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사라진 한반도 '범' 이야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24 15:49:41
  • 호수 13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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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호랑이, 무섭지만 복도 준다

[일요시사 취재 1팀] 김민주 기자 = 2022년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다. 임인년의 임은 검은색, 인은 호랑이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호랑이는 용맹하고 강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2017년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1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야생 호랑이는 멸종됐다. 

한국 호랑이 기록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한반도는 산악지대가 대부분이라 호랑이가 살기에 좋은 지형으로, 예부터 한반도에 살아온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무서워하면서도 숭배했다. 호랑이에 관한 기록도 꽤 많은데 <조선왕조실록>에는 876회 호랑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472년의 조선왕조 역사를 담은 사서기 때문에, 호랑이에게 피해를 본 기록이 많다.

멀고도 친숙
친근한 얼굴

실록에 따르면, 영조 때는 호랑이가 궁궐에 3번이나 들어왔다. 세조 때는 말을 타고 호랑이 사냥을 즐겼고, 연산군은 간언한 환관을 호랑이 굴에 던졌다는 기록 등이 남아있다. 실록의 대부분은 호랑이를 잡아야 한다는 것과 잡아서 얼마나 포상을 했는지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부조리하거나 난폭한 관원은 호랑이에 비유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는 ‘조선은 1년의 절반이 호랑이 때문에 죽은 사람들 문상을 다녀야 하고, 1년의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에는 호랑이가 많았고 호랑이가 끼친 피해도 막심했다. 

그렇다고 조선이 호랑이를 경멸의 대상으로 본 것은 아니다. 조선의 유명한 호랑이 그림은 김홍도와 그의 스승인 강세황의 합작해 그린 <송하맹호도>다.


이 그림에서 호랑이는 김홍도, 소나무는 강세황이 그렸다. 이 그림은 거친 나무껍질을 가진 노송 아래 긴장한 채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호랑이를 표현했다. 

<송하맹호도>에서 호랑이는 자신감과 위엄이 넘치는 눈과 당장이라도 뛰어오를 것 같은 몸짓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호랑이를 용맹함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민가에서도 호랑이 그림은 인기를 얻었다. 조선 후기에는 <까치 호랑이> 민화가 유행이었다. <까치 호랑이>는 익살스러운 얼굴을 한 호랑이와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작은 까치가 그려져 있다. 

까치는 소나무 가지 위에 비스듬하게 앉아서 호랑이를 향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호랑이는 입을 벌리고 까치를 위협하고 있지만 무섭고 강인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아이들도 가까이 할 수 있는 친근한 얼굴을 가졌다. 이 그림은 후에 ‘바보 호랑이’라고도 불렸다.

<까치 호랑이>에서 호랑이는 양반이나 권력을 가진 관리를, 까치는 서민을 상징한다. 지혜로운 까치가 힘이 쎈 호랑이를 이기는 장면이 표현된 이 그림은 당시 권력가들에게 겪는 부조리함을 해학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전혀 다른 해석도 있다. <까치 호랑이>는 액막이와 경사를 의미하는 새해맞이 그림으로,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두려움, 부정부패한 관리, 새해의 복 등을 상징했다. 육식동물인 호랑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지만, 동시에 강하면서 멍청하고 복을 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렇게 호랑이는 한반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계속된 수난으로 ‘멸종’

한국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조선 전기 200년은 호랑이의 세상이었다. 조선 정부는 매년 각 군현에 호피 3장을 진상하도록 했다. 그 당시 군현은 대략 330여개, 매년 1000마리의 호랑이가 죽은 것이다.

조선에는 호랑이를 포획하는 착호갑사가 성종 때는 400여명에서, 숙종 때는 1만1000명으로 늘어났다. 호랑이는 모피, 고기, 약재 등으로 비싸게 팔렸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득도 있었다. 영종 때는 호랑이 개체 수의 감소로 호피 진상 제도가 중단됐다.

호랑이 수난시대는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주는 해수(해로운 동물)를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야생동물의 퇴치와 포획을 장려했지만, 야생동물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 정책은 없었다.

해수구제사업에서 가장 피해를 본 동물은 호랑이와 표범이었는데 모두 멸종됐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야생동물은 누구라도 포획할 수 있다’는 것을 원칙으로 수렵 규칙을 공포했다. 이후 사냥도구 사용은 수렵 기간에 수렵 면허를 받은 사람에게 한정했다. 수렵 금지구역 지정, 일출 전, 일몰 후의 총기 사용금지, 폭발물‧독극물‧총‧함정의 금지 등 수렵 규칙을 정했다. 

그러나 일본인과 조선인의 총기 소유는 큰 차이를 보였다. 1920년 일본인 총기 소유가 2만25개, 조선인 총기 소유는 1627개였다. 수렵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일본인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의 저자인 엔도 키미오는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조선인보다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야생동물 개체 수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921년 마지막
일본인이 사살

실제로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조선으로 호랑이 사냥을 떠나오기도 했다. 사업가 야마모토 타다사부로는 큰돈을 내서 호랑이 몰이꾼과 사냥꾼을 고용했다. ‘정호군’이라고 이름 붙인 사냥팀은 함경남북도, 금강산, 전라남도로 보내 사냥을 지휘했다.

이 내용으로 <정호기>라는 서적을 출간했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정책을 내세우면서 부의 과시, 일본군 사기 진작,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확산 등 복합적으로 뒤엉켜 기술돼있다.

이렇게 호랑이들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말살당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호랑이는 언제 마지막으로 발견됐을까?


1921년 10월2일 오전 9시에서 10시쯤,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가 사살됐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25세 마을 주민 김유근씨는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다가 호랑이를 발견했다. 김씨는 호랑이의 공격으로 왼팔에 상처를 입었다. 

호랑이로부터 도망친 김씨는 경찰서에 보고해 일본인 순사인 미야케 요조우와 인근 도로 공사 현장의 인부들을 몰이꾼으로 동원해 호랑이를 사냥했다.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는 몸길이 173cm, 꼬리길이 56cm, 몸둘레 84cm이었다.

대책 없는 해수구제정책에 대해 일본인 역시 우려를 표했다. 조선 경성사범학교의 생물학 교사였던 우에다는 ‘사라져가는 조선의 호랑이’라는 글을 잡지에 실었다.

이 글에는 “조선에는 옛날부터 호랑이가 많아 사람과 가축에게 참혹한 해를 끼쳤다. 호랑이를 잡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지방관리의 중요한 행정과제였다”며 “지금은 호랑이가 너무 줄어서 북조선의 오지가 아니면 호랑이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사람에게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 외에도 모피와 뼈로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조선의 호랑이는 전멸할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호랑이는 1943년 이후 전혀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1996년 국제사회에 “남한에서 호랑이가 멸종됐다”고 공식 보고했다.

동물의 왕 
구경거리로


사라진 호랑이가 다시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 때문이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는 농악대의 상모를 쓰고 돌리고 있는 호랑이 캐릭터 ‘호돌이’다. 올림픽 마스코트가 결정된 것은 1986년으로, 호돌이는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서울을 뜻하는 ‘S’와 상모 돌리는 모습은 한국의 미를 제대로 알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각종 문구류‧과자‧음료‧생필품‧은행 통장에까지 등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호돌이 마스코트와 휘장 사업으로 712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호돌이의 뒤를 이어 2018년 동계올림픽에서는 백호 ‘수호랑’과 반달가슴곰인 ‘반다비’가 마스코트로 선정됐다. 조직위는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의 연속성을 지키고, 백호가 한국 민속신앙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신으로 등장하는 점에 착안해 올림픽의 신성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백호 수호랑은 흰색을 좋아하는 한국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동계올림픽과 조화를 이룬다는 평도 있었다.

한국 국제대회에서 호랑이의 데뷔는 전 세계로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을 알렸다. 이로써 호랑이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동물이 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은 대중문화로도 이어졌다.

전통적인 판소리에 현대적인 팝 스타일을 조화시킨 음악으로 인기를 끈 밴드 그룹 이날치는 지난해 5월 앨범 수궁가를 발표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은 ‘범 내려온다’로 가사는 호랑이가 숲속에서 나오는 묘사를 주로 이룬다.

이 곡은 발매 후 한국관광공사 유튜브에 ‘Feel the Rhythm of Korea: SEOUL(한국의 흥을 느껴라: 서울)’이라는 제목의 뮤직비디오로 게재됐으며, 총 4823만7529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해당 조회 수는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다. 이 곡을 들은 누리꾼들은 “수궁전의 호랑이 이야기가 이렇게 멋있을 수 있다니 놀랍다” “한국의 정서와 현대의 느낌이 잘 묻어난다” 등 긍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에도 불구하고, 호돌이가 마스코트로 채택되는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바로 우리 땅에 고유종인 한국 호랑이가 멸종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다.

두려워하면서 숭배
강한 생명력의 상징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미국 미네소타 주 정부 교정국 수석행정관이었던 이희관 박사와 미네소타 한인회다. 이들은 1986년 6월 미네소타 세인트폴 동물원과 미네소타 동물원으로부터 백두산 호랑이 암수 한 쌍을 들여와 서울대공원에 안착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대공원 호랑이는 올해까지 총 54마리로 늘었고, 2007년에는 백두산 호랑이 암컷 4마리가 일본 후지 사파리 동물원에 수출된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호랑이의 번식을 성공적으로 이룬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호랑이 보전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맹수인 호랑이는 인간과 공존하기 어렵고, 행동반경이 400~1000km인데 비해 국내 사육시설은 너무 열악해서 호랑이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타 동물원과 교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근친 교배를 하는 문제도 있다.

2001년 서울대공원에 태어난 한국 호랑이 ‘크레인’은 남매였던 아빠 ‘태백’과 엄마 ‘선아’ 사이에서 근친 교배로 태어났다. 크레인은 선천적 백내장과 송곳니 부정교합 등 안면기형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육사들의 손에 길러졌고,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어린 시절이 지나자 원주 드림랜드로 옮겨졌다.

그러나 2007년 경영난을 맞은 원주 드림랜드가 동물들을 방치하면서 동물단체 구조 후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언론에서는 17년을 살고 사망한 크레인을 두고 천수를 누렸다고 표현했지만, 동물 삶의 질 측면으로 바라봤을 때 부족한 부분이 많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서울시에 선물한 호랑이 ‘로스토프’ 역시 마찬가지다. 로스토프는 2013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사육사를 물어 죽였다. 당시 서울대공원은 공사 중이어서 로스토프는 호랑이사보다 절반 정도 좁은 여우사에서 생활했는데 이때 받은 스트레스로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문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에 비하면, 호랑이 보존 정책은 턱없이 부실한 실정이다. 이 문제에 관해 시민단체와 동물 관련 전문가들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세계 곳곳에서 서식지 파괴와 더불어 밀렵까지 성행해 호랑이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부속서 1’에 속하는 멸종위기종이 됐다”며 “국내에서 호랑이가 멸종됐지만 우리는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심지어 실내 동물원에서도 호랑이와 같은 대형 포유류를 조형물처럼 전시한다”고 지적했다.

사육 시설
너무 열악

이어 “누군가는 동물원을 두고 야생에서 살기 어려워진 동물의 종 보전을 위해 필요한 방책이라고 주장하지만, 각자의 생태나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서식지 보존운동이나 전시 동물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백두산 호랑이 이동 거리는?

중국에 서식 중인 야생 백두산 호랑이는 하루 8.9km 이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8일 <길림신문>에 따르면 중국 국가임업초국 고양이과동물연구센터가 야생에서 구조해 방목한 백두산 호랑이 ‘완다산 1호’를 8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 총 2063km를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 평균 8.9km를 이동한 것으로 이 호랑이의 활동 범위는 동서로 180km, 남북으로는 100km에 달했다.

연구센터는 작년 4월 헤이룽장성 밀산의 야산에서 이 호랑이를 구조했고, 한 달 뒤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백두산에 방목해 이동 경로를 관찰했다.

생후 7개월 된 이 호랑이는 정상적인 먹이 활동으로 건강상태가 양호했고, 민가에 접근하지 않고 야생생활에 잘 적응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 접경 지역은 야생 백두산 호랑이 집단 서식지로 야생 호랑이 개체 수는 50여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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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