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수리남’ 실제 주인공 조봉행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19 13:18:52
  • 호수 13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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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악명 떨친 한국 마약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히로뽕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탄의 가래 같은 거고, 코카인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님의 은총이야.”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주인공 전요환의 말이다. <수리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로, 전요환은 실제 인물인 1952년생 한국 마약왕 ‘조봉행’을 재창조해 구현했다. 드라마와 실제 조봉행은 얼마나 다를까.

지난 14일 기준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태프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수리남>이 14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해 바하마, 방글라데시, 홍콩, 자메이카, 케냐, 말레이시아, 모로코, 파키스탄, 싱가포르, 대만, 태국, 트리니다드토바고, 베트남 등에서 정상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5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일 흥행
대박 조짐

<수리남>은 지난 9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공개됐다. 공개 사흘째인 지난 12일 글로벌 8위에 오르며 이미 톱 10에 진입했다. 이튿날 6위로 오른 후 14일에는 3위까지 올랐다.

<수리남>은 배우 하정우·황정민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다. 한국 마약상이었다가 남미의 작은 국가 수리남으로 도피해 해외 마약상이 된 인물과 그를 잡는 국정원 요원의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의 이야기를 그렸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김희준 대표변호사(법무법인 LKB)는 지난 13일 <조선닷컴>에 “사건 자체가 워낙 극적이라서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 제목인 수리남은 남아메리카 북부에 있는 국가로, 가이아나, 브라질, 프랑스령 기아나와 접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약 16만3821㎢, 2020년 기준 인구는 58만6348명이다. 남미에서 국토 면적이 가장 작은 국가로 남한의 약 1.6배 정도다.

산림이 국토의 94.6%를 차지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토 대부분이 거대한 열대우림이다. 이 같은 이유로 무거주지 비율이 98%고,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은 2%에 불과하다. 중앙 수리남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바로 이곳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인공 전요환이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한 장소다. 실제 사건에서도 그랬다. 

전요환의 실제 모델인 1952년생 조봉행은 수리남에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규모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했다. 국정원과 미국 마약단속국, 브라질 경찰과의 공조 작전으로 2009년에 체포됐다. 2011년에 징역 10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조씨는 출소 후 수리남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고 있다.

드라마에서 전요환은 한국에서 마약을 유통하다 수리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실제 조씨는 한국에서 마약상을 하지 않았다. 1994년 빌라 건축을 빌미로 10억원을 사기 친 후 수사망이 좁혀오자 수리남으로 도주했다. 이미 1980년대에 8년간 수리남에서 선박 냉동 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던 조씨에게 수리남행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또 수리남은 한국 경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곳이다.

10억원 빌라 건축 사기로 수리남행 선택
남미 마약조직 ‘칼리 카르텔’과 손잡아


이후 1995년쯤 한국 여권 재발급을 시도했지만 지명수배 등 이유로 어렵게 되자 조씨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수리남 국적을 취득했다. 조씨는 한국인 최초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후 국제 마약 밀매조직을 구축한 사람이다.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하고 생선 가공공장을 차렸다. 하지만 이것도 단순한 공장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생선 가공공장이었지만, 실상은 어업회사에서 세금 없이 제공되는 면세유를 돈을 받고 밀매하는 것이 주 수입원이었다.

조씨는 중국인 등을 공장에 취업시켜 미국, 유럽으로 밀입국시키는 사업도 했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단속 강화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었다. 이때 조씨는 마약을 선택했다. 즉시 다른 수입원을 모색해서 마약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손을 잡은 건 남미 최대 마약 카르텔 조직인 ‘칼리 카르텔(Cali Cartel)’이다. 칼리 카르텔은 콜롬비아의 범죄 조직이다. 

콜롬비아의 도시 산티아고 드 칼리에서 활동한 형제 힐베르토와 미겔 로드리게스가 중심인물로 마약밀매를 했다. 한때는 콜롬비아의 마약 패권을 손에 쥐었으나 계속된 미국과 콜롬비아의 정부 수사로 두목과 형제들이 연달아 체포돼 힘을 잃고 붕괴됐다.

현재 칼리 카르텔 간부는 미국 교도소에 수감돼있고, 지난 6월1일 미국에 수감 중이었던 두목이 사망했다.

마약 사업을 하기로 선택한 조씨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수리남의 권력자 인맥을 만드는 것이다. 조씨는 수리남 정치인, 관료, 군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무려 육군 장교 출신 독재자인 수리남 대통령 데시 바우테르서와도 오랜 친분을 쌓았다.

이런 인맥으로 수리남에 입국하는 아시아인 승객 명단을 미리 압수해 따로 만나서 그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활용했다. 먼저 포섭한 것은 수리남에 온 한국 교포다.

조씨는 한국 교포에게 “1인당 소지량이 제한된 보석 원석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만~5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해 100여명을 모았다. 자신을 광물 보석상이라고 지칭했고 마약을 보석으로 속였다. 이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주부나 대학생으로, 어려운 사정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 

코카인 유통
왕국 건설

이런 수법으로 조씨의 사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본에서는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고, 한국에서의 마약 공급도 계획하고 있었다.  

조씨의 마약밀매 행각은 2002년 10월 프랑스령 가이아나에서 파리 오를리공항으로 코카인 37㎏을 갖고 들어오던 주부 장모씨 등 2명이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면서 꼬리가 잡혔다. 이어 2005년 3월엔 페루 리마 공항에서 네덜란드로 코카인 11.5㎏을 운반하려던 40대 후반의 이모씨가 당국에 체포됐다.


조씨가 인터폴 수배명단에 오른 것은 2005년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조씨가 마약을 국내에 공급하기 위해 판로를 모색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7년 10월 조씨를 체포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수리남과 대한민국은 수교 관계였지만 대사관이 없었다. 관련 업무는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었다. 또 이미 조씨가 수리남 경찰과 군조직을 매수했기 때문에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해 11월 돌파구가 마련됐다. 수리남에서 사업을 하다 조씨 때문에 낭패를 본 김모씨가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국정원에 전달됐고, 국정원 측은 김씨에게 조씨 검거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김씨는 고민 끝에 수락했다. 김씨는 국정원과 마약 수사기관이 꾸며낸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과 조씨 사이의 마약 거래를 중개하는 척 연극을 하기로 했다.

김씨는 조씨와 그의 부하 몇몇과 한 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비밀 유지를 위해 특정 시간에만 국정원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잠을 잘 때는 베개 밑에 권총을 넣어뒀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가 국정원과 연락한다는 사실을 조씨의 한국인 부하 A씨에게 들켰다. 김씨는 A씨를 붙잡고 “너도 한국에 가족이 있는데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냐. 나하고 손잡고 좋은 일 하자”며 설득했다. A씨를 국정원과 통화하도록 연결해줬다. A씨는 눈물을 흘리며 “새사람이 되겠다”고 협조를 약속했다.


물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3일 뒤 김씨의 집 거실에 A씨가 흑인 4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배신이었다. 이때 김씨는 조씨가 집 밖에 와 있을 거라고 판단해 “미스터 조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예상대로 조씨는 집 밖에 있었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김씨를 바라봤다.

목사 행세
무소불위 권력

김씨는 “나를 못 믿겠거든 마음대로 해라. 당신 부하가 하도 말이 많아서 그러지 못하게 내가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하냐”고 항의했다.

조씨는 흔들렸다. “진짜 장난이었냐”고 묻고 부하를 나가게 했다. 거꾸로 A씨가 조씨의 미움을 사서 조직에서 밀려났다.

2008년 9월의 어느 날, 김씨와 조씨 일행은 수리남 수도인 파라마리보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김씨가 “거래할 마약을 직접 봐야겠다”고 요구했다. 마약 조직원들은 김씨를 차에 태우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 총을 옆구리에 겨누며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고 명령했다.

행선지가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셔터가 올라가고 차가 출발했다.

김씨는 수리남 현지에서 2년여 동안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 방향을 바꾸거나 카지노, 클럽 등의 불빛이 눈가리개 너머로 어른거리는 걸로 이동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는 20여분 뒤 한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자 검은 포장의 커다란 코카인 더미 4개가 있었다. 한 더미는 300㎏으로 모두 1.2t이었다. 거래가만 1조원이 넘는 규모였다. 조씨는 “한국에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량”이라고 말했다.

2008년 초 김씨와 국정원은 미국 마약 수사기관과 조씨의 현지 검거를 위한 공동작전에 착수하고 있었다.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미 해군과 특공대의 지원까지 약속했다. 김씨가 “창고를 확인했다”고 연락하자 국정원은 미국 측에 창고 급습과 조씨 검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대규모 총격전과 인명피해를 우려해 작전을 차일피일 미뤘다. 수리남 마약 관련자들은 차 트렁크에 소련제 AK소총을 늘 넣어 가지고 다녔다. 결국 현지 체포는 실패했다.

현지 검거 작전이 실패하면서 김씨의 신변이 위험해졌다. 김씨는 2008년 10월에 귀국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조씨에게는 “마약 거래상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귀국 후 국정원과 김씨, 미국 마약 수사기관이 새로운 작전을 짰다.

7년간 끈질긴 추적 
브라질 공항서 검거

조씨를 수리남 밖으로 유인해 체포하는 계획이었다. 첫 번째 대상지는 미국령 괌이었다. 서울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씨는 국제통화로 조씨와 마약 거래를 이어갔다. 김씨는 “미국 마약상이 코카인 1.2t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액수와 송금 방법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조씨에게는 좋은 거래다.

김씨와 국정원은 심리전도 폈다. 김씨는 조씨의 전화를 며칠씩 일부러 받지 않았다. 계약 성사를 믿고 수리남 현지에서 수출용 목재 속에 코카인을 숨겨 넣는 작업까지 시작한 조씨는 마음이 다급했다. 조씨는 “구매자와 함께 빨리 수리남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김씨는 “구매자가 수리남은 치안이 워낙 불안해서 안 들어간다고 한다. 당신이 괌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조씨가 미국령으로 나올 가능성은 작았다. 계획을 바꿨다. 조씨를 브라질로 유인하기로 계획했다. 브라질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있고 현자 사법당국의 협조도 가능했다.

김씨는 “안 나올 거면 거래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조씨를 압박했다. 마침내 2009년 7월 수리남에서 가까운 브라질 도시인 벨렘에서 접선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브라질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수리남 마약밀매조직의 영향력이 벨렘에까지 미치고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장소를 상파울루로 바꿨다. 조씨는 거부했다. 다시 통화로 설득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2009년 7월23일 상파울로 구아룰류스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현장에는 완전 무장한 브라질 현지 경찰이 입국장 주변에 잠복하고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과 김씨도 현장에 합류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인 오후 5시에 조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예정된 탑승자 명단에도 조씨의 이름은 없었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조씨와 연락하는 척했고 브라질 현지 경찰의 철수를 늦췄다. 2시간 뒤에 조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브라질에 입국하는 조씨에게 브라질 경찰은 환영 선물로 수갑을 채웠다. 이렇게 수리남의 한국 마약왕은 브라질에서 허무하게 체포됐다.

서울중앙지법형사29부(배준현 부장판사)는 2011년 9월30일 조씨에 대해 징역 10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7년간 추적을 놓지 않은 결과다.

재판부는 “조씨가 마약 운반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함께 범행을 꾸민 공범과 이익 배분에 관해 사전에 논의한 사실이 있고 공범의 범행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마약왕의 검거 작전의 일등 공신은 김씨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있었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조씨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씨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에 협조를 약속하고 수리남에 있을 때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참 많이 났다. 혹시 내가 잘못되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 때면 ‘괜한 일에 뛰어들었나’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수교 관계

이어 “상파울루 공항에서 조씨 일행이 약속 시각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말을 믿고 한국에서 날아온 국정원 요원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래서 더 기다려보고 정말 안 온다면 내가 수리남으로 다시 들어가서라도 일을 성사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씨 부하가 배신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고 소회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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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