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만 걷자 ②거제 공곶이

수선화 봄물 드는 노부부의 바다 정원

경남 거제에 위치한 공곶이는 바다 쪽으로 뻗은 육지를 뜻하는 곶(串)과 엉덩이 고(尻)가 결합해 ‘엉덩이처럼 튀어나온 지형’을 뜻한다. ‘거룻배가 드나들던 바다 마을’을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봄날에는 이름의 유래가 모두 잊힌다. 바다를 향해 얼굴을 내민 건 지형이 아니라 수선화다. 샛노란 꽃망울이 열리면 공곶이에 봄이 깃든다. 그러니 이맘때는 공곶이 대신 수선화를 딴 이름을 지어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공곶이를 빛나게 만드는 이야기는 또 있다. 강명식·지상악 부부의 사연이다. 노부부는 1969년부터 호미와 곡괭이로 황무지를 개간해 반세기 넘게 농장을 가꿨다. 그리고 이곳에 꽃을 피워 조건 없이 나눈다. 그 따스한 마음 볕을 쬐기 위해서라도 봄날에 꼭 한번 다녀올 만하다.

아름다운 숲길

공곶이는 거제도 동남쪽 끝자락이 말해주듯 구석진 위치다. 출발점은 자가운전자도 예외 없이 예구마을 북쪽 물량장 주차장이다. 초반 15분쯤 꽤 가파르다. 걷다가 뒤돌아보면 활처럼 휜 해안 풍경이 땀을 식힌다. 오르막 끝에 공곶이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였으며, 강명식·지상악 부부가 처음에는 귤나무를 심었고 한파로 동사하자 대신 동백나무와 수선화를 심어 가꾼 이야기는 TV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공곶이에 봄나들이를 가는 건 수선화를 보는 게 목적이지만 그 사이 숲길도 무척 아름답다. 첫 번째 마주하는 숲길은 아왜나무가 늘어선다. 바닷가 산기슭에 잘 자라는 나무가 좁은 길을 따라 호젓한 터널을 이룬다. 아왜나무 숲길 끝은 돌고래전망대 갈림길이다. 수선화 재배지는 오른쪽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폭 1m 남짓한 동백나무 터널이 나타나면 목적지가 가깝다는 의미다. 수선화가 피기 전인 2~3월 공곶이의 얼굴은 붉은 동백꽃이다. 딛고 내려가는 돌계단 하나하나 노부부가 직접 쌓았다. 머리 위로 동백나무 그늘이 드리워 동화 속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동백꽃이 진 뒤에도 길은 아늑하다.

동백나무 터널이 끝날 즈음 후박나무 아래 무인 판매대가 보인다. 공곶이는 입장료와 매표소가 따로 없다. 비공식적인 입구 역할을 하는 무인 판매대를 지나자, 드디어 봄의 전령 수선화가 눈에 가득하다. 수선화는 그리스신화 속 나르키소스 이야기에 나오는 꽃이다. 나르키소스는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과 사랑에 빠져 죽은 뒤 수선화로 환생했다. 수선화가 간직한 신화의 비밀은 공곶이에서 풀린다. 살포시 고개를 숙여 핀 꽃은 제가 예쁜 걸 알고 있다. 더구나 촘촘히 등을 맞대고 무리를 이루니 장관이다.


수선화 꽃밭 사이로 우뚝 선 종려나무도 남쪽 땅 거제를 느끼게 한다. 공곶이는 2005년 개봉한 영화 〈종려나무 숲〉의 촬영지로 먼저 알려졌다. 영화에서 종려나무 숲은 기다림과 그리움을 상징한다. 자신을 사랑해 고개 숙인 나르키소스의 수선화와 기다림으로 높게 자란 종려나무의 사연이 대비된다.

수선화 꽃밭 사이로 난 길은 몽돌해변에서 끝난다. 꽃길이 길지 않아 아쉽지만, 몽돌해변은 그 아쉬움을 달래고 남는다. 이곳에 사람들이 하나둘 쌓아 올린 돌탑이 볼거리다. 바다 건너 지척에 보이는 섬은 내도다. 내도에는 지붕이 노란 집들이 마치 수선화처럼 자리한다.

공곶이 몽돌해변을 따라 동쪽으로 갈 수 있다. 해변 끝에서 덱 계단을 올라 산길을 걷는데, 공곶이와 예구마을을 잇는 남파랑길 거제 21코스다. 덱 계단 입구 가까이 공곶이에 유일한 화장실과 퍼걸러 쉼터가 있다. 내도 너머에 있는 외도와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보이는 자리다. 공곶이는 예구마을 쪽 초입의 카페를 제외하고는 벤치나 화장실이 따로 없다. 앞서 말했듯 애초에 관광지로 조성하지 않은 까닭이다.

강명식·지상악 부부의 사연
황무지를 개간해 가꾼 농장

공곶이는 노부부의 헌신으로 거제9경에 들었지만, 현재도 노부부의 삶터요 일터다. 그러니 수선화 꽃밭에 들어가 사진 찍거나 꽃을 꺾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무인 판매대의 수선화 한 송이 사서 그 마음을 품고 돌아가도 좋겠다. 봄날 공곶이에 가는 건 수선화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수선화를 꽃피운 노부부의 마음을 닮고 싶어서이기도 할 테니까.

옥화마을은 고즈넉한 바닷가에 위치한다. 자그마한 포구를 끼고 있으며, 마을 안쪽으로 벽화가 눈길을 끈다. 미술을 전공한 홍수명 전 이장이 그린 벽화에 문어와 바닷속 풍경을 담아, 바다 이야기가 육지로 연장되는 듯하다.

포구 쪽 무지갯빛 경계석이 포토 존 역할을 한다. 해안거님길(무지개바다윗길)이 벽화와 함께 옥화마을을 찾게 만든다. 마을 북쪽 끝에서 이어져 바다와 경계가 되는 기미산 둘레를 따라 장승포까지 걸을 수 있다. 초입에는 육지 쪽으로 동백나무 숲과 이웃하고, 해안 덱 전망대를 지나면 바다 쪽으로 나아간 곳에 해상 덱을 설치해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봄 바다를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매미성은 거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공곶이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조성했으나 관광을 목적으로 한 곳은 아니며, 입장료도 없다. 2003년에 부산·경남 지역을 강타한 태풍 매미에서 이름을 땄다. 당시 태풍으로 경작지를 잃은 백순삼씨가 다음 태풍을 대비해 쌓기 시작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한 사람의 수고와 정성이 감탄을 자아낸다. 성안 통로에 바다와 어우러진 액자 프레임이 있어 SNS 인증 사진 명소로 소문이 자자하다. 성 앞은 몽돌해변이고, 바다 건너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장대하다.

거제식물원은 2020년 문을 연 거제의 ‘신상 여행지’로, 지난해부터 가족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유리온실 정글돔, 놀이 시설 정글타워, 식물문화센터와 식물원 옆 카페 같은 편의 시설 등으로 나뉜다. 정글돔은 최대 높이 29.7m, 장축 90m, 단축 58m로

국내 최대 유리온실이다. 유리 7500여 장을 이어 붙인 돔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국 장자제를 모티프로 한 석부작계곡, 높이 10m 정글돔폭포 등이 정글을 탐험하듯 이어진다. 새둥지, 빛의 동굴 등 구석구석 포토 존도 많다.

거제식물원

지난해 12월 개장한 정글타워는 대형 슬라이드 3종과 일반 슬라이드 2종 등으로 구성된다. 제일 큰 슬라이드는 높이 13.6m, 길이 50m에 달해 아이들이 신나게 즐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촬영 여행: 공곶이→옥화마을→매미성
자연 여행: 공곶이→옥화마을→거제식물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공곶이→옥화마을→매미성
둘째 날: 외도 보타니아→바람의언덕→거제식물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거제관광문화 https://tour.geoje.go.kr
- 거제식물원 www.geoje.go.kr/gbg   

문의 전화
- 거제시청 관광마케팅팀 055)639-4176
- 거제고현관광안내소 055)639-4180
- 옥화마을 055)681-7640
- 거제식물원 055)639-6997

대중교통
[비행기] 서울-김해, 김포국제공항에서 10~60분 간격(07:00~21:30) 운항, 약 1시간 소요. 김해국제공항 국내선 1층 4번 승차장에서 장승포행 시외버스(09:15, 11:30) 이용,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화상가 정류장까지 도보 약 140m, 60번 일반버스 환승, 예구 종점 하차, 공곶이 입구까지 도보 약 310m.
*문의: 김포국제공항 1661-2626, www.airport.co.kr/gimpo 김해국제공항 1661-2626, www.airport.co.kr/gimhae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 1688-0078 거제시대중교통정보 055)639-4526·4535·  4772, https://bis.geoje.go.kr
[버스] 서울-장승포,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4회(07:20~23:30) 운행, 약 5시간30분 소요.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화상가 정류장까지 도보 약 140m, 60번 일반버스 이용, 예구 종점 하차, 공곶이 입구까지 도보 약 310m.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 1688-0078 거제시대중교통정보 055)639-4526·4535·4772, https://bis.geoje.go.kr

자가운전
통영대전고속도로 통영 IC→국도우회로 장승포 남부 방면 왼쪽, 12.3㎞→거제대로 일운·남부 방면 왼쪽, 5.9㎞→와현로 왼쪽, 770m→와현로 좌회전, 1.7㎞→예구마을 물량장 주차장→공곶이 입구

숙박 정보
- 소낭구펜션: 일운면 마전1길, 055)682-2141, www.sonanggoo.com
- 소노캄 거제: 일운면 거제대로, 1588-4888, www.sonohotelsresorts.com/go
- 호텔리베라 거제: 일운면 거제대로, 055)730-5000, www.hotelriviera.co.kr/geoje


식당 정보
- 예가(성게비빔밥): 일운면 와현해변길, 055)681-1357
- 시청우동(니꾸우동): 거제시 계룡로, 070-8802-7858
- 심해(아이스크림라떼): 장목면 옥포대첩로, 010-4099-2972, www.instagram.com/simhae_cafe

주변 볼거리
해금강, 학동흑진주몽돌해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지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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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