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돈보다 연기 오영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17 12:25:04
  • 호수 1358호
  • 댓글 0개

초심과 고집으로 50년 한 우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뇌종양에 걸린 칠순 노인이자 오징어 게임 참가번호 001번. <오징어 게임> 오일남은 오영수 배우에게 제79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선사했다. 한국 배우가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건 오 배우가 처음이다.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한국시각 10일 오전 11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할을 맡은 배우 오영수는 <테드 브래소>의 브렛 골드스타인, <더 모닝 쇼>의 마크 듀플라스, 빌리 크루덥, <석세션>의 키에란 컬킨 등과 경합해 남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인종차별 깬 
78세 노배우

오영수 배우는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며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고맙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간 골든글로브는 백인 위주의 배타적이고 보수적 문화를 상징하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았다”며 “오영수 배우의 수상은 골든글로브가 이제 문호를 넓히지 않으면 존립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도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오징어 게임>에 작품상이나 남우주연상을 주지 않은 것은 아직도 ‘고집’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외신의 반응도 뜨거웠다. 로이터 통신은 “할아버지 오영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상을 차지했다”고 전했고, CNN 방송은 “<오징어 게임> 스타 오영수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포브스는 “독창적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순식간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인기 드라마라는 명예를 얻었고 극중 오영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다”며 “(골든글로브 수상에 따라)78살 그의 연기 이력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뒤 오 배우는 한국 최초 수상자로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지만 “내일 연극 공연이 있다”며 인터뷰 제안을 거절했다. 지난달 초 열린 <라스트 세션>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지금까지 50년 이상 조용한 모습으로 연기자 생활을 해왔는데 <오징어 게임> 이후 갑자기 내 이름이 여기저기 불리게 되더라”고 말했다.

당시 오 배우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연극 <라스트 세션>에 출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어서 나름대로 자제심을 가지겠다 생각하던 차에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며 “(그동안)지향해온 내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가게끔 해준 동기가 돼준 것 같아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해 무대와 관객을 만나겠다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 배우가 <오징어 게임>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그는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놀이의 상징성을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찾아내는 감독의 혜안을 좋게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남한산성> 제작 때도 출연 제의를 줬었는데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징어 게임> 제안을 주셔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지난해 SBS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오영수 배우는 과거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의 이미지가 크게 남아 있다”며 “어느 날 오영수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다. 무대 연기를 직접 보고 캐스팅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오 배우에게 <오징어 게임> 촬영은 어린아이의 삶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는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놀기도 하고 즐거운 촬영이었다”고 촬영 당시를 기억했다.

새 역사 쓴 ‘깐부 할아버지’
골든글로브 첫 한국인 수상

오 배우가 <오징어 게임> 촬영 현장이 즐거웠다고 기억한다면, 관객들은 오영수의 오일남을 ‘목숨을 건 게임에서 원리·원칙을 지키는 사람’ ‘사람들이 패닉일 때 혼자 해맑은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이처럼 세계적 깐부(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를 뜻하는 은어) 할아버지 오일남은 <오징어 게임>에서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은 성기훈과 구슬치기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럼 자네가 날 속이고 내 구슬 가져간 건 말이 되고?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 없는 거야. 그동안 고마웠네. 자네 덕분에 잘 있다가 가네.” 오 배우의 골든글로브 수상은 인종, 언어의 벽을 허문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우물을 판 사람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는 25세에 군 제대 후 취업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극단 단원이었던 친구의 권유로 1963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연극인의 삶을 시작했다. 극단 자유 단원을 거쳐 1987년에는 국립극단 단원이 됐다. 반세기 넘는 세월을 연극배우로 살아온 것이다. 

국립극단에서는 1987년부터 2010년까지 간판 배우로 활동했다. 작품으로는 1996년 연극 <혼수없는 여자>, 1997년 연극 <태>, 2001년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2008년 연극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2010년 연극 <리어왕>, 2011년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200여편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과의 접점이 많지는 않았다.

그의 짧은 머리 스타일 때문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단역을 맡거나 주연을 하더라도 스님 역할이었다. 1998년 영화 <퇴마록>에서는 단역인 노 신부역을 맡았고, 2003년 영화 <동승>에서는 큰스님, 2003년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도 역시 노스님 역할을 맡았다. 

다수의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81년 MBC 드라마 <제1공화국>의 군 검사 단역과 1983년 KBS1 <전우>의 종군 기자 단역으로 시작했다. 2009년 MBC의 <선덕여왕>에서는 ‘월천대사’를 연기했는데, 승려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시청자들이 오 배우를 실제 승려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흔들림 없는 
연기 내공

오 배우는 1981년부터 지난해 <오징어 게임>까지 총 14개의 드라마 활동을 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개봉했을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오 배우는 “영화는 기회가 와도 하고 싶은 역할이 없었다. 연극이나 영화나 같은 예술 아닌가? <철도원> 같은 영화를 우리 나이에 맞게 왜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오 배우의 삶 전체가 연극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에서 보이는 오일남은 이 모든 배경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골든글로브 수상이 그의 첫 번째 수상은 아니다. 오 배우는 1979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1994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2000년 한국연극협회 연기상을 받았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 활동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연극배우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1960년대 극단은 경험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지만 몇 년 동안은 청소와 잡일만 도맡아 해야 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면 경제적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오 배우는 40~50대 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업으로 EBS에서 성우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안정적인 연기력과 중저음의 목소리는 목소리 연기를 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이 시기가 모두 지나고, 그가 안정적으로 연기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기는 국립극단 단원이 되던 해부터다. 국립극단 단원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오 배우는 “국립극단 단원이 된 이후에나 생활이 안정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결혼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 배우에 대한 주변 배우들의 평은 어떨까. <오징어 게임>에서 함께한 배우들은 그를 ‘젊은 배우’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오 배우는 “‘나이가 들면 열정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만 나이를 먹고 다 젊으니 그 속에서 내가 존재하려니까 과장되게 젊은 척을 했다”고 겸손을 표했다.  

“나에게 있어 
연극은 종교”

기훈 역할의 이정재 배우는 오 배우의 수상소감을 듣고 “일남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장면 모두가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깐부로부터”라고 재치 있는 축하를 전했다. 상우 역할을 맡은 박해수 배우 역시 오 배우의 칭찬을 이어갔다. 

<한경 연예>의 인터뷰에서 박해수 배우는 “오영수 선생님은 국립극단에 있었을 때부터 봐왔고 동경하던 분이다. 그런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오 선생님은 현장에서 남다른 무게감을 느끼고 계셔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라스트 세션>에 함께 출연 중인 이상윤 배우는 오 배우를 위해 준비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오 배우가 분홍색 왕관을 쓰고 케이크를 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오태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도 “연극계의 큰 경사”라면서 “연극배우들이 선생님의 수상을 보고 큰 희망을 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환영했다.

이처럼 오 배우의 주변은 오랜 시간 그의 연기를 봐온 사람이 많다. 그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일까. 오 배우는 “나에게 연극은 종교”라며 짧은 말로 정의했다. 

<라스트 세션>의 출연자인 신구 배우는 “오영수와 1960년대 후반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차분히 실력을 쌓는 모습은 똑같다”고 전했다. 연극 <3월의 눈>에서 오 배우와 함께 작업한 희곡 작가 배삼식은 “무대 위에 서는 것을 기쁨으로 누리는 배우”라고 그를 설명했다.

이를 증명하듯, <라스트 세션>의 첫 공연이 끝나자 인사를 하러 나온 오 배우에게 관객 330명은 일제히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곳에는 깐부 할아버지가 아닌 <라스트 세션>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존재했다. 

만석이 된 객석, 환호하는 사람들. 이에 기쁜 감정을 표출할 법도 하지만, 오 배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무대다. 기자회견도 마다한 그는 “무대로 돌아가겠다. 이 연극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배우가 한 작품에서 큰 흥행을 하거나, 깊이 몰두하면 역할에 빠져나오기 힘들 때도 있다. 아니면 배우가 다른 연기를 하고 싶어도, 관객들이 과거의 역할로 계속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 배우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50년 이상 200명의 인생을 살았던 오 배우의 능력이자, ‘연극은 종교’라고 말한 오 배우의 말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50년 넘게 200명 인생 연기
“연극 집중이 가장 행복해”

오 배우의 연극 철학은 일상 속에서도 존재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로 인기를 얻은 오 배우는 치킨 프랜차이즈 광고모델 제의를 받았다.

광고모델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드라마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깐부’를 광고에 쓰면 작품의 의미를 훼손한다는 것이 오 배우의 답변이었다. 정말 오영수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경력은 아무리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도 체력이 없으면 쌓기 불가능한 일이었다. 60년간 끊이지 않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오 배우의 비결은 무엇일까. 오 배우는 10대 때부터 끊임없이 ‘평행봉’을 이용해 체력 관리를 했다고 한다.

오 배우는 “지금도 하루에 평행봉을 50번 한다”며 “젊었을 때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때 우선 그 동네에 평행봉이 있나 없나 봤다.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끼리 함께 식사하며 얘기를 나누는 순간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뽑았다.

오 배우는 “가족끼리 같이 앉아 식사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대로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사는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이 아닌가”라고 전했다.

탄탄한 연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오 배우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오 배우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고민은 없고 염려라고 할까. 가족과 같이 이렇게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것. 염려하면서 기대하면서 바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젊었을 때는 어디 산속을 타다가 꽃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 꽃을 꺾어 간다. 내 나이쯤 되면 그냥 그대로 놓고 온다”며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게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냥 있는 그 자체를 놔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배우는 “소유욕 같은 것은 별로 없다. 이제 딸이 자기 뜻대로 편안하게 살게끔 해주고 싶다”며 “딸한테는 우리 집사람한테 못 해줬던 일을 하나씩 갖춰가면서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오 배우는 1975년 30대의 나이로 연극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를 맡았다. 당시 <파우스트>는 어느 극단에서 올려도 망한 적 없이 큰 흥행을 하는 작품이었다.

연극을 올리기 전, 극단 자유 대표였던 김정옥은 오 배우에게 파우스트보다 악마 메피스토가 더 맞을 거라고 조언했다. 극중 파우스트의 나이는 많은데, 오 배우는 30대였기 때문이다. 

연출자는 오 배우의 파우스트 연기에 문제 삼지 않았다.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 사이에서 무슨 역을 할지 고민했던 그의 선택은 파우스트였다. 주연을 하고 싶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소유욕 없다
지금 이대로

오 배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지구본을 잡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20초가량 의식을 잃었다. 연습하면서 탈진해서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오만과 자만심이 낳은 결과였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항상 ‘나이 들어서 파우스트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