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와 부작용' 공공임대주택 빛과 그림자

주거 복지 사이 허점투성이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공공임대주택. 공공 주택 사업자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아 공급하는 주택을 말한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하거나 임대 후 분양전환하는 일종의 ‘주거복지사업’이다. 집값이 급등한 상황 속에서 그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불법투기·입주민 차별 등 다양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각에서는 “많이 짓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지난 15일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5년 동안 전국 평균 아파트값은 37.59%, 서울은 61.59%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지역 중위 주택 가격은 약 6억600만원에서 10억9000만원으로 4억8000만원 이상 올랐다.

‘영끌’ 매입
젊은층 각광

가능한 사람들은 앞다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 집을 샀다. 결국 무주택자로 남겨진 것은 대부분 사회초년생·신혼부부 등이다. 이들에게는 같은 아픔이 있다. 모아둔 돈은 비교적 적은데 오히려 주거안정은 가장 절실하다는 것이다.

전셋값도 지난 5년간 급등(전국 19%·서울 30%)한 가운데, 대출도 어려워졌다. 이들이 기댈 곳은 사실상 공공임대주택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 정부와 차기 정부 모두 공공임대주택 확충에 적극적이다. 문정부는 임기 중 공공임대주택을 85만호 공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 각각 21만호, 40만호 공급된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


제도 개선도 이어졌다. 우선 문정부는 저소득층·신혼부부·청년 등에게 입주 우선권을 부여했다. 아울러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유형을 ‘통합 공공임대주택’으로 일원화했다.

앞서 공공임대주택은 1989년 도입된 영구임대주택, 1998년 국민임대주택, 2013년 행복주택 등 10가지 유형으로 세분화돼있었다. 각 유형별 소득·자산 기준이 제각각이라 수요자들이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문정부 들어서부터는 ‘중위소득 150% 이하, 자산 2억9200만원 이하인 무주택세대 구성원’ 등으로 신청 기준이 단순해졌다. 

공급 방식도 바뀌었다. 주택 유형별로 고정된 면적을 공급하던 것을 가구원 수에 따라 수요자가 여러 면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60㎡가 넘는 중형 면적도 새로 도입했다.

공공임대주택 보급은 차기 정부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앞서 대선 기간 중 ‘비정상 거처 거주자 완전 해소’를 공약하면서 공공임대주택 추가 보급을 시사했다.

“임대차 시장이 공공임대주택 위주에서 민간임대주택 활성화로 전환돼야 한다”는 지론을 펴면서도, 주거 복지 차원의 공공임대주택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윤 당선인은 공약집 98페이지에 “건설임대 중심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연평균 10만호씩 50만호 공급”이라고 명시했다. 문정부에 비하면 줄어든 수치이지만 과거 보수정권들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한편 일부 공공임대주택 입주민들은 “많이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정부와 관련 기관들을 비판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늘어가면서 여러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는 탓이다. 이른바 ‘사후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공공임대주택과 관련된 논란은 크게 4가지다. 공공임대주택 불법투기 문제·꼼수 입주 문제·분양전환가 폭등 문제·임대 주민 차별 문제 등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는 만큼, 각종 거래·임대가 제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임대주택을 매매·임대하는 사례가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집값 폭등 무주택자 설움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

최근 경기도가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불법투기를 무더기로 적발한 사례가 눈에 띈다.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장은 지난 16일 브리핑을 열고 “지난해 12월부터 도내 공공임대주택을 대상으로 불법 매매·임대, 입주 자격 위반행위 등에 대해 기획수사를 벌여 불법행위자 81명, 불법 중개사 70명 등 총 151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경기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이하 특사경)은 성남 판교·수원 광교·화성 동탄 등 경기도 소재 7개 신도시 공공임대주택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특사경에 따르면 파주 소재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A씨는 공인중개사와 공모해 임대주택을 매매금지 기간에 불법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10년 거주 뒤 분양전환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거주 9년째에 아파트를 4억원에 팔아넘겼다. 1년 뒤 이 아파트의 분양전환가는 2억3000만원으로 확정됐다. 불법 매매를 통해 1억7000만원의 시세차익을 추가로 챙긴 셈이다.

심지어 이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A씨를 포함해 총 7건의 공공임대주택 판매·임대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3달 만에 고객들에게 총 13억6000만원의 불법 이익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83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세입자가 다시 세를 놓은 사례도 적발됐다. 성남 판교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B씨는 공인중개사와 공모해 자신이 들어간 집을 타인에게 임대했다. 보증금 2억8000만원 전세 임대계약 위에 보증금 2억5000만원·월세 265만원 월세 임대계약을 덮어썼다.

이번에 이 같은 수법으로 적발된 불법투기 규모는 484억원에 달한다. 경기도 밖의 다른 지역 사례까지 포함하면 불법투기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하다.

불법투기로 취하는 이득에 비해 처벌이 약한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공공임대주택을 불법으로 매매·임대하거나 이를 중개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불법투기를 통해 최대 수억원을 벌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꼼수 입주’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꼼수 입주는 애초에 입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제치고 입주한다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온다. 입주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두 배로 억울한 상황을 맞게 되는 셈이다.


“많이 짓는 게 
능사가 아니다”

꼼수 입주는 대개 관련 서류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이루어진다. 입주 조건을 벗어나는 재산의 일부·전부를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고, 입주 조건을 충족하는 것처럼 눈속임하는 방식이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이전 5년간 서울시 공공임대주택에서 소득 초과‧불법 전대 등으로 적발된 부적격 입주가 1900여건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당시 제출된 자료를 보면, 부적격 사유로는 주택 소유가 1108건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소득 초과 551건, 부동산 초과 118건, 차량 가액 초과 68건 순이었다.

차량 가액 초과는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았다. 최근 성남·화성 등 여러 행복주택 주차장에서 고가의 외제차가 다수 발견돼 논란이 일었다.

행복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의 일종으로, 시세의 60~80% 수준으로 공급된다. 3496만원 보다 비싼 차를 소유했다면 이곳에 입주할 수 없는데도, 이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대의 외제차가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특사경에 따르면 화성에 위치한 한 행복주택에는 외제차가 47대나 등록돼있었다. 입주 조건을 위반한 것이 확실한 차량도 12대에 달했다. 실제로 해당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는 BMW7 시리즈, 아우디, 머스탱 등의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차량 지분 쪼개기’ 수법으로 차량가액 초과를 피했다. 억대를 호가하는 차량의 지분을 1~2% 정도만 입주자 이름으로 등록하고, 나머지는 부모‧지인 등의 명의로 돌려놨다.

차량 명의를 완전히 돌려놓고, ‘방문 차량’으로 속여 계속 드나든 사례도 덜미를 잡혔다. 무자격 동거인을 활용한 수법도 발각됐다. 한 입주자는 1인 세대 조건 청년 자격으로 당첨됐지만, 무자격 동거인과 함께 거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동거인 명의로 고가 외제차를 소유했다는 혐의도 더해졌다.

당국의 감시가 허술했다는 지적에 이어 ‘공공임대 분양전환 제도의 허점이 입주민을 난처한 상황에 몰아넣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공임대 분양전환은 일정 임대기간을 마치면 분양권을 주는 주거 안정 정책이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분양전환 가격 부담도 덩달아 커졌는데, 현행법에 따르면 커진 부담이 온전히 입주민들에게 향한다는 주장이다.

LH가 “현행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수수방관하는 가운데,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부천의 한 공공임대주택은 오는 10월 조기 분양전환을 앞두고 있다. 2017년 입주 당시에는 2억원 초반이었던 주변 집값이 지금은 8억원대로 폭등했다. 이대로 분양전환이 진행되면 분양전환가는 7억원을 넘어선다. 5년 공공임대주택에서 10년 공공임대주택으로 넘어오면서 분양전환가 산정 방식이 바뀐 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LH는 5년 공공임대주택 분양전환가를 주택 감정평가액와 건설원가 평균금액으로 산정한다. 반면 10년 공공임대주택은 감정평가액을 넘지 않게 한다는 상한선만 뒀다. 상대적으로 10년 공공임대 아파트의 감정평가액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탈감
허탈감

이에 주민들은 “10년 공공임대주택도 5년 공공임대주택처럼 분양전환가를 산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분양전환을 기다리고 있는 10년 공공임대주택은 전국에 26만호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LH 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가격 책정은 분양시점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법규”라며 “임의로 가격을 다시 책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대 기간 동안 집값이 이렇게 폭등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만약 집값이 떨어졌다면 그걸 반영해 분양가가 낮아졌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입법 과정에서 집값 폭등 가능성을 상정하지 못했고, 분양전환가 산정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관련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 등 10명이 관련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10년 공공임대주택 분양전환가 산정에도 건설원가 평균금액 등을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 의원은 “아직 분양전환되지 않은 10년 공공임대주택 26만8000여호에도 개정 규정이 적용될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며 “국가를 믿고 공공임대에 입주한 국민들의 고통을 방임해서는 안 된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다만 아직 별다른 진전은 없다. 해당 개정안은 국회 소관위원회에 회부된 이후 추가 절차에 들어가지는 못한 상태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도 입주민들의 고충이다. 공공임대주택 님비현상부터 각종 별칭까지 생기면서, 일각에서는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꺼리는 움직임까지 포착됐다.

문정부는 2020년 ‘8·4부동산대책’에서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으로 마포구 상암 DMC 부지,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부지 등에 공공임대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지역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심지어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지역구 의원들과 지자체장이 이례적으로 공개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들만의 돌출행동은 아니다. 국민 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접수된 전체 공공임대주택 관련 가운데 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내용이 29.8%(1068건)로 가장 많았다.

투기, 꼼수 입주, 차별 등 부상
사후관리 체계 마련 필요성 대두

2020년 LH가 실시한 심층 면접 결과를 살펴보면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동네에 많아져서 마트나 은행에 갔을 때 대기시간이 길어진다” “부모님 보살핌을 못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끼리 어울려 집단을 형성하는데, 불량학생이 많다” 등 실제로도 부정적인 인식이 주를 이뤘다.

이 같은 인식은 임대 주민들의 소외로 이어졌다. 설계구조상 임대 주민과 분양 주민의 동선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아파트가 등장하는가 하면, 입주자 대표회의를 따로 구성하는 곳도 생겨났다. 하다 못해 임대주택과 분양주택 거주 학생들의 학군을 분리하라는 학부모 요구도 이어졌다.

아울러 임대 주민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혐오 표현도 세간에 알려져 논란이 됐다. 몇 년 전부터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휴거지(휴먼시아+거지)’, ‘엘사(LH 아파트 사는 거지)’ 등의 멸칭이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것이 드러나면서 온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던 바 있다.

결국 차별적 시선을 견디다 못해 휴먼시아·LH 등이 들어간 아파트 이름을 바꾸는 곳까지 생겨났다.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LH휴먼시아’ 아파트는 ‘광교해모로’ 아파트로, 권선구의 능실마을LH 19단지는 ‘호매실 스위첸 능실마을 19단지’로 개명했다.

이 가운데 정부의 정책이 공공임대주택 차별이 만연해지는 것에 일부 기여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기존에는 아파트가 들어서면 임대동과 분양동을 나눴다. 단지 내에서도 공간을 명확하게 분리한 게 차별과 편견의 씨앗이 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최근 정부에서는 ‘소셜믹스’ 방식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소셜믹스는 분양 가구와 임대 가구 동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한 동에 무작위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어떤 동에 산다는 정보만으로 임대‧분양 주민을 구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더 많이 접촉하면서 각종 편견들을 없앨 수 있다는 점도 기대할 수 있다.

부동산 정책 전문가들은 “임대주택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오랜 편견을 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길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럭셔리한 공공임대주택에 다양한 계층·연령의 입주자가 들어가고 주변시설이 개선돼 혜택이 제공되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X거지’ 
주홍글씨

산적한 문제에도 존재 필요성은 명확하다. 공공임대주택은 당분간은 무주택자들에게 최적의 대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많이 짓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는 지적이 “많이 짓지 말라”는 왜곡된 결론으로 귀결돼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어렵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많이 지으면서도 잘 짓고 잘 나누는’ 방법을 찾아 나서라”는 의미로 읽힌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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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