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사실상 종신형’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7.18 11:36:52
  • 호수 13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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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거짓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1조원대 펀드사기 혐의로 구속된 김재현 옵티머스 자산운용사 대표가 징역 40년의 중형을 받았다. 1년여간 경찰 수사에 확인된 피해자만 약 3200명으로 사기 금액만 1조원이다. 이 가운데는 법인이나 단체도 있어 실제 직·간접적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4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특정경제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김재현 옵티머스 자산운용사 대표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벌금 5억원과 추징금 751억7500만원도 그대로 유지된다.

25년서
40년으로

옵티머스 2대 주주 이동열씨는 2심에서 징역 20년과 벌금 5억원, 옵티머스 이사였던 윤석호 변호사는 징역 15년에 벌금 3억원이 확정됐다. 송석희 옵티머스 사내이사는 징역 8년과 벌금 3억원이 유지됐다. 자금책으로 불린 유현권 전 스킨앤스킨 고문은 대법원 징역 17년과 벌금 3억원을 확정했다.

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40년으로 형이 훨씬 가중됐다. 1심은 김 대표가 한국 방송 통신전파진흥원 등 투자자를 속여 306억여원을 가로챈 부분은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봤지만, 항소심은 증인 진술의 신빙성이 높다고 보고 1심 무죄를 파기하는 등 일부 혐의를 추가 유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3년 넘게 사모펀드를 운용하며 공공기관 매출채권 투자금 명목으로 총 1조3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편취한 초대형 금융 사기 범행”이라며 김 대표에 대해 “장기간 격리해 평생 참회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들 투자금은 대부분 타당성 없는 것에 투자돼 회수할 수 없게 됐고 현재까지 그 피해가 지속돼 회복이 힘든 상태”라며 “특히 김재현, 윤석호 피고인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문서를 위조하는 범행까지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펀드 환매 불능 상황에 직면하자 증거인멸을 위해 상호 역할을 정하고 금감원, 검찰, 법원에 대응하는 전략을 논의해 초기 수사 과정에 막대한 혼란을 줬다”며 “다수의 선량한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재산적‧정신적 충격을 주고 금융시장 신뢰성을 심각하게 손상시켜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옵티머스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2조원의 피해를 발생시킨 라임 자산운용 사태에 이은 한국의 대형 사모펀드 사기 사건이다.

라임 사태 이은 대형 사모펀드 사건
피해자 3200명에 사기 금액만 1조원

이 회사의 정식 명칭은 ‘옵티머스 자산운용’(이하 옵티머스)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산운용이란, 회사가 펀드를 설정하고 판매사에 판매를 위탁해 투자자를 모은 다음 펀드를 운용해 이익을 내는 것이다. 

여기서 발생한 이익은 정기적으로 투자자에게 알려주고 이익금을 분배한다. 쉽게 말해서 ‘나 대신에 내 돈을 굴려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라임 자산운용은 업계에서 아주 유명했지만, 옵티머스는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았다. 

옵티머스는 2009년 6월15일 이혁진 전 대표가 설립한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의 전신이다. 2015년 6월30일에는 에이브이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7년 6월30일 옵티머스 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김 대표가 취임했다.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김 대표가 취임을 하고 6개월이 지난 12월부터 사모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모펀드는 비공개로 소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주식과 채권, 기업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운용하는 펀드다.

옵티머스 사모펀드는 상품 구조가 좋았다. 일반인들이 알기에 보통 사모펀드에 가입을 하면 4~5%, 많은 곳은 6%까지 수익률이 간다. 그러나 옵티머스 사모펀드는 2~4%의 정도의 수익률이었다. 김 대표는 2017년 12월부터 사모펀드 판매를 시작했다.

옵티머스사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해 연 3%의 수익을 보장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사모펀드 상품은 최고 위험군 상품을 1등급, 제일 안전한 상품은 5등급으로 정한다. 옵티머스사의 사모펀드는 5등급으로 구성될 정도로 안전했다.

털어 보니
모두 사기

옵티머스사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해 연 3%의 수익을 보장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NH 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의 증권사는 이를 믿고 법인 고객을 대상으로 사모펀드를 판매했다.

옵티머스사가 이 상품을 구조대로만 팔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처음부터 다른 데 있었다. 

김 대표는 사모펀드로 안전한 공공기관의 매출채권(기업이 상품을 매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채권으로 외상매출금과 받을 어음)을 구입한다고 해 놓고 조직폭력배 출신인 옵티머스사 2대 주주 이씨의 ▲씨피엔에스 ▲비상장기업 ▲대부업계 ▲부동산 등에 투자한 것이다. 이들 기업은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였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공공기관에 투자하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었고, 말도 안 되는 기업에 투자를 한 것이다. 또한 투자를 받은 회사는 투자금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비상장 주식 ▲코스닥 주식 ▲코스닥 상장사 인수합병 등 위험자산에 투자했다.

펀드 돌려 막기에도 이용됐고, 김 대표는 자신의 증권 계좌에 수백억원을 횡령한 정황도 금융감독원에 포착됐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것일까. 옵티머스사는 수탁기관과 사무관리기관, 판매사가 모두 분리돼 업무 정보를 공유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수탁기관인 하나은행에 비상장기업인 아트리파라다이스의 사모사채를 사도록 하고, 사무관리기관인 한국예탁 결제원에는 사모사채가 아닌 부산광역시 매출채권 등이 편입된 것으로 이름 변경을 요구했다.

판매사인 증권사들에는 옵티머스사의 사모펀드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속여, 투자자들은 이를 믿고 옵티머스 사모펀드에 투자했다. 이런 과정에서 서류를 위조하는 등의 일을 하기도 했다.


알고도
넘어가

이런 상황에 옵티머스사는 2017년에 자본 적기 시정 조치 유예를 받는다. 자본 적기 시정 조치는 금융 감독 당국이 금융회사가 부실한 징후를 발견하면 심각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해당 금융회사의 경영개선을 유도‧강제하는 등 여러 가지 시정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부실 징후를 보이는 금융회사는 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하는 조치다. 자본 적기 시정 조치는 금융회사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한국 전파진흥원은 옵티머스사의 펀드를 750억 구매해 위기를 넘어갔다.

결국 옵티머스사는 2020년 6월17일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그해 6월25일 서울중앙지검은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며, 6월30일에는 금융위원회에서 옵티머스사를 상대로 영업정지 조치를 했고, 7월7일에는 김 대표‧이 대표이사‧윤 변호사 등 옵티머스사 관계자가 구속됐다.

이 사태가 일어나고 가장 큰 비판을 받은 것은 금융감독원이다. 금융회사를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이 옵티머스사가 펀드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걸 확인하고도 현장 검사를 실시하거나 수사기관과 금융위원회에 통보하지 않았다.

또 옵티머스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95% 이상 투자하겠다”는 보고서와 달리, 일반 회사에 투자하는 내용의 집합 투자 규약을 첨부했는데도 인정했다.


옵티머스 펀드에 문제가 있다는 국회의 지적에도 무사안일하게 대응했다. 옵티머스사의 설명만 듣고 국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변한 것이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감사원은 45건의 위법‧부당사항을 확인하고, 금융감독원 직원 4명과 한국예탁결제원 직원 1명에겐 징계, 17명의 임직원에겐 주의, 24건의 기관 통보를 의결했다.

한편 옵티머스 사태로 인해 NH투자증권 및 하나은행에 대해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에서 발견된 위법사항에 대해 업무 일부정지 및 과태료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선량한 사람들에 막대한 충격 줬다”
대법원 징역 40년 선고 원심 확정

금융감독위원회는 NH투자증권이 옵티머스 사모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부당 권유가 있었고, 설명 내용 확인 의무와 투자광고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사모펀드 판매를 3개월 정지하고, 51억728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결국 금융감독원의 안일한 대처에 피해자만 양성시킨 꼴이다. 올해로 76세인 유혜경씨는 지난해 겨울까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유씨는 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건의 피해자다.

피해 사실을 알고부터 계속 시위를 한 것이다. 옵티머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청사 앞은 물론 NH투자증권 본사와 금융감독원, 국회, 청와대 등 관련 기관을 돌며 마라톤 시위도 했다.

유씨는 2019년에 먼저 떠난 남편의 유산 5억원을 옵티머스 펀드에 넣었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평생 사치 한 번 안 하고 검소하게 살며 모은 돈이다. 남편이 남긴 돈을 생활비 삼아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노후를 보내려 했지만 펀드 사기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옵티머스 펀드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은 유씨처럼 노후자금을 날린 고령자들이다. 생업, 몸이 불편해서 등 시위에 동참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유씨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다.

아들의 전세금 2억원과 부모님 노후자금 2억원을 잃은 A씨도 있었다. A씨는 “지금 이 사건을 저하고 저희 아버지밖에 모른다. 어머니는 모르시고 자식들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사연을 밝혔다.

A씨에 따르면 옵티모스 피해자들은 시위에서 만나 자신들의 사연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A씨는 “저희가 시위도 많이 했다. 시위하면서 NH증권 정영채 사장을 자주 봤다. 비대위 대표들이 만나서 실제 회의도 했다. 그런데 웃으면서 ‘우리도 피해자’라고 말했었다. 그 말에 피해자들이 매우 격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울부짖는
피해자들

피해자들은 피해를 낸 제품을 판매한 회사의 물건을 팔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A씨는 “우리가 슈퍼에서 물건을 샀는데 물건이 변질됐으면 변상이나 교환을 요구한다. 우리가 생산자한테 찾아가서 요청할 수 없지 않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고위험 상품 권유 금지

앞으로 금융기관은 일반 금융소비자에게 장외 파생상품뿐만 아니라 사모펀드, 고난도 상품 등 고위험 상품을 권유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 시행령 및 감독규정을 입법 예고했다.

시행령 개정안에는 소비자의 요청이 없는 경우 방문·전화 등을 활용한 투자성 상품의 권유를 금지하는 ‘불초청 권유 금지’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는 시행령에서 넓은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 장외 파생상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투자성 상품에 대한 불초청 권유가 가능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소비자의 구체적‧적극적인 요청이 없는 불초청 권유의 경우 방문 전 소비자의 동의를 확보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동의를 확보했더라도, 일반 금융소비자에 대해서는 고난도 상품, 사모펀드, 장내·장외 파생상품을 권유해서는 안 된다. 

단 전문 금융소비자의 경우에는 장외 파생상품에 대해서만 권유가 금지된다.

개정안에는 선불‧직불카드에도 ‘연계서비스 규제’를 적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연계 서비스 규제에는 연계 서비스에 대한 설명 의무, 연계 서비스 축소‧변경 시 6개월 전 고지 의무 등이 포함된다.

그동안은 신용카드에만 이 규제가 적용돼 규제 차익이 있었다.

또 환율 변동 등에 따라 손실 가능성이 있는 외화 보험에 가입할 때 적합성‧적정성 원칙이 적용되도록 바뀐다.

기존에는 투자성이 있는 변액보험에만 적용됐던 원칙이 외화 보험에도 확대 적용되는 것이다.

적합성 원칙에 따라 소비자 성향에 부적합한 금융상품 권유는 금지되며, 적정성 원칙에 따라서는 소비자가 구매하려는 상품이 소비자에게 부적정할 경우 고지 및 확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밖에 업계의 요청을 반영한 개선사항도 포함됐다.

금융소비자의 확인을 받을 수 있는 전자적 방식을 확대해 전자서명 방식만 허용한 기존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등 내용이 담겼다.

금융위는 이 같은 내용의 금소법 시행령 및 감독 규정 개정안을 향후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올해 하반기 중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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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