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만 걷자 ②거제 공곶이

수선화 봄물 드는 노부부의 바다 정원

경남 거제에 위치한 공곶이는 바다 쪽으로 뻗은 육지를 뜻하는 곶(串)과 엉덩이 고(尻)가 결합해 ‘엉덩이처럼 튀어나온 지형’을 뜻한다. ‘거룻배가 드나들던 바다 마을’을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봄날에는 이름의 유래가 모두 잊힌다. 바다를 향해 얼굴을 내민 건 지형이 아니라 수선화다. 샛노란 꽃망울이 열리면 공곶이에 봄이 깃든다. 그러니 이맘때는 공곶이 대신 수선화를 딴 이름을 지어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공곶이를 빛나게 만드는 이야기는 또 있다. 강명식·지상악 부부의 사연이다. 노부부는 1969년부터 호미와 곡괭이로 황무지를 개간해 반세기 넘게 농장을 가꿨다. 그리고 이곳에 꽃을 피워 조건 없이 나눈다. 그 따스한 마음 볕을 쬐기 위해서라도 봄날에 꼭 한번 다녀올 만하다.

아름다운 숲길

공곶이는 거제도 동남쪽 끝자락이 말해주듯 구석진 위치다. 출발점은 자가운전자도 예외 없이 예구마을 북쪽 물량장 주차장이다. 초반 15분쯤 꽤 가파르다. 걷다가 뒤돌아보면 활처럼 휜 해안 풍경이 땀을 식힌다. 오르막 끝에 공곶이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였으며, 강명식·지상악 부부가 처음에는 귤나무를 심었고 한파로 동사하자 대신 동백나무와 수선화를 심어 가꾼 이야기는 TV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공곶이에 봄나들이를 가는 건 수선화를 보는 게 목적이지만 그 사이 숲길도 무척 아름답다. 첫 번째 마주하는 숲길은 아왜나무가 늘어선다. 바닷가 산기슭에 잘 자라는 나무가 좁은 길을 따라 호젓한 터널을 이룬다. 아왜나무 숲길 끝은 돌고래전망대 갈림길이다. 수선화 재배지는 오른쪽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폭 1m 남짓한 동백나무 터널이 나타나면 목적지가 가깝다는 의미다. 수선화가 피기 전인 2~3월 공곶이의 얼굴은 붉은 동백꽃이다. 딛고 내려가는 돌계단 하나하나 노부부가 직접 쌓았다. 머리 위로 동백나무 그늘이 드리워 동화 속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동백꽃이 진 뒤에도 길은 아늑하다.

동백나무 터널이 끝날 즈음 후박나무 아래 무인 판매대가 보인다. 공곶이는 입장료와 매표소가 따로 없다. 비공식적인 입구 역할을 하는 무인 판매대를 지나자, 드디어 봄의 전령 수선화가 눈에 가득하다. 수선화는 그리스신화 속 나르키소스 이야기에 나오는 꽃이다. 나르키소스는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과 사랑에 빠져 죽은 뒤 수선화로 환생했다. 수선화가 간직한 신화의 비밀은 공곶이에서 풀린다. 살포시 고개를 숙여 핀 꽃은 제가 예쁜 걸 알고 있다. 더구나 촘촘히 등을 맞대고 무리를 이루니 장관이다.


수선화 꽃밭 사이로 우뚝 선 종려나무도 남쪽 땅 거제를 느끼게 한다. 공곶이는 2005년 개봉한 영화 〈종려나무 숲〉의 촬영지로 먼저 알려졌다. 영화에서 종려나무 숲은 기다림과 그리움을 상징한다. 자신을 사랑해 고개 숙인 나르키소스의 수선화와 기다림으로 높게 자란 종려나무의 사연이 대비된다.

수선화 꽃밭 사이로 난 길은 몽돌해변에서 끝난다. 꽃길이 길지 않아 아쉽지만, 몽돌해변은 그 아쉬움을 달래고 남는다. 이곳에 사람들이 하나둘 쌓아 올린 돌탑이 볼거리다. 바다 건너 지척에 보이는 섬은 내도다. 내도에는 지붕이 노란 집들이 마치 수선화처럼 자리한다.

공곶이 몽돌해변을 따라 동쪽으로 갈 수 있다. 해변 끝에서 덱 계단을 올라 산길을 걷는데, 공곶이와 예구마을을 잇는 남파랑길 거제 21코스다. 덱 계단 입구 가까이 공곶이에 유일한 화장실과 퍼걸러 쉼터가 있다. 내도 너머에 있는 외도와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보이는 자리다. 공곶이는 예구마을 쪽 초입의 카페를 제외하고는 벤치나 화장실이 따로 없다. 앞서 말했듯 애초에 관광지로 조성하지 않은 까닭이다.

강명식·지상악 부부의 사연
황무지를 개간해 가꾼 농장

공곶이는 노부부의 헌신으로 거제9경에 들었지만, 현재도 노부부의 삶터요 일터다. 그러니 수선화 꽃밭에 들어가 사진 찍거나 꽃을 꺾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무인 판매대의 수선화 한 송이 사서 그 마음을 품고 돌아가도 좋겠다. 봄날 공곶이에 가는 건 수선화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수선화를 꽃피운 노부부의 마음을 닮고 싶어서이기도 할 테니까.

옥화마을은 고즈넉한 바닷가에 위치한다. 자그마한 포구를 끼고 있으며, 마을 안쪽으로 벽화가 눈길을 끈다. 미술을 전공한 홍수명 전 이장이 그린 벽화에 문어와 바닷속 풍경을 담아, 바다 이야기가 육지로 연장되는 듯하다.

포구 쪽 무지갯빛 경계석이 포토 존 역할을 한다. 해안거님길(무지개바다윗길)이 벽화와 함께 옥화마을을 찾게 만든다. 마을 북쪽 끝에서 이어져 바다와 경계가 되는 기미산 둘레를 따라 장승포까지 걸을 수 있다. 초입에는 육지 쪽으로 동백나무 숲과 이웃하고, 해안 덱 전망대를 지나면 바다 쪽으로 나아간 곳에 해상 덱을 설치해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봄 바다를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매미성은 거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공곶이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조성했으나 관광을 목적으로 한 곳은 아니며, 입장료도 없다. 2003년에 부산·경남 지역을 강타한 태풍 매미에서 이름을 땄다. 당시 태풍으로 경작지를 잃은 백순삼씨가 다음 태풍을 대비해 쌓기 시작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한 사람의 수고와 정성이 감탄을 자아낸다. 성안 통로에 바다와 어우러진 액자 프레임이 있어 SNS 인증 사진 명소로 소문이 자자하다. 성 앞은 몽돌해변이고, 바다 건너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장대하다.

거제식물원은 2020년 문을 연 거제의 ‘신상 여행지’로, 지난해부터 가족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유리온실 정글돔, 놀이 시설 정글타워, 식물문화센터와 식물원 옆 카페 같은 편의 시설 등으로 나뉜다. 정글돔은 최대 높이 29.7m, 장축 90m, 단축 58m로

국내 최대 유리온실이다. 유리 7500여 장을 이어 붙인 돔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국 장자제를 모티프로 한 석부작계곡, 높이 10m 정글돔폭포 등이 정글을 탐험하듯 이어진다. 새둥지, 빛의 동굴 등 구석구석 포토 존도 많다.

거제식물원

지난해 12월 개장한 정글타워는 대형 슬라이드 3종과 일반 슬라이드 2종 등으로 구성된다. 제일 큰 슬라이드는 높이 13.6m, 길이 50m에 달해 아이들이 신나게 즐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촬영 여행: 공곶이→옥화마을→매미성
자연 여행: 공곶이→옥화마을→거제식물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공곶이→옥화마을→매미성
둘째 날: 외도 보타니아→바람의언덕→거제식물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거제관광문화 https://tour.geoje.go.kr
- 거제식물원 www.geoje.go.kr/gbg   

문의 전화
- 거제시청 관광마케팅팀 055)639-4176
- 거제고현관광안내소 055)639-4180
- 옥화마을 055)681-7640
- 거제식물원 055)639-6997

대중교통
[비행기] 서울-김해, 김포국제공항에서 10~60분 간격(07:00~21:30) 운항, 약 1시간 소요. 김해국제공항 국내선 1층 4번 승차장에서 장승포행 시외버스(09:15, 11:30) 이용,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화상가 정류장까지 도보 약 140m, 60번 일반버스 환승, 예구 종점 하차, 공곶이 입구까지 도보 약 310m.
*문의: 김포국제공항 1661-2626, www.airport.co.kr/gimpo 김해국제공항 1661-2626, www.airport.co.kr/gimhae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 1688-0078 거제시대중교통정보 055)639-4526·4535·  4772, https://bis.geoje.go.kr
[버스] 서울-장승포,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4회(07:20~23:30) 운행, 약 5시간30분 소요.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화상가 정류장까지 도보 약 140m, 60번 일반버스 이용, 예구 종점 하차, 공곶이 입구까지 도보 약 310m.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 1688-0078 거제시대중교통정보 055)639-4526·4535·4772, https://bis.geoje.go.kr

자가운전
통영대전고속도로 통영 IC→국도우회로 장승포 남부 방면 왼쪽, 12.3㎞→거제대로 일운·남부 방면 왼쪽, 5.9㎞→와현로 왼쪽, 770m→와현로 좌회전, 1.7㎞→예구마을 물량장 주차장→공곶이 입구

숙박 정보
- 소낭구펜션: 일운면 마전1길, 055)682-2141, www.sonanggoo.com
- 소노캄 거제: 일운면 거제대로, 1588-4888, www.sonohotelsresorts.com/go
- 호텔리베라 거제: 일운면 거제대로, 055)730-5000, www.hotelriviera.co.kr/geoje


식당 정보
- 예가(성게비빔밥): 일운면 와현해변길, 055)681-1357
- 시청우동(니꾸우동): 거제시 계룡로, 070-8802-7858
- 심해(아이스크림라떼): 장목면 옥포대첩로, 010-4099-2972, www.instagram.com/simhae_cafe

주변 볼거리
해금강, 학동흑진주몽돌해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지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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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