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여행지 ④정선 삼탄아트마인

폐광서 피어나는 예술의 향기

한때는 기계 소리 가득한 산업 현장이었다. 당시 이름은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1964년 문을 연 뒤 수십 년 동안 광부들의 피땀으로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생산량이 감소하다, 2001년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2013년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가 150여개국에서 수집한 예술품 10만여점을 갖춘 복합 문화 예술 단지 ‘삼탄아트마인(samtan art mine)’으로 다시 태어났다.

강원도 정선, 아름다운 함백산 자락에 자리 잡은 삼탄아트마인 주차장에 들어서면 철탑이 뿔처럼 비쭉 솟아난 야트막한 건물이 보인다. 삼척탄좌 시절 종합사무동이던 건물은 현재 삼탄역사박물관과 마인갤러리, 아트레지던스룸 등을 갖춘 삼탄아트센터로 이용한다. 주차장에서 보면 단층 같지만, 언덕에 기댄 건물 4층이다. 여기서 표를 끊고 아래로 내려가며 관람하는 구조다.

옛 모습 그대로

주차장에서 연결되는 입구로 들어가면 탄가루가 범벅된 얼굴에 선량한 눈동자가 빛나는 광부의 대형 초상화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곳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조선족 화가 권학준의 작품이다. 광부의 초상화가 있는 4층은 로비와 매표소, 국내외 작가가 상주하며 창작 활동을 하는 아트레지던스룸 등으로 운영한다.

옛 모습 그대로인 계단을 따라 한 층 내려가면 삼탄역사박물관과 현대미술관(Contemporary Art Museum, CAM)이 나온다. 삼탄역사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작은 도서관만 한 공간에 가득한 서류 더미다. 수십 년간 모은 직원 급여 명세서와 건강관리표 등 각종 행정 문서가 지나간 시대를 증언한다. 옛 사무 공간에 마련된 현대미술관에서 시즌마다 다양한 미술품을 만날 수 있다.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마인갤러리는 탄광 시설이 작가의 손을 거치며 새롭게 태어난 전시 공간이다. 광부 3000여명이 3교대로 이용하던 샤워실은 몇 가지 오브제와 그림을 더해 독특한 전시실이 됐고, 작업용 장화를 씻던 세화장은 다양한 격자무늬 발판 아래 조명을 달아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거듭났다. 광부들이 옷을 갈아입던 갱의실에는 삼탄아트마인을 일군 고(故) 김민석 관장이 30여년간 150여개국에 다니며 모은 수많은 미술품과 오브제를 보관한다.


아트숍과 체험 공간인 예술놀이터가 있는 1층은 옛 석탄 조차장(열차를 잇거나 떼어내는 곳)이 변신한 레일바이뮤지엄으로 연결된다. 삼척탄좌에서 캐낸 모든 석탄이 모이던 곳으로, 높이 53m에 이르는 권양기(광부와 석탄을 운반하는 산업용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설비가 거대한 뼈대를 드러낸다. 엘리베이터 앞 거대한 게시판에 ‘우리는 가정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그 속에 직장을 사랑한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이렇듯 옛 모습을 간직한 레일바이뮤지엄은 영화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촬영지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면 널찍한 마당에 여러 조형물이 들어선 ‘기억의 정원’이다. 연탄으로 쌓아 올린 탑, 광부의 실루엣을 담은 철근 작품, 석탄을 실어 나르던 탄차 등이 옛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기억의 정원 끄트머리에 군부대 막사를 닮은 제2권양탑 건물이 눈에 띈다. 왠지 낯익어 표지판을 보니, 한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다. 코로나19 발생 전만 해도 이걸 보기 위해 수많은 해외 관광객이 삼탄아트마인에 다녀갔다고 한다.

광부의 피땀으로 고도성장 이끌어
2013년 복합 문화 예술 단지로

제2권양탑 옆, 지하에서 작업하는 광부들에게 공기를 공급하던 중앙압축기실에는 원시미술관이 들어섰다. 원시미술이란 이름 그대로 선사시대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미술을 가리킨다. 유럽의 동굴벽화와 아프리카의 민속 조각, 고대 인도의 석상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커다란 기계장치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세계 각국의 원시미술 작품이 중앙압축기실에서 공급하던 공기처럼 관람객에게 신선한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다. 삼탄아트마인 관람 시간은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어른 1만3000원, 중·고등학생 1만1000원, 초등학생 1만원이다.

삼탄아트마인에서 33㎞ 남짓 떨어진 정선 화암동굴은 갱도와 천연 동굴이 어우러진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금광으로 개발돼 갱도를 뚫는 작업을 하다가 천연 동굴이 발견됐다. 해방 이후 발굴을 지속해 1980년에 강원기념물로 지정되고, 2019년 천연기념물로 승격됐다. 색깔과 형태가 다양한 석순, 석주, 종유석, 석화 등이 다른 동굴에서 보기 힘든 것들이라 학술적·자연 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금과 대자연의 만남’이란 주제로 일반에 개방된 구간은 총 1803m다. 길이 515m 상부 갱도는 일제강점기 금광맥의 발견부터 채취까지 전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365개 계단을 내려가면 ‘동화의 나라’ ‘금의 세계’ 등을 테마로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이어지는 천연 동굴은 거대한 광장으로, 392m 탐방로에서 유석폭포와 대형 석순, 곡석, 석화 등 진귀한 동굴 생성물을 볼 수 있다.

나전역은 예쁘기로 소문난 간이역이다. 일찍이 드라마 〈모래시계〉, 서태지가 출연한 이동통신 광고,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스핀오프 예능 프로그램 〈뽕숭아학당〉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지난해 말 나전역에는 ‘국내 1호 간이역 카페’가 문을 열었다. 추억이 떠오르는 인테리어와 지역 특유의 메뉴로 많은 이를 불러들인다. 나전역 변화의 주역이 주민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정선아리랑시장

이곳저곳 둘러봤다면 이제 특산품을 쇼핑할 시간. 정선아리랑시장으로 가자.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붐비는 시장엔 곤드레를 비롯한 산나물, 황기와 더덕, 감자 등 정선을 대표하는 산물이 지천이다. 매콤한 메밀전병과 고소한 수수부꾸미, 수리취떡, 콧등치기국수까지 출출한 배를 채워줄 먹거리도 줄줄이 이어진다. 끝자리 2·7일에는 오일장이, 주말에는 주말장이 열려 더욱 흥성한 분위기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삼탄아트마인→화암동굴→정선아리랑시장→나전역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삼탄아트마인→화암동굴→정선아리랑시장→나전역
둘째 날: 정선아라리촌→아우라지→정선레일바이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정선여행 www.jeongseon.go.kr/tour
- 삼탄아트마인 https://samtanartmine.com
- 화암동굴(정선군시설관리공단) www.jsimc.or.kr
- 정선아리랑시장 https://blog.naver.com/jungsun_mk  

문의 전화
- 정선군종합관광안내소 1544-9053
- 삼탄아트마인 033)591-3001
- 화암동굴 033)560-3410
- 나전역 1544-7788

대중교통
[기차] 청량리역-사북역, 무궁화호 하루 5회(07:35~19:10) 운행, 약 3시간 소요. 사북역에서 사북시장 정류장까지 도보 약 4분, 농어촌버스 이용, 콘도 정류장에서 상갈래-만항 농어촌버스 환승, 못골 정류장 하차, 삼탄아트마인까지 도보 약 10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고한사북,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8~19회(06:00~22:30) 운행, 약 3시간 소요. 고한사북공용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농어촌버스 이용, 콘도 정류장에서 상갈래-만항 농어촌버스 환승, 못골 정류장 하차, 삼탄아트마인까지 도보 약 10분.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고한사북공용버스터미널 033)592-9951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 제천톨게이트→북부로 단양·영월 방면 우측 도로→강원남로 사북·태백 방면 직진→함백산로 상동 방면 우회전→삼탄아트마인

숙박 정보
- 하이원콘도: 고한읍 하이원길, 1588-7789, www.high1.com
- 메이힐스리조트: 고한읍 물한리길, 033)590-1000, www.mayhills.co.kr
- 상유재: 정선읍 봉양3길, 033)562-1162, https://sangyouje.modoo.at

식당 정보
- 함백산돌솥밥(돌솥밥): 고한읍 상갈래길, 033)591-5564
- 중앙식당(산채비빔밥): 화암면 화암동굴길, 033)562-2225
- 동광식당(황기족발): 정선읍 녹송1길, 033)563-3100

주변 볼거리
몰운대, 화암약수, 정선양떼목장, 백두대간생태수목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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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