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국 노래자랑’ 새 MC 김신영

무거운 마이크 물려받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지난 6월 별세한 KBS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 고 송해. 그의 34년 이력을 누가 이어갈지가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KBS는 숱한 예측을 깨고 개그우먼 김신영을 차기 진행자로 낙점했다. “의외의 발탁”이라는 반응과 함께 낙점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그 답은 개그부터 진행·연기까지 모두 수준급인 그의 이력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 MC’ 송해의 <전국 노래자랑> 후임자는 그가 작고한 지 두 달을 훌쩍 넘기고서야 비로소 결정됐다. 하지만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이들도 KBS의 장고를 책망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34년간 자리를 지켜온 거목을 대체할 누군가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온 국민이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장고 끝에
묘수 뒀다

다만 장고 끝 KBS가 내린 결론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KBS는 지난달 30일 <전국 노래자랑>의 진행자로 개그우먼 김신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신영은 세간에 돌던 후임자 하마평 속에 언급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초 하마평 속 유력 후보군은 이상벽·이상용·임백천·이택림 등이었다. 그간 <전국 노래자랑>이나 전 MC 송해와 깊은 인연을 쌓은 이들이다. 세간에서는 진행 능력과 인지도 등을 고려해 남희석·이수근·이찬원 등이 적임자라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KBS의 선택은 결국 김신영이었다. 

KBS 김상미 CP는 김신영 발탁 배경을 두고 “김신영은 데뷔 20년 차의 베테랑 희극인으로 TV·라디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영화계에서도 인정하는 천재 방송인”이라며 “무엇보다 대중들과 함께하는 무대 경험이 풍부해 새로운 <전국노래자랑> MC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대로 김신영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인정받아온 ‘만능 엔터테이너’다. 2003년 SBS 개그 콘테스트를 거쳐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웃찾사> ‘행님아’ 코너에서 개그맨 김태현과 함께 인기를 끌었다. 이를 인연으로 코너가 끝난 뒤에도 김태현과 콤비로 KBS <스타 골든벨> MBC <세바퀴> 등에서 활약했다.

이후로는 배우 이계인 성대모사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계인이 MBC 드라마 <주몽>에서 연기한 ‘모팔모’역을 흉내 내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김신영의 개그 중 단연 압권인 것은 바로 즉흥 생활 연기다. 백반집 아줌마, 목욕탕 아줌마, 아줌마 춤, 본인의 어머니, 고모와 할머니, 전라도 아저씨 등 일상을 재현한 개그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이를 통해 연령대에 관계 없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해낸다는 점이 강점이다.

김신영은 이 같은 개그들을 선보이며 여러 연령대에서 높은 인지도를 확보했다.

그는 즉흥 생활 연기에 강점을 보이는 만큼, 콩트에도 능한 모습이다. 여러 개그맨과 예능인이 모인 프로그램에서도 항상 순발력 있게 콩트를 주도한다. 방송계에선 “예능감을 타고났다”는 평가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후문이다.

데뷔 초 김신영을 기억하면 큰 체구가 함께 떠오른다. 하지만 사실 김신영은 어렸을 때 허리가 잘록할 정도로 늘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미디언으로서 활동한 이래로 체중을 불리거나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이다. 

실제로 그는 과거 대중에게 큰 체구에서 비롯된 이미지로 각인됐고, 여러 프로그램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식신원정대> MC를 맡기도 했다.


송해 후임자로 전격 발탁 “의외지만 기대”
“감사하고 영광…인생 모든 것 바칠 것”소감

이렇게 큰 체구를 유지하던 중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김신영은 병원에서 “고도비만에서 초고도비만으로 진행 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동시에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등 여러 질환이 발견됐다. 결국 김신영은 체중감량을 결심, 체계적인 계획을 통해 약 38㎏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살을 빼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큰 체구를 가졌던 시절 가졌던 인기를 잃을 수 있겠다는 불안함과 “개그에 몰입하지 않고 외모만 가꾼다”는 주변의 오해가 걸림돌이었다. 악성 댓글에도 시달린 김신영은 결국 공황장애까지 앓게 됐다.

김신영은 감량한 체중을 10년째 유지하며 꾸준한 자기관리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공황장애도 극복했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KBS 예능 <빼고파>에 멘토로 등장해 출연진에게 건강한 체중감량 비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유도선수로 활동했던 김신영은 “유도가 좋은 것보다도 가난했던 유년 시절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운동부 숙소 생활이 더 좋았다.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다가 남자로 오해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김신영은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 “유도를 너무 못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동부 출신인 만큼 평소 발군의 운동신경을 보여준다. JTBC <마녀체력농구부>에선 출연진 중 돋보이는 농구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콩트 연기 대신 웃음기를 뺀 정극 연기까지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 김신영을 직접 캐스팅했다. 김신영으로서는 지난 2005년 <파랑주의보> 이후 약 17년 만의 영화계 재방문이다.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될 만큼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김신영 역시 ‘재발견’ 등의 수식어를 받으며 호평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제가 열렸던 지난 5월, 김신영의 캐스팅 비화를 직접 설명한 바 있다. 같은 달 23일 처음 선보인 <헤어질 결심>에서 김신영은 후반부 주요 배역을 맡았다. 영화 전반부에 등장한 고경표를 이어 박해일의 후배 형사로 출연했다.

콩트부터
정극까지

박 감독은 김신영을 캐스팅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아주 옛날 <웃찾사>에 나올 때부터 정말 팬이었다. 저 사람은 탁월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계가 그런 사람을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느꼈다”고 입을 뗐다.

이어 “연기를 당연히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안 시켜봐도 알 것 같더라”며 “즉흥적인 순발력도 그렇고 사람들의 특징을 잡고 모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이 역할에 김신영씨를 얘기했을 때 처음에 다 찡그리는 표정을 지었다”며 “이후 1시간쯤인가 생각해보고 (제작진이)좋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엔 모두가 환영했는데 그걸 확인하고 시나리오를 보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김신영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확신을 갖고 캐스팅이 실현됐는데 촬영할 때 보니 정말 타고났더라. 자기 딴에는 긴장도 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전혀 못 느꼈다. 평생 연기해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했다”며 “캐치가 굉장히 빠르더라. 무슨 말을 해도 잘 알아듣고 뉘앙스를 잘 살리고 그렇더라. 그녀가 나오는 연기를 볼 때마다 흐뭇하다”고 칭찬했다.

박찬욱 감독에 이어 봉준호 감독도 김신영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봉 감독은 박 감독이 김신영을 캐스팅했다는 소식을 듣고 환영의 뜻을 전한 바 있다. 박 감독은 “봉 감독도 캐스팅 소식을 듣고 나보고 잘했다더라. 자기도 김신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연기한 모습을 모아 놓은 파일도 따로 가지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라디오 DJ를 맡으며 다진 탄탄한 진행력도 강점이다. 김신영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MBC 라디오에서 <심심타파> 진행을 맡았다. 2012년부터는 MBC FM4U에서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하고 있다. 청취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소통이 뛰어나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년 시절 경제적 어려움으로 다양한 사회생활을 겪었던 경험이 자양분이 됐다. 

이 같은 경험 때문인지 특별한 사연을 가진 청취자들에게 사비로 선물을 준 미담이 종종 있었다. 가게를 처음 연 자영업자 청취자에게 화환을 보내고, 학자금대출을 다 갚은 사회초년생에겐 외식상품권을 건넸다. 곧 중학교를 입학하는 학생에겐 그 자리에서 바로 신발을 선물했다.

만능 재주
발탁 배경


<정오의 희망곡>은 김신영의 능수능란한 진행 능력과 높은 공감 능력에 힘입어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고 있다. <정오의 희망곡>은 2019년 8월 방송 3사 라디오 청취율 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 프로그램을 맡은 지 7년 만에 거둔 쾌거였다. 여세를 몰아 2020년 11월에는방송 3사·AM·FM 등을 모두 통틀어 단독 청취율 1위를 차지했다.

예능을 통한 가수 데뷔로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2018년 동료 개그우먼들과 함께 여자 아이돌 컨셉의 그룹 ‘셀럽파이브’를 결성했다. 이후 세 차례 노래를 내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시작된 ‘부캐 열풍’에 합류했다.

김신영은 2020년부터 ‘빠른 45년생 트로트 가수’라는 콘셉트로 만든 부캐 ‘둘째이모 김다비’로 활동 중이다. 데뷔곡 ‘주라주라’ 활동 당시 광고를 여러 편 찍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로는 래퍼 마미손, 아이돌 그룹 있지(ITZY)와 함께 신곡을 발표했다. 

김신영은 스스로를 ‘둘째이모 김다비’와 친한 이모 조카 사이로 소개했다. <정오의 희망곡>에 ‘김다비’로 출연해 쇼케이스를 열기도 했다. 당시 쇼케이스는 김신영 대신 셀럽파이브 멤버 신봉선이 MC를 맡았다. 김신영은 김다비와 그의 조카 ‘도코’ 1인2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이날 김다비는 쇼케이스에 힘입어 실시간 검색어 7위까지 올랐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아온 김신영의 이력이 바로 <전국 노래자랑> 낙점 배경이다. 의외의 소식에 놀랐던 대중들도, 발탁 이유를 이해하며 김신영의 연착륙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이 가운데 김신영은 전임자 송해처럼 출연자들에게 배우는 자세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개그부터 연기, 진행까지…만능 엔터테이너
공황장애 등 부침 이겨내고 ‘제3의 전성기’

김신영은 지난달 30일 KBS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송해 선생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며 “<전국 노래자랑>은 그동안 방송에 나와준 국민 여러분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흡수돼 배워가는 것 자체가 MC라고 하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제가 웃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여러분의 호흡대로 가겠다”며 “전국 팔도에 계신 많은 분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향토 색깔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MC로 발탁된 이유에 대해 “전국 어디에 갖다놔도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턱이 낮은 사람이라 편하게 말을 걸 수도 있고 장난칠 수도 있다”며 “희극인 20년 차로 행사,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들 동요대회 등을 많이 진행했다. 손녀나 동생, 이모처럼 편안한 사람이라서 선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신영은 “<전국 노래자랑> MC를 맡게 된 건 가문의 영광이자 오복 중 하나”라며 벅찬 감정을 전했다. 그는 “예전에 TV 버튼을 돌리던 시대에 주말 아침에 누워있으면 ‘딴따라 딴따’하는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이 들려왔다. 프로그램과 같이 성장했는데 MC를 맡게 돼 정말 뭉클하고, 울컥한다”며 “제 건강과 국민 여러분이 허락해주실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 제 인생 모든 것을 <전국 노래자랑>에 바치겠다”고 말했다. 

이어 “못 먹는 음식도 없어서 전국 팔도에서 여러분들이 힘겹게 농사 지으신 것도 맛있게 먹겠다.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뛰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향서
첫 녹화

김신영이 진행하는 <전국 노래자랑>은 다음 달 16일부터 방송된다. 지난달 31일 KBS는 “김신영의 <전국 노래자랑> 첫 녹화가 9월3일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 대구는 김신영의 고향이다. 그는 고향에서 <전국 노래자랑> 새 MC 신고식을 치르며 의미를 더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신영과 선배들 돈독한 우정 일화

김신영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다진 인연을 바탕으로 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특히 여러 개그우먼과 돈독한 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선희다.

김신영은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정선희를 꼽았다.

2005~2006년경, 김신영은 난독증 때문에 라디오 사연을 제대로 읽지 못해 라디오에 고정 게스트로 섭외됐다가도 쫓겨나는 일이 반복됐다. 

당시 <정오의 희망곡>은 정선희가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김신영이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정선희가 난독증으로 고생하던 김신영에게 많은 응원과 도움을 줬다고 한다.

김신영은 “(정선희의)신뢰와 격려 덕분에 난독증을 고치고 정식 라디오 DJ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정선희를 “내 인생의 설리반 선생님”이라 부를 정도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은이 역시 김신영이 존경하는 선배 중 하나다.

김신영이 촬영 중에는 각종 농담과 서슴없는 행동으로 무례하게 보일 때가 있지만, 촬영이 아닐 때는 송은이를 깍듯한 선배로 모신다.

자주 함께 활동하는 신봉선과 김숙은 “김신영이 카메라가 꺼지면 송은이에게 거의 군대 수준으로 예의를 갖춘다”고 증언했고, 송은이도 인터뷰에서 “신영이가 나를 존경하는 건 행동으로 느껴진다”고 밝혔다.

김숙의 열렬한 팬으로 실제 팬카페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했다는 유명환 일화가 전해진다.

김신영이 아직 ‘지망생’이던 시절, 팬카페에서 쪽지를 보내면 김숙이 직접 응원과 조언의 답장을 보내줬다.

이후 김숙은 KBS <개그콘서트> 출연자 집단 하차 사태 때 SBS로 둥지를 옮겼고, 김신영 역시 SBS 공채 코미디언으로 합격하며 둘은 <웃찾사>에서 선후배 관계로 만났다.

이후 김신영이 김숙에게 “저 기억 못 하세요? 저 팬카페에서 활동했던 개그사냥(닉네임)이에요”라고 말해 김숙이 알아보고, 굉장히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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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