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시청자 등친 예능 조작사

‘멋대로 편집’ 최악의 자책골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최근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진정성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경기의 중간 과정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바꾸려다가 시청자의 눈에 걸렸기 때문이다. 올해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각광 받던 <골 때리는 그녀들>은 폐지 논란에 휘말렸다. 시청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수준이다. 방송계에서는 이른바 ‘예능적 허용’으로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평가다. 제작진의 조작 행태는 비단 <골 때리는 그녀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다. 

 “‘진정성 200%’ 축구에 진심인 그녀들과 대한민국 레전드 태극전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한 소모임 탄생.”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진정성 200%’라고 전면에 내세우며, 각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스타들의 축구를 향한 진심을 강조했다. 

스코어
맘대로 

틀린 말도 아니다. <골때녀>에 출연하는 플레이어나 감독은 하나같이 진심이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이 대뜸 축구에 온몸을 던졌다. 발톱이 빠지고 무릎이 까지고 멍이 들다 못해 인대가 늘어나도,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은 마음에 아픈 몸을 외면했다.

끝까지 골을 향해 뛰고 또 뛰었다. 그러면서 골을 넣었을 때의 희열을 느끼거나, 패배 후에 오는 쓰라린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쏟아냈다.

단 한 번도 축구를 해본 적 없었던 것 같은 선수들은 특별 과외를 받거나 한 달 내내 공과 함께 움직이는 노력을 이어가면서, 회차마다 일취월장했다. 공만 따라다니기 일쑤였던 여성들은 어느덧 전술적인 움직임을 그럴듯하게 해냈다.


날아오는 공이 무서워서 눈을 감고 허우적댔던 골키퍼들은 여느 축구 선수처럼 몸을 먼저 들이미는 야수성을 드러냈다. 예능인이라고 해서 웃기려 하지도 않았고, 배우나 모델, 가수라고 해서 예뻐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목표는 오롯이 승리였다. 

감독은 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고, 마지막까지 이길 방법을 고안했다. 그리고 승리에는 환희로, 패배에는 겸손한 인정으로 스포츠 정신을 몸소 보여줬다. 실제 스포츠 선수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스포츠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골때녀>에도 그대로 담겨 있었다. 

덕분에 ‘여자 축구의 르네상스’가 다가오는 듯했다. 시청률은 10%(닐슨코리아 제공)에 육박했고, 화제성은 뜨거웠다. 방송이 끝나면 온라인 커뮤니티는 <골때녀> 관련 글로 뒤덮였다. 시청자가 앞다퉈서 골 장면을 녹화했고, 각 선수의 스탯을 면밀하게 따지는 분석이 올라왔다.

민요를 부르는 송소희에게 ‘피르민요’, 작지만 킥력이 좋은 윤태진에겐 ‘모드리춘’, 선글라스를 끼고 황소처럼 달리는 황소윤은 ‘황비즈’라고 하는 등 직감적인 별명이 만들어졌다. 

<골때녀> 방송 조작 논란 일파만파
“같은 PD가 봐도 창피해” 비난 쇄도 

많은 시청자는 온 힘을 다하는 여성 선수들을 응원했다. <골때녀>는 새로운 스타가 대거 발굴되는 현장이기도 했다. 구척장신 아이린, FC월드클래스 tk오리와 에바, 원더우먼 송소희, FC아나콘다 윤태진, 개벤져스 김민경 등 새로운 얼굴들이 조명됐다.

장수 프로그램만 즐비하던 SBS 예능국에 <골때녀>는 새로운 활력이 됐다.


<골때녀>가 가진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을 단숨에 무너뜨린 건 제작진의 안일한 행태였다. 경기 과정을 편집해 더욱 드라마틱하게 바꿔 재미를 끌어올리겠다는 쌍팔년도식 태도가 <골때녀> 논란의 시초였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경기는 구척장신과 원더우먼의 승부였다. 새롭게 꾸려진 팀 중 ‘탈 신입’이라는 평가를 받은 원더우먼과 시즌1 팀 중 실력 면에서 가장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은 구척장신의 대결은 관심이 쏟아졌다. 원더우먼이 구척장신을 잡고 승리를 이어가느냐에 이목이 쏠렸다.

외형적으로 매력적인 선수가 많은 두 팀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경기 결과는 6:3으로 구척장신이 이긴 것으로 보였다. 3:0에서 3:2, 4:3의 과정을 거쳐 6:3으로 경기가 끝난 것으로 방송에 나왔다. 중계진인 배성재와 이수근은 너무도 극적인 과정과 결과에 엄청난 리액션을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실제로는 구척장신이 5골을 내리 넣었고, 원더우먼이 3골을 따라 잡았지만 다시 추가골을 허용하며 6:3으로 끝난 것.

이를 발견한 건 시청자들이었다. 물병의 위치와 양, 선수들의 헤어스타일, 관객석의 위치, 경기 스코어의 판을 보고 경기 과정에 조작이 있었음을 알아챘다. 논란이 짙어지자 제작진은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예능적 허용?
무식한 조작?

제작진은 예능적 재미를 위해 이러한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아마도 원더우먼이 바짝 따라가는 형태가 더 재밌으리라 판단했기에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 판단은 공정성과 진정성을 매우 중요히 여기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최악의 결정으로 해석된다. 

구척장신에 5:0으로 지고 있던 원더우먼이 5:3으로 따라잡는 과정이 3:0과 3:2, 4:3, 6:3으로 거치는 과정보다 과연 더 재미가 없는 상황이었는지 의문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와도 그것이 축구다.

일방적인 결과가 나와도 과정에 편향이 없다면 그 자체가 존중받아야 마땅함에도, 제작진은 자신들이 생각한 극적 재미가 경에 나오지 않으며 받아들일 수 없는 듯 보인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피해자가 나왔다. 특히 원더우먼의 박슬기가 경기 후 비난의 대상이 됐다. 방송분에서는 팀원이 바짝 추격하는 상황에서 박슬기는 극심한 무기력에 빠진 표정으로 힘들어했다. 조금만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의욕이 없어 보이는 박슬기의 표정에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실제 경기 결과가 드러나자 박슬기의 감정이 자연스러웠다는 게 드러났다. 5:0으로 지고 있으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허탈할지 충분히 이해돼서다. 


캐스터 배성재도 애꿎은 피해자가 됐다. 팬들은 SBS 출신 배성재가 제작진의 조작에 힘을 보탰다며 비난했다. 배성재의 해설에 분명 3:2, 4:3과 같은 스코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성재는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촬영 한 달 후 제작진이 준 대본을 기계적으로 읽은 것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해명했다.

이 경기 뿐 아니라 <골때녀> 제작진은 FC아나콘다와 FC탑걸의 경기에서도 붙어 있던 시계를 떼버렸다. 개벤져스와 액셔니스타와의 경기에서도 조작한 정황이 보였다. 액셔니스타의 정혜인의 헤어스타일이 경기 중에 막 바뀐 모습도 포착됐다.

단발인 정혜인은 경기 중에도 머리가 풀려 있다가 묶여 있다가 뒤바뀌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다. 순차적으로 편집한 게 아닌 장면을 이리 떼고 저리 떼다가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제작진이 한 제멋대로 편집이 지속되다가 덜미가 잡힌 셈이다. 

SBS는 <골때녀> 책임 PD와 연출 PD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SBS는 공식입장을 통해 “아무리 예능프로그램이 재미라는 가치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하더라도 골 득실 순서를 바꾸는 것은 그 허용범위를 넘는 것”이라며 “책임 프로듀서 및 연출자를 교체해 제작팀을 재정비하고 초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안전 불감증
구속도 있어

<골때녀> 문제는 예능적 허용과 안일한 행태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어차피 예능이라 재미를 추구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반응과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내용 조작이라는 주장이다. 대체로 후자에 대한 의견이 지지를 받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 관계자는 “<골때녀>는 같은 PD가 보기에도 정말 창피하다. 쌍팔년도에나 할 행동을 한 셈이다. 예능적 허용이라고 해서 재미를 위해 순서를 바꾸거나 내용을 바꾸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 오디션과 스포츠”라며 “진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예능적 허용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방송 내용을 조작해 비난에 시달린 사례가 적지 않다. SBS 예능국은 적지 않게 조작을 시도했다가 걸린 전과가 있다. 대표적으로 정글에서 생존한다는 진정성을 내건 SBS <정글의 법칙>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가짜 원시 부족을 섭외한 뒤 마치 엄청난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대치 구도를 만들었다가 시청자에게 걸려 뭇매를 맞았다. 이후에도 대왕조개 채취를 하는 과정도 거짓으로 연출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그에 앞서 여행 예능의 원조 격인 SBS <패밀리가 떴다>에서도 참돔 낚시 조작 의혹으로 크게 비난받은 바 있다. 
SBS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방송계에서는 숱하게 예능적 허용이라는 명목으로 조작을 시도해왔다. 어쩌면 <골때녀>의 이번 사태는 방송계의 안일한 안전 불감증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조작 논란이 가장 많이 생겨나는 프로그램 장르는 리얼 연애 버라이어티다. 특히 연예인을 대상으로 만든 연애 방송에서 진정성 논란이 생겨난다. 

첫 번째 사례는 오연서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오연서는 이준과 커플로 등장했는데, 로맨스를 그려가던 과정에서 오연서가 실제로는 배우 이장우와 만나고 있었다. 해당 사실은 한 연예 매체로 인해 밝혀졌다. 

<우결>부터 <정법>까지…도 넘은 방송가
금자탑 허무는 진정성 훼손 “이젠 멈춰”

오연서도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이를 알고도 묵인한 <우리 결혼했어요> 제작진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외에도 MBN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황신혜와 커플로 나온 김용건은 오랫동안 연인 관계를 이어온 A씨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솔로라며 출연한 박수홍도 실제로 연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거짓 방송 논란에 휩싸였다.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한 방소인 함소원이 보여준 장면도 조작인 것으로 밝혀졌다. 방송에서 함소원 남편 진화의 별장으로 그려진 장소가 알고 보니 에어비앤비 숙소였으며, 방송에서 공개된 함소원의 딸 혜정의 바지 에피소드와 이사하는 과정, 이야기 병원 에피소드 등이 조작이라는 의혹도 이어졌다.

결국 <아내의 맛>은 해당 논란에 대한 비판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즌을 종영했다.

방송 조작으로 PD가 구속된 사례도 있다. M.net <프로듀스 101 X>는 제작진이 투표를 조작했다가 걸렸다. 해당 프로그램을 연출한 안준영 PD와 김용범 PD가 구속됐다. 

<프로듀스 101>은 모든 권한을 시청자들에게 넘겨준다고 강조하면서 진정성을 내세웠지만, 뒤에서는 이른바 ‘밀실 픽’이라고 해서 제작진이 출연자를 결정하는 행태를 보였다. 2019년 한 해를 떠들썩 하게 만든 국내 방송 역사상 가장 최악의 조작으로 여겨진다. 

동명 웹툰을 기반으로 한 유튜브 예능 <머니게임>도 조작 논란으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남자 출연자와 여자 출연자 간에 욕설이 섞인 다툼이 심해진 4화 이후 갑작스레 5화에서 출연자들이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가 충격을 받았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여성 출연자들이 그간의 힘들었던 부분을 제작진에게 성토했고, 이 과정에서 갑질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남성 출연자들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됐고, 조작된 내용으로 방송이 공개됐다.

이 때문에 여성 출연자 대다수가 시청자들에게 비난 포화를 맞고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다. 방송에 관심 있던 여성 출연자는 <머니게임> 이후 오히려 최악의 이미지를 얻고 하락세를 걷고 있다.

국내 시청자들이 방송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대목이 진정성이다. 무대 코미디나 드라마가 아닌 경우에는 제작진이 공정하게 출연자를 대하고 있는지를 엿본다. 특정 출연자에게 수혜를 주는 부분이 드러나면 어김없이 집중 포화를 맞게 된다.

걸리면
집중포화

특히 진정성이 강조되는 프로그램에서 예능적 허용을 넘어선 순위 조작이 있다면, 회생 불가능한 상황까지 치닫는다. 이미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방송 조작’이 <골때녀>를 끝으로 사라져야 할 테다. 힘겹게 쌓아 올린 금자탑이 단숨에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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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