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렇게 떠나간 조동연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2.06 14:46:16
  • 호수 1352호
  • 댓글 0개

골라도 꼭…출발부터 삐걱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더불어민주당 대선 캠프의 외부 ‘인재 영입 1호’ 인사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30대 워킹맘으로 화제가 된 조동연 서경대학교 교수가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에 임명된 지 이틀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숱한 의혹 제기를 버티지 못한 조 교수는 결국 짐을 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인재 영입 1호였던 조동연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가 사생활 논란에 휩싸이다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항공우주계
“누구냐 넌”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3일 “조 교수가 아침에 전화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며 “제발 아이들에 대한 공격은 멈춰달라 전해왔다”면서도 일부 언론을 통한 조 교수 가족에 대한 신상이 유포되는 데 대한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전날 조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짊어지고 갈 테니 죄 없는 가족들은 그만 힘들게 해달라”며 “그간 진심으로 감사했고 죄송하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어 “누굴 원망하고 탓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안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중심을 잡았는데, 이번에는 진심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해당 게시글은 삭제된 것이 아닌 조 교수와 페이스북상 ‘친구’ 관계인 사람만 보이도록 처리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조 교수는 자신의 사생활 의혹을 인정한 후 잠적에 들어갔고 민주당은 연락이 닿지 않자 실종 신고를 했다. 

조 교수를 찾아낸 경찰 관계자는 “실종 신고를 받고 조 교수 자택으로 출동했고, 집에 안전하게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철수했다”며 “수색 방법과 투입 인원 등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제20대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거대 양당은 외부 인사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국방·과학 전문가인 조 교수를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국민의힘도 스트류커바 디나 라파보 대표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양당이 최근 영입한 외부 인사는 여성들로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들로 여야 모두 ‘젊은 여성층’을 잡기 위한 포석이었다.

지난달 30일 이재명 대선후보는 민주당 영입 발표식에서 “조 교수는 우주항공 분야의 전문가”라며 “우리는 앞으로 성장하는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 그 핵심은 미래 산업인데 그 중심에 항공우주 산업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후보는 “제가 페이스북 본인 소개 글을 읽어봤는데 ‘조금이라도 나누며 살기’라는 표현을 해놨더라”면서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사람을 잊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나누며 살기를 실천하려 노력하시는 점에 대해 저 역시 많은 공감이 갔다”고도 했다.

이 후보는 조 교수에게 “민주당의 뉴페이스가 돼주시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캠프 영입 1호 우주 전문가 
임명 이틀 만에 자진 사퇴

민주당은 조 교수에 대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지만 ‘항공우주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우주에 관한 서적을 출간한 바 있는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를 보고 우주에 관련된 책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KBS에 출연한 조씨는 “통상 제일 먼저 받는 질문이 육군 장교가 어떻게 우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느냐”라고 언급했다. 그는 “육군 정책실에 근무하면서 ‘육군 비전 2050 개념안’을 작성했다”며 “30년 후에 대한민국 육군이 어떤 방향을 보고 뭘 준비해야 되는지 방향성을 고민하는 숙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일론 머스크가 참여한 토론을 봤다는 게 조 교수 설명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미국 공군과 우주 관련 스타트업이 다 모인 행사가 열렸고, 사비를 들여 이틀간 행사에 참석했다”며 “3·4성 장군과 머스크가 참석했는데, 미래에 전쟁은 어떻게 수행하고 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굉장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생각을 2년 전부터 했으며 2년간 준비해서 책을 썼다. 혼자서 다 쓴 것은 아니며  군 관계자를 만나서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 교수의 이력 중 우주와 관련된 것은 고작 책 한 권 쓴 것이 전부였다. 조 교수를 두고 ‘우주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데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생겼다. 

관련학계에선 “(조 교수에 대해)전혀 모르는 분”이라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지난 2일 항공우주학계에 따르면 해당 업계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우주산업·국방 전문가로 발탁한 조 교수에 대해 금시초문이란 반응이 나왔다. 

우주항공 분야는 기술적 난도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연구 개발 활동과 현장경험이 있어야 전문가로 인정받는 분야다. 실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사이언스온을 통해 검색한 결과 조 교수 이름으로 낸 논문이나 보고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복무 시절
겸직 의혹

사이언스온은 논문·특허·보고서 등 과학기술정보 1억5000만건을 데이터베이스화한 국가 정보 인프라다.

지난해 육군을 전역한 조 교수는 서경대 군사학과에 임용됐으나 학생들은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과 내에서 군인 출신 교수들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는 대조된다. 조 교수는 채용 당시 산학협력 중점 추진 교수로 임용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군사학과 소속으로 산학협력단 내 미래국방기술창업센터장을 맡고 있다. 


군 내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온다. 한 육군 우주 분야 전문가는 ”육군 내부에선 현재도 우주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다”며 “심지어 조 교수는 정보병과였고 미래혁신연구센터에서 보고서를 공동 작성한 적은 있지만 군에서 우주나 항공 분야 경력을 쌓은 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주 분야 연구개발이나 현장 경력 없이 서적 1권으로 전문성을 평가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다수다. 한 연구계 관계자는 “항공우주 분야 석사 학위가 있거나 연구개발 경력 10년 이상이 있어야 전문가 그룹으로 분류된다”며 “조 교수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평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총괄 특보단장을 맡고 있는 안민석 의원은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지금 그분이 30대지 않느냐”며 “전문가들 내에서도 또 진짜 전문가들이 있고, 아직 젊은 전문가들이 있는데 조금 관대한 시선으로 보고 앞으로 그분이 30~50대 전문가로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지 않나. 그렇게 보면 그런 것들은 크게 개의치 않을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5년 전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 바 있다. 앞서 2016년 6월 <시사인> 리더십 포럼에 초대돼 강사로 나섰던 그는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삶을 청년들에게 들려줬다. 

이날 조 교수는 힘들었던 시절을 공개했다. 중학생 때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학업을 그만두기를 권했고 당시 그는 수긍해야 했다. 조 교수 가족은 빚쟁이의 협박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했다.

조 교수는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의기소침해졌다. 그럴수록 참고서와 문제집을 독학으로 깊이 파면서 공부에 몰두했다. 조 교수의 경제적인 상황을 알게 된 한 교사가 그에게 학비가 지원되는 고등학교를 찾아다녔다.


이혼 사유
한방에… 

해당 교사 덕분에 조 교수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우울했던 그에게 희망이 생겼고 ‘억지로라도 웃자’라는 생각으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계획을 정하고 실천하다 보니 웃을 일이 더 많아졌다. 

조 교수는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든지 해보지 않으면 후회한다.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해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적을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만의 인생지도를 만들고 전문성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흙수저 마케팅으로 청년들에게 어필하나 싶었지만, 강용석 변호사가 가로세로연구소을 통해 조 교수에 대한 사생활 의혹을 제기하면서 상황은 180도로 달라졌다.

강 변호사는 “조 교수에 대한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며 “워낙 육사 출신들 사이에 알려진 내용이라 네다섯 군데를 통해 크로스체크했는데 거의 비슷하게 알고 있더라”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이와 함께 조 교수의 이혼 사유가 담긴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글을 공유했다.

민주당은 조 교수와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법적 조치 등 강력 대응을 시사하고 나섰다. 김진욱 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출입 기자들에게 “(조 교수와 관련한)강 변호사 페이스북 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선대위 총괄 특보단장을 맡고 있는 안 의원도 지난 1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강 변호사의 의혹 제기에 대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혹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실 관계자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법원 사건검색을 통해 조 교수 사생활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며 “민주당은 조 교수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결국 거짓 해명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층 잡기·흙수저 마케팅
사생활 논란에 결국 집으로

민주당 선대위 측이 정확한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법적 대응 운운하다 체면만 구긴 셈이다. 조 교수 영입이 일주일 만에 급박하게 이뤄지면서 제대로 된 인사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난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조 교수는 지난 2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사생활로 인해서 많은 분이 불편함을 분명 느꼈을 것이고 분노를 느꼈을 텐데 죄송하고 송구스럽다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 사생활이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처음부터 좀 기울어진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양쪽 다 상처만 남은 채로 결혼생활이 깨졌다”며 “그리고 약 10년이 지났다. 개인적으로 군이라는 굉장히 좁은 집단에서 그 이후에 숨소리도 내지 않고 살아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 교수는 “저 같은 사람은 20년, 30년이 지난 이후에 아이들에게 좀 더 당당하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허락받지 못하는 것인지, 저 같은 사람은 그 시간을 보내고도 꿈에 도전할 기회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조 교수에 대한 논란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조 교수는 군 복무 시절 미국 법인의 한국 지부 임원을 맡았다는 기록이 확인돼 겸직 의혹까지 제기됐다.

지난 3일 미국 예일대 월드 펠로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기록된 조 교수 소개에는 그가 미국 A사의 한국지부의 임원(Director)으로 근무했으며 “한국과 그 너머 지역에서 A사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고 적혀있다.

조 교수는 육군 정책실에서 근무하던 2018년 예일대 월드 펠로에 선정돼 예일대 잭슨 국제문제연구소에서 방문학자로 수학했다. 월드 펠로는 예일대가 전 세계 인재를 초청해 강연과 리더십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일대는 조 교수의 신분을 A사 한국지부 임원으로 소개했지만 당시 그는 현역 군인 신분이었다. 군인의 경우 군인복무규율에 따라 겸직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군인복무규율 제16조(영리행위 및 겸직금지)는 ‘군인은 군무 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거나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고 돼있다. 다만 직무가 ‘정치적·반사회적 또는 영리적이 아니고 겸직해도 군무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만 국방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겸직이 가능하다.

A사는 항공·우주산업 분야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영리활동을 하는 사기업이기 때문에 조 교수가 2018년 당시 해당 회사를 위해 근무한 것이 사실이라면 겸직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이 될 수 있다. 이에 민주당 측은 “법인 설립 전 회사에 자문을 해준 것일 뿐”이라며 실제 취직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국민의힘 김병준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조씨에 대해 ‘전투복에 달린 예쁜 브로치’에 비유해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 발언에 “군인과 전문직 여성의 명예를 훼손한 망발”이라고 비판했다.

“나 같은 사람
기회도 없냐”

김 위원장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에 임명된 조 교수에 대해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적절한 비유는 아닌데, 전투복 비슷한 거 입고서는 거기에 아주 예쁜 브로치 하나를 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행자가 ‘액세서리?’라고 되묻자 김 위원장은 “액세서리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이분이 지금 보기는 좋은데 그동안 대규모 조직을 운영한 경험도 없고 학자로서 자기 역량을 다 보여주신 분도 아직은 아니다”라고 했다. 


<9do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