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국 노래자랑’ 새 MC 김신영

무거운 마이크 물려받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지난 6월 별세한 KBS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 고 송해. 그의 34년 이력을 누가 이어갈지가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KBS는 숱한 예측을 깨고 개그우먼 김신영을 차기 진행자로 낙점했다. “의외의 발탁”이라는 반응과 함께 낙점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그 답은 개그부터 진행·연기까지 모두 수준급인 그의 이력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 MC’ 송해의 <전국 노래자랑> 후임자는 그가 작고한 지 두 달을 훌쩍 넘기고서야 비로소 결정됐다. 하지만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이들도 KBS의 장고를 책망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34년간 자리를 지켜온 거목을 대체할 누군가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온 국민이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장고 끝에
묘수 뒀다

다만 장고 끝 KBS가 내린 결론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KBS는 지난달 30일 <전국 노래자랑>의 진행자로 개그우먼 김신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신영은 세간에 돌던 후임자 하마평 속에 언급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초 하마평 속 유력 후보군은 이상벽·이상용·임백천·이택림 등이었다. 그간 <전국 노래자랑>이나 전 MC 송해와 깊은 인연을 쌓은 이들이다. 세간에서는 진행 능력과 인지도 등을 고려해 남희석·이수근·이찬원 등이 적임자라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KBS의 선택은 결국 김신영이었다. 

KBS 김상미 CP는 김신영 발탁 배경을 두고 “김신영은 데뷔 20년 차의 베테랑 희극인으로 TV·라디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영화계에서도 인정하는 천재 방송인”이라며 “무엇보다 대중들과 함께하는 무대 경험이 풍부해 새로운 <전국노래자랑> MC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대로 김신영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인정받아온 ‘만능 엔터테이너’다. 2003년 SBS 개그 콘테스트를 거쳐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웃찾사> ‘행님아’ 코너에서 개그맨 김태현과 함께 인기를 끌었다. 이를 인연으로 코너가 끝난 뒤에도 김태현과 콤비로 KBS <스타 골든벨> MBC <세바퀴> 등에서 활약했다.

이후로는 배우 이계인 성대모사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계인이 MBC 드라마 <주몽>에서 연기한 ‘모팔모’역을 흉내 내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김신영의 개그 중 단연 압권인 것은 바로 즉흥 생활 연기다. 백반집 아줌마, 목욕탕 아줌마, 아줌마 춤, 본인의 어머니, 고모와 할머니, 전라도 아저씨 등 일상을 재현한 개그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이를 통해 연령대에 관계 없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해낸다는 점이 강점이다.

김신영은 이 같은 개그들을 선보이며 여러 연령대에서 높은 인지도를 확보했다.

그는 즉흥 생활 연기에 강점을 보이는 만큼, 콩트에도 능한 모습이다. 여러 개그맨과 예능인이 모인 프로그램에서도 항상 순발력 있게 콩트를 주도한다. 방송계에선 “예능감을 타고났다”는 평가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후문이다.

데뷔 초 김신영을 기억하면 큰 체구가 함께 떠오른다. 하지만 사실 김신영은 어렸을 때 허리가 잘록할 정도로 늘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미디언으로서 활동한 이래로 체중을 불리거나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이다. 

실제로 그는 과거 대중에게 큰 체구에서 비롯된 이미지로 각인됐고, 여러 프로그램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식신원정대> MC를 맡기도 했다.


송해 후임자로 전격 발탁 “의외지만 기대”
“감사하고 영광…인생 모든 것 바칠 것”소감

이렇게 큰 체구를 유지하던 중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김신영은 병원에서 “고도비만에서 초고도비만으로 진행 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동시에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등 여러 질환이 발견됐다. 결국 김신영은 체중감량을 결심, 체계적인 계획을 통해 약 38㎏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살을 빼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큰 체구를 가졌던 시절 가졌던 인기를 잃을 수 있겠다는 불안함과 “개그에 몰입하지 않고 외모만 가꾼다”는 주변의 오해가 걸림돌이었다. 악성 댓글에도 시달린 김신영은 결국 공황장애까지 앓게 됐다.

김신영은 감량한 체중을 10년째 유지하며 꾸준한 자기관리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공황장애도 극복했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KBS 예능 <빼고파>에 멘토로 등장해 출연진에게 건강한 체중감량 비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유도선수로 활동했던 김신영은 “유도가 좋은 것보다도 가난했던 유년 시절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운동부 숙소 생활이 더 좋았다.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다가 남자로 오해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김신영은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 “유도를 너무 못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동부 출신인 만큼 평소 발군의 운동신경을 보여준다. JTBC <마녀체력농구부>에선 출연진 중 돋보이는 농구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콩트 연기 대신 웃음기를 뺀 정극 연기까지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 김신영을 직접 캐스팅했다. 김신영으로서는 지난 2005년 <파랑주의보> 이후 약 17년 만의 영화계 재방문이다.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될 만큼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김신영 역시 ‘재발견’ 등의 수식어를 받으며 호평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제가 열렸던 지난 5월, 김신영의 캐스팅 비화를 직접 설명한 바 있다. 같은 달 23일 처음 선보인 <헤어질 결심>에서 김신영은 후반부 주요 배역을 맡았다. 영화 전반부에 등장한 고경표를 이어 박해일의 후배 형사로 출연했다.

콩트부터
정극까지

박 감독은 김신영을 캐스팅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아주 옛날 <웃찾사>에 나올 때부터 정말 팬이었다. 저 사람은 탁월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계가 그런 사람을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느꼈다”고 입을 뗐다.

이어 “연기를 당연히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안 시켜봐도 알 것 같더라”며 “즉흥적인 순발력도 그렇고 사람들의 특징을 잡고 모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이 역할에 김신영씨를 얘기했을 때 처음에 다 찡그리는 표정을 지었다”며 “이후 1시간쯤인가 생각해보고 (제작진이)좋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엔 모두가 환영했는데 그걸 확인하고 시나리오를 보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김신영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확신을 갖고 캐스팅이 실현됐는데 촬영할 때 보니 정말 타고났더라. 자기 딴에는 긴장도 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전혀 못 느꼈다. 평생 연기해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했다”며 “캐치가 굉장히 빠르더라. 무슨 말을 해도 잘 알아듣고 뉘앙스를 잘 살리고 그렇더라. 그녀가 나오는 연기를 볼 때마다 흐뭇하다”고 칭찬했다.

박찬욱 감독에 이어 봉준호 감독도 김신영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봉 감독은 박 감독이 김신영을 캐스팅했다는 소식을 듣고 환영의 뜻을 전한 바 있다. 박 감독은 “봉 감독도 캐스팅 소식을 듣고 나보고 잘했다더라. 자기도 김신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연기한 모습을 모아 놓은 파일도 따로 가지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라디오 DJ를 맡으며 다진 탄탄한 진행력도 강점이다. 김신영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MBC 라디오에서 <심심타파> 진행을 맡았다. 2012년부터는 MBC FM4U에서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하고 있다. 청취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소통이 뛰어나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년 시절 경제적 어려움으로 다양한 사회생활을 겪었던 경험이 자양분이 됐다. 

이 같은 경험 때문인지 특별한 사연을 가진 청취자들에게 사비로 선물을 준 미담이 종종 있었다. 가게를 처음 연 자영업자 청취자에게 화환을 보내고, 학자금대출을 다 갚은 사회초년생에겐 외식상품권을 건넸다. 곧 중학교를 입학하는 학생에겐 그 자리에서 바로 신발을 선물했다.

만능 재주
발탁 배경


<정오의 희망곡>은 김신영의 능수능란한 진행 능력과 높은 공감 능력에 힘입어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고 있다. <정오의 희망곡>은 2019년 8월 방송 3사 라디오 청취율 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 프로그램을 맡은 지 7년 만에 거둔 쾌거였다. 여세를 몰아 2020년 11월에는방송 3사·AM·FM 등을 모두 통틀어 단독 청취율 1위를 차지했다.

예능을 통한 가수 데뷔로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2018년 동료 개그우먼들과 함께 여자 아이돌 컨셉의 그룹 ‘셀럽파이브’를 결성했다. 이후 세 차례 노래를 내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시작된 ‘부캐 열풍’에 합류했다.

김신영은 2020년부터 ‘빠른 45년생 트로트 가수’라는 콘셉트로 만든 부캐 ‘둘째이모 김다비’로 활동 중이다. 데뷔곡 ‘주라주라’ 활동 당시 광고를 여러 편 찍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로는 래퍼 마미손, 아이돌 그룹 있지(ITZY)와 함께 신곡을 발표했다. 

김신영은 스스로를 ‘둘째이모 김다비’와 친한 이모 조카 사이로 소개했다. <정오의 희망곡>에 ‘김다비’로 출연해 쇼케이스를 열기도 했다. 당시 쇼케이스는 김신영 대신 셀럽파이브 멤버 신봉선이 MC를 맡았다. 김신영은 김다비와 그의 조카 ‘도코’ 1인2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이날 김다비는 쇼케이스에 힘입어 실시간 검색어 7위까지 올랐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아온 김신영의 이력이 바로 <전국 노래자랑> 낙점 배경이다. 의외의 소식에 놀랐던 대중들도, 발탁 이유를 이해하며 김신영의 연착륙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이 가운데 김신영은 전임자 송해처럼 출연자들에게 배우는 자세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개그부터 연기, 진행까지…만능 엔터테이너
공황장애 등 부침 이겨내고 ‘제3의 전성기’

김신영은 지난달 30일 KBS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송해 선생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며 “<전국 노래자랑>은 그동안 방송에 나와준 국민 여러분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흡수돼 배워가는 것 자체가 MC라고 하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제가 웃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여러분의 호흡대로 가겠다”며 “전국 팔도에 계신 많은 분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향토 색깔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MC로 발탁된 이유에 대해 “전국 어디에 갖다놔도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턱이 낮은 사람이라 편하게 말을 걸 수도 있고 장난칠 수도 있다”며 “희극인 20년 차로 행사,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들 동요대회 등을 많이 진행했다. 손녀나 동생, 이모처럼 편안한 사람이라서 선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신영은 “<전국 노래자랑> MC를 맡게 된 건 가문의 영광이자 오복 중 하나”라며 벅찬 감정을 전했다. 그는 “예전에 TV 버튼을 돌리던 시대에 주말 아침에 누워있으면 ‘딴따라 딴따’하는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이 들려왔다. 프로그램과 같이 성장했는데 MC를 맡게 돼 정말 뭉클하고, 울컥한다”며 “제 건강과 국민 여러분이 허락해주실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 제 인생 모든 것을 <전국 노래자랑>에 바치겠다”고 말했다. 

이어 “못 먹는 음식도 없어서 전국 팔도에서 여러분들이 힘겹게 농사 지으신 것도 맛있게 먹겠다.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뛰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향서
첫 녹화

김신영이 진행하는 <전국 노래자랑>은 다음 달 16일부터 방송된다. 지난달 31일 KBS는 “김신영의 <전국 노래자랑> 첫 녹화가 9월3일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 대구는 김신영의 고향이다. 그는 고향에서 <전국 노래자랑> 새 MC 신고식을 치르며 의미를 더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신영과 선배들 돈독한 우정 일화

김신영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다진 인연을 바탕으로 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특히 여러 개그우먼과 돈독한 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선희다.

김신영은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정선희를 꼽았다.

2005~2006년경, 김신영은 난독증 때문에 라디오 사연을 제대로 읽지 못해 라디오에 고정 게스트로 섭외됐다가도 쫓겨나는 일이 반복됐다. 

당시 <정오의 희망곡>은 정선희가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김신영이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정선희가 난독증으로 고생하던 김신영에게 많은 응원과 도움을 줬다고 한다.

김신영은 “(정선희의)신뢰와 격려 덕분에 난독증을 고치고 정식 라디오 DJ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정선희를 “내 인생의 설리반 선생님”이라 부를 정도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은이 역시 김신영이 존경하는 선배 중 하나다.

김신영이 촬영 중에는 각종 농담과 서슴없는 행동으로 무례하게 보일 때가 있지만, 촬영이 아닐 때는 송은이를 깍듯한 선배로 모신다.

자주 함께 활동하는 신봉선과 김숙은 “김신영이 카메라가 꺼지면 송은이에게 거의 군대 수준으로 예의를 갖춘다”고 증언했고, 송은이도 인터뷰에서 “신영이가 나를 존경하는 건 행동으로 느껴진다”고 밝혔다.

김숙의 열렬한 팬으로 실제 팬카페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했다는 유명환 일화가 전해진다.

김신영이 아직 ‘지망생’이던 시절, 팬카페에서 쪽지를 보내면 김숙이 직접 응원과 조언의 답장을 보내줬다.

이후 김숙은 KBS <개그콘서트> 출연자 집단 하차 사태 때 SBS로 둥지를 옮겼고, 김신영 역시 SBS 공채 코미디언으로 합격하며 둘은 <웃찾사>에서 선후배 관계로 만났다.

이후 김신영이 김숙에게 “저 기억 못 하세요? 저 팬카페에서 활동했던 개그사냥(닉네임)이에요”라고 말해 김숙이 알아보고, 굉장히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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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