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00년 살았는데…' 대장동 원주민의 피맺힌 호소

“반값에 뺏긴 땅, 그놈들 주머니로”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대장동 사업을 두고 여러 가지 특혜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원주민들이 받은 토지보상액이 시세보다 낮았다는 점이다. 또 약속한 사안들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 성남의뜰에 지분을 보유한 한 금융 투자업계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마저 불거졌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은 우계 이씨 가문과 전이 이씨 가문이 모여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원주민들은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을을 일궈왔다. 트랙터 바퀴 자국이 짙은 울퉁불퉁한 길 양옆에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다. 원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평범하게 살던 곳이다.

개발서 외면
과거와 딴소리

대장동 원주민인 이씨는 과거 대장동을 자연과 어우러져 살던 곳으로 기억한다. 이씨 집안도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다양한 작물을 키웠다. 밭과 논 사이에 났던 길을 따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을 돕기도 했다. 일하는 도중 무더위가 심해지면 하천에 뛰어들어 더위도 식혔다.

그러던 이 곳이 시간이 지나면서 대장동에도 개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장동 개발이 추진된 시점은 지난 2009년부터다. 이씨에 따르면 이씨 가문의 A씨가 마을을 개발하자며 ‘씨세븐’이라는 민간개발업체를 원주민들에게 소개시켰다. 해당 개발업체는 원주민들에게 도시화 개발계획을 설명하고 주민들 설득에 나섰다. 


당시 원주민들은 처음부터 개발에 찬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시 규모가 커지고 개발이 되니 좋은 의미로 토지를 내주자는 목소리도 나오면서 대장동 개발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졌다. 

개발은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민간개발을 추진하던 씨세븐이 사업 차질을 빚게 된다. 그 이유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제안한 공영개발 방식을 성남시가 수용해서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LH가 철수하게 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10년 성남시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개발 방식은 민관개발로 재차 바뀌게 된다. 씨세븐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 등의 인물들이 현재 대장동 개발을 주도하는 화천대유자산관리(이하 화천대유)로 대거 이동한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돼 일부 단지는 완공이 된 상태다. 마지막 단지는 올해 완공 예정이다. 개발과 함께 이씨 집안이 소유한 토지도 개발 과정에서 수용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거졌다. 

공영개발 명목 동의 없이 토지수용
평당 600만원, 300만원만 보상받아

과거에는 현황도로가 있어 농사를 짓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국가에 사용료를 받지 않고 원주민끼리도 합의하에 사용해왔다. 

당초 이씨는 토지가 수용되면서 화천대유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화천대유가 약속한 사항은 이씨 소유 토지에 도로를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공사가 진행되자 약속한 사안과 다르고 도로도 다르게 놓였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대장동 개발지구 끝 쪽에 위치한 이씨 소유 토지 사이에 생태다리와 생태공원이 들어서면서 도로는 단절된 상태다. 

원주민은 화천대유 측에 약속을 지키라며 항의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현재 이씨가 소유한 대장동 22번지는 각각 22-1번지, 22-2번지, 22-3번지와 같이 3필지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22-2번지와 22-3번지는 맹지(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는 땅)가 됐다. 

해당 필지들이 맹지가 된 이유는 도로에 인접하지 못하고 통행을 할 수 없어서다. 개발 전에는 도로와 인접했으나 현재는 아무 쓸모 없는 땅으로 전락해버렸다. 현행법상 도로로 나갈 수 없게 된 맹지의 경우, 활용할 수 있는 용도가 없기 때문에 사회적 손실을 가져온다고 명시돼있다. 

따라서 토지주가 원할 경우 ‘주위토지통행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에 이씨는 주위토지통행권을 행사하기 위해 수차례 성남시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돌아온 건 ‘불가하다’는 답뿐이었다고 한다.

이후 성남시청 측에서 맹지를 처분하라는 통보도 받았지만 이씨는 시세변동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현재 대장동 일대의 시세차익은 5배 정도 난다. 이에 대해 이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토지수용 당시 잔여지 매수 청구에 대한 설명이 없던 탓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이유다.

주민은
빠져라?

이씨 토지에 도로를 놓을 수 없는 이유를 알기 위해 <일요시사>는 성남시청에 직접 문의했다. 시청 측은 이씨 소유 토지가 택지개발지구에서 벗어나 있고 보존녹지(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건축이 가능한 범위는 초등학교, 창고, 단독주택 등으로 명시)지역으로 지정돼있다고 답했다.

또 도로 건설이 공공의 목적을 가지지 않았고, 건축법에 따라 도로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즉, 도로를 놓을 경우 건축이나 개발 가능성에 문제가 있을 우려 때문이었다. 

문제는 비단 이씨의 땅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에서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으로 넘어가는 도로도 문제다. 하천 위에 왕복 2차선으로 놓인 다리는 시간과 상관없이 차량으로 가득 차 매일 같이 정체되는 구간이다. 

과거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차가 막히는 바람에 골든타임을 놓쳐 사람이 사망하기도 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한 기업 소유 부지 근처의 도로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바로 하나자산신탁이 ‘신탁’으로 수탁자(토지 소유자로부터 위탁받아 매각 등의 업무를 대신 처리) 지위로 소유한 임야 때문이다. 임야가 위치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길게 아스팔트가 닦인 길을 지나야 한다. 비록 바로 이어지지 않지만 밭을 두고 임야와 도로의 거리는 멀지 않은 편이다. 

이 지역은 판교 대장지구와 상당히 근접해 있고 대장지구 옆인 낙생공공개발지구와도 인접한 곳이다. 이곳은 하나자산신탁이 관리 중인 임야가 향후 대규모 택지로 개발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하나자산신탁은 대장동 개발을 맡은 특수목적법인(SPC) 성남의뜰 지분 5%를 보유한 회사다. 


시행사는
나몰라라

동원동 산42번지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흥관광개발공사가 지분 97%를 소유했고, 하나자산신탁은 같은 해 5월 수탁자 지위를 얻었다. 소유한 임야의 규모는 3만9600㎡를 상회하며 평수로 따지면 1만평이 넘는 규모다. 다만 지목이 임야고, 임야 주변의 지목상 도로라는 점만으로는 개발 행위가 불가하다. 

해당 임야는 보존녹지지역에 있는 공익용 산지로 당장 개발이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씨는 동원동과 대장동 일대에 낙생지구가 개발될 예정인데, 주변 길만 확장되면 충분히 건축 가능한 땅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하나자산신탁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성남시 도시균형발전과 관계자도 당장은 아니더라도 추후에 개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산42번지가 의제처리 규정에 따라 산지 전용 협의를 거친다면 허가될 수 있다”며 “이후 공사가 시작되고 준공이 된다면 임야의 지목도 변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요시사>는 특혜 의혹에 대해 하나자산신탁 측에 물었다. 하나자산신탁 측은 “땅의 소유자나 관계자가 아니면 알려줄 수 있는 사안이 없다”고 말했다. 임야의 소유주인 기흥관광개발공사 역시 아무런 답변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대장동 개발지구도 공익용 산지였는데 개발된 만큼 산42번지 역시 개발 가능성이 충분한 셈이다. 낙생지구의 공공사업은 지난 2019년부터 추진돼 오는 2024년에 완공될 계획이다. 분당구 동원동 일대 17만평이 넘는 공공주택을 짓는 사업이다. 

도로 좁아 터져 진입 못해 사람 죽어
성남의뜰 지분 가진 금융사 특혜 의혹

이에 이씨를 포함한 원주민들은 관련 사안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개발이 시작된 뒤 일부 토지주는 재산상의 손해를 입기도 했다. 

공영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관련 법에 따라 주민 동의 없이 토지수용이 가능했고, 당시 시세가 평당 600만원(2016년 기준)인데 비해 300만원을 보상받고 성남시에 팔았다. 토지가 많지 않다면 양도소득세 부담도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장동 개발은 올해 말로 개발이 거의 마무리된다. 이씨가 시청과 화천대유에서 추가적인 도로 등을 개설해주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이유는 화천대유의 돈이 투입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씨에 따르면 대장동 개발지구는 성남시가 추후 ‘세금’으로 관리한다. 성남시가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요시사>는 이씨의 맹지 문제, 생태다리 및 공원, 하나자산신탁 임야 부지, 근처 도로 등에 관한 사안들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 시행사인 성남의뜰에 직접 방문했다. 당시 로비는 불이 꺼진 상태였다. 불이 꺼진 상태로 안에서는 회사 관계자들이 회의실 등을 오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벨을 눌러도 안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이내 관계자가 나와 “아무것도 모른다”며 “돌아가 달라”는 말만 반복해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이씨는 “원주민들이 진정 원하는 건 마을의 발전”이라며 “돈보다는 발전을 위해 주민들이 토지수용을 허락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다른 지역의 원주민들도 개발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키맨’ 김만배 구속영장 기각, 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로 분류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14일 기각됐다.

법원은 김씨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진행한 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문성관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피의자 구속의 필요성이 소명되기는 보기 어렵다”며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김씨의 신병을 확보한 상태에서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검찰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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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