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수리남’ 실제 주인공 조봉행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19 13:18:52
  • 호수 13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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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악명 떨친 한국 마약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히로뽕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탄의 가래 같은 거고, 코카인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님의 은총이야.”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주인공 전요환의 말이다. <수리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로, 전요환은 실제 인물인 1952년생 한국 마약왕 ‘조봉행’을 재창조해 구현했다. 드라마와 실제 조봉행은 얼마나 다를까.

지난 14일 기준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태프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수리남>이 14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해 바하마, 방글라데시, 홍콩, 자메이카, 케냐, 말레이시아, 모로코, 파키스탄, 싱가포르, 대만, 태국, 트리니다드토바고, 베트남 등에서 정상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5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일 흥행
대박 조짐

<수리남>은 지난 9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공개됐다. 공개 사흘째인 지난 12일 글로벌 8위에 오르며 이미 톱 10에 진입했다. 이튿날 6위로 오른 후 14일에는 3위까지 올랐다.

<수리남>은 배우 하정우·황정민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다. 한국 마약상이었다가 남미의 작은 국가 수리남으로 도피해 해외 마약상이 된 인물과 그를 잡는 국정원 요원의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의 이야기를 그렸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김희준 대표변호사(법무법인 LKB)는 지난 13일 <조선닷컴>에 “사건 자체가 워낙 극적이라서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 제목인 수리남은 남아메리카 북부에 있는 국가로, 가이아나, 브라질, 프랑스령 기아나와 접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약 16만3821㎢, 2020년 기준 인구는 58만6348명이다. 남미에서 국토 면적이 가장 작은 국가로 남한의 약 1.6배 정도다.

산림이 국토의 94.6%를 차지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토 대부분이 거대한 열대우림이다. 이 같은 이유로 무거주지 비율이 98%고,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은 2%에 불과하다. 중앙 수리남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바로 이곳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인공 전요환이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한 장소다. 실제 사건에서도 그랬다. 

전요환의 실제 모델인 1952년생 조봉행은 수리남에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규모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했다. 국정원과 미국 마약단속국, 브라질 경찰과의 공조 작전으로 2009년에 체포됐다. 2011년에 징역 10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조씨는 출소 후 수리남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고 있다.

드라마에서 전요환은 한국에서 마약을 유통하다 수리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실제 조씨는 한국에서 마약상을 하지 않았다. 1994년 빌라 건축을 빌미로 10억원을 사기 친 후 수사망이 좁혀오자 수리남으로 도주했다. 이미 1980년대에 8년간 수리남에서 선박 냉동 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던 조씨에게 수리남행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또 수리남은 한국 경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곳이다.

10억원 빌라 건축 사기로 수리남행 선택
남미 마약조직 ‘칼리 카르텔’과 손잡아


이후 1995년쯤 한국 여권 재발급을 시도했지만 지명수배 등 이유로 어렵게 되자 조씨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수리남 국적을 취득했다. 조씨는 한국인 최초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후 국제 마약 밀매조직을 구축한 사람이다.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하고 생선 가공공장을 차렸다. 하지만 이것도 단순한 공장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생선 가공공장이었지만, 실상은 어업회사에서 세금 없이 제공되는 면세유를 돈을 받고 밀매하는 것이 주 수입원이었다.

조씨는 중국인 등을 공장에 취업시켜 미국, 유럽으로 밀입국시키는 사업도 했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단속 강화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었다. 이때 조씨는 마약을 선택했다. 즉시 다른 수입원을 모색해서 마약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손을 잡은 건 남미 최대 마약 카르텔 조직인 ‘칼리 카르텔(Cali Cartel)’이다. 칼리 카르텔은 콜롬비아의 범죄 조직이다. 

콜롬비아의 도시 산티아고 드 칼리에서 활동한 형제 힐베르토와 미겔 로드리게스가 중심인물로 마약밀매를 했다. 한때는 콜롬비아의 마약 패권을 손에 쥐었으나 계속된 미국과 콜롬비아의 정부 수사로 두목과 형제들이 연달아 체포돼 힘을 잃고 붕괴됐다.

현재 칼리 카르텔 간부는 미국 교도소에 수감돼있고, 지난 6월1일 미국에 수감 중이었던 두목이 사망했다.

마약 사업을 하기로 선택한 조씨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수리남의 권력자 인맥을 만드는 것이다. 조씨는 수리남 정치인, 관료, 군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무려 육군 장교 출신 독재자인 수리남 대통령 데시 바우테르서와도 오랜 친분을 쌓았다.

이런 인맥으로 수리남에 입국하는 아시아인 승객 명단을 미리 압수해 따로 만나서 그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활용했다. 먼저 포섭한 것은 수리남에 온 한국 교포다.

조씨는 한국 교포에게 “1인당 소지량이 제한된 보석 원석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만~5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해 100여명을 모았다. 자신을 광물 보석상이라고 지칭했고 마약을 보석으로 속였다. 이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주부나 대학생으로, 어려운 사정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 

코카인 유통
왕국 건설

이런 수법으로 조씨의 사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본에서는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고, 한국에서의 마약 공급도 계획하고 있었다.  

조씨의 마약밀매 행각은 2002년 10월 프랑스령 가이아나에서 파리 오를리공항으로 코카인 37㎏을 갖고 들어오던 주부 장모씨 등 2명이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면서 꼬리가 잡혔다. 이어 2005년 3월엔 페루 리마 공항에서 네덜란드로 코카인 11.5㎏을 운반하려던 40대 후반의 이모씨가 당국에 체포됐다.


조씨가 인터폴 수배명단에 오른 것은 2005년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조씨가 마약을 국내에 공급하기 위해 판로를 모색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7년 10월 조씨를 체포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수리남과 대한민국은 수교 관계였지만 대사관이 없었다. 관련 업무는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었다. 또 이미 조씨가 수리남 경찰과 군조직을 매수했기 때문에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해 11월 돌파구가 마련됐다. 수리남에서 사업을 하다 조씨 때문에 낭패를 본 김모씨가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국정원에 전달됐고, 국정원 측은 김씨에게 조씨 검거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김씨는 고민 끝에 수락했다. 김씨는 국정원과 마약 수사기관이 꾸며낸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과 조씨 사이의 마약 거래를 중개하는 척 연극을 하기로 했다.

김씨는 조씨와 그의 부하 몇몇과 한 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비밀 유지를 위해 특정 시간에만 국정원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잠을 잘 때는 베개 밑에 권총을 넣어뒀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가 국정원과 연락한다는 사실을 조씨의 한국인 부하 A씨에게 들켰다. 김씨는 A씨를 붙잡고 “너도 한국에 가족이 있는데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냐. 나하고 손잡고 좋은 일 하자”며 설득했다. A씨를 국정원과 통화하도록 연결해줬다. A씨는 눈물을 흘리며 “새사람이 되겠다”고 협조를 약속했다.


물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3일 뒤 김씨의 집 거실에 A씨가 흑인 4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배신이었다. 이때 김씨는 조씨가 집 밖에 와 있을 거라고 판단해 “미스터 조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예상대로 조씨는 집 밖에 있었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김씨를 바라봤다.

목사 행세
무소불위 권력

김씨는 “나를 못 믿겠거든 마음대로 해라. 당신 부하가 하도 말이 많아서 그러지 못하게 내가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하냐”고 항의했다.

조씨는 흔들렸다. “진짜 장난이었냐”고 묻고 부하를 나가게 했다. 거꾸로 A씨가 조씨의 미움을 사서 조직에서 밀려났다.

2008년 9월의 어느 날, 김씨와 조씨 일행은 수리남 수도인 파라마리보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김씨가 “거래할 마약을 직접 봐야겠다”고 요구했다. 마약 조직원들은 김씨를 차에 태우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 총을 옆구리에 겨누며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고 명령했다.

행선지가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셔터가 올라가고 차가 출발했다.

김씨는 수리남 현지에서 2년여 동안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 방향을 바꾸거나 카지노, 클럽 등의 불빛이 눈가리개 너머로 어른거리는 걸로 이동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는 20여분 뒤 한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자 검은 포장의 커다란 코카인 더미 4개가 있었다. 한 더미는 300㎏으로 모두 1.2t이었다. 거래가만 1조원이 넘는 규모였다. 조씨는 “한국에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량”이라고 말했다.

2008년 초 김씨와 국정원은 미국 마약 수사기관과 조씨의 현지 검거를 위한 공동작전에 착수하고 있었다.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미 해군과 특공대의 지원까지 약속했다. 김씨가 “창고를 확인했다”고 연락하자 국정원은 미국 측에 창고 급습과 조씨 검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대규모 총격전과 인명피해를 우려해 작전을 차일피일 미뤘다. 수리남 마약 관련자들은 차 트렁크에 소련제 AK소총을 늘 넣어 가지고 다녔다. 결국 현지 체포는 실패했다.

현지 검거 작전이 실패하면서 김씨의 신변이 위험해졌다. 김씨는 2008년 10월에 귀국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조씨에게는 “마약 거래상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귀국 후 국정원과 김씨, 미국 마약 수사기관이 새로운 작전을 짰다.

7년간 끈질긴 추적 
브라질 공항서 검거

조씨를 수리남 밖으로 유인해 체포하는 계획이었다. 첫 번째 대상지는 미국령 괌이었다. 서울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씨는 국제통화로 조씨와 마약 거래를 이어갔다. 김씨는 “미국 마약상이 코카인 1.2t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액수와 송금 방법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조씨에게는 좋은 거래다.

김씨와 국정원은 심리전도 폈다. 김씨는 조씨의 전화를 며칠씩 일부러 받지 않았다. 계약 성사를 믿고 수리남 현지에서 수출용 목재 속에 코카인을 숨겨 넣는 작업까지 시작한 조씨는 마음이 다급했다. 조씨는 “구매자와 함께 빨리 수리남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김씨는 “구매자가 수리남은 치안이 워낙 불안해서 안 들어간다고 한다. 당신이 괌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조씨가 미국령으로 나올 가능성은 작았다. 계획을 바꿨다. 조씨를 브라질로 유인하기로 계획했다. 브라질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있고 현자 사법당국의 협조도 가능했다.

김씨는 “안 나올 거면 거래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조씨를 압박했다. 마침내 2009년 7월 수리남에서 가까운 브라질 도시인 벨렘에서 접선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브라질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수리남 마약밀매조직의 영향력이 벨렘에까지 미치고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장소를 상파울루로 바꿨다. 조씨는 거부했다. 다시 통화로 설득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2009년 7월23일 상파울로 구아룰류스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현장에는 완전 무장한 브라질 현지 경찰이 입국장 주변에 잠복하고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과 김씨도 현장에 합류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인 오후 5시에 조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예정된 탑승자 명단에도 조씨의 이름은 없었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조씨와 연락하는 척했고 브라질 현지 경찰의 철수를 늦췄다. 2시간 뒤에 조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브라질에 입국하는 조씨에게 브라질 경찰은 환영 선물로 수갑을 채웠다. 이렇게 수리남의 한국 마약왕은 브라질에서 허무하게 체포됐다.

서울중앙지법형사29부(배준현 부장판사)는 2011년 9월30일 조씨에 대해 징역 10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7년간 추적을 놓지 않은 결과다.

재판부는 “조씨가 마약 운반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함께 범행을 꾸민 공범과 이익 배분에 관해 사전에 논의한 사실이 있고 공범의 범행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마약왕의 검거 작전의 일등 공신은 김씨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있었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조씨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씨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에 협조를 약속하고 수리남에 있을 때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참 많이 났다. 혹시 내가 잘못되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 때면 ‘괜한 일에 뛰어들었나’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수교 관계

이어 “상파울루 공항에서 조씨 일행이 약속 시각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말을 믿고 한국에서 날아온 국정원 요원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래서 더 기다려보고 정말 안 온다면 내가 수리남으로 다시 들어가서라도 일을 성사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씨 부하가 배신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고 소회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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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