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는’ SM벡셀 직원 탄압 의혹

“내보내려 안달” vs “기업 흠집내기”
2년 동안 질질 끈 진실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국내 건전지 시장 점유율 2위 기업인 SM벡셀. 2020년 한 직원이 퇴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부당 징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신질환까지 앓은 직원. 이 직원은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했다”고 주장한다. 회사 측은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해명이 석연치 않다. 2년을 끌어온 양측의 진실공방은 이제 그 종착역만을 남겨뒀다.

직원 A씨가 SM벡셀에 입사한 때는 2019년 8월. 그는 정규직 입사 약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사직을 강요받았다. 명확한 이유도 없이, 집요한 사직 요구는 8번이나 반복됐다. A씨는 “2020년 3월16일, B 영업본부장(이하 B 본부장)이 나를 부르더니 ‘퇴사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사직 요구가 반복될 때마다 그 이유를 물었지만,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뜬금없이
사직 강요

이어 “인사총무팀에게 사직 요구의 이유를 물었더니 ‘전혀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B 본부장은 내가 인사팀에게 문의한 사실을 알고 그것까지 질책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2020년 3월26일 이뤄진 A씨와 B 본부장의 면담 녹취를 입수했다. A씨는 B 본부장에게 사직 이유를 계속 물었다. 하지만 B 본부장은 30분간 이어진 대화에서 “회사가 준비가 안 됐다”거나 “너 정말 모르냐”는 등 두루뭉술한 답변만 반복했다.

근로기준법 제23조와 제27조에 따르면 사용자(회사)는 근로자를 해고할 때 정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하고, 그 이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제시해야 한다. 


법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일방적인 요구. A씨가 이에 응해줄 이유는 없었다. A씨 증언에 따르면 그는 보름 동안 사직 요구를 네 번 받았고, 이를 모두 거절했다.

결국 B 본부장이 칼을 빼들었다. B 본부장은 A씨가 네 번째 사직 요구를 거절한 직후, 다른 직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A씨에게 “야, 어디가!”라고 소리치거나 “내가 참 대단한 직원 하나 뽑았네” 등의 비꼬는 말을 일삼았다.

얼마 뒤에는 A씨에게 ▲일일업무 작성 ▲법인카드 반납 ▲외근 통제 ▲모든 업무의 최초 계획과 지연 사유 보고 ▲기존 업무 배제 후 본인의 업무역량 보고 등 각종 지시를 내렸다.

A씨는 이를 두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비정상적이고 부당한 지시였다”며 “사직 요구를 거절한 뒤 이런 지시가 쏟아진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인가”라고 꼬집었다.

A씨에 대한 압박은 계속됐다. 어느 날에는 A씨 자리가 B 본부장 바로 앞으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는 B 본부장이 전 직원을 소집한 자리에서 A씨를 일으켜 세운 뒤 “A씨 입사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과정을 조사하겠다”며 “입사 과정에서의 허위사실·상품 출시 및 인증과 관련된 문제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A씨는 “구체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공식석상에서 사람을 죄인 취급했다. 내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고 털어놨다.

퇴사 요구 거부하자 부당 징계 주장
사측 “사실과 달라…법적 대응 고려”


이윽고 휴대폰 요금, 자동차 보험료 등 영업사원 수당 지급도 끊겼다. 회사는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면서 비급여액을 몰래 삭감하려다 A씨에게 사전 적발되기도 했다.

갖은 괴롭힘이 이어지는 동안, A씨는 큰 정신적 고통으로 병원을 드나들게 됐다. 약을 먹지 않고서는 잠들 수조차 없었다.

이후로도 ‘A씨 죽이기’는 계속 이어졌다. 2020년 6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A씨는 적극적인 진술과 소명서 제출로 대응했지만, 결국 중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B 본부장을 비롯해 그를 괴롭혔던 여러 사람들이 인사위원·참고인 등으로 속속 참여한 가운데, A씨에게는 ‘무급 정직 3개월’이라는 처벌이 내려졌다.

A씨는 재심을 요구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10월경 복직한 A씨는 곧바로 인사발령됐다. 하루 1~2건의 고객 불만 접수를 처리하고, 일이 없을 때는 모니터만 보고 있는 한직에 배치됐다. 정직 전의 업무와 연관성도 없었다. A씨가 항의하자 “업무가 없으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지 않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B 본부장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을뿐더러, 내 성과가 적힌 업무평가 결재를 반려했다”며 “복직 이후로도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의 몸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급기야 호흡곤란 증세와 함께 실신했고,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A씨는 사흘간 입원해 집중 약물치료를 받았다.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든 상황에서 그는 재택근무를 요청했다.

갑자기
정직 처분

A씨의 이 같은 요청이 받아들여질 리 만무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당지시·부당조치·차별대우를 받았는가. 개인적인 스트레스로 재택근무를 요청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피해 사실 중 일부를 열거한 답신을 보냈지만 묵살당했다.

재택근무를 요청한 바로 다음 날 ‘코로나 유행’을 이유로 전 직원의 절반 이상이 재택근무를 지시받았지만, 여기서도 A씨는 재택근무 대상에 들지 못했다.

사내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그는 벡셀을 인수한 SM그룹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지난해 그룹 건의함·이메일 등을 통해 그룹 측에 피해 사실을 꾸준히 알렸다. 한때 조사가 잠시 이뤄지긴 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내사종결됐다.

A씨는 “그룹 감사실 또한 벡셀의 비위행위를 감출 뿐, 도움을 주지 않았다”며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는 생각에 힘들고 허탈했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A씨는 지난해 9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적응장애’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회사는 A씨의 병원 진료·유급휴가·병가 등을 반려했다. 오히려 A씨에게 결근을 지시했고, 그가 병원 진료를 위해 결근하자 주휴수당을 차감했다.

진료를 위한 무급휴가·결근은 계속 이어졌고, 그만큼 급여가 깎였다. 심할 때는 한 달에 70만원씩 공제되기도 했다. 반대로 A씨가 감당해야 할 병원비는 계속 불어났다. 그가 스스로 지불한 병원비는 이미 500만원을 넘어섰다. 지원금이라고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제공한 80만원뿐이었다. 

지노위·복지공단이 피해자 손들자
“당연히 근로자 편들 것” 재심 포기

회사에서 생긴 병을 치료하겠다는데, 회사에서는 돈을 지원해주긴커녕 오히려 줄 돈도 깎은 셈이다.

이 와중에도 B 본부장은 사직을 종용했다. 견디다 못한 A씨는 지난 1월부터 6개월간 무급 병가를 쓰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A씨는 “어떻게 되든지 오는 7월이면 회사에 복귀해야 한다”며 “회사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대충 예상이 되는데, 그걸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좀 힘들 것 같긴 하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A씨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SM그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A씨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수용하려 했지만, 과도한 요구 조건을 내걸어 수용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A씨에게 이를 통보하자 그때부터 산업재해 신청·재택근무 요청·공론화 위협 등을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쪽(SM벡셀) 임원들이 제기한 근무태만·업무 불이행 등 여러 문제점 중 하나만 갖고도 얼마든지 해고 사유가 되는 것 아니냐”며 “따돌림을 당한 것,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것 등은 개인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A씨의 ‘징계결의서’에 따르면 SM벡셀 측이 주장하는 A씨의 잘못은 ▲상사 업무지시 불이행 ▲업무상 과실로 회사 손실 야기 ▲개인사업 영위 ▲허위 보고 ▲동료 간 공포감 조성 등 총 5가지다. 

하지만 회사 측의 이 같은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여럿 존재한다. 일단 대부분의 주장에 ‘증거’가 부족하다. A씨는 피해사실 입증을 위해 각종 녹취와 문건·회사 이메일 등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사측은 A씨의 근무태도를 지적하는 일부 직원들의 진술서 이외에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자료가 마땅치 않다.

직장 내 
괴롭힘?

이와 관련해 SM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증명을 잘 못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직원들을 질책하면서 매번 녹음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사측 주장 중 일부가 명확하게 틀린 점도 확인됐다. 사건의 기본적인 선후 관계를 무시한 결과다. 앞서 사측은 “A씨의 요구를 거절하자 A씨가 산업재해(산재)를 신청하고 재택근무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우선 B 본부장이 A씨를 불러 “6개월치 급여를 줄 테니 사건을 정리하라”고 제안하고, 다시 A씨가 역제안을 하다 협상이 결렬된 날은 2020년12월22일로 확인된다. 당일 관련 내용을 주고받은 메일이 남아있다. 사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산재 신청과 재택근무 요구는 이날 이후에 이뤄졌어야 한다.

하지만 A씨는 이로부터 5개월 전인 2020년 7월 말에 이미 산재 신청을 마쳤다. 재택근무 요청도 이보다 앞선 2020년12월10일에 있었던 일이다.

‘요구’에 대한 이견도 있었다. A씨는 “회사에서 ‘몇 개월치 급여를 줄 테니 나가달라’는 식으로 계속 말하길래 홧김에 조건을 올려쳤다”며 “나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런데 이를 가지고 돈을 이유로 ‘회사를 협박했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다.

결정적으로 지방노동위원회, 근로복지공단 등에서도 A씨의 주장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이들은 사측의 주장도 검토했지만, 대부분 근거가 부족해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0년 10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는 A씨에게 내려진 정직 3개월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지노위는 사측에 “징계처분을 취소하고, A씨에게 3개월 치 임금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적응장애’ 업무상 질병 인정
회사는 진료·휴가·병가 반려

판정서에 따르면, 당시 사측이 제시했던 세부 징계 사유는 8가지였다. 지노위는 이 중 한 가지만을 정당한 징계사유로 보고, 나머지 7가지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일일업무보고·주간업무보고 지시 불이행은 인정되지 않았고, 월간업무보고 지시 불이행만 인정된 것이다.

지난해 9월 근로복지공단 산하 서울업무상질병위원회(이하 ‘위원회’)는 판정서에서 A씨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위원회는 “퇴직 종용 과정에서 각종 부당행위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반박하는)회사 측 주장은 사실로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복직 후 인사발령을 두고는 “사측은 징벌적 배치 전환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신청인 1인이 근무하는 부서로 업무 배제에 가까운 전환으로 생각된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상기된 내용으로 미뤄볼 때 회사와의 갈등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신청인에게 ‘고도’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부연했다.

사측에 이 같은 판정 결과에 대해 문의했다. SM그룹 관계자는 “지노위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업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 편을 들어주는 게 맞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측은 판정에 대한 별도의 재심 요청을 하지 않았다.

각종 판정이 있었던 후로도 회사의 ‘탄압’은 계속돼왔다. A씨는 최후의 수단으로 각종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부당 징계를 넘어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다퉈온 양측의 대립을 결판낼 마지막 ‘한 방’이다.

A씨는 “이미 벌어진 부당노동행위를 부정하며 근로자에게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등 사용자 의도가 아주 불순하다”며 “판정이 아닌 판결이 나와도 이렇게 발뺌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의 다툼
마지막 승부 

한편 SM그룹 관계자는 “회사에 ‘소송하겠다’고 통보했으면 그대로 하면 될 일이다. 계속 언론에 허위사실을 퍼트리는 A씨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며 “아직 ‘팩트’도 없고, 쌍방의 의견이 다른 상황에서 보도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유감이다. 결국 ‘대기업 흠집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날을 세웠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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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