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해커’ 권석철 묻지마 흥망기

새빨간 거짓말에 다 넘어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1세대 해커로서 한때 국내 정보보안 업계 중심에 섰던 이가 있다. 바로 권석철 큐브피아 대표다. 그러나 오늘날,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악덕 사장’ ‘사기꾼’으로 바뀐 지 오래다. 지난해 임금체불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2심에서 가까스로 실형을 면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다. 그는 2019년부터 불거진 암호화폐 사기 혐의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권석철 큐브피아 대표는 1998년 ‘하우리’를 설립하며 정보보안 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안랩의 후발주자이긴 했지만, 자체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 ‘바이로봇’은 업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됐고 권 대표는 2000년 국무총리 표창에 이어 2003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1세대 해커로서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였다.

과거의 영광
드러난 진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굴지의 정보보안 회사로 성장하던 회사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권 대표의 84억원 횡령 사실이 드러난 탓이었다. 당시 하우리는 권 대표 지인 회사에 투자하고 있었다. 무리한 해외 사업 확장을 일삼던 이 회사가 어려워지자, 하우리도 덩달아 자금난에 빠졌다.

권 대표는 사채업자에게 본인 몫의 지분을 맡기고 허위 증자까지 감행했다.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던 권 대표의 부인은 회사 통장에서 84억원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관했다. 결국 권 대표는 횡령 혐의로 1년 반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 사이 하우리는 코스닥에서 퇴출당했다. 일부 우려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출소 후 업계 복귀에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2010년에는 ‘큐브피아’라는 새로운 회사도 꾸렸다. 


2010년대에는 유독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잦았다. 권 대표는 지상파 방송과 각종 강연에 잇달아 출연하며 유명해졌다. 2015년에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었던 안철수 의원(현 국민의힘)의 초청을 받고 카카오톡 불법 열람‧전면 카메라 원격 작동 등을 시연하기도 했다.

당시 큐브피아는 여러 공공기관에 보안 프로그램을 공급하면서 매출을 올렸다. 국군사이버사령부를 비롯해 북한발 해킹 위협의 최전선에 있는 기관들도 큐브피아의 고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 대표와 큐브피아가 자부하던 ‘기술력’에는 항상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권 대표는 몇 년에 걸쳐 “세계 최초로 해킹 무력화 기술을 개발해 제품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제대로 입증해 보인 적은 없었다. 그는 회사의 기술력이 해커가 프로그램을 읽거나 분석하기 어렵게 만드는 ‘난독화’를 넘어 아예 데이터값을 읽지 못하게 하는 ‘불독화’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권 대표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2013년 제품 발표회에서 불독화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진위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업계 선구자서 악덕사장·사기꾼으로
84억원 횡령·임금 체불로 잇달아 재판

한때 “CC(정보기술 보안 평가를 위한 공통평가 기준)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 중”이라던 권 대표의 설명과는 달리, 불독화 기술은 상용화되기는커녕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후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업계를 통틀어 불독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권 대표는 2019년 시작한 암호화폐 사업에도 실패했다. 그는 싱가포르에 푸카오글로벌이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피코(PKO)코인’이라는 이름의 암호화폐를 발행했다. 권 대표는 피코코인 수익을 빌미로 투자자에게 돈을 빌렸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투자자에게 돈을 갚지 않았다.


더군다나 권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상장 일정을 지키지 못했다. 한때는 극소수의 중소 거래소에 상장되기도 했지만, 상장폐지·입출금 금지 조치가 이어지면서 피코코인은 지난해부터 거래가 불가능하다. 해외 사이트에서는 2019년 하반기부터 일찍이 신용 사기(스캠) 코인 리스트에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 대표는 일명 ‘복사 방지(Flu-Fake)’ 기술이 완성됐다고 주장해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하지만, 이는 과거 큐브피아가 개발했다고 주장한 ‘권가 온라인 매체 제어 솔루션’과 유사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권 대표 주장에 따르면 권가 온라인 매체 제어 솔루션은 불법으로 중요 데이터를 외부로 전송할 경우 유출된 파일 자체를 가짜 파일로 변환‧전송하는 기술이다. 홍보 영상에서 소개된 복사 방지 기술과 ‘판박이’인데다, 권가 기술 자체도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

투자자들은 이 점을 들어 권 대표가 투자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투자 사기’를 저지른 걸로 확신하고 있다.

이외에도 권 대표는 “전 세계 암호화폐 지갑을 모두 풀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또 다른 허위 사실을 앞세워 투자금을 모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피코코인에 얽힌 정확한 피해 규모는 산정하기 어렵다. 다만 피해자가 수백명에 달하는 만큼, 그 금액은 최소 수억원에서 최대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권 대표는 또다시 법정에 섰다. 혐의는 근로기준법 위반. 직원 임금과 퇴직금을 체불하고도 이를 수년간 지급하지 않았다. 그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임금체불 사건으로는 이례적인 실형 선고였다. 권 대표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곧바로 항소했지만, 세간이 이미 ‘임금체불 실형’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반성 없이
2차 가해

이 판결은 권 대표의 ‘악덕 사장’ 행적이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신호탄이 됐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임금체불을 이유로 실형이 선고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며 “실형이 선고됐다는 건 상습적 임금체불 등 (피고인의)죄질이 특별히 불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권 대표는 근로기준법위반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죄 등의 처벌 전력이 있다”고 명시한 데 이어 “부실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근로자들의 임금과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할 능력이 없음에도 근로자들을 채용하고서는 피해 근로자들에게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사용자로서의 책임 의식이 극히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권 대표는 실제로 수차례 임금체불을 범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외에도 직원들에게 각종 ‘갑질’을 이어온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일요시사>는 권 대표를 고소한 A씨와 연락이 닿았다. A씨는 수년간 큐브피아에서 각종 부조리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했다. 

A씨 증언에 따르면 그는 2015년부터 2017년 초 사이에 총 13개월어치 임금이 체불됐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월급을 받지 못한 셈이다. 체불임금 중 일부는 퇴사 이후에, 나머지와 퇴직금은 형사 재판 2심 선고 전날에야 받을 수 있었다. 3000만원이 넘는 돈을 5년이 훌쩍 지나고서야 마지못해 넘겨준 셈이다. 


권 대표는 A씨에게 사업자금 명목으로 빌려간 1000만원도 갚지 않았다. 회사를 걱정하는 마음에 대출까지 받아 빌려준 돈이었다. 월급도, 빌려준 돈도 받지 못한 A씨는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관, 직원 개인정보 무단 도용 등의 만행도 이어졌다. 하지만 직원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2010년대 후반 당시 직원 중 상당수가 병역특례자로, 큐브피아에서 대체복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병무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큐브피아는 현재 병역지정업체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다.

A씨는 참다못해 권 대표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했다. A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여러 직원이 한때 권 대표를 신뢰하고, 임금체불 피해를 감내해가며 꿈을 키웠다”면서 “하지만 권 대표가 직원 사이를 이간질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실망해 법적 책임을 묻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잠수 타고
연락두절

권 대표는 ‘진정취하서’를 앞세워 민형사 재판에서 각종 혐의와 채무를 대부분 부인했다. A씨가 재직 중이던 2016년 11월, 권 대표가 직원들을 압박해 사실상 서명을 강요한 문서였다.

권 대표는 “A씨가 (명시된 날짜에)앞서 퇴사했기에 그날 이후의 임금과 퇴직금 부분에 대해서는 지급 의무가 없고, A씨가 처벌불원의사를 밝힌 만큼 공소기각 사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권 대표의 주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씨가 사직서를 작성해 권 대표에게 제출한 적은 있지만 그 뒤에도 계속 권 대표 회사에서 근무한 게 확인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권 대표의 요청에 따라 진정취하서를 작성했지만, 당시에는 A씨가 권 대표를 진정(고소)하지 않았던 때인데다 수사기관에 제출된 바도 없으니 문건 내용과 달리 취하의 의미가 없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원심이 판시한 사정들에다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사정들, 곧 A씨는 ‘원심 법정에서 회사 측에서 재직 직원 전부를 모아놓고 회사가 어려운데 이 서류를 작성해 주면 투자를 받거나 회사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니 써달라고 해 쓸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의지로 작성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부연했다.

이어 “권 대표는 A씨에 대한 미지급 임금 등을 무려 5년이 지나도록 청산하지 않다가 선고 전날 피해자의 계좌에 위 금액을 입금했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지난 15일 징역 6월과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막판 입금’을 통해 가까스로 실형은 면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권 대표는 재판 내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재판 도중 법정 밖에서 ‘장외전’을 폈다. 그는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린 피해자를 겁박했다. 권 대표는 2019년 10월 A씨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권 대표는 “숨어서 비겁하게 글을 남긴다고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계속 그렇게 한다면 나도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용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번처럼 후회하지 마라”며 “2년 전 내게 제출한 서류를 잘 기억하라”고 덧붙였다.

재판 직후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반성과 사과 대신 2차 가해를 늘어놨다. 당시 권 대표는 “제대로 근무하지 않은 직원들도 문제가 있다”며 “특히 A씨는 정신질환이 있고 평소 회사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논란이 일자 “그럴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허위 기술로 투자금 모집…결국 못 갚아
사업 모두 실패…변제능력 사실상 전무

A씨는 민사소송에서도 사실상 승소했다. 민사 재판부는 “회사는 A씨에게 3100만원을, 권 대표는 A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이후 권 대표는 A씨에게 일부 비용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자나 소송비용·차용금 등은 아직 상환하지 않았다.

권 대표는 형사 1심 판결 직후였던 지난해 8월 “임금체불 사건 등 논란들에 대해 모두 억울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겠다”며 “2심 재판에서 반박자료가 소상히 다뤄져 의혹을 벗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전한 바 있다.

이에 <일요시사>는 2심 판결 이후 권 대표 입장을 듣고자 다방면으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권 대표는 현재 모든 연락을 끊고 두문불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 재판에 성실히 출석한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피해자 연락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큐브피아도 등기상으로만 남아있을 뿐, 사실상 폐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인 등기에 기재된 큐브피아 사무실 주소로 찾아가 봤지만, 이미 다른 업체가 들어서 있었다. 코인 사기 피해자들에 따르면 권 대표는 이미 지난해 3월 사무실을 비웠다. 

피해자들로서는 권 대표와 접촉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 결국 ‘권 대표의 형사 처벌’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권 대표에게 투자금 상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한 피해자는 “냉정하게 금전 회수가 목적이라면 소송해도 어려울 것”이라며 “형사소송을 통해 법적 책임이라도 지게 하면 그나마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수억 이상
코인 사기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 또 어디서부터가 거짓이었을까. 거짓과 부정으로 점철된 권 대표의 20년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권 대표의 몰락만으로는 끝나지 않은 고통. 하지만 권 대표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