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사라진 한반도 '범' 이야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24 15:49:41
  • 호수 13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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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호랑이, 무섭지만 복도 준다

[일요시사 취재 1팀] 김민주 기자 = 2022년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다. 임인년의 임은 검은색, 인은 호랑이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호랑이는 용맹하고 강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2017년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1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야생 호랑이는 멸종됐다. 

한국 호랑이 기록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한반도는 산악지대가 대부분이라 호랑이가 살기에 좋은 지형으로, 예부터 한반도에 살아온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무서워하면서도 숭배했다. 호랑이에 관한 기록도 꽤 많은데 <조선왕조실록>에는 876회 호랑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472년의 조선왕조 역사를 담은 사서기 때문에, 호랑이에게 피해를 본 기록이 많다.

멀고도 친숙
친근한 얼굴

실록에 따르면, 영조 때는 호랑이가 궁궐에 3번이나 들어왔다. 세조 때는 말을 타고 호랑이 사냥을 즐겼고, 연산군은 간언한 환관을 호랑이 굴에 던졌다는 기록 등이 남아있다. 실록의 대부분은 호랑이를 잡아야 한다는 것과 잡아서 얼마나 포상을 했는지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부조리하거나 난폭한 관원은 호랑이에 비유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는 ‘조선은 1년의 절반이 호랑이 때문에 죽은 사람들 문상을 다녀야 하고, 1년의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에는 호랑이가 많았고 호랑이가 끼친 피해도 막심했다. 

그렇다고 조선이 호랑이를 경멸의 대상으로 본 것은 아니다. 조선의 유명한 호랑이 그림은 김홍도와 그의 스승인 강세황의 합작해 그린 <송하맹호도>다.


이 그림에서 호랑이는 김홍도, 소나무는 강세황이 그렸다. 이 그림은 거친 나무껍질을 가진 노송 아래 긴장한 채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호랑이를 표현했다. 

<송하맹호도>에서 호랑이는 자신감과 위엄이 넘치는 눈과 당장이라도 뛰어오를 것 같은 몸짓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호랑이를 용맹함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민가에서도 호랑이 그림은 인기를 얻었다. 조선 후기에는 <까치 호랑이> 민화가 유행이었다. <까치 호랑이>는 익살스러운 얼굴을 한 호랑이와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작은 까치가 그려져 있다. 

까치는 소나무 가지 위에 비스듬하게 앉아서 호랑이를 향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호랑이는 입을 벌리고 까치를 위협하고 있지만 무섭고 강인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아이들도 가까이 할 수 있는 친근한 얼굴을 가졌다. 이 그림은 후에 ‘바보 호랑이’라고도 불렸다.

<까치 호랑이>에서 호랑이는 양반이나 권력을 가진 관리를, 까치는 서민을 상징한다. 지혜로운 까치가 힘이 쎈 호랑이를 이기는 장면이 표현된 이 그림은 당시 권력가들에게 겪는 부조리함을 해학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전혀 다른 해석도 있다. <까치 호랑이>는 액막이와 경사를 의미하는 새해맞이 그림으로,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두려움, 부정부패한 관리, 새해의 복 등을 상징했다. 육식동물인 호랑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지만, 동시에 강하면서 멍청하고 복을 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렇게 호랑이는 한반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계속된 수난으로 ‘멸종’

한국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조선 전기 200년은 호랑이의 세상이었다. 조선 정부는 매년 각 군현에 호피 3장을 진상하도록 했다. 그 당시 군현은 대략 330여개, 매년 1000마리의 호랑이가 죽은 것이다.

조선에는 호랑이를 포획하는 착호갑사가 성종 때는 400여명에서, 숙종 때는 1만1000명으로 늘어났다. 호랑이는 모피, 고기, 약재 등으로 비싸게 팔렸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득도 있었다. 영종 때는 호랑이 개체 수의 감소로 호피 진상 제도가 중단됐다.

호랑이 수난시대는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주는 해수(해로운 동물)를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야생동물의 퇴치와 포획을 장려했지만, 야생동물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 정책은 없었다.

해수구제사업에서 가장 피해를 본 동물은 호랑이와 표범이었는데 모두 멸종됐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야생동물은 누구라도 포획할 수 있다’는 것을 원칙으로 수렵 규칙을 공포했다. 이후 사냥도구 사용은 수렵 기간에 수렵 면허를 받은 사람에게 한정했다. 수렵 금지구역 지정, 일출 전, 일몰 후의 총기 사용금지, 폭발물‧독극물‧총‧함정의 금지 등 수렵 규칙을 정했다. 

그러나 일본인과 조선인의 총기 소유는 큰 차이를 보였다. 1920년 일본인 총기 소유가 2만25개, 조선인 총기 소유는 1627개였다. 수렵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일본인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의 저자인 엔도 키미오는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조선인보다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야생동물 개체 수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921년 마지막
일본인이 사살

실제로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조선으로 호랑이 사냥을 떠나오기도 했다. 사업가 야마모토 타다사부로는 큰돈을 내서 호랑이 몰이꾼과 사냥꾼을 고용했다. ‘정호군’이라고 이름 붙인 사냥팀은 함경남북도, 금강산, 전라남도로 보내 사냥을 지휘했다.

이 내용으로 <정호기>라는 서적을 출간했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정책을 내세우면서 부의 과시, 일본군 사기 진작,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확산 등 복합적으로 뒤엉켜 기술돼있다.

이렇게 호랑이들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말살당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호랑이는 언제 마지막으로 발견됐을까?


1921년 10월2일 오전 9시에서 10시쯤,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가 사살됐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25세 마을 주민 김유근씨는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다가 호랑이를 발견했다. 김씨는 호랑이의 공격으로 왼팔에 상처를 입었다. 

호랑이로부터 도망친 김씨는 경찰서에 보고해 일본인 순사인 미야케 요조우와 인근 도로 공사 현장의 인부들을 몰이꾼으로 동원해 호랑이를 사냥했다.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는 몸길이 173cm, 꼬리길이 56cm, 몸둘레 84cm이었다.

대책 없는 해수구제정책에 대해 일본인 역시 우려를 표했다. 조선 경성사범학교의 생물학 교사였던 우에다는 ‘사라져가는 조선의 호랑이’라는 글을 잡지에 실었다.

이 글에는 “조선에는 옛날부터 호랑이가 많아 사람과 가축에게 참혹한 해를 끼쳤다. 호랑이를 잡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지방관리의 중요한 행정과제였다”며 “지금은 호랑이가 너무 줄어서 북조선의 오지가 아니면 호랑이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사람에게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 외에도 모피와 뼈로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조선의 호랑이는 전멸할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호랑이는 1943년 이후 전혀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1996년 국제사회에 “남한에서 호랑이가 멸종됐다”고 공식 보고했다.

동물의 왕 
구경거리로


사라진 호랑이가 다시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 때문이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는 농악대의 상모를 쓰고 돌리고 있는 호랑이 캐릭터 ‘호돌이’다. 올림픽 마스코트가 결정된 것은 1986년으로, 호돌이는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서울을 뜻하는 ‘S’와 상모 돌리는 모습은 한국의 미를 제대로 알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각종 문구류‧과자‧음료‧생필품‧은행 통장에까지 등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호돌이 마스코트와 휘장 사업으로 712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호돌이의 뒤를 이어 2018년 동계올림픽에서는 백호 ‘수호랑’과 반달가슴곰인 ‘반다비’가 마스코트로 선정됐다. 조직위는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의 연속성을 지키고, 백호가 한국 민속신앙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신으로 등장하는 점에 착안해 올림픽의 신성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백호 수호랑은 흰색을 좋아하는 한국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동계올림픽과 조화를 이룬다는 평도 있었다.

한국 국제대회에서 호랑이의 데뷔는 전 세계로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을 알렸다. 이로써 호랑이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동물이 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은 대중문화로도 이어졌다.

전통적인 판소리에 현대적인 팝 스타일을 조화시킨 음악으로 인기를 끈 밴드 그룹 이날치는 지난해 5월 앨범 수궁가를 발표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은 ‘범 내려온다’로 가사는 호랑이가 숲속에서 나오는 묘사를 주로 이룬다.

이 곡은 발매 후 한국관광공사 유튜브에 ‘Feel the Rhythm of Korea: SEOUL(한국의 흥을 느껴라: 서울)’이라는 제목의 뮤직비디오로 게재됐으며, 총 4823만7529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해당 조회 수는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다. 이 곡을 들은 누리꾼들은 “수궁전의 호랑이 이야기가 이렇게 멋있을 수 있다니 놀랍다” “한국의 정서와 현대의 느낌이 잘 묻어난다” 등 긍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에도 불구하고, 호돌이가 마스코트로 채택되는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바로 우리 땅에 고유종인 한국 호랑이가 멸종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다.

두려워하면서 숭배
강한 생명력의 상징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미국 미네소타 주 정부 교정국 수석행정관이었던 이희관 박사와 미네소타 한인회다. 이들은 1986년 6월 미네소타 세인트폴 동물원과 미네소타 동물원으로부터 백두산 호랑이 암수 한 쌍을 들여와 서울대공원에 안착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대공원 호랑이는 올해까지 총 54마리로 늘었고, 2007년에는 백두산 호랑이 암컷 4마리가 일본 후지 사파리 동물원에 수출된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호랑이의 번식을 성공적으로 이룬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호랑이 보전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맹수인 호랑이는 인간과 공존하기 어렵고, 행동반경이 400~1000km인데 비해 국내 사육시설은 너무 열악해서 호랑이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타 동물원과 교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근친 교배를 하는 문제도 있다.

2001년 서울대공원에 태어난 한국 호랑이 ‘크레인’은 남매였던 아빠 ‘태백’과 엄마 ‘선아’ 사이에서 근친 교배로 태어났다. 크레인은 선천적 백내장과 송곳니 부정교합 등 안면기형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육사들의 손에 길러졌고,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어린 시절이 지나자 원주 드림랜드로 옮겨졌다.

그러나 2007년 경영난을 맞은 원주 드림랜드가 동물들을 방치하면서 동물단체 구조 후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언론에서는 17년을 살고 사망한 크레인을 두고 천수를 누렸다고 표현했지만, 동물 삶의 질 측면으로 바라봤을 때 부족한 부분이 많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서울시에 선물한 호랑이 ‘로스토프’ 역시 마찬가지다. 로스토프는 2013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사육사를 물어 죽였다. 당시 서울대공원은 공사 중이어서 로스토프는 호랑이사보다 절반 정도 좁은 여우사에서 생활했는데 이때 받은 스트레스로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문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에 비하면, 호랑이 보존 정책은 턱없이 부실한 실정이다. 이 문제에 관해 시민단체와 동물 관련 전문가들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세계 곳곳에서 서식지 파괴와 더불어 밀렵까지 성행해 호랑이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부속서 1’에 속하는 멸종위기종이 됐다”며 “국내에서 호랑이가 멸종됐지만 우리는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심지어 실내 동물원에서도 호랑이와 같은 대형 포유류를 조형물처럼 전시한다”고 지적했다.

사육 시설
너무 열악

이어 “누군가는 동물원을 두고 야생에서 살기 어려워진 동물의 종 보전을 위해 필요한 방책이라고 주장하지만, 각자의 생태나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서식지 보존운동이나 전시 동물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백두산 호랑이 이동 거리는?

중국에 서식 중인 야생 백두산 호랑이는 하루 8.9km 이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8일 <길림신문>에 따르면 중국 국가임업초국 고양이과동물연구센터가 야생에서 구조해 방목한 백두산 호랑이 ‘완다산 1호’를 8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 총 2063km를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 평균 8.9km를 이동한 것으로 이 호랑이의 활동 범위는 동서로 180km, 남북으로는 100km에 달했다.

연구센터는 작년 4월 헤이룽장성 밀산의 야산에서 이 호랑이를 구조했고, 한 달 뒤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백두산에 방목해 이동 경로를 관찰했다.

생후 7개월 된 이 호랑이는 정상적인 먹이 활동으로 건강상태가 양호했고, 민가에 접근하지 않고 야생생활에 잘 적응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 접경 지역은 야생 백두산 호랑이 집단 서식지로 야생 호랑이 개체 수는 50여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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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