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오징어 게임' 로열로더 정호연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인기에 국민 대다수가 어리둥절하다. 한국적 색깔이 뚜렷한 작품에 세계가 이토록 열광하는데 이유를 찾기 바쁘다. 여러 의견을 내놓지만, 정답은 없다. 나라마다 정서가 다른데도, 하나 같이 뜨겁게 반응하는 것을 관통하는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국민도 이러한데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은 더 얼떨떨할 테다. 데뷔작부터 이러한 성공을 맛본 배우 정호연에게는 아무리 긍정적인 결과라 해도 혼란을 줄 수 있다. 아직 세계적인 인기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정호연을 만나 <오징어 게임> 후기를 들어봤다. 

E-스포츠에는 ‘로열로더’라는 말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스타리그가 한창 주가를 높일 때 튀어나온 말이다. ‘황제가 걸어온 길’이라는 의미의 로열로더는 처음 출전한 개인 리그 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한 선수에게 붙여주는 명칭이다.

여유
내공

신인이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을 제치고 우승까지 차지한다는 건 엄청난 재능이 뒷받침될 때나 가능하다. 그런 능력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다. 또 상황에 따라서는 커다란 운도 필요하다. 

배우가 작품 내에서 다른 연기자와 경연을 펼치는 건 아니지만, 때론 배우에게도 로열로더라는 수식어를 붙일 상황이 주어진다. 1994년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벼락스타가 된 차인표가 대표적이다. 1화가 방영된 다은 날 집 앞에 수많은 팬이 와 있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그야말로 데뷔작에서 인생이 뒤바뀐 경험을 한 유일무이한 존재다. 


현재 최고의 연기자로 평가받는 전도연이나 송강호, 이병헌, 전지현 등도 데뷔작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비교적 오랜 무명시절을 겪은 이도 있고, 대부분이 여러 작품을 경험한 뒤 대표작이 나오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 <은교>의 김고은, <아가씨>의 김태리, <마녀> 김다미, <버닝> 전종서가 그나마 데뷔작부터 두각을 나타낸 배우라 할만하다. 그런 가운데 그야말로 로열로더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재목이 나왔다. 지난달 17일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를 호령한 <오징어 게임>의 새벽 역으로 출연한 배우 정호연이다. 

<오징어 게임>처럼 전 세계 팬에게 열광을 받은 작품이 없었다. 영화 <기생충>이 유럽과 북미를 관통했지만, 동남아시아나 남미 등지에서까지 이토록 인기를 얻지 못했다. 대부분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로부터 높은 작품적 완성도로 관심을 받은 것.

대중성 면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기생충>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출연 배우 모두가 얼떨떨한 상황에 정호연과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인물이 말수가 적고,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깊은 터라, 이를 맡은 정호연 역시 진중한 타입이 아닐까 예상했지만, 실제 만난 그는 꽤 활발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카메라가 켜지자마자 “기자님들 반가워요”라며 손 하트를 던지고, 머리 위로 하트를 연신 그려냈다. 

넷플릭스 화제작 데뷔…세계가 놀랐다
“인기 실감? 전혀 못 느끼고 있어요”


신인 배우들은 물론 기성 연기자들조차 기자 인터뷰에서 부담감을 느끼는 것에 비해 정호연은 매우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인터뷰 현장의 공기를 자신의 내음으로 바꿔냈다. 20대 초반답지 않은 여유와 내공이 엿보였다.

<오징어 게임>이 가파른 상승세를 넘어 넷플릭스에 가입된 모든 국가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었음에도, 정호연에게 세계적인 인기란 다른 세상의 것이었다. 그저 SNS 팔로워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정도였다. 코로나19 시국 속에서 밖을 돌아다니는 것조차 어려운지라 인기를 실감할만한 물리적인 피드백을 받은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오징어 게임>이 인기가 있다는 걸 실감하는 건 지금인 것 같아요. 대부분 인터넷상에서 반응이 뜨거운 걸 알게 되는 상황이어서, 팬들과 직접적으로 만나 피드백을 받은 적이 없어요. 사실 정신도 없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라는 생각만 들어요. 정말 좋은 일이 생겼다는 느낌 정도예요.”

1994년생인 정호연은 2012년 케이블 채널 On Style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시즌1에 이어 2013년 시즌4에도 참가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시즌1에서는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시즌4에서는 패자부활전을 통해 살아남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들며 공동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이후 국내는 물론 세계를 넘나들며 모델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모델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스타다. 모델로서 경력을 쌓는 중에도 그의 머릿속 한쪽에는 연기자의 꿈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해외에서 자유시간이 늘어나면서 연기를 직접 배워보기도 했다. 

“모델 일을 하던 중에 ‘모델 그만하고 다음엔 뭐 할 거야?’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해외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또 해외에서 액팅 클래스를 나가봤는데, 영어가 뛰어나지는 않아서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여름과 겨울에 들어올 때 한 달씩은 개인 레슨을 받았어요. 해외에 있을 때 진지하게 연기를 고민했고,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배우가 돼보고 싶었어요.”

마지막 순간
후회 없이…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오징어 게임> 동영상 오디션에 참여하게 된다. 현 소속사인 사람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소속사로부터 영상을 보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소속사는 “최대한 빨리 해달라”고 요구했다. 

“최대한 빨리 연기하는 영상을 보내 달라고 했는데, ‘최대한 빨리’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오디션 영상을 찍어본 적도 없어서, 3일 동안 모든 에너지를 대본에 쏟아부었어요. 밥 먹는 시간도 빼가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연기에 접근하는 본질을 몰라서 계속 찾았던 것 같아요. 왜 새벽이란 애가 이 말을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문장으로 나열해보기도 했고요.”

짧지만 집중력 있는 노력이 통해서였을까,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 오프라인 오디션에 참여하게 된다. 누군가 앞에서 연기를 보여주는 것조차 처음이다 보니,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연기만 선보였다. 온몸에서 심각하게 떨림이 와 좋아하는 커피조차 끊었다.

“오디션을 잘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오디션 막바지에 왔을 때 ‘이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마지막 연기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에이미 애덤스가 ‘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한다’고 했는데, 저도 그 마음가짐으로 연기했어요. 개인적으로는 후회 없는 연기를 했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후련했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밥도 못 먹었는데, 마지막 연기를 하고 나서는 편해졌어요. 잠도 잘 잤어요.”

당연히 떨어질 것으로 생각해서 마음 편히 있었는데, 덜컥 붙었다. 소속 신인배우가 대작의 중요한 역할에 붙었다는 것에 소속사 식구들이 먼저 축배를 들었다. 정작 본인만 얼떨떨해했다. 


“오디션에 붙었다는 소식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커지고 급기야 공포로 몰려왔어요.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빨리 뛰었어요. 처음 대본 리딩하는 날에는 눈앞이 뿌옇고, 목소리도 너무 떨리더라고요. 나름 세계에서 런웨이도 해봤던 사람인데, 부끄러울 정도로 심하게 떨었어요. 모델하면서 경험한 적 없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지나친 긴장 속에서 정신을 부여잡았다. 긴장감에 모든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압박감도 들었다. 이러다간 자신을 믿고 뽑은 연출진은 물론 다른 배우들에게 큰 민폐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타개할 방법을 찾다 생각해낸 것은 황동혁 감독과의 일대일 대면이었다.

끝없는 탐구
어느덧 몰입

“감독님과 약속을 잡긴 잡았는데, 사실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없었어요. 그저 감독님께서 저를 왜 뽑았는지, 확신을 갖고 싶어서였어요. 감독님께서 ‘너는 이미 새벽이고, 새벽이로 충분해서 뽑은 거다’라고 해주셨는데, 그때 긴장을 좀 내려놓게 됐어요. 내가 연기를 엄청 잘하지는 못해도, 내 나이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압박감 때문에 못하면 안 된다고 되뇌었어요. 선배님들에게도 제 연기에 대해 계속 물어봤어요. 많은 대화와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연기에 몰입하고 있더라고요.”

경험이 없는 배우의 첫 연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준수한 실력이다. 새터민인 새벽은 어디에서도 존중받지 못한 환경을 거쳐왔다. 지옥 같은 삶에서 혼자 떠나고 싶어도, 고아원에서 자라나고 있는 동생 때문에 쉽사리 목숨을 버릴 수도 없는 처지다. 

국적이 다른 이방인으로 늘 편견과 깊은 외로움 속에서 싸워야 하는데, 의지할 대상도 없다. 그러던 중에 456억원이 걸린 서바이벌에 참여한 것. 그 안에서 우정을 느끼고 협동을 배우며 성장한다. 송곳같이 차갑던 성격에 조금씩 인간미가 침투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끝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주인공인 이정재나 박해수보다 더 극적인 서사가 있는 인물이다. 대사로 풀기보다는 눈빛이나 표정 등 비언어적인 이미지로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장면이 더 많다. 기성 연기자인 경우에도 쉽게 표현하기 힘든 인물이다. 말 그대로 시나리오에 적힌 새벽이 가진 감성을 모두 받아들여야만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 

적어도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정호연은 끊임없이 인물을 탐구했다. 새벽의 내면을 연구하기 위해 늘 일기를 썼고, 숨 쉬듯이 새벽이의 감성을 들여다봤다. 연기적인 기술이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커피도 끊었어요”
“저 아직 부족합니다…노력할 거예요”

“표현 방법은 제가 부족했다고 느껴요. 연기 디렉션을 흡수하는 속도도 느린 편이었어요. 여러 면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썼던 건 ‘진심으로 해야겠다’였어요. 이것만이라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배우들이 흔히 말하는 ‘이 배우로 살게 될 것을 기대한다’는 말도 새벽이를 통해 느꼈어요. 그래도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기자들이 한 질문을 곱씹어가며 최대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기본적으로 쾌활한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내면에는 매우 진중한 면모가 대답 속에 담겨있었다. 

그가 연기한 새벽은 텐션 자체가 매우 낮을 뿐 아니라 감정 변화도 적은 인물이다. 대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펼쳐 보인 정호연은 새벽과 어떤 점이 닮아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어요. 새벽이를 연기할 땐 새벽이랑 많이 닮았다고 여겼어요. 새벽이가 가진 고독함을 이해하기 쉬웠어요. 스스로 새벽이랑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방송 보면 저는 되게 밝고 하이텐션인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네요. 어쩌면 제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결정짓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는 이도 때론 있다. 데뷔작부터 상상을 넘어선 흥행을 거두고 주목을 받게 된 정호연의 경우, 너무 큰 관심에 오히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예도 있다. 

주위에서의 대우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칭찬과 아부가 늘어나기도 하고, 갑자기 굽신대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에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도 있다. 갑작스레 꽃길 위에 선 정호연에게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꽃길로?
걱정도!

“박해수 선배가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두 발을 땅에 잘 붙이고 있자’는 말이에요. 그게 지금까지도 계속 정신이 혼미해질 때마다 꺼내놓고 생각하는 말이에요.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안 좋은 날도 있고 그렇잖아요. 이런 말을 하기엔 제가 아직 어리지만, 그냥 하루하루 벌어지는 일들을 소화하면서 살아가려고 해요. 너무 크게 기대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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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이 끝났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갈렸다. 각 정당은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역할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선거를 치른 정치권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방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대선 정국이 마무리됐다. 2022년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던 진보 진영은 3년 만에 다시 여당의 지위를 되찾았다. 보수 진영은 비상계엄과 탄핵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이 대통령 궐위로 치러진 보궐선거인 만큼 당선인은 인수·인계 기간 없이 바로 임기에 돌입했다. 또 한 번 정권교체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6개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한 지 60일 만에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지난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9.4%,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2%,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 무소속 송진호 후보는 0.1%였다. 지상파 3사(KBS·MBC·SBS)가 진행한 출구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였지만 당락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한국리서치·입소스·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서 본투표 당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25개 투표소의 투표자 8만14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0.8%포인트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이 대통령 51.7%, 김 후보 39.3%, 이 후보 7.7%였다. 출구조사와 비교해 이 대통령은 낮았고 김 후보와 이 후보는 더 득표했다. 이 대통령은 1728만7513표를 얻어 역대 대선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지만 과반 득표율에는 실패했다. 역대 대선에서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선관위가 지난 4일 오전 6시21분 이 후보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확정하면서 이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시작됐다. 임기 개시와 동시에 국군 통수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모든 고유 권한이 이 대통령에게 자동 이양됐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30년 6월3일까지다. 비상계엄부터 대통령 탄핵, 대선까지 숨 가쁜 6개월을 보낸 정치권은 대선 후폭풍에 직면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던 민주당은 3년 만에 여당으로 복귀했다. 민주당 단독으로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범진보 진영(192석)으로 보면 20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권’의 등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 이어 대선서도 패배하면서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당장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고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범진보 진영과 비교해 107석이라는 ‘초라한’ 국회 의석수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차지한 이재명정부를 견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3년 만에 정권 탈환 국민의힘, 총선 이어 또 졌다 대선 후폭풍이 걷히면 정치권은 또다시 ‘선거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가 예정돼있다. 채 1년이 남지 않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윤석열정부 임기 중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윤정부서만 두 번의 지방선거가 열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대선 전초전 격이었을 선거가 이재명정부의 첫 대형 선거가 된 것이다. 이미 여당이 행정과 입법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서 지방 권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재명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른바 ‘절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가능성은 작지 않다. 대선 이후 몇 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서 여당이 진 적은 거의 없다. 바로 직전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게 대표적이다. 2022년 6월, 윤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열린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서울·인천 등 12곳에서 이겼다. 민주당은 경기·광주·전남·전북·제주 등 5곳에서만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도 국민의힘이 완승했다. 전국 226곳 중 145곳에서 이겼다. 서울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17곳에서 승리했다. 2018년 지방선거서 서초구를 제외한 24곳에서 민주당이 이겼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열린 재보궐선거서도 7곳 중 5곳을 차지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출마한 인천 계양을과 제주을을 제외한 대구 수성을·경남 창원의창·경기 성남시 분당구갑·강원 원주갑·충남 보령·서천 등에 국민의힘 깃발이 꽂혔다. 지난 지방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정도로 네거티브가 난무했던 20대 대선 직후에 열리면서 당시 투표율은 50%를 간신히 넘는 낮은 수준이었다. 역대 지방선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새 정부 탄생과 거의 동시에 치러진 만큼 ‘허니문’ 성격이 강했던 점도 국민의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 민심이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계엄·탄핵 보수 폭망 불과 3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대선 승리를 등에 업고 지방 권력까지 차지했던 국민의힘은 순식간에 야당으로 전락했고 민주당은 기세를 탄 상황이다. 이재명정부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승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한 호흡으로 같이 나가려면 기울어진 지방 권력 구도를 돌려놔야 한다는 취지다. 내년 6월3일 열릴 지방선거는 대선 이후 1년 뒤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이전 허니문 선거와 비교해 기간이 긴 게 변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임기 초인 만큼 여당에 유리한 이슈가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두고 진행 중인 재판이 1년 내내 사회를 달굴 가능성이 크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4일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불소추특권도 사라졌기에 혐의가 더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심리 때부터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 철저하게 부인해 왔다. 재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 1심 선고까지는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도, 취임사에서도 내란 종식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서 진행한 취임 선서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내수 시장은 ‘폭망’ 상태에 접어들었고 외부에선 관세 등으로 시장을 흔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경제 이슈는 선거판을 늘 좌지우지했다. 텃밭 빼고 다 뒤집혀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먹사니즘’이라는 표현으로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가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취임 선서에서도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 기업인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비상계엄 사태 극복과 경제 회복을 전면에 내세워 민심을 다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견제론’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의회 권력과 행정부를 장악한 이재명정부를 지방 권력으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은 2028년, 이 대통령의 임기 중반 이후에나 치러진다. ‘거대 야권’ 국면이 이 대통령의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사이 판을 흔들만한 대형 선거가 없기에 보수 진영으로선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총선이 지방의회 상황에 영향을 받는 만큼 국회 의석 상황을 바꾸려면 지방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문제는 내부 상황이 지나치게 어지럽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서 배출한 대통령이 벌써 두 번째 파면됐고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국민에게 외면받았다. 보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총선 때부터 나왔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선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준 윤 전 대통령 측 세력과 결별하는 과정서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둘러싼 혈전이 예상된다. 새 정부 1년 만에 맞대결 3년 전에는 여당이 압승 대선을 완주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의원은 비록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대선 기간 내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을 모두 처리하고 난 뒤에야 보수 진영은 지방선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선 과정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선거에 임하거나 지지층만 믿고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이면 총선, 대선서 이어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대선과 8대 지방선거, 이번 대선서 각 정당 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보수 진영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인지가 드러난다. 국민의힘 후보로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이 대통령이 나선 20대 대선 당시 승부를 가른 건 ‘서울’이었다. 민주당은 선거를 치르면서 서울서 진 적이 많지 않았는데 2022년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로 민심을 까먹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50.6%, 이 대통령은 45.7%를 받았다. 표수로는 31만표 차이였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전체 표 차인 24만7000표(0.73%p 차이)보다 컸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을 필두로 강원·대전·충청·TK(대구·경북)·PK(부산·경남)·울산서 승리해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방선거 때에는 대선서 패했던 인천과 세종에서도 국민의힘이 이겼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국민의힘)이 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무려 20%p 차이로 이겼다. 대선서 45.6%(윤 전 대통령) 대 50.9%(이 대통령)로 5.3%p 차이가 났던 경기도조차 48.9%(국민의힘 김은혜 후보) 대 49.1%(민주당 김동연 후보)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번 대선서 국민의힘은 강원·TK·PK·울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서 졌다. 지역별로 보면 6곳에서만 김 후보가 이 대통령에 앞섰다. 국민의힘 텃밭이라고 불릴만한 지역과 보수세가 강한 지역서 선전했을 뿐 수도권과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충청권서 모조리 패배했다. 여러 차례 대통령을 배출한 전국 정당이 ‘영남당’으로 쪼그라든 순간이다. 안정론? 견제론? 발 빠른 인사들은 벌써부터 지방선거를 정조준하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대선 패배 연설서 “저희가 잘했던 것과 못했던 것을 잘 분석해 정확히 1년 뒤 다가올 지방선거서 개혁신당이 한 단계 약진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어느 정도 승부가 예측됐던 이번 대선과 달리 내년 지방선거가 진짜 대결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 국민투표 가능성 ‘동시에 진행될까?’ 이재명정부는 개헌을 할 수 있을까? 대선일로부터 꼭 1년 뒤인 내년 6월3일 열리는 9대 지방선거서 개헌 이슈가 다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후 첫 대형 선거인 만큼 이날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견은 대선 기간 내내 나왔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지난 4월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로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며 “대선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정 회장은 “느닷없는 계엄령이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며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결정적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87체제’ 종말 초읽기? 그러면서 “개헌 시점은 늦더라도 2026년 6월이어야 한다”며 “이번 대선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협력 아래 정부가 지원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칠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대선후보 당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