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21세기형 히피 신유미

“가장 나다운 음악을 만들었어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서 보컬 선생님 ‘유미쌤’으로 잘 알려진 신유미의 정체성은 싱어송라이터다.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을 직접 한다. 독창적인 음악을 구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보컬 트레이너보다는 가수의 길을 걷고 싶은 그가 두 번째 EP앨범 ‘레이드 백 라이크 히피(Laid Back Like Hippie)’를 발매했다. “흑마술 같은 음악”이라 평가받은 그의 작품은 더 정교해졌다. 

안개가 자욱하고 서리가 군데군데 껴 있는 느낌이다. 차갑고 어둡다. 검은색이 섞인 보라색이 떠오르며, 처절하고 치열하다. 진하고 끈적끈적하다. 신유미의 첫 번째 EP앨범 ‘소 어딕티드 유(So Addicted You)’를 듣고 떠오른 이미지다.

흑마술

처절한 사랑을 주제로 했던 첫 번째 앨범에서부터 신유미가 가진 음악적 색감이 뚜렷하다.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서 보컬 트레이너로 보여준 따뜻하고 밝고 명랑한 이미지와는 대척점에 있다. 음악의 선배이자 소속사 대표였던 가수 윤상은 그의 음악을 두고 ‘흑마술’이라 칭했다. 

첫 음반을 내고 여러 활동을 하던 신유미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작업에만 몰두했다. 어떤 음악을 입혀도 자신의 색감으로 소화하는 여러 선배 가수처럼, 자신만의 음악적 색채을 만들기 위해 자신과 싸웠다. 

무려 1년간 작사와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하며 수많은 곡을 듣고 또 듣고,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 0.1초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도록 갈고 닦았다. 그렇게 2년 만에 탄생한 새 앨범 ‘레이드 백 라이크 히피(Laid Back Like Hippie)’는 기존의 색감은 묻어 있는 가운데 더 리드미컬해졌다.


이번 앨범을 두고 “내 음악을 가장 잘 알려주는 앨범”이라고 칭했다. 

“한 1년 동안은 음반 작업에만 매달렸어요. 사실은 10곡 넘는 정규앨범을 내고 싶었는데, 정규앨범은 너무 힘들겠더라고요. 그래서 5곡 정도의 EP앨범을 낸 거죠. 거의 모든 곡에 제 생각이 담겨있어요. 음반 작업 외에는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혼자만의 싸움이었죠.”

음반 발매는 비용이 발생한다. 아무리 작사와 작곡을 한다고 해도, 다양한 세션이 필요하고, 뮤직비디오 촬영 및 홍보 등 여러 부분에서 돈이 필요하다. 아무리 비용을 최소화한다고 하더라도 혼자 감내하기엔 쉽지 않다. 

투자를 받아야 하지만, 대중성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갈구하는 뮤지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신유미는 콘텐츠 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오디션에 참여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수십명의 뮤지션이 한자리에 모여 음악으로 경쟁했다. 명성을 얻은 신유미에겐 어려운 도전이었다. 

EP앨범 ‘레이드 백 라이크 히피’ 발매
“1년 넘게 혼자만의 처절한 싸움 있었죠”

“사실 큰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곡 작업이 여름에 마무리됐는데,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콘텐츠진흥원에서 하는 뮤지션 지원사업 ‘뮤즈 온(Muse On)’에 도전했죠. 수십팀 중 열 다섯팀을 뽑는 건데, 오랜만에 힘을 주고 무대에서 노래하니 만만치 않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어요. 압박감 속에서 노래한다는 게 정신적으로 지치더라고요.”

M.net <보이스코리아2> TOP4 출신으로 오디션에서 상당한 재능을 발휘한 그에게도 평가를 받는 자리는 여전히 익숙치 않은 듯하다. 심사위원으로도 손색없는 그에게도 어려운 행보였다고. 특히 음악적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불안감이 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제가 어렸을 때는 무대에서 크게 떨지 않았는데요. 이번에 제가 많이 떤다는 걸 알았어요. 아무래도 좀 다른 분들의 기대치가 생기다 보니까, ‘더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커지더라고요. 사실 아이돌을 가르쳐본 사람이잖아요. 그런 입장이었다가 평가를 받으니,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힘겨운 싸움을 극복하고 입상에 성공했다. 지원비를 받고 그 돈을 새 앨범 비용에 투자했다. ‘레이드 백 라이크 히피’는 그렇게 혼자만의 싸움을 이겨내고 만들어진 앨범이다. ‘히피처럼 리듬을 천천히’라는 앨범의 본뜻처럼 자유롭게 그리고 자기와의 싸움을 거치며 한 계단씩 밟아 만들었다. 

이전에는 처절한 사랑이 주제였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자유와 편견 없는 음악을 표현했다. 일상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곡을 완성했다. 타인의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굳혀 나아가며 힘든 일이 있다면, 잠시 훌훌 털었으면 하는 의식이 앨범 전반에 담겨있다. 

“제 색채는 유지한 채, 이전보다는 조금 더 빠른 템포의 리듬을 주고자 어반 알앤비를 레퍼런스로 뒀어요. 이전 앨범보다는 확실히 빨라졌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이 이번 앨범 같아요. 가장 저를 잘 알려주는 앨범이랄까요. 전반적으로 역동적이고 리듬의 힘이 많이 생겼어요. 더 신나는 느낌이에요. 어반 알앤비를 흡수하되 저만의 느낌은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1년 동안
음반 작업만

이번 앨범 역시 독창적이다. 여전히 몽환적인 느낌이 유지된다. 리듬감이 빨라지면서 처절한 색채는 덜해졌다. 가사도 현실적이다.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삶 전반에 대해 메시지를 전한다. 공감과 위로가 바탕에 있고, 누구나 행복하게 멋있게 살길 바라는 신유미의 존중이 묻어 있다.

“좀 웃긴 말이긴 한데, 제가 자유롭고 제한이 없고 편견이 없는 음악을 강조해요. 트랙을 쓰기 시작한 것도 보컬로만 있으면 제가 할 수 있는 걸 100% 할 수가 없어서예요. 부족하더라도 내 노래를 내가 써보자고 해서 앨범이 만들어진 거예요. 음악 안에서 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그중 통일성이 있는 곡이 모여 앨범이 됐죠.”

단순히 자유를 말한다고 해서 자유로움이 곡 안에 배는 것이 아니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태도로 살아야 음악에 신유미라는 존재가 묻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완전한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도 나왔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보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김현철 선배는 시티팝을 주로 하시는데, 발라드를 불러도 선배만의 라인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제가 가진 무드와 분위기가 묻어나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쉬운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고생하나 봐요.”

2020년 신유미 눈에 비친 세상은 ‘코로나 블루’였다. 저녁에 누구와 만나는 시간은 10시로 제한됐고, 4인 이상 모이기도 어렵게 됐다. 일주일에 몇 개씩 되는 저녁 약속을 잡았었는데, 약속 하나를 만드는 것도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된다.

예전처럼 술 한 잔 하며 북적북적 웃고 떠드는 광경은 생경해졌다. 놀고 싶은 본능을 억제해야만 하는 기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본능이 제한된다는 건 활력소가 사라진다는 걸 말한다. 

사람들은 예민해진다. ‘마스크 좀 쓰세요’라는 말에 화가 치밀고 갑작스럽게 다투기도 한다. 층간소음으로 살인이 나는 기현상도 생겨났다. 일상에서 규제가 강해졌고, 여행을 가도 완전한 해방감을 느끼기 어렵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류애를 담고 싶었어요. 근데 너무 거창하잖아요. 그런 건 아니고 흔히 말하는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싶은데, 구체적으로는 해방감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 모두 속박돼 살고 있잖아요. 특히 3번 트랙인 ‘둥글게’는 이 시국에 꼭 내고 싶은 노래였어요. 다들 예민해지고 알게 모르게 지쳐가고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마음으로요. 음악으로라도 자유로운 기운을 느껴봤으면 해요.”

진취적
능동적

지금이야 싱글앨범을 내는 추세다 보니, 앨범 내 스토리라인을 고민하는 일이 적어졌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가수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가 곡의 순서였다. 노래마다 담고 있는 의미를 여러 방면으로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라인을 만드는 것. 신유미의 이번 앨범에는 정통 앨범에 통용되는 스토리라인이 있다. 

“작은 자유부터 넓은 자유로 확장되는 의미가 있어요. 1번 ‘유 기브 미 버터 블라이즈(You give me butterflies)’는 규제에서의 자유, 2번 트랙 ‘히치하이커(Hitchhiker)’는 인생에서의 자유, 3번 트랙 ‘둥글게’는 관계에서의 자유, 4번 트랙 ‘두 유 러브 유어셀프(Do you love yourself? (Feat. iHwak))’는 불안에서의 자유, 5번 트랙 ‘페일 블루 도트(Pale blue dot)’는 존재에서의 자유랄까요. 1번부터 5번까지는 자유와 해방, 편견에 대한 저항 같은 키워드로 연결돼요.”

대부분 일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미국 드라마의 대사나 신유미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의 표현, 주위 사람들의 모습, 평소에 관심 있던 과학 분야 유튜브 영상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냈다. 특히 5번 트랙인 ‘페일 블루 도트’는 매우 철학적이다.


“과학자 칼 세이건이 우주에서 지구를 봤을 때 한 말이 ‘페일 블루 도트’예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뜻이에요. 지구가 엄청나게 크지만, 우주에서 보면 단 하나의 점이라는 거죠. 수십억 인구가 오돌토돌 모여 치열하게 사는 지구가 파란 점이란 얘기도 되잖아요. 우리 하나하나가 모여 빛을 내면서 푸른색 빛깔을 내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홀로 음반을 내는 것이 익숙하지만 4번 ‘두 유 러브 유어셀프’는 글로벌 프로듀서 아이확의 도움을 받았다. 곡 중간까지 써냈는데, 그 이상이 어려워 문의를 했던 것. 실력파 뮤지션인 아이확은 단번에 신유미의 속내를 읽어낸다.

<프로듀스 101> 보컬 선생님으로 유명
“친구들이 왜 보컬 학원 안 차리냐고…”

“노래를 만드는데 어느 이상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확에게 부탁을 했죠. 너무 신기하게도 뒷부분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지 알고 정확하게 곡을 준 거예요. 제가 협업을 하면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듣자마자 제가 원하는 걸 딱 알아챈 느낌이더라고요. 여러 모로 큰 도움을 받았죠.”

두 번째 EP앨범을 내는 데 영혼을 갈아 넣은 신유미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음악에 담아 전달하는 일을 이어가고 싶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그득하다.

“요즘 불현듯 떠오른 건 조롱에 대한 조롱이예요. 미국에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전형적인 인간을 두고 표현하는 건데요. 예컨대 백인 여자인데 금발의 머리 색에 분홍색 바지를 입은, 이름은 제니나 스테파니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아이가 이른바 ‘스테레오 타입’으로 불려요. 사람들이 정해놓은 이미지에 걸맞게 하고 사는 사람이죠. 조롱하는 뜻이에요. 저는 그 조롱을 조롱하고 싶어요. 스테레오 타입도 어찌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정체성이잖아요. 흔하다고 해서 또 무시 받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유미 유명세를 준 건 <프로듀스 101>이다. 연습생들에게 아낌없이 조언하고 실력이 향상되는 데 최선을 다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많은 사람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유미에게 보컬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그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나면서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직장인으로 치면 직장을 잃은 셈이다. 인지도를 넓힐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가 갈라진 것. 하지만 신유미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타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음악 작업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은 다르게 보더라고요. 저보고 록커래요. 그 이유가 자기라면 보컬학원을 차렸을 거래요. 그랬으면 떼돈 벌었을 거라고. 저를 존경한다면서 한 말이긴 해요. 근데 저는 ‘그걸 하면 과연 난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슨을 하더라도 제자랑 친해져야 하고, 음악에 대한 태도도 결이 맞아야 편해요. 음악이 아닌 스타가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사람하곤 작업하기 어렵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돈을 좀 못 벌어도 행복하게 사는 걸 원해요. 전 열심히 일하고 월에 1000만원 받는 것보다, 백수로 월에 100만원 버는 걸 더 원하거든요. 시간에 가치를 더 두는 거죠.”

음반 발매 후 방송과 무대활동을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완벽을 지나치게 추구해온 그는 최근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음악에 접근하려는 마음을 다지고 있다. 

다음 구상은…
조롱을 조롱

“사람들이 저보고 너무 완벽주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놀라시는 분도 있어요. 최근에 유튜브 채널 ‘대부님’이라는 방송에 나갔는데, 제가 음악에 너무 진지하니까 탁재훈 선배께서 ‘그래서 음악 안 하면 어떻게 할 건데?’라고 하시더라고요. 뭔가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너무 제가 완벽함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죠. 이제부터라도 거창하지 않고, 편안하게 먹방을 하듯 음악을 하려고 해요. 그러면 또 다른 제 음악이 탄생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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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시태를 수사하는 검찰과 공수처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국무위원들에 대한 내란죄 적용 여부를 두고 법리 검토에 나섰으나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직권남용 미수도 문제다.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하다. 비상식적 지시와 명령을 내린 혐의를 받는 전·현직 장관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이전부터 사건이 꼬이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공소장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의 그릇된 판단이 적나라하게 적시돼있다. 윤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다면 내란 동조 또는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지시를 듣기만 했다면 다르다. ‘미수’에 그치기에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증언 거부 모르쇠로 <일요시사>가 입수한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이 전 장관에게 특정 언론사와 여론조사 업체 봉쇄 및 단전·단수를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경찰 조사에서 이 내용은 빼놓고 진술했다. 단전·단수 지시 의혹에 대한 국회 질의에도 증언을 거부한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서 집무실로 들어온 이 전 장관에게 ‘24시경(자정에)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 단수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보여주는 등 계엄 선포 이후 조치사항을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포고령이 발령된 직후인 3일 밤 11시34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해 경찰의 조치 상황 등을 확인한 다음 3분 뒤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자정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JTBC·MBC, 여론조사 꽃에 경찰이 투입될 것인데 경찰청서 단전·단수 협조 요청이 오면 조치해줘라”라고 지시했다. 허 청장은 소방청 차장에게 같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공소장 내용은 경찰이 확보한 이 전 장관의 진술과 대조적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1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본부장) 조사에서 조 청장과 허 청장에게 연이어 전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따로 지시를 내린 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려 조 청장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은 조 청장이)다른 누구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며 “아무 응답이 없어 조금 기분이 나빠서 대화도 전혀 하지 못한 채 제가 일방적으로 끊었다”고 했다. 또 “이후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사건 사고 들어온 것이 있느냐? 때가 때인 만큼 국민 안전을 각별히 챙겨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사전에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상계엄에 관한 준비나 필요한 조치를 지시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취지의 경찰 질문에도 “전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이상민에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범죄 시도했는데 실패 미수범 처벌 불가?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만류에도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 국무위원의 상황 인식과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다르다.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며 계엄을 강행했다. 이후 조 장관에게 ‘재외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켜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서를 건넸다. 윤 대통령 곁을 거의 내내 지켰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첫 증인으로 출석해 “최 대행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쪽지와 조태열 장관에게 건넨 문건 외에도 한덕수 총리와 이 전 장관 등에게도 쪽지를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무위원 대다수는 윤 대통령이 최 대행과 조 장관에게 쪽지를 주는 걸 보지 못했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문건을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와 연결된 직권남용 혐의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애를 먹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공소제기 요구’ 의견으로 검찰에 이첩한 후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리 검토에 집중했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수사 역시 직권남용 혐의를 고리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공수처는 내란죄에 대한 직접수사 권한이 없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는가 여부를 검토해도 수사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죄는 범죄를 시도해 성공한 기수범 외 범죄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미수범에 대해서는 별도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갈리는 의견들 실제 단전·단수 의혹의 경우 이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지난달 13일 국회서 이 전 장관으로부터 “특정 몇 가지 언론사에 대해 경찰청 쪽에서 (단전·단수)요청이 있으면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사건을 다시 경찰에 이첩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계엄 선포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의혹을 포함해 경찰이 이 전 장관 사건을 넘겨받아 조사하기로 공수처와 협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수본 관계자는 “공수처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이 전 장관에 대한 소환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수본은 지금까지 계엄 사태와 관련해 이 전 장관을 포함해 총 53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중 당정 관계자는 28명, 군 20명, 경찰 5명 등이다. 지금까지 8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1명을 공수처 및 군 검찰에 이첩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별동대 성격인 사조직 ‘수사2단’ 의혹을 받는 방정환 2기갑여단장과 구삼회 국방부 혁신기획관도 지난달 22일 검찰에 송치했다. 공수처는 경찰에 한 총리와 이 전 장관의 사건을 이첩한 데 이어 검찰에도 이 전 장관 사건을 이첩했다. 한 총리 사건을 재이첩하는 이유에 대해선 “중복 수사 방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한 총리 조사를 한 차례 진행하고 계속 수사 중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수처가 사건을 다시 넘긴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체포·구속에 전념한다며 속도를 내지 못하던 이 전 장관 사건도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허석권 소방청장 등 소방청 간부들을 조사한 게 사실상 전부였다. 이 전 장관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지적에도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로 수사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 사건을 건네받으면서 논란만 키웠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구속했지만, 이후엔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후 사건을 검찰에 돌려보냈다. 진행은 했는데…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자 경찰과 협의도 없이 “집행을 경찰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첩 요청해서 받은 사건을 다시 돌려보내며 두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지체됐다는 비판에 대해 “이 전 장관의 단전·단수 의혹이 국회서 불거지자마자 관련자 진술을 받았고 자료도 검토했기 때문에 지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두 수사기관에 각각 사건을 반환하는 이유에 대해선 “경찰은 사건을 이첩할 때 3가지 혐의를 적시한 반면, 검찰은 군형법상 반란 혐의를 포함해 8가지 혐의를 이첩했다”며 “검찰이 보는 혐의점이 많고 현재 군 검사들이 함께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반란 혐의를 수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를 유지하며 경찰 간부 등 남은 수사 대상에 대한 수사에 총력을 모으기로 했다. 경찰이 공수처에 이첩한 피의자 총 15명 중 경찰 간부는 조 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김준영 경기남부경찰청장(치안정감),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총경) 등이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은 이미 구속 기소된 상태인 만큼, 김 청장과 목 전 대장만 남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경찰 간부는 저희가 직접 기소할 수도 있어서 최선을 다해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경무관 이상 경찰 공무원에 대한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국무위원들과 군·경찰 간부들을 상대로 내란죄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형법상 내란죄는 ‘우두머리’ ‘중요임무종사’ ‘부화수행’ 3단계로 구분해 처벌할 수 있다. 공수처, 사건 검경 재이첩 “시간만 날려” 중요임무종사·부화수행 혐의 적용 관건 나머지 수사는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에 대한 처리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피의자들이 계엄을 위헌·위법이라고 인식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거나 가담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우선 검찰은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소집한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11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놨다. 검찰은 한 총리, 최 대행(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 장관 등이 계엄에 반대했다고 보고 있다. 국무회의 자체도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계엄을 통보했을 뿐 실질적 논의도 없었던 데다 회의록도 없을 만큼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이 계엄에 대한 후속 조치나 사전 준비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 부화수행이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최근 정성우 전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을 비롯한 군 중간급 간부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정 전 처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를 지시하자 군법무관 회의를 거쳐 강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항변했다. 방첩사 병력을 출동시키긴 했지만 고무탄총·가스총만 가진 사실상 비무장 상태로, ‘선관위 청사 내부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지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정치인 체포조’ 지원 의혹에 연루된 경찰 간부들도 피의자로 입건해 지난달 31일 압수수색했다. 이들이 방첩사의 요청을 받고 체포조 지원을 지시하거나 묵인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고위직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중간직은 부화수행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국회 주변 계엄령 위반자 체포인 줄 알았지 특정 정치인 체포인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머리 아픈 남은 수사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부화수행 혐의를 어떤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지가 고비가 될듯하다. 계엄 관련 위헌·위법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로 받을 수 있는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일부 참작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란죄가 중대범죄인 만큼 부화수행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다. 공무원·군인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파면되고 연금이 절반으로 깎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