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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16일 14시35분

일요신문고


<일요신문고> “불합격이요?” 모호한 카누 실기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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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장비에 피팅 불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일요시사>는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겠습니다. 이번 <일요신문고>는 억울하게 카누 지도사 자격 시험에서 불합격한 A씨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카누 특기생이었던 A씨는 평소 한강에서 카약을 즐겼다. 카누와 카약은 노를 저어 배를 앞으로 가는 스포츠로 매우 유사하다. A씨는 카누 관련 자격증 취득을 위해 지난 7월2일 미사리 카누·조정 경기장에서 생활체육 지도자 2급 카누 종목 구술 및 실기시험을 봤다.

발판 조절 불가?

시험 공고문에는 ‘개인 경기정을 사용할 경우 개별적으로 지참해 응시 가능하며 단 개인 경기정이 없는 경우 주관단체에서 준비하는 경기정으로 응시 가능하다’고 명시됐다. A씨는 전문·체계적인 시험이니 최신식 경기정을 기대하며 개인 경기정을 지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A씨의 큰 착각이었다. A씨 주장에 따르면 카누연맹(이하 연맹)에서 제공한 경기정은 피팅(발판) 조절이 불가능한 오래된 장비였다. 자동차 브레이크 페달처럼 배 안에 발바닥을 대고 풋레스트를 본인 신체 사이즈에 맞추는 것을 피팅이라고 한다. 

키가 187㎝에 육박했던 A씨가 카누 지도자 실기시험을 보는 데 있어 발판 조절은 필수였다. 카누 특성상 신체에 맞게 발판을 조절해 최적의 자세를 잡아야 최대의 힘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A씨에 따르면 실기시험을 앞두고 평가 심사위원이 응시생 얼굴, 수험번호, 이름 확인조차 없었다.

결국 A씨는 100점 만점에 55점으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합격 점수(70점)에 15점이 못 미치는 점수를 받은 A씨는 연맹에 항의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후 A씨는 국민체육진흥공단, 대한체육회, 연맹 등에 불합격 통보 및 시험 과정에 대해 이의제기를 신청했다. 

A씨가 응시한 생활체육 지도자 2급 카누 종목 실기 구술은 대한체육회에서, 필기는 체육진흥공단에서 각각 담당했다. 이 모든 걸 관리하는 주관 단체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다. 

A씨는 “맨 처음에 대한체육회에 문의했으나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 모든 곳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다가 결국 연맹과 연락이 닿았다”고 밝혔다.

연맹 측과 이야기를 나눈 A씨는 시험 당시 촬영했던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연맹 사무실을 방문했다. 하지만 연맹 관계자는 A씨에게 시험 초반의 보트 촬영분이 없고 그 이후부터 촬영이 됐다는 답변을 받았다.

당시 A씨는 시험 당시 조교가 모든에 촬영된다는 말도 들었다. 초반 부분 실수 없이 잘 해냈다는 게 A씨 입장이다. 그러나 평가에서는 초반 부분에 미숙했다는 이유로 A씨는 B등급을 받았다.

A씨가 억울했던 점은 또 있다. A씨가 본 합격 점수표에 따르면 경기정이 처음 나갈 때 파워 부족으로 살짝 흔들리고 발판이 고정돼 무릎이 몸쪽으로 과하게 밀착돼 골반과 무릎의 움직이 부자연스럽단 이유로 감점됐다. 만약 발판 조절이 가능했다면 골반 몸통 가동범위가 달라지고 파워가 상승해 최소 70점 이상은 받았을 것이라는 게 A씨 주장이다.

영상과 채점 결과를 지켜본 A씨는 카누 시험담당관과 대화를 하면서 이상한 점을 많이 느꼈다. 카누 시험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했다고 느낀 것이다. 

결국 A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진흥과에 연맹 담당자의 의견 번복, 문화체육관광부의 소극 행정, 불공정했던 시험 과정 등에 대해 민원을 접수했다. 4일 뒤 A씨는 합격 내정자에 대한 의혹을 내비치며 유사한 내용으로 민원을 접수했다. 

불합격 억울한 사연은?
주먹구구식 평가 진행?

약 2주 뒤 문체부로부터 답변을 받은 A씨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문체부는 “응시자가 제공된 경기정의 발판 조절을 희망할 경우, 이에 필요한 시간을 제공하는 등(발판 조절을) 제한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시험 과정 중 촬영분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영상은 돌발 상황에 대비해 촬영한 것이며 모든 촬영은 임의로 편집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미흡하게 촬영이 이뤄진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시험 영상 재판독이나 재점검’을 요구하며 민원을 접수했다. 권익위에서 A씨에게 답변을 한 문체부의 같은 부서, 같은 담당자로 이관됐다. 

A씨는 권익위에 소극 행정으로 다시 한 번 민원을 접수했다. 그러자 문체부는 “전문성을 갖춘 시험위원이 평가항목별 동일한 평가 기준에 따라 채점을 진행했다”며 “채점이 완료된 실기 구술시험에 대해 다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A씨는 정구천 카누연맹 회장에게 직접 연락해 해당 내용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후 A씨는 3일간 대한체육회 정문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며 자신의 SNS에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A씨는 “문체부 측은 경기정에 발판 조절이 가능했다고 하는데 불가능했다. 본인처럼 키가 큰 다른 응시생도 조절이 되지 않아 시험 볼 때 힘들었다고 서로 토로했다. 전문가를 두고 평가했다고 하지만 시험 총책임자는 카누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문체부는 연맹의 말만 들어주고 억울한 사람의 말은 들어주지 않는다. 당시 시험 상황이 찍힌 영상이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공하지 않는다. 최근 축구, 야구 등 타 스포츠에서 비디오판독 시스템을 도입해 판독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카누 지도자 시험 과정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카누연맹에 문의한 결과 발판 조절이 가능한 경기정이 제공된 것으로 확인했다. 개인별 불이익은 없었다. 시험 평가 부분에 있어 평가할 수 있는 위원 3명이 위촉돼 진행하게 돼있다. 평가 기준이 있고 그에 따라 합격 여부가 정해진다. 지난 7월2일 있었던 시험은 문제 없이 진행됐다”고 답변했다. 

이어 “촬영 목적은 재평가가 아닌 응시생 안전을 위한 것이며 촬영 시작 시점이 늦었던 점에 대해서는 촬영한 사람이 착각해서 일어났다”고 밝혔다. 

연맹 관계자는 “원래 경기정을 제공하는 건 아니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준비하지 못한 응시생에게만 빌려준다. 발판 조절이 가능한 배가 제공됐다. 감독관이 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응시생이 스스로 조절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응시생 잘못”

이 관계자는 “발판 조절을 원하는 응시생이 평가 요원에 말했으면 충분히 가능했다고 본다. 발판 조절이 가능하게 경기정을 띄어놓을 수 있는 장치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시험 담당관은 연맹 직원이며 시험볼 때 자료에 서 응시생 사진과 이름을 육안으로 보고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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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매질에 정신병원까지…<br>천주교 산하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고발

[단독] 매질에 정신병원까지…
천주교 산하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고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제부터 이곳이 나의 집이라 했다. 이제부터 이 사람들이 나의 부모라 했다. 하지만 철들기 전부터 알았다. 집에는 온기가 없었고 부모는 사랑이 없었다. 약하면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 집의 탈을 쓴 정글, 부모의 탈을 쓴 사육사. 사육사의 손가락이 나를 향하는 순간, 나는 ‘투명인간’이 됐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보육원에 있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사라졌다. 얼굴,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부모 없는 아이, 나는 고아였다. 보육원을 집이라 배웠고, 보육교사와 수녀·수사들은 부모를 자처했다. 18세, 보호 종료가 되자마자 집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부모를 고소했다. 버린 부모 학대한 부모 지훈이(가명)에게 부모란 그저 희박한 개념이다. 낳아준 부모는 지훈이를 버렸다. 박지훈이라는 이름은 그 유래조차 알 수 없다. 땅 지(地), 공 훈(勳). 한글 프로그램에서 지와 훈을 한자로 변환했을 때 첫 번째로 나오는 글자를 조합했다. 박씨라는 성도 어떻게 붙게 됐는지 모른다. 지훈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꿈나무마을(옛 소년의집)로 옮겨졌다. 그리고 18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지훈이에게 꿈나무마을에서의 10여년은 ‘진절머리’가 나는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 그는 18세 이후 꿈나무마을은커녕 은평구에도 잘 가지 않는다. 당시에 하도 울어서 이제는 눈물도 말라 버렸다. ‘맞고 있다’고 자각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가해지는 행위가 ‘학대’라는 것을 알았다. 10여명의 소년이 모여 있는 방은 정글이었다. 누구는 호랑이, 누구는 사자, 누구는 토끼. 보육교사는 사람, 사육사였다. 보육교사가 부여한 역할을 소년들은 충실히 이행했다. 힘이 약하고 몸이 왜소했던 지훈이는 토끼였다. 사육사의 ‘토끼몰이’는 집요하고 잔인했다. 당시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몸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졌다. 마음도 망가졌다. 무엇보다 괴로운 점은 같이 망가져 가는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지훈이와 같이 꿈나무마을에서 생활했던 윤수(가명)는 밤이면 길거리를 한없이 배회하다 경찰에 붙잡히는 일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112로 신고 전화를 걸어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장난전화가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듯한 답답함이 윤수를 지배했다. 방구석에 처박혀 종일 휴대폰만 보다 견딜 수 없을 때 뛰쳐나갔다. 새벽에 몇 번이나 경찰의 전화를 받은 지훈이는 “10년 뒤에 윤수가 정신병원에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윤수는 누구보다 빠르게 포기와 체념을 배웠다. 보육교사들과 그들에게 특권을 부여받은 아이들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렸다. 꿈나무마을에서 체득한 무기력함은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꼬리표처럼 윤수를 따라붙었다. 지훈이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윤수와 친구들,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나서기로 결심했다. 통제 빙자 고문에 가까운 기합·폭행 밤마다 불러 마사지시키고 보복까지 사실 지훈이는 꿈나무마을에 있을 때부터 내부 상황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꿈나무마을 보육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 보호 종료 이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도 제소했다. 인권위는 해당 내용이 1년 이상 경과된 사건이라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변만 전해왔다. 결국 지훈이는 고아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있는 단체인 고아권익연대를 찾아 자문을 받고 법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지훈이는 지난달 2일 꿈나무마을 보육교사 성모씨, 장모씨, 정모씨 등 3명을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가 지난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지훈이를 만나 들은 피해 사실이 고소장에 빼곡하게 기록돼있었다. 지훈이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또렷하게 기억했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행동을 했는지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해 말했다. 가 단독으로 입수한 고소장에는 3명의 보육교사가 지훈이를 신체·정서적으로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 고문에 가까운 기합이 ‘통제’라는 이름으로 서슴없이 행해졌다. 피고소인들은 몇몇 아이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다른 아이들을 때리도록 지시했다. 피고소인들의 조종 아래 소년들은 훼손돼갔다. 지훈이는 나무 몽둥이, 대걸레 자루, 플라스틱 빗자루 등으로 엉덩이, 머리, 팔 등을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피고소인이 휴대폰으로 지훈이의 머리를 찍어 남은 열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샤워장 구석에 몰아넣고 호스와 샤워기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번갈아가며 수십분간 뿌리기도 했다. 지훈이와 소년들은 화장실에서 전과를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500~1만번 반복해야 했다. 지훈이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 좁은 곳에 애들이 모여 기합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더웠겠나. 애들이 쓰러져도 기합은 끝나지 않았다”고 진저리를 쳤다. 엎드려뻗쳐나 기마 자세로 1~2시간씩 있는 일은 예사였다. 망가진 몸과 마음 장궤(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꿇어앉음) 자세로 종일 기도를 하도록 시킨 일도 있었다. 천주교에서 하는 묵주기도를 10시간 가까이 하기도 했다. 한 여성 피고소인은 밤마다 지훈이를 불러 자신의 어깨와 허벅지, 다리 등을 매일 마사지시켰다. 마사지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음날 어김없이 보복이 이어졌다. 피고소인은 다른 아이들에게 지훈이가 ‘지능이 낮은 아이’ ‘장애인’이라고 말하며 모욕했다. ‘투명인간’이라는 벌을 만들기도 했다. 투명인간으로 지목되면 꿈나무마을의 어떤 아이와도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도 혼자 먹어야 했고, 그마저도 그릇을 엎어버리는 등 눈치를 줬다. 벌은 한 달간 지속됐다. 피고소인들은 교대근무를 했기 때문에 지훈이는 늘상 학대에 노출돼있는 셈이었다. 엉덩이가 찢어지고 곪아 터진 상황에서도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왜 때리느냐’는 반항에, 친구와 다퉜다는 이유로 지훈이는 정신병원에 행정입원(강제입원) 당하기도 했다. 모두 부모를 자처한 이들이 한 행위였다. 지훈이는 “원장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원장님하고 사무국장님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네 발로 곱게 (정신병원에)들어갈래, 강제로 (정신병원에)끌려갈래’라면서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며칠 뒤 진짜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훈이에 따르면 정신병원에 끌려갈 당시 원장실에는 경찰, 119구급대원, 구청 관계자 등이 있었다. 그는 “스타렉스 봉고차에 타고 30분 정도 가서 고양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 너무 무섭고 끔찍한 기억이었다”며 “(정신병원에 있는)간호사 누나들한테도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지훈이를 정신병원에서 구한 건 학교 선생님이었다. 지훈이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면서 학교에 나오지 않자 꿈나무마을에 자초지종을 확인하고, 담당 의사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항의한 것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당시 선생님은 “(지훈이의)학교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꿈나무마을 안에서만 그런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문제 제기 해도 끝내 묵살 실제 가 확인한 지훈이의 생활기록부에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꺼리는 일을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해주는 아주 듬직하고 든든한 학생’ ‘힘든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해 행동하는 유쾌한 학생’ ‘자기 생각과 주장을 적절히 표현할 줄 알고 약속을 중요시 여기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큼’ 등 긍정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었다. 지훈이의 고소를 대리하고 있는 유정화 한강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고아들은 세상천지 그냥 자기 혼자뿐이다. 보육원에는 그렇게 세상천지 자기 밖에 없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 보니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약자는 바로 이 아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훈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반복된 학대로 감정 조절 기능이 죽어버렸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 변호사는 “이 문제가 과연 보육교사 3명만의 문제일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영 주체인 꿈나무마을 관리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꿈나무마을을 관리하는 수녀와 사무국장 등은 지훈이에 대한 피고소인들의 학대 행위를 알고 있었다. 지훈이가 여러 차례 보육교사들에게 학대 피해 사실을 언급했던 것. 이번 사건에서 더 충격적인 점은 꿈나무마을의 운영 주체가 수녀, 수사 등 천주교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창설된 재단이라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꿈나무마을을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2019년), 한국 예수회 산하 재단법인 기쁨나눔(2020년~ ) 등에 위탁, 운영을 맡겼다. 지훈이가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꿈나무마을의 운영 주체는 마리아수녀회였다. 반항하면 시설에 강제입원 피해자 고소…증언도 이어져 꿈나무마을 심모 사무국장은 와의 통화에서 “재단이 바뀌어서 해당 내용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도 “직원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심 국장은 자신도 꿈나무마을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고 털어놨다. 지훈이가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심 국장도 꿈나무마을에 있었던 셈이다. 마리아수녀회가 꿈나무마을 운영에서 손을 뗀 시점인 2019년 말까지 서울분원장을 맡았던 권모 수녀는 취재 전까지 피소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권 수녀는 당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수녀를 관리하는 수녀’라고만 말했다. 권 수녀는 현재 마리아수녀회 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권 수녀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은 저희가 알 길이 없지만 저희 집에 머물렀던 아이에 대한 일이라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라며 “저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현재의 아이들이나 이곳에서 저희와 가족이 돼 생활을 같이했던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이곳은 ‘집’입니다. 집에서 일어난 아픈 기억에 대해 저희도 귀와 마음을 기울이겠습니다”라고 전해왔다. 권 수녀를 비롯한 당시 사무국장 등 꿈나무마을 관계자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정말 몰랐다면 직무유기, 알았다면 아동학대 방조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가지 공교로운 부분은 꿈나무마을 관계자들은 물론 권 수녀까지 지훈이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는 점이다. 심 국장은 로 전화를 걸어와 “(지훈이의)친구가 잠을 깨우는 과정에서 (지훈이가)가구 등 기물을 파손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해서 정신병원 행정입원 절차를 밟았다”며 “절차를 확실하게 지켰다”고 강조했다. 권 수녀 역시 “강제입원에 대해 문제가 됐던 점은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훈이는 “당시 가구는 내가 부순 게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 원장님과 사무국장님께 명확하게 이야기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며 “정신병원에서 나온 이후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무엇에 대한 무혐의 처분인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에 대한 조사도 없이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수녀·수사들 관리 책임은? 유 변호사는 “피고소인들의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는 1975년 ‘소년의집’으로 설립된 보육시설의 존립 이유를 의심케 한다”며 “확실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훈이는 고소 이후 오히려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꿈나무마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훤칠하게 자란 그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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