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해커’ 권석철 묻지마 흥망기

새빨간 거짓말에 다 넘어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1세대 해커로서 한때 국내 정보보안 업계 중심에 섰던 이가 있다. 바로 권석철 큐브피아 대표다. 그러나 오늘날,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악덕 사장’ ‘사기꾼’으로 바뀐 지 오래다. 지난해 임금체불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2심에서 가까스로 실형을 면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다. 그는 2019년부터 불거진 암호화폐 사기 혐의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권석철 큐브피아 대표는 1998년 ‘하우리’를 설립하며 정보보안 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안랩의 후발주자이긴 했지만, 자체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 ‘바이로봇’은 업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됐고 권 대표는 2000년 국무총리 표창에 이어 2003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1세대 해커로서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였다.

과거의 영광
드러난 진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굴지의 정보보안 회사로 성장하던 회사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권 대표의 84억원 횡령 사실이 드러난 탓이었다. 당시 하우리는 권 대표 지인 회사에 투자하고 있었다. 무리한 해외 사업 확장을 일삼던 이 회사가 어려워지자, 하우리도 덩달아 자금난에 빠졌다.

권 대표는 사채업자에게 본인 몫의 지분을 맡기고 허위 증자까지 감행했다.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던 권 대표의 부인은 회사 통장에서 84억원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관했다. 결국 권 대표는 횡령 혐의로 1년 반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 사이 하우리는 코스닥에서 퇴출당했다. 일부 우려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출소 후 업계 복귀에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2010년에는 ‘큐브피아’라는 새로운 회사도 꾸렸다. 


2010년대에는 유독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잦았다. 권 대표는 지상파 방송과 각종 강연에 잇달아 출연하며 유명해졌다. 2015년에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었던 안철수 의원(현 국민의힘)의 초청을 받고 카카오톡 불법 열람‧전면 카메라 원격 작동 등을 시연하기도 했다.

당시 큐브피아는 여러 공공기관에 보안 프로그램을 공급하면서 매출을 올렸다. 국군사이버사령부를 비롯해 북한발 해킹 위협의 최전선에 있는 기관들도 큐브피아의 고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 대표와 큐브피아가 자부하던 ‘기술력’에는 항상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권 대표는 몇 년에 걸쳐 “세계 최초로 해킹 무력화 기술을 개발해 제품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제대로 입증해 보인 적은 없었다. 그는 회사의 기술력이 해커가 프로그램을 읽거나 분석하기 어렵게 만드는 ‘난독화’를 넘어 아예 데이터값을 읽지 못하게 하는 ‘불독화’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권 대표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2013년 제품 발표회에서 불독화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진위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업계 선구자서 악덕사장·사기꾼으로
84억원 횡령·임금 체불로 잇달아 재판

한때 “CC(정보기술 보안 평가를 위한 공통평가 기준)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 중”이라던 권 대표의 설명과는 달리, 불독화 기술은 상용화되기는커녕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후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업계를 통틀어 불독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권 대표는 2019년 시작한 암호화폐 사업에도 실패했다. 그는 싱가포르에 푸카오글로벌이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피코(PKO)코인’이라는 이름의 암호화폐를 발행했다. 권 대표는 피코코인 수익을 빌미로 투자자에게 돈을 빌렸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투자자에게 돈을 갚지 않았다.


더군다나 권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상장 일정을 지키지 못했다. 한때는 극소수의 중소 거래소에 상장되기도 했지만, 상장폐지·입출금 금지 조치가 이어지면서 피코코인은 지난해부터 거래가 불가능하다. 해외 사이트에서는 2019년 하반기부터 일찍이 신용 사기(스캠) 코인 리스트에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 대표는 일명 ‘복사 방지(Flu-Fake)’ 기술이 완성됐다고 주장해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하지만, 이는 과거 큐브피아가 개발했다고 주장한 ‘권가 온라인 매체 제어 솔루션’과 유사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권 대표 주장에 따르면 권가 온라인 매체 제어 솔루션은 불법으로 중요 데이터를 외부로 전송할 경우 유출된 파일 자체를 가짜 파일로 변환‧전송하는 기술이다. 홍보 영상에서 소개된 복사 방지 기술과 ‘판박이’인데다, 권가 기술 자체도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

투자자들은 이 점을 들어 권 대표가 투자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투자 사기’를 저지른 걸로 확신하고 있다.

이외에도 권 대표는 “전 세계 암호화폐 지갑을 모두 풀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또 다른 허위 사실을 앞세워 투자금을 모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피코코인에 얽힌 정확한 피해 규모는 산정하기 어렵다. 다만 피해자가 수백명에 달하는 만큼, 그 금액은 최소 수억원에서 최대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권 대표는 또다시 법정에 섰다. 혐의는 근로기준법 위반. 직원 임금과 퇴직금을 체불하고도 이를 수년간 지급하지 않았다. 그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임금체불 사건으로는 이례적인 실형 선고였다. 권 대표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곧바로 항소했지만, 세간이 이미 ‘임금체불 실형’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반성 없이
2차 가해

이 판결은 권 대표의 ‘악덕 사장’ 행적이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신호탄이 됐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임금체불을 이유로 실형이 선고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며 “실형이 선고됐다는 건 상습적 임금체불 등 (피고인의)죄질이 특별히 불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권 대표는 근로기준법위반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죄 등의 처벌 전력이 있다”고 명시한 데 이어 “부실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근로자들의 임금과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할 능력이 없음에도 근로자들을 채용하고서는 피해 근로자들에게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사용자로서의 책임 의식이 극히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권 대표는 실제로 수차례 임금체불을 범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외에도 직원들에게 각종 ‘갑질’을 이어온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일요시사>는 권 대표를 고소한 A씨와 연락이 닿았다. A씨는 수년간 큐브피아에서 각종 부조리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했다. 

A씨 증언에 따르면 그는 2015년부터 2017년 초 사이에 총 13개월어치 임금이 체불됐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월급을 받지 못한 셈이다. 체불임금 중 일부는 퇴사 이후에, 나머지와 퇴직금은 형사 재판 2심 선고 전날에야 받을 수 있었다. 3000만원이 넘는 돈을 5년이 훌쩍 지나고서야 마지못해 넘겨준 셈이다. 


권 대표는 A씨에게 사업자금 명목으로 빌려간 1000만원도 갚지 않았다. 회사를 걱정하는 마음에 대출까지 받아 빌려준 돈이었다. 월급도, 빌려준 돈도 받지 못한 A씨는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관, 직원 개인정보 무단 도용 등의 만행도 이어졌다. 하지만 직원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2010년대 후반 당시 직원 중 상당수가 병역특례자로, 큐브피아에서 대체복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병무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큐브피아는 현재 병역지정업체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다.

A씨는 참다못해 권 대표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했다. A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여러 직원이 한때 권 대표를 신뢰하고, 임금체불 피해를 감내해가며 꿈을 키웠다”면서 “하지만 권 대표가 직원 사이를 이간질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실망해 법적 책임을 묻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잠수 타고
연락두절

권 대표는 ‘진정취하서’를 앞세워 민형사 재판에서 각종 혐의와 채무를 대부분 부인했다. A씨가 재직 중이던 2016년 11월, 권 대표가 직원들을 압박해 사실상 서명을 강요한 문서였다.

권 대표는 “A씨가 (명시된 날짜에)앞서 퇴사했기에 그날 이후의 임금과 퇴직금 부분에 대해서는 지급 의무가 없고, A씨가 처벌불원의사를 밝힌 만큼 공소기각 사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권 대표의 주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씨가 사직서를 작성해 권 대표에게 제출한 적은 있지만 그 뒤에도 계속 권 대표 회사에서 근무한 게 확인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권 대표의 요청에 따라 진정취하서를 작성했지만, 당시에는 A씨가 권 대표를 진정(고소)하지 않았던 때인데다 수사기관에 제출된 바도 없으니 문건 내용과 달리 취하의 의미가 없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원심이 판시한 사정들에다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사정들, 곧 A씨는 ‘원심 법정에서 회사 측에서 재직 직원 전부를 모아놓고 회사가 어려운데 이 서류를 작성해 주면 투자를 받거나 회사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니 써달라고 해 쓸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의지로 작성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부연했다.

이어 “권 대표는 A씨에 대한 미지급 임금 등을 무려 5년이 지나도록 청산하지 않다가 선고 전날 피해자의 계좌에 위 금액을 입금했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지난 15일 징역 6월과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막판 입금’을 통해 가까스로 실형은 면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권 대표는 재판 내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재판 도중 법정 밖에서 ‘장외전’을 폈다. 그는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린 피해자를 겁박했다. 권 대표는 2019년 10월 A씨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권 대표는 “숨어서 비겁하게 글을 남긴다고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계속 그렇게 한다면 나도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용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번처럼 후회하지 마라”며 “2년 전 내게 제출한 서류를 잘 기억하라”고 덧붙였다.

재판 직후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반성과 사과 대신 2차 가해를 늘어놨다. 당시 권 대표는 “제대로 근무하지 않은 직원들도 문제가 있다”며 “특히 A씨는 정신질환이 있고 평소 회사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논란이 일자 “그럴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허위 기술로 투자금 모집…결국 못 갚아
사업 모두 실패…변제능력 사실상 전무

A씨는 민사소송에서도 사실상 승소했다. 민사 재판부는 “회사는 A씨에게 3100만원을, 권 대표는 A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이후 권 대표는 A씨에게 일부 비용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자나 소송비용·차용금 등은 아직 상환하지 않았다.

권 대표는 형사 1심 판결 직후였던 지난해 8월 “임금체불 사건 등 논란들에 대해 모두 억울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겠다”며 “2심 재판에서 반박자료가 소상히 다뤄져 의혹을 벗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전한 바 있다.

이에 <일요시사>는 2심 판결 이후 권 대표 입장을 듣고자 다방면으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권 대표는 현재 모든 연락을 끊고 두문불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 재판에 성실히 출석한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피해자 연락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큐브피아도 등기상으로만 남아있을 뿐, 사실상 폐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인 등기에 기재된 큐브피아 사무실 주소로 찾아가 봤지만, 이미 다른 업체가 들어서 있었다. 코인 사기 피해자들에 따르면 권 대표는 이미 지난해 3월 사무실을 비웠다. 

피해자들로서는 권 대표와 접촉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 결국 ‘권 대표의 형사 처벌’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권 대표에게 투자금 상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한 피해자는 “냉정하게 금전 회수가 목적이라면 소송해도 어려울 것”이라며 “형사소송을 통해 법적 책임이라도 지게 하면 그나마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수억 이상
코인 사기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 또 어디서부터가 거짓이었을까. 거짓과 부정으로 점철된 권 대표의 20년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권 대표의 몰락만으로는 끝나지 않은 고통. 하지만 권 대표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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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