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뉴 삼성 시대 뉴 리더 이재용 

더 과감하고 더 도전적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10년간 ‘부회장’직을 유지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 자를 떼고 ‘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그동안 실질적인 삼성그룹 총수 역할을 해오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오르며 본격적인 ‘이재용표 뉴 삼성 시대’가 개막될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년 만에 회장직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열고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책임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부회장만 10년
드디어 회장님

이날 이 회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공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며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국민들의 응원을 부탁드린다. 감사하다”며 머리 숙여 인사한 뒤 법원을 떠났다.

1968년생으로 올해 만 54세인 이 회장은 아버지 고 이건희 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있다.

이 회장은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게이오기주쿠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회장의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이런 학력이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이 대학교 전공으로 동양사학을 선택한 이유로는 조부 이병철 선대회장의 조언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이 선대회장은 경영학은 나중에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에 인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인문학을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해 경영기획팀 상무보, 상무, 전무, 최고운영책임자 부사장, 사장 등을 거쳐 2012년 부회장에 올랐다.

2014년 고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그룹을 상징하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등을 겸직하며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그동안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주요 4대 그룹 총수 중에서 부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총수는 이 부회장이 유일했다. 삼성이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진행하기 위해 ‘회장’ 직함을 통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이 회장은 그동안 자신의 승진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해왔다.

단적으로 이 회장은 지난달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회장 승진 계획’을 묻자 “회사가 잘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개최된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회식에서도 같은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10년 부회장 떼고 ‘회장’ 타이틀
91년 입사 실질적으로 그룹 이끌어

이 회장은 특히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마지막 회장이기 때문에 자신은 부회장 직을 유지한다는 뜻을 내비치는 발언도 했다. 2017년 국정 농단 항소심 결심공판 피고인 심문에서 이 회장은 “앞으로 삼성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며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으로 삼성그룹 회장 타이틀을 가진 분”이라고 언급했다.

이 회장은 이처럼 자신의 승진 여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재계에선 8·15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이후 이 회장의 현장 경영 행보를 주시하며 승진 시점이 임박한 것을 예견했다.

회장 취임은 등기이사 복귀와 달리 회장 이사회에 공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않아도 내부 결정을 거쳐 공표하면 되지만 이 회장이 대내외적으로 사회적 분위기를 살피며 적절한 시기를 조율해왔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복권 이후 대대적인 메시지를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총수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을 기점으로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GEC),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삼성SDS 잠실캠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 공장 등을 연이어 찾았다.

지난 6월 유럽에 이어 9월에는 멕시코·파나마·영국 등을 방문하면서 해외 사업 현황을 점검하며 직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달 12일에는 1년9개월 만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를 찾았다. 회장 취임을 앞두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에 대해서도 위원들과 폭넓은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2주기 추모식의 규모를 대폭 확대하며 현직 사장단과 계열사 부사장, 전직 사장단까지 총 300여명을 소집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추모식 직후 용인에 있는 삼성인력개발원으로 이동해 현직 사장단 60여명과 함께 오찬을 가졌다.

재계 일제 환영
“행보 기대된다”

해당 자리에서 현직 사장단과의 회장 승진 분위기를 살피는 등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회장은 미·중 분쟁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 대내외적인 변수가 삼성을 위협하면서 이를 타개할 ‘회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승진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승진 소식에 재계도 일제히 환영의 입장을 보내고 있다.

국내 재계 그룹 관계자는 “지금과 같이 변화와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 변동성이 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영 공백을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며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는 “기업으로서 해야 할 두 가지 중 하나가 글로벌 사업을 확장해서 국익에 증대하는 역할이며 국내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역할”이라며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해나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제단체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환영했다.

유 본부장은 “최근 미·중 간 반도체 패권 경쟁 심화,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수출환경 악화 등으로 한국 경제가 위기에 직면해있고 삼성전자 역시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무한경쟁 중”이라며 “이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매우 어려운 시기에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며 “반도체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수성하고 미래산업 먹거리를 발굴해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에 더욱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직면하고 있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며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기 원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재용 회장 승진을 계기로 기업인들이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나오고 있다.

한 그룹사 관계자도 “이번 이 회장의 취임이 삼성의 이해관계자들을 넘어 한국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기업인들이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는 사회 환경조성이 더 절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제일’ 
경영철학

이 회장은 취임식이나 취임사 등 별도의 행사 없이 조용하게 취임해 그 배경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고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취임식을 갖고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최근 글로벌 IT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별도의 행사 없이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취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이 회장은 별도의 취임 메시지조차 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리더가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는데도 관련 행사나 메시지가 없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신 이후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왔으며 사전적 의미에서는 이미 취임 후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 별도의 취임 관련 메시지나 행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장은 취임사 대신 지난 25일 이건희 회장 2주기 당시 사장단과 만나 밝힌 소회와 각오를 사내게시판에 올렸다.

그는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들을 두루 살펴봤다. 절박하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며 “돌이켜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할 때”라며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업, 세상에 없는 기술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기업,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된 비전, 미래의 삼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인재·기술”
“함께 성장해야”사회와의 동행 강조

이병철 선대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의 ‘인재제일’ 경영철학을 이어받은 이재용 회장은 평소 ‘임직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평소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자”며 “잘못된 것, 미흡한 것, 부족한 것을 과감히 고치자”고 강조해왔다.

이 회장의 ‘조직문화 혁신’ 의지에 따라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조직의 활력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직급 통폐합 등을 통한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 ▲직급별 체류 연한 폐지를 통한 조기 승진 기회 및 과감한 발탁 승진 확대 ▲평가제도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새 인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새로운 인사제도 개편은 이재용 회장이 이끄는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며 “회사와 직원들이 함께 성장하는 ‘미래지향적 조직문화’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핵심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회장은 2020년 5월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며 외부의 유능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의 또다른 키워드는 ‘기술’이다. 이 회장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 성장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초격차 기술력’을 늘상 강조해왔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당부했다.

지난 6월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 귀국길에서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 1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회식에 참석해 기술 중시 경영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국제기능올림픽 최상위 타이틀 후원사인 삼성전자를 대표해 이번 대회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을 선보이며 ‘기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선수단을 격려하고 수상자에게 메달도 직접 수여했다.

이 회장은 “기술 인력 후원은 회사가 잘 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이 모두 잘 살도록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젊은 세대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사회에 나올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기술인재 양성’의 사회, 경제적 효과를 주변에 적극 알리기도 했다.

최근 이 회장의 메시지는 물론 구체적인 삼성의 사회공헌(CSR) 사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동행’이다.

이 회장은 취임 후 첫 공식 현장 행보로 광주에 위치한 협력회사를 선택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8일, 삼성전자와 28년간 함께한 협력회사 ‘디케이’ 생산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협력회사가 잘 돼야 우리 회사도 잘 된다”며 상생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19년 삼성전자 창립 50주년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도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며 ‘사회와의 동행’을 언급한 바 있다.

작지만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중소기업은 물론 협력업체, 그리고 산업의 기반을 이루는 기초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동행’이야말로 삼성이 새로운 미래시장을 개척하고 초격차를 확대하는 근원적인 힘이라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다.

‘기술’ 강조
‘동행’ 핵심 

이 회장의 ‘동행’ 철학은 삼성의 경영에 잘 녹아있다. 삼성전자는 ▲청년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제공해 취업 기회 확대(SSAFY)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을 외부로 확대해 청년 창업 지원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전환 지원 등의 CSR 사업을 추진 중이다.


<ktikt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