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뉴 삼성 시대 뉴 리더 이재용 

더 과감하고 더 도전적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10년간 ‘부회장’직을 유지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 자를 떼고 ‘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그동안 실질적인 삼성그룹 총수 역할을 해오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오르며 본격적인 ‘이재용표 뉴 삼성 시대’가 개막될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년 만에 회장직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열고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책임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부회장만 10년
드디어 회장님

이날 이 회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공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며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국민들의 응원을 부탁드린다. 감사하다”며 머리 숙여 인사한 뒤 법원을 떠났다.

1968년생으로 올해 만 54세인 이 회장은 아버지 고 이건희 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있다.

이 회장은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게이오기주쿠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회장의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이런 학력이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이 대학교 전공으로 동양사학을 선택한 이유로는 조부 이병철 선대회장의 조언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이 선대회장은 경영학은 나중에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에 인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인문학을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해 경영기획팀 상무보, 상무, 전무, 최고운영책임자 부사장, 사장 등을 거쳐 2012년 부회장에 올랐다.

2014년 고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그룹을 상징하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등을 겸직하며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그동안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주요 4대 그룹 총수 중에서 부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총수는 이 부회장이 유일했다. 삼성이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진행하기 위해 ‘회장’ 직함을 통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이 회장은 그동안 자신의 승진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해왔다.

단적으로 이 회장은 지난달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회장 승진 계획’을 묻자 “회사가 잘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개최된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회식에서도 같은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10년 부회장 떼고 ‘회장’ 타이틀
91년 입사 실질적으로 그룹 이끌어

이 회장은 특히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마지막 회장이기 때문에 자신은 부회장 직을 유지한다는 뜻을 내비치는 발언도 했다. 2017년 국정 농단 항소심 결심공판 피고인 심문에서 이 회장은 “앞으로 삼성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며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으로 삼성그룹 회장 타이틀을 가진 분”이라고 언급했다.

이 회장은 이처럼 자신의 승진 여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재계에선 8·15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이후 이 회장의 현장 경영 행보를 주시하며 승진 시점이 임박한 것을 예견했다.

회장 취임은 등기이사 복귀와 달리 회장 이사회에 공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않아도 내부 결정을 거쳐 공표하면 되지만 이 회장이 대내외적으로 사회적 분위기를 살피며 적절한 시기를 조율해왔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복권 이후 대대적인 메시지를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총수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을 기점으로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GEC),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삼성SDS 잠실캠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 공장 등을 연이어 찾았다.

지난 6월 유럽에 이어 9월에는 멕시코·파나마·영국 등을 방문하면서 해외 사업 현황을 점검하며 직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달 12일에는 1년9개월 만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를 찾았다. 회장 취임을 앞두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에 대해서도 위원들과 폭넓은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2주기 추모식의 규모를 대폭 확대하며 현직 사장단과 계열사 부사장, 전직 사장단까지 총 300여명을 소집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추모식 직후 용인에 있는 삼성인력개발원으로 이동해 현직 사장단 60여명과 함께 오찬을 가졌다.

재계 일제 환영
“행보 기대된다”

해당 자리에서 현직 사장단과의 회장 승진 분위기를 살피는 등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회장은 미·중 분쟁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 대내외적인 변수가 삼성을 위협하면서 이를 타개할 ‘회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승진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승진 소식에 재계도 일제히 환영의 입장을 보내고 있다.

국내 재계 그룹 관계자는 “지금과 같이 변화와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 변동성이 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영 공백을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며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는 “기업으로서 해야 할 두 가지 중 하나가 글로벌 사업을 확장해서 국익에 증대하는 역할이며 국내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역할”이라며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해나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제단체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환영했다.

유 본부장은 “최근 미·중 간 반도체 패권 경쟁 심화,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수출환경 악화 등으로 한국 경제가 위기에 직면해있고 삼성전자 역시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무한경쟁 중”이라며 “이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매우 어려운 시기에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며 “반도체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수성하고 미래산업 먹거리를 발굴해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에 더욱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직면하고 있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며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기 원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재용 회장 승진을 계기로 기업인들이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나오고 있다.

한 그룹사 관계자도 “이번 이 회장의 취임이 삼성의 이해관계자들을 넘어 한국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기업인들이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는 사회 환경조성이 더 절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제일’ 
경영철학

이 회장은 취임식이나 취임사 등 별도의 행사 없이 조용하게 취임해 그 배경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고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취임식을 갖고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최근 글로벌 IT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별도의 행사 없이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취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이 회장은 별도의 취임 메시지조차 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리더가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는데도 관련 행사나 메시지가 없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신 이후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왔으며 사전적 의미에서는 이미 취임 후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 별도의 취임 관련 메시지나 행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장은 취임사 대신 지난 25일 이건희 회장 2주기 당시 사장단과 만나 밝힌 소회와 각오를 사내게시판에 올렸다.

그는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들을 두루 살펴봤다. 절박하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며 “돌이켜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할 때”라며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업, 세상에 없는 기술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기업,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된 비전, 미래의 삼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인재·기술”
“함께 성장해야”사회와의 동행 강조

이병철 선대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의 ‘인재제일’ 경영철학을 이어받은 이재용 회장은 평소 ‘임직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평소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자”며 “잘못된 것, 미흡한 것, 부족한 것을 과감히 고치자”고 강조해왔다.

이 회장의 ‘조직문화 혁신’ 의지에 따라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조직의 활력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직급 통폐합 등을 통한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 ▲직급별 체류 연한 폐지를 통한 조기 승진 기회 및 과감한 발탁 승진 확대 ▲평가제도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새 인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새로운 인사제도 개편은 이재용 회장이 이끄는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며 “회사와 직원들이 함께 성장하는 ‘미래지향적 조직문화’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핵심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회장은 2020년 5월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며 외부의 유능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의 또다른 키워드는 ‘기술’이다. 이 회장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 성장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초격차 기술력’을 늘상 강조해왔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당부했다.

지난 6월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 귀국길에서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 1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회식에 참석해 기술 중시 경영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국제기능올림픽 최상위 타이틀 후원사인 삼성전자를 대표해 이번 대회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을 선보이며 ‘기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선수단을 격려하고 수상자에게 메달도 직접 수여했다.

이 회장은 “기술 인력 후원은 회사가 잘 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이 모두 잘 살도록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젊은 세대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사회에 나올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기술인재 양성’의 사회, 경제적 효과를 주변에 적극 알리기도 했다.

최근 이 회장의 메시지는 물론 구체적인 삼성의 사회공헌(CSR) 사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동행’이다.

이 회장은 취임 후 첫 공식 현장 행보로 광주에 위치한 협력회사를 선택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8일, 삼성전자와 28년간 함께한 협력회사 ‘디케이’ 생산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협력회사가 잘 돼야 우리 회사도 잘 된다”며 상생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19년 삼성전자 창립 50주년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도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며 ‘사회와의 동행’을 언급한 바 있다.

작지만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중소기업은 물론 협력업체, 그리고 산업의 기반을 이루는 기초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동행’이야말로 삼성이 새로운 미래시장을 개척하고 초격차를 확대하는 근원적인 힘이라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다.

‘기술’ 강조
‘동행’ 핵심 

이 회장의 ‘동행’ 철학은 삼성의 경영에 잘 녹아있다. 삼성전자는 ▲청년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제공해 취업 기회 확대(SSAFY)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을 외부로 확대해 청년 창업 지원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전환 지원 등의 CSR 사업을 추진 중이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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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