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쉬운 위장전입의 세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2.08 09:43:04
  • 호수 13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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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만원이면 주소 바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이사를 위해 과거에는 직접 발품을 팔아 집을 알아봤지만, 최근에는 먼저 희망 지역을 인터넷에 검색한다. 회원 수가 제일 많은 한 부동산 전문 네이버 카페에는 집주인과 직접 거래하기 위해 올린 사람들의 글이 넘쳐난다. 이 중에는 하루에 꼭 2~3개 이상 올라오는 글이 있다. 바로 ‘비거주 전입신고 가능한 집 구합니다’다.  

비거주 전입신고는 말 그대로 실제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법상 주소만 바꾸는 것이다. 비거주 전입신고가 가능한 집을 구한다는 글은 카페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온다. 몇몇 게시글은 왜 이런 방을 구하는지도 자세히 기재해놨다. 

대놓고 거래
흔한 게시글

보통 이런 글에는 ‘청약 목적 혹은 청약 목적 아님’ ‘신용불량으로 추심 방문 또는 실거주하고 있는지 확인 올 수 있다. 찾아오면 살고 있는데 자주 안 온다고 말소 막아줄 곳을 찾는다’ ‘우편물을 모아 달라’ ‘공기업, 공무원 준비 때문에 필요하다’ ‘해외 체류 중’ 등의 자세한 설명이 적혀있다.

A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11시30분쯤 부동산 카페에 ‘비거주 전입신고 가능한 집 구합니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리고 1시간 안에 ‘비거주 전입신고 가능한 집이 있다’는 쪽지를 받고 채팅을 하게 됐다.

이들은 간단하게 거주 기간을 물어보면서 “을지로 월 5만원” “기간에 따라 다르다” “동대문 원룸텔이다. 비거주 기준 월 4만원” “서울 중랑구 보증금 150만원에 월세 25만원이다. 보증금 및 월세 조정할 수 있다” “동작구에 비거주 전입신고 가능한 집이 있다. 6개월에 30만원이고 1년에 50만원” 등의 비거주 전입신고 조건을 제시했다.


쪽지와 채팅으로 연락온 사람들에게 A씨는 “부동산이냐”고 물었고, 이들은 대부분 고시원이나 원룸텔 주인이라고 답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이처럼 인터넷에서 쉽게 비거주 전입신고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위장전입에 해당한다. 위장전입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있다. 주택청약을 목적으로 위장전입했을 경우는 주택법 위반까지 해당한다.

위장전입 등 부정 청약이 적발되면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위를 무효로 하거나 이미 체결된 공급계약을 취소한다.

위장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안전부는 2020년 3월10일 신규 전입신고 발생 시 주소지의 세대주와 주택 소유자‧임대인에게 전입 사실과 세대주 변경 사실을 휴대전화 문자로 알려주는 전입 사실 통보제도를 도입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24일 해당 지역 거주자의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실제 거주하지 않고 주소지만 옮겨 청약하는 방식의 부정 청약 57건에 대해 경찰청에 수사 의뢰, 주택법 위반 때 형사 처벌과 함께 계약 취소 및 향후 10년간 주택청약 자격 제한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부동산 카페에 ‘비거주 집 구합니다’
공무원 시험부터 추심명령 회피용까지

이런 법적인 규제로 인해 주택청약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은 지난해 8~10월 3개월 동안 부동산 투기 행위에 대한 수사를 통해 위장전입 등의 주택법 또는 부동산중개업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 60명을 적발했다.


B씨는 당시 성남 위례자이 더 시티 청약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 일반공급(618대1)보다 경쟁률이 낮은 신혼부부 특별공급분(105대1)에 청약했고, 실거주지를 속인 허위 서류를 제출했다. B씨는 배우자·자녀와 같이 충남 당진시에 살고 있었으나, 성남시에 있는 모친 주택에 위장 전입해 신혼부부 특별 우선 공급분(30%)을 분양받았다.

경기도는 B씨가 당첨 확률을 높이려고 위장전입을 했으며 당첨 뒤 약 7억원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봤다.

지난해 11월 울산에서도 주택청약을 위한 위장전입 사건이 있었다. 울산시에 따르면 시 특별사법경찰은 울산시 남구와 동구지역 아파트에 대한 불법 청약 의심 사례를 적발해 수사에 착수했다. 사업 시행사는 수사에 착수한 28건 중 3건에 해당하는 청약당첨자에게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주택청약을 위한 위장전입은 휴대전화 위치 정보 추적이나 신용카드 사용 기록 등 다양한 기법으로 범죄 사실을 밝힌다. 위장전입 사실을 속이기 위해 일주일에 며칠씩 위장전입한 집에 머물거나 카드를 사용해도 법원이 사실을 인정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청약 당첨 후 위장전입으로 취소됐다는 사례가 많다.

위장전입에 관해 부동산 관계자는 “3기 신도시와 하남 교산 신도시 때문에 하남에 미리 거주하려는 분위기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위장전입 검사가 까다로워서 쉽지 않다”며 “그래도 아파트로 워낙 큰돈을 벌 수 있어서 아직도 위장전입을 시도하는 분위기는 있다. 돈을 주면 전입신고할 수 있게 받아주는 부동산도 있다고 들었다”고설명했다.

청약하려고…
신도시 집중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수험생들이 응시 기회를 늘리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방직 공무원은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 정확하게 공무원 수험생은 시험 당해년도 1월1일 이전부터 최종 시험일(면접시험일)까지는 해당 시·도에 주소지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시험 당해년도 1월1일 전까지 해당 시도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던 기간을 합산해 총 3년 이상이 돼야 한다. 지방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가직 9급 공채시험 경쟁률은 35대1이었으나, 지방직 공무원은 광주시 14대1, 울산시 15대1, 전라남도 11대1로 확연히 낮은 경쟁률을 보이기 때문에, 공무원·공기업 수험생들은 합격률이 높은 지역으로 위장전입을 하는 것이다.

특히 지방 출신들은 서울에 응시할 수 있지만, 서울 출신들은 지방에 응시할 수 없어서 기회를 넓히는 차원에 주소를 미리 옮겨놔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무원 시험 강사도 있었다.

공무원 수험생들에게 희망처럼 여겨졌던 위장전입의 끝은 결국 임용 취소다. 서울시 도봉구의 기능직 공무원 임용시험에 응시했던 C씨는 15점의 가산점을 받기 위해 주민등록지를 도봉구로 옮겼다.


그가 공무원 기능직 시험에 임했던 해의 경쟁률은 40대1로, 가산점으로 받은 15점이 합격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됐다. C씨의 기쁨은 잠시였다. 도봉구청은 C씨가 위장전입했다가 합격 뒤 주민등록을 다시 전 주소지로 옮긴 사실을 알고 임용을 취소했다. 

계약 취소
임용 취소

C씨는 임용 취소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고, 서울행정법원은 “구청이 처분 전 사전통지 등을 거치지 않았다”며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구청이 항소하면서 대법원까지 간 끝에 판결이 확정됐다. 구청은 이후 사전통지 등의 절차를 거쳐 같은 사유로 정씨의 임용을 취소했다.

대법원은 정씨가 가산점 제도에 편승해 위장전입을 했고 다른 응시자들은 불합격했기 때문에 임용 취소 자체가 위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공무원 시험 위장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와 다른 시·도의 공무원 시험을 같은 날 치르게 했다. 

위장전입의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는 것 같지만, 신용불량자와 양육비 채무자 등 범죄자들의 위장전입 문제는 해결이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비거주 셰어하우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셰어하우스는 대부분 ‘계약 기간에는 비상주로 이용 가능’ ‘우편물이 오면 수거·보관’ ‘실사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국 13개 시·도에 지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현재 사이트에는 전 지점이 마감됐다고 나온다. 이처럼 신용불량자들은 재산 압류를 회피하고, 채권 추심원, 사채업자 등을 상대할 방패로 위장전입을 시도한다.


한 비거주 셰어하우스 관계자는 “신용불량자가 되면 최고장과 독촉장, 압류 등 각종 우편물이 끊임없이 집으로 날아들고, 채권자들이 매일 집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가족의 삶이 피폐해진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소지를 친구 집이나 친척 집으로 옮기는데 이것도 민폐가 되기 때문에 결국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고시원·원룸텔 돈 받고 명의 장사
신용불량자 대상으로 셰어하우스도

양육비 채무자의 위장전입은 심각한 상황이다. 2014년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모두 1만9213건의 양육비 채권이 확정됐고 이 가운데 6997건인 907억원가량이 이행됐다. 그런데도 양육비 이행률은 36.4%에 머물고 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가 양육자 4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양육비 미지급자의 실거주지와 관련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2.5%인 305명이 ‘실거주지 불분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지 불분명 유형으로는 위장전입이 37.3%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는 거주지 모름이거나 해외 도피 등이었다.

실거주지가 분명한 양육비 미지급자는 27.6%에 불과했다. 

현재 양육비법은 1년 이내에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출국 금지‧명단 공개‧형사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처벌은 채무자가 감치 처벌을 받은 이후에 시행된다. 감치란 고의로 양육비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가하는 제재로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나 구치소에 머물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양육비 채무자가 주소지를 허위로 신고하거나 주소에 없는 경우, 감치를 집행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결국, 양육비 이행률이 낮은 이유는 양육비 채무자들이 쉽게 위장전입을 해 양육비 지급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육비 채무자의 위장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아는가 몰라
엄연히 불법

이 대표는 “감치명령을 현재 방식인 서면 고지가 아니라 공시 송달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공시 송달이란 위장전입 등의 문제로 상대방의 거주지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 일부러 받지 않는 경우 등 송달이 불가능할 때 소송 관계 서류를 법원 게시판에 일정 기간 공고해서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감치명령이 공시 송달로 바뀐다면 범죄자들의 위장전입도 소용없게 된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구룡마을 가면 위장전입?

위장전입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구룡마을 전입신고를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는 A씨가 강남구 개포1동장을 상대로 낸 주민등록 전입신고 수리거부 처분취소 청구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앞서 A씨는 2019년 8월 서울 강남국 구룡마을에 전입신고를 했다.

하지만 개포1동장은 “구룡마을은 도시개발 구역지정 및 개발계획 수립, 지형도면 고시 지역으로 전입신고 수리가 제한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A씨 측은 “1994년부터 구룡마을에 거주했다.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전입신고를 했는데, 그 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실관계 및 증거 등에 비춰보면 원고는 전입신고지에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전입신고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원고가 다른 장소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A씨가 전입 신고한 집엔 가스레인지와 냉장고, 세탁기 등 그의 옷과 이불 여러 가재도구가 있었다. 동장이 평일 밤낮으로 여러 차례 방문했을 때도 A씨는 그 집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에 따르면 A씨는 전입신고 전후 수개월에 걸쳐 구룡마을 근처에서 주로 장을 봤다. 휴대전화 통화 발신 지역도 대부분 개포동이거나 가까운 서초구 양재동이었다.

재판부는 “원고는 이 사건 전입 신고지를 생활근거지로 상당한 기간 거주해온 것으로 보인다. 피고는 원고가 보상 등을 목적으로 위장 전입하려 했다고 단정해 전입신고 수리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가 실제로 거주하지도 않고 위장전입만 하려는 것임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구룡마을은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빈민 지역이다.

주위에는 호화로운 고급 아파트나 빌라가 있다. 하지만 구룡마을은 서울에서도 가장 부촌인 강남구에서 유일하게 개발 대상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구룡마을은 2014년 12월 서울시와 강남구의 합의로 개발사업을 재개하기로 결정됐다.

기존에 서울시에서는 비용을 절감하자는 태도를 보였고, 강남구에서는 전면 수용을 해 현금 보상 후 진행하자는 뜻을 내비췄다.

이후 강남구의 의견대로 전면 수용으로 재개발을 결정했다. 구룡마을은 2020년 2600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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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