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지옥’ 여전사 김현주

“저요? 정의롭기보단 비겁했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1997년 데뷔한 배우 김현주는 곧 25년 경력을 맞이하는 베테랑 배우다. 선한 인상의 김현주는 대체로 기성세대가 그려놓은 참한 여인을 연기했다. 맑고 명랑한 이미지를 무기처럼 사용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 이미지를 활용했다. 그런 김현주가 캐릭터 변주의 갈증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각종 작품에서 선이 굵은 역할을 연기하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성공적인 변화가 엿보인다.

애니메이션 연출가이자 영화감독, 드라마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매우 정의로운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 정의로운 인물은 초자연적인 현상 속에서 혼돈이 야기될 때 관객의 시선으로 진실을 추구하며, 작품 속 인물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곧 관객에게 창작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페르소나가 된다. 

정의와 진실

영화 <부산행>의 정유미, <염력> 심은경, <반도>의 강동원, tvN 드라마 <방법>의 엄지원이 그 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점인 데다,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전 세계 1위를 기록한 <지옥>에서 배우 김현주는 민혜진 변호사 역을 통해 정의로움을 그려낸다. 

작품 내에서 정의로운 성향의 인물을 색채감 있게 연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매우 평면적인 모습만 보여주다 그치게 된다. 지극히 예상되는 뻔한 대사나 올바른 행위와 판단만 해서 기시감이 강하다. 대사량이나 분량은 많아 관객의 시험대에 오르는 장면은 많은데, 강렬한 인상을 남길 부분은 없어 연기를 잘한다는 인상을 주기 어렵다.

김현주가 연기한 민혜진 변호사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옥>에서 원인 모를 존재의 지옥행 고지와 지옥 사자들의 시연을 예견한 정진수(유아인 분) 새 진리회 의장은 지속해서 대중에게 올바른 행위를 강요하고 태도 면에서도 ‘더 정의로워야 한다’고 설파한다. 


“고지를 받은 자들은 죄가 있으므로 고지를 받은 것”이라며 타인의 죄를 집요하게 파낸다. 20년 전 고지를 받은 자신이 선한 인물로 변화했듯, 공포가 선을 만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다. 

민혜진은 작품에서 유일하게 김정식 의장과 더불어 정진수가 고지받은 사람이라는 진실을 아는 사람이다. 선을 강조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새 진리회와 화살촉과 맞서 진실을 알리려는 유일한 존재다. 지옥 사자들은 단순한 자연재해일 뿐 고지를 받은 이유가 죄 때문은 아니라는 진실이다.

화살촉으로부터 모친을 잃은 그는 목숨을 걸고 진실을 전하려 한다. 

정의와 진실이라는 단어는 민혜진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대략적인 설명만 들어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뻔한 인물에 가깝다. 하지만 김현주가 구현한 민혜진은 묘한 힘과 깊이가 있다.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액션마저 선보이며 여전사 이미지까지 드러낸다. 25년 차 내공이 엿보인다.

“민혜진은 진실을 말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다소 삐뚤어진 면이 있다고 느꼈어요. 어머니가 사고를 당하는데, 그 일로 인해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지옥> 내 사회는 비정상적이잖아요. 그래서 민혜진의 저항 의식이 정의로움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퇴보에 대한 거부감 심해”
“나도 나문희·윤여정처럼”

<지옥>은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다양한 군상의 얼굴에 렌즈를 댄다. 가짜 신념을 설파하는 이가 있고, 그 신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자가 있으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이도 있다. 또 민혜진처럼 목숨이 위협당하는 순간에도 진실을 전하는 이도 있다.


과연 김현주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저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정의롭다기보다는 비겁한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인 것 같아요. 신념이라는 게 특정한 사건이나 외부 자극으로 생기는 태도나 사고방식인데요. 저는 민혜진처럼 맞서 싸운 적은 없어요. 이번에 되돌아보니 조용히 나와 같은 신념을 가진 누군가가 대신 싸워주길 바란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제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랬기 때문에 민혜진에 더 진지하게 임했던 것 같아요. 닮고 싶은 사람이에요.”

김현주는 앞서 OCN <왓쳐>나 <언더커버>에서 정의로움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이러한 변주는 그간 김현주의 연기 인생을 미뤄봤을 때 상당한 변화에 가깝다. 1977년생으로 1997년 데뷔한 그는 어리고 맑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참하거나 혹은 귀엽고 매력적인 인물을 표현해왔다.

사극에서는 대체로 착했고, 현대극에서는 귀여움을 바탕으로 로맨스를 그렸다.

최근 들어 그의 캐릭터에 변화가 생긴 것. 그 역시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에 만족하는 듯했다.

“어린 시절 맡았던 역할은 제가 의도했다기보다는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인물을 주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캐릭터 변주에 갈증이 있었어요. 도전을 두려워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도전이 없으면 발전도 없잖아요. 퇴보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컸어요. <왓쳐>부터 변화가 있었는데, 많은 분이 좋게 봐주셔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어느덧 연예계 선배가 된 김현주는 특별한 스캔들 없이 신뢰를 쌓아온 배우로 여겨진다. 연 감독은 김현주를 캐스팅한 것에 김현주가 살아온 이력이 주는 신뢰감 덕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김현주는 <지옥>을 통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캐릭터 변화

“제가 경력만 오래됐지, <지옥>처럼 독특한 촬영 기법이 있는 작품은 경험한 적이 없어요. 저는 현장이 신기했는데, 후배들은 익숙하더라고요. ‘내가 멈춰 있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하나 같이 배울 게 많은 후배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도전을 통해 나문희, 윤여정 선생님처럼 존경심을 주는 선배가 되도록 노력하려고요. 매사 더 열심히 임하겠습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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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