은 결국 자살 처리됐고… 그래서 실체를 수사해달라고 요청한 건데 결국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한 분은)어려서부터 고아원에 버려지고, 고아원에서 초등교육도 못 받고 중등교육도 못 받고 고아원에서 노예로 사는 거죠. 살다가 고아원이 폐쇄되니까 갈 곳이 없잖아요. 폐쇄된 고아원에 갔어요. 그분이 살았던 흔적이 그대로 있더라고요. 이분은 지금도 아무도 몰라요. 이게 무연고자예요.

국가는 이 사람의 데이터는 있잖아요. 이 사람이 계속 나이는 먹어가죠. 150세까지 사망신고가 안 되니까. 우리나라에 150세로 살고 계신 분들이 꽤 돼요 지금. 행안부(행정안전부)에 150세 이상인데 사망신고가 안 된 호적들이 꽤 많대요. 가족이 있다면 실종신고해서... 어쨌든 실종신고가 약 10년이 되면, 10년인가 20년이 되면 자동으로 사망 처리가 된대요. 근데 실종 신고까지 안 된 애들은 그냥 누적되는 거예요. 나이만 먹는 거예요.

고아가 죽으면 경찰서에서도 수사하기 싫어해요. 폭행당했든 강력범죄를 당했던 관심이 없어요. 어차피 그걸 찾아 봤자 누구도 관심 없으니까.

우리 현대 사회의 복지 가치에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잖아요. 여전히 고아들한테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이야기가 적용되지 않고 있어요.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아예 실종신고조차 안 되는 것.

대한민국 고아 신분은 죽음조차도 애도 받지 못하는(사람들). 나쁘게 말하면 ‘국가의 실적’ ‘빨리 죽게 만들어야 하는 존재’. 이건 격차가 아니라 비참한 거죠. 바닥 중의 바닥이고...

진행자: 죽음마저 외면당하는 소외 계층의 현실. 이에 더해, 극심한 차별로 평범한 생활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먼 타지에서 돈을 벌러 한국에 온 사람들, 바로 ‘이주노동자’입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외국인 부검률은 17.4%로, 한국인 부검률 2.9%보다 6배 높았습니다. 즉 한국에서 외국인이 부검 당할 가능성이 한국인보다 6배 높다는 것입니다.

캄보디아 출신 여성 속헹씨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줍니다. 그녀는 불법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농업노동자로, 2020년 겨울 밤 돌연사했습니다. 당시 김달성 목사가 우연히 해당 사건을 접하게 됐는데요.


김달성 대표(포천이주노동자센터): 그게 2020년 12월20일에 사망한 거예요. 속헹씨와 네 동료 여성 노동자들이 함께 일했던 농장 있죠. 그 농장의 한가운데에 까만 차광 막을 뒤집어쓴 불법 가건물이 숙소였었죠. 샌드위치 패널(판넬) 가건물이에요.

중요한 초점이, 속헹씨가 20일에 사망했다는 건데 이틀 전부터 기숙사에 난방이 가동이 안 됐다는 거예요. 그게 핵심이었어요. 영하 16도 한파가 며칠 동안 계속되는 그때였어요. 그리고 또 하나 핵심은 뭐냐, ‘평상시에 지병이 없었다’

나는 즉각적으로 이 사망사건에 대한 대책위를 구성했죠. 그랬는데 근로계약서를 나중에 받아보니까 한 달에 (인당)15만원씩 기숙사비를 내는 것으로 기록돼있고...

진행자: 김달성 목사의 노력으로, 2022년 5월 마침내 산업재해가 승인됐습니다. 영하 16도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 속헹씨. 그녀는 한 달 후 캄보디아로 돌아갈 비행기표를 예매한 상태였습니다.

김달성 대표(포천이주노동자센터): 속헹씨 사망한 그 사업주는 아직도 해요. 끄떡없어요. 고발했는데 ‘불법시설물을 제공했다’는 것만 문제 삼아서 한 200만원 벌금만 받고 말았어요. 사람 죽여도 끄떡없습니다.

진행자: 만약 연고자가 없는 사람이 사망할 경우, 그는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됩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은 안치실에서 바로 화장장으로 이송됩니다. 즉 이들에게는 ‘장례’라는 애도의 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죠.

단, 서울시에서는 2018년부터 대부분의 무연고 사망자에게 공영장례를 지원하는데요. 그 배경에는 한 시민단체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소외된 자들의 ‘애도 받을 권리’를 지키는 사람들, ‘나눔과나눔’입니다.

김민석 팀장(나눔과나눔):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요. 제도적인 기준에 부합해야 되고, 두 번째는 경제적인 기준에 부합해야 해요. 시장에서 요구하는. 그 두 가지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런 사람들이 무연고 사망자가 되고 있는 거잖아요.

무연고 사망자가 한 해에 3000분이 훌쩍 넘어가고 있는데요. 그걸 단순히 3000명의 무연고 사망자라고 볼 순 없어요. 고인 한 명당 굉장히 보수적으로 잡아도 서너 사람의 인연이 있을 거거든요. 그렇게만 잡아도 우리는 한 해 만명이 넘어가는 박탈된 애도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거예요.

진행자: 나눔과나눔은 연고자의 범위를 ‘혈연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경제적 조건에 부합하더라도, 단지 직계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김민석 팀장(나눔과나눔): '무연고 사망자'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가 굉장히 세요. 고인이 굉장히 외롭고 쓸쓸하게 그리고 빈곤하게, 우리가 생각했을 때 너무 안타깝고 슬픈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실제로 장례 현장에서 만나보면 모두가 그렇지 않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관계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다 각자의 삶이 있었는데 그것도 다 지워 버리는 거예요. 죽은 이후에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그 협소한 범위의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 딱 하나로.

실제로 굉장히 저명한 교수님이 돌아가셔서, 근데 자녀가 없이 돌아가셨던 거예요.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동료 교수,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명망 높고 이름 있는 사람들이 30명 넘게 빈소에 찾아왔어요.

조카가 장례 치를 의사가 충분히 있고 경제적 능력도 되고 마음도 있는데 굳이 그 사람에게서 장례 치를 권리를 빼앗아서 무연고 사망자로 만들어서 공영장례를 치르고 있는 거죠.

저희 아버지한테 장례를 치를 수 있는 범위에 대해서 쭉 얘기를 하니까 아버지도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왜 조카가 장례를 못 치러?” “왜 이모나 삼촌, 조카, 며느리는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가 아닌 거야?” “왜 친구들은 장례를 치를 수가 없어?”

이런 사례는 계속 늘어나겠죠. 저부터도 1인 가구이고... 제가 무연고 사망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부모님보다 먼저 죽는 것.

공영장례가 보편적인 제도가 된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적어도 한 가지 불안은 줄일 수 있는 거죠. ‘내가 죽었을 때 돈이 있건 없건, 혹은 주변에 장례를 치러 줄 사람이 있건 없건 우리 사회가 나를 존엄하게 존중하면서 배웅할 거다’라는 믿음이 생기는 거죠.

진행자: 소외된 죽음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격하고, 그 이후의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들. 각자의 일을 할 때 그들이 느끼는 심경은 어떨까요?

김새별(유품정리사): 처음에 시작할 때는 멋모르고 그냥 집만 정리하고 그러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사진이 없는 집이 없어요. 근데 왜 사진이라는 것들이 좋은 사람들하고 좋은 곳에 놀러 갔을 때 그 좋았던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싶어서 찍는 게 사진이거든요. 그런 사진들을 보면서 그분의 인생, 그분의 노트들, 일기장들을 보면서 그분의 모든 인생을 알게 돼요.

휴먼 다큐처럼 그런 느낌이 들어요. 어떤 인생을 살았는데 최근에 어떤 고비가 있었고, 예를 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시는 분들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생각도 들고... 모든 게 보이는 것 같아요.

조윤환 대표(고아권익연대): 고아들이 죽었을 때 국가가 대응하는 거나 시스템을 보면 ‘이렇게 무관심할 수 없다’ 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고아원 출신이라고 하는 순간 ‘국가의 결과물’이 되기 때문에 국가가 최대한 그 흔적을 없애려는 같아요.

시설에서 자란 고아 출신 성인들은 어쩌면 ‘국가가 입양한 자식’이기 때문에, 죽을 때도 (국가와)함께였으면 좋겠다.

김민석 팀장(나눔과나눔): 일단 장례를 치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돌아가신 분을 존엄하게 배웅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전환하는 일종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장례라는 게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로 기능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됐을 때 이 공영장례가 빈곤한 사람 혹은 외롭고 쓸쓸하게 사망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일반적인 장례보다 못한 장례가 아니라... 그게 일종의 낙인을 만들고 있거든요. 그런 낙인 없이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걸 저희는 희망하고 있고, 그렇게 사회가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진행자: 빈곤 때문에, 우울 때문에, 혹은 협소한 제도적 범위 때문에... 소외된 죽음은 우리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사망자 수는 31만7800명. 2011년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약 23% 증가한 수치입니다. 우리는 죽음이 늘어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출생을 위해 소모된 예산은 380조2000억원. 그러나 죽음은 오롯이 개인의 영역으로 여겨지며, 그 예산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국가는 삶의 시작 뿐만 아니라 삶의 끝 역시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취재팀: 장지선
사진팀: 고성준/박성원
영상팀: 배승환/김희구/강운지/김미나
프로젝트: 죽음의 격차 (죽어서도 차별받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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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