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위기’ 무너지는 성남제일초교, 왜?

땅 내려앉고 벽 갈라져도…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경기도 성남제일초등학교에서 ‘등교 거부 사태’가 빚어졌다. 노후화된 학교 시설 여러 곳에서 균열이 발견된 가운데, 학부모들은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학교 측은 당초 이를 수차례 부인하다가 전문가 경고 이후 태도를 바꿨다. 안전 검사 결과를 근거로 ‘수수방관’하던 교육지원청과 시청 등도 ‘뒷북 대응’ 행렬에 따라나서는 모양새다.

성남제일초등학교(이하 제일초)는 1969년 11월 문을 열었다. 오르막길에 세워진 제일초는 높이 4m 이상, 길이 200m에 달하는 옹벽이 학교 삼면을 감싼 구조다. 개교 53년째, 역사를 함께한 건물과 옹벽도 어느덧 낡은 시설이 됐다. 오래된 연식과 인근 아파트 공사가 맞물리자, 시설 안전 문제가 차츰 수면 위로 부상했다.

붕괴 위험

2018년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 이래로, 학교는 꾸준히 금이 갔다. 학부모들은 2020년 2월부터 학교 측에 꾸준히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들은 그해 1월, 별관 4층 화장실 벽에 균열이 생긴 걸 뒤늦게 알았다. 이후 학교에선 간담회를 거쳐 지반 검사, 보강공사 등을 실시했다.

검사 결과만 놓고 보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제일초 학부모회 관계자는 “당시 LH가 학교 건물은 ‘내진 보강이 필요한 수준이나 주시하면 된다’고 했고, 옹벽은 ‘균열이 발견돼 보강이 필요하지만, 추가적인 균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며 “이 말대로라면 지금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급기야 학교는 공사 일정과 내용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기 시작했다. 학부모 항의가 계속된다는 게 이유였다. 관련 내용은 당시 학부모회 회장과 운영위원장 등에게만 한정적으로 전달됐다. 일반 학부모가 LH에 직접 문의하고서야 공사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해 들어 교장이 바뀌었지만, 답답한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여전히 적절한 조치보다 납득 못할 해명이 앞섰다.

지난 4월, 별관 화장실에 재차 균열이 발생했다. ‘단순 외부 균열’이라는 해명으로 흐지부지 넘어간 지 한 달 뒤, 건물에선 물이 나오지 않았다. 성남시청과 성남교육지원청은 각각 인근 공사장과 급식실 용수 과다 사용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려앉는 땅과 금 간 옹벽, 그리고 단수 현상을 떼놓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50년 된 옹벽 붕괴?…학교 건물·도로에도 균열
지반 침하·단수 사태에도 “안전 점검 이상 무” 

학부모회 관계자는 “바로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공사장·급식실에서 물 좀 썼다고 단수될 정도면 (아파트)입주 후에는 단수 문제가 심해질 것 아니냐”며 “하중 문제로 중단됐던 물탱크 설치 방안을 누더기로 고칠 생각보다, 제대로 된 단수 원인을 파악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부터는 건물 하부균열과 지반 침하현상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별동 건물과 지반 사이에는 성인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큰 구멍이 발견됐다. 본관 쪽 고압전기시설 안전망은 이미 10도가량 휘었다. 

결국 학교는 학부모 요청에 따라 별관 교실을 본관으로 이전했다. 이번 2학기부터는 전교생이 본관에서 수업을 듣게 됐다. 


이런 가운데 옹벽 붕괴 징후는 계속 포착됐다. 옹벽 석축의 토사가 유실되면서 나무뿌리 일부가 드러나고, 갈라진 옹벽 틈새에는 이끼가 자랐다. 이에 학부모들은 학교·교육지원청·시청에 재차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문제없음”이었다.

관련 기관들이 주된 근거로 삼은 것은 이번에도 ‘안전 점검 결과’였다. 제일초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시행된 정밀 안전 점검·진단에서 줄곧 ‘B등급’을 받았다.

교육지원청 자료에 따르면 B등급은 ‘보조부재에 경미한 결함이 발생했으나 기능 발휘에는 지장이 없으며, 내구성 증진을 위해 일부 보수가 필요한 상태’다. 2020년 한 차례 C등급을 받은 바 있지만, 일부 보수공사를 거친 뒤 곧바로 B등급으로 복귀했다. 지난 2월 실시한 점검에서도 B등급이 나왔다. 

제일초 건물과 도로·옹벽에 간 금이 점차 늘어가는 중에도, 검사 결과는 꿋꿋이 안전을 담보하고 있었던 셈이다.

참다못한 학부모 등교 거부…전교생 절반 동참 
학교 측, 무단결석 처리하려다 뒤늦게 번복

결국 학부모들은 지난 22일부터 등교를 거부했다. 총 400여명(병설 유치원생 포함)에 달하는 전교생 중 절반 수준인 약 200명이 학교에 가지 않았다. 이튿날인 23일에도 비슷한 수가 결석·조퇴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가 남긴 소견이 등교 거부운동의 신호탄이 됐다. 그는 지난 21일 제일초를 직접 찾아 “옹벽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라며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국내 토목공학 분야 최고 권위자로, 2011년 우면산 산사태와 2018년 상도유치원 붕괴 사태를 미리 경고한 바 있다.

학부모회는 학교 측에 진상파악과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학부모회 관계자는 “안전불감증 가득한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순 없었다”며 “그동안 여러 번 문제 해결을 요청했음에도 진전된 건 없었다”고 토로했다.

학교 측은 ‘무단결석’ 처리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일부 학부모는 ‘가정체험학습’을 신청했지만 반려됐다. 가정체험학습은 원칙적으로 사흘 전에 신청해야 하는데, 전날이나 당일 신청하는 것은 절차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학부모회 일각에선 학생들을 무단결석 처리한 대목에서 학교 입장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침상 결석은 인정 결석과 미인정 결석으로 나뉜다. 인정 결석이란 여러 사유에 따라 결석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우로, 결석에 따른 불이익이 사실상 없다. 미인정 결석은 이와 배치되며, 무단결석은 미인정 결석에 속한다.

문제는 인정 결석의 범위가 교장 재량에 따라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 시설 안전 문제로 결석한 학생에게 인정 결석 대신 무단결석이 주어진 건, 안전 문제를 사실상 부인한 걸로 읽힌다는 게 일각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학교 측이 내세운 안전 점검 결과의 신뢰성을 의심한다. 그는 지난 22일 49페이지에 달하는 자문 의견서를 공개하며 붕괴 위험성을 거듭 경고했다. 해당 의견서에 따르면 앞선 안전 점검은 옹벽 붕괴 진행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의견서 내용을 종합하면 그간의 안전 점검은 ▲조사 표본 수가 부지 규모에 비해 매우 불충분했고 ▲옹벽 석축 인근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석축 뒤쪽 지질 상태를 파악하지 못했으며 ▲균열·침하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이 부족했다.

이수곤 교수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관련 기관 이 교수 나서자 황급히 태세 전환

이 교수는 인근 아파트 공사를 옹벽 붕괴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각종 징후를 종합해볼 때, 인근 아파트 공사와 옹벽 붕괴 현상 사이에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며 “옹벽이 붕괴되면서 지반 균열과 침하, 단수 현상 등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석축 인근에서 지하 터파기 공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며 “공사 중 보강공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석축 곳곳에서 균열과 튀어나온 지점이 발견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제일초 옹벽은 철저한 보강공사가 시급하며, 일부 보수보다도 전면 개축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짚었다.

자문 의견서가 전달된 뒤, 학교와 교육지원청은 태세를 완전히 전환했다. 제일초는 다시 내부 협의를 거쳐 학생 출석 여건을 보장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교육지원청 역시 문제 재진단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제일초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석 문제는 ‘기타 인정 결석’으로 처리하기로 다시 협의했다”며 “결석 기록을 꺼리는 학생은 가정체험학습으로 돌릴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안전 점검을 재차 시행하기 위해 교육지원청과 계속 협의 중”이라며 “‘그린스마트 학교’로 선정돼 2025년 리모델링을 앞둔 만큼, 안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제일초는 내부 협의를 통해 온·오프라인 동시 수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학생들도 온라인으로 실시간 수업을 듣도록 해 교육여건을 보장한다는 구상이다.

성남교육지원청 관계자는 “2020년에 이어 올해도 관련 민원이 있어 각종 조사와 간담회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었다”며 “안전 검사 결과에 대한 반박이 제기된 만큼, 시청과 LH 등에 공문을 발송해 관련 절차를 다시 밟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해당 사안은 경기도교육청까지 보고가 올라간 사안”이라며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사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임 교육감은 지난 23일 오후 제일초를 찾아 학부모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육감 간담회 자리에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학부모들은 간담회에서 교육청에 “점검 대신 옹벽 개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정밀검사를 진행한 뒤 결정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대신 “교육청과 학부모 측이 각각 검사 업체를 선정해 비교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학부모들은 “다른 이들도 교육청 제안에 동의할지, 학부모 전체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외에도 간담회에서는 ▲학교 건물 그린스마트 개축 ▲학생 긴급 이동 공간 확보 ▲전기시설 균열 임시 보수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교육청은 이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실상 반려했다. 등교 역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별관·옹벽 등과 달리 본관 건물은 안전하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관련 기관들이 문제를 다시 살피고는 있지만 “사실상 답보 상태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불만도 제기된다. 모두 엄중한 상황을 인식했음에도, 시원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곳은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학부모 사이에선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한 학부모는 “기관에서 검토한다는 것도 재점검 여부를 가리키는 것이지, 개축 여부를 논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이번에는 학생 안전을 위한 조치가 최대한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가운데 최근 성남시청 홈페이지 ‘행복소통청원’ 게시판에는 제일초 관련 청원이 수차례 올라왔다. 그중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청원은 접수 나흘 만에 지지수 2100건을 넘겼다. 현재 진행 중인 청원 중 최고치다. 청원인은 게시글에서 ‘학교 시설 폐쇄 및 안전지대 임시 모듈러 교실 설치’와 ‘지반 기초 다지기’ ‘본관과 별관 개축’ 등을 요청했다.

“성남시청
대답해야”

성남시청은 조만간 해당 청원에 대한 ‘답변 영상’을 게시할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청에 따르면 청원 접수 후 30일간 2000명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청원이 성립된다. 성립된 청원은 관련 부서 검토를 거친 공식 답변을 받을 수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토목 전문가 이수곤 교수
“반복되는 붕괴 원인은 시스템 부재”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27년이 지났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붕괴 위기·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올해만 해도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 등이 터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전문가는 ‘구조’에서 원인을 찾는다.

개인의 안전불감증보다도 정확한 상황 진단을 막는 점검 체계 자체가 문제라는 의미다.

이 같은 사실은 이번 ‘성남 제일초 붕괴 위기’ 사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정밀 점검 결과가 기존과 다르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모두들 당시 (점검을) 주관했던 직원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겠느냐”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시스템이 미비한 것이지, 정해진 대로 따른 사람에게 책임을 다 떠넘겨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재난관리 시스템은 형해화 상태다. 안전 점검을 할 때 크로스체크가 이뤄져야 하고, 또 이중삼중의 그물망으로 촘촘한 체계가 필요한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며 “공무원들도 업무 범위를 벗어나 판단·행동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놓고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 ‘실수’로 모는 행태는 너무 야박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사고가 난 뒤 누구 잡아 처벌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가장 중요한 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라며 “재난 관리 시스템 아래 예방 대책이 마땅치 않다. 담당 인력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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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