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한전 사장, 정부에 초강수 '왜?'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11 09: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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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김쌍수' 꼴 나지 않으려면 '선공'이 최고?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자산총액 165조원 규모의 '공룡 공기업' 한국전력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김중겸 한국전력 사장이 정부를 상대로 연신 초강수를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올해 내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더니 최근 전력거래소에다 수조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사태가 이쯤 되자 사장 경질설까지 솔솔 나오고 있는 상황. 그는 왜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걸까?

적자에 허덕이는 김중겸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두 자릿수 전기요금 인상안 제출에 이어 전력거래소에 4조원이 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정부를 상대로 계속해서 초강수를  두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떼쓰기 왕?

지난 5월 한전은 정부가 두 자릿수 전기요금 인상안을 받아 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평균 13.1% 인상안을 요청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퇴짜. 2개월 후 한전은 오히려 총 16.8%(평균 10.7%인상 포함)에 달하는 인상안을 의결했다. 이 의결은 관행을 깬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한전이 비공개로 인상안을 지식경제부에 전달하면 지경부가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를 거쳐 정부안을 확정하고, 이를 다시 한전이 이사회를 열어 의결하는 '짜고 치는' 방식이었으나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지경부에 인상안을 넘긴 것.

뿐만 아니라 한전은 정부 방침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두 자릿수 요금인상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한 자료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어림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결국 한전은 5% 이하로 인상하라는 정부의 권고안을 받아들이며 지난달 3일 전기요금 평균 4.9%를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인상하고 하반기에 추가 인상을 노리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것으로 한전 전기요금 인상 논란이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한전은 국내 전력시장 운영기관인 전력거래소와 그 산하 비용평가위원회를 상대로 4조400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것이라고 밝혀 세간을 놀라게 했다.


한전은 한발 더 나아가 전력거래소 등이 정산조정계수 정상화를 지연해 1조5000억원의 추가손실이 예상되므로 전력거래대금을 초과하는 부분은 감액 지급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한전에 따르면 해당 대금이 책정되는 과정에 반영되는 정산조정계수 지표가 한전에 불리하게 적용돼 지속적으로 전력거래소에 개선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로 인한 누적손실이 4조4000억원에 육박하므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전력거래소는 물론 전력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까지 크게 반발했다. 아무리 전력거래가격 산정에 오류가 있다 해도 함께 전력공급을 담당해 한 식구나 다름없는 정부기관을 상대로 천문학적 배상을 요구한다는 건 상상하기조차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전력거래소는 "한전은 지금 전기요금 인상 좌절에 따른 불만을 애꿎은 정부기관에 풀고 있다"며 전력거래대금을 감액 지급하겠다는 통보에 대해서 "일부라도 미결제하면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고, 고의적으로 이를 시도하는 경우라면 전력시장 질서를 해치는 심각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관을 위반할 경우 이를 주도한 임원 등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며 한전에 대해서는 제재금도 부과할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이에 지경부도 전력거래소를 거들며 "한전이 제기하는 소송이나 전력대금 감액 조치가 전력시장 운영에 지장을 줄 경우 제재하겠다"라는 경고성 공문을 한전에 발송했다. 이를 접한 다수의 언론들은 '제재'를 '경질'로 해석해 '김중겸 사장 경질설'을 보도했다. 논란이 커지자 지경부는 "한전 사장에 대한 교체 건의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고 청와대도 "현시점에서 후임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끝없는 전기료 인상 논란 재점화
재벌기업엔 특혜, 한전만 봉이야?

한전은 전력거래소와 지경부의 강한 경고에 소송은 일단 유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은 않았다. 한전은 연내 전기요금을 추가 인상할 것이라고 밝혀 전기요금이 인상된 지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인상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이는 지난달 27일 "올해 안에 전기요금을 다시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홍석우 지경부 장관의 발언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마치 퇴진을 각오한 것처럼 보이는 김 사장의 초강수들은 배임논란을 피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전기를 계속 원가 이하로 팔아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김쌍수 전 사장이 개인주주들부터 2조800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해 그 재판이 지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을 김 전 회장이 '안' 올린 것이 아니라 정부의 극심한 반대로 '못' 올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전 경영진에게 책임이 있으므로 소액주주의 천문학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한전 사장에게 건 것이다.


더구나 개인을 상대로 한 소송이기에 김 전 사장은 수억원 규모의 변호사 선임 비용도 자신이 부담하고 있다. 이에 김 전 사장은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임기를 불과 3일 남기고 돌연 자진사퇴를 해 정부를 향해 불만을 표출했고 "이번 소송에 패소하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 낼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 이후 한전 경영진과 이사회는 추후 책임추궁을 당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끝까지 무리한 요금인상을 주장하고 정부기관을 상대로 수조원대 소송까지 제기하며 "우리도 할 만큼 했다"라는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 관계자도 "공공기관과 개인을 상대로 4조원대 소송을 하겠다는 행위 자체는 잘못됐지만 그 배경 자체는 이해가 간다"고 말해 김 사장의 처지를 대변했다. MB정부 들어 한전의 적자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한전의 적자누적을 강요했고, 이제는 자산건전성마저 한계상황에 와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물가관리 기조가 한전에만 적용됐을 뿐, 민간업자에겐 엄청난 특혜를 안겨줬다는 데 있다. 정부는 민자발전사가 생산하는 전기에 대해서만은 적정이윤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비싼 전기값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어 포스코·GS·SK 등 재벌 계열사들은 MB정부 들어 해마다 영업이익률 15~30%에 이르는 호황을 누려왔다.

이에 삼성물산·대우건설 등 24개 기업이 내년부터 시행될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맞춰 민자발전 운영을 신청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전력노조의 한 관계자는 "물가를 잡겠다며 한전의 적자구조가 심화됐는데, 그 와중에 민자발전사들은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전은 'CEO무덤'

이처럼 정부는 물가안정이라는 공익성을 위해 공기업 한전이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상장기업이란 사실을 애써 외면해 왔다. 그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부의 선처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한전 경영진과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않아 수조원의 손해를 봤다는 소액주주들 사이에 충돌이 계속돼 왔다. 또 할 말 많을 것 같은 김 전 사장에 이어 김 현 사장이 곤혹을 치르게 되자 한전은 '스타CEO의 무덤'으로 불리고 있다.

이를 보면 김 사장이 소송을 당할 바에 경질당하고 말겠다는 식의 강행돌파를 선택한 것도 김 전 사장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인 셈이다. 하반기까지 계속 이어질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 논란이 합리적이고 극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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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