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세상 떠난 '문제인물' 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10 1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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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종교인'이었나 '희대의 사기꾼'이었나?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통일교의 창시자이면서 전 세계에 300만 신도를 거느린 '자칭 메시아'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성화했다. 문 총재는 그가 쓴 자서전에서 자신을 평한 바대로 항상 논쟁을 몰고 다녔다. 그 결과 '세계적 참 종교인'에서 '희대의 사이비 교주'까지 사람들의 평가가 극에서 극을 달리는 인물이 됐다. <일요시사>에서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굴곡진 인생여정을 돌아봤다.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문선명 통일교 총재는 자서전 서문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처럼 회고했다. 문 총재는 시끄러운 세상을 뒤로하고 지난 3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성화(인간이 부끄럼 없이 살다가 성스럽게 영계에 간다는 의미)했다.

김일성 장례 이후
18년만의 13일장

문 총재는 지난달 14일 폐렴으로 시작된 합병증으로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받았으나 현대의학으로 병세 호전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에 따라 지난달 31일 경기 가평군 청심국제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오다 별세했다.

통일교 측은 고인의 장례를 13일장으로 치른다고 밝혔다. 13일장은 1994년 사망한 김일성 북한 주석의 장례 이후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례적인 일. 통일교 관계자는 13일장으로 치르는 이유에 대해 "문 총재 생전에 주로 13일로 큰 행사를 치렀다"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3일장을 치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선명 천지인참부모 천주성화식(天宙聖和式)'이라는 명칭의 성화식은 오는 15일 오전 경기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에 위치한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 장소는 문 총재의 빈소가 마련된 곳으로 3만명 이상 수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3일부터 5일까지 전 세계 통일교 신도들이 각 지역 처소 등에서 문 총재를 기리는 '특별정성기간'을 가진 후 6일부터 13일까지 8일간은 마련된 빈소에서 신도와 일반 조문객의 참배가 이뤄진다. 또 15일에 한해 문 총재의 시신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문 총재는 통일교를 단 50여 년 만에 세계적인 신흥종교로 일으킨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그는 전 세계에 걸쳐 약 300만 신도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총 6조원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자산을 굴렸던 재력가였다. 

'자칭 메시아' 생전에도 극명하게 엇갈렸던 평가
언론·외교·교육 등 전방위 걸쳐 국제적 영향력

뿐만 아니라 문 총재는 미국의 닉슨·레이건, 소련의 고르바초프 등 당대 최고의 정치권력과 교분을 맺으며 외교적 다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으며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의형제 관계를 맺으며 평화로운 남북관계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렇게 문 총재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태어나 그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문 총재에 대한 평가는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통일교 신도를 비롯해 상당수 사람들이 문 총재를 두고 '세계에서 인정한 큰 종교인' '한국의 예수' '이 시대의 선각자' '남북을 넘나든 통일 사업가' 등의 찬사를 보내는 한편, 개신교 세력을 중심으로는 '자칭 메시아' '이단의 교주' '자신을 신이라 칭한 희대의 사기꾼' '종교 팔아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 자' 등의 비난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관점을 빼고 순수하게 그의 일생과 업적만 놓고 보았을 때 어떤 인물일까? 그의 굴곡진 인생 여정을 돌아봤다.

그는 1920년 1월 6일 8남매 중 차남으로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두고 "눈이 작아 '쪼금눈이'로 불리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울어서 '하루울이'라고 불리는 고집불통"이라고 회상했다.

'자칭 메시아' 문선명
'하나님 나라' 향한 여정


그는 15세가 되던 해에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한다. 불과 1년 뒤 16세가 되던 해인 1936년 4월 부활절 아침 기도 중에 예수가 나타나 인류구원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문 총재에게 직접 당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세계평화를 위한 긴 노정이 시작되었다고 문 총재는 자서전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20대 중반 또 한 번 영적 체험을 하면서 통일교의 논리와 교리를 가다듬었고 '천일국(天一國·하나님 나라)'을 건설하겠다는 뜻을 세웠다고 말한다.

그는 18세에 정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에 입학하여 예수교회 명수대예배당의 반사로 신앙생활을 했다. 1941년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와세다대학 부설 고등공업학교 전기과에서 공부했다.

문 총재는 1946년 평양에 개척교회를 세우면서 본격적인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2년 만인 1948년 공산당에 의해 '사회질서 문란죄'로 구속돼 5년형을 선고 받고 흥남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러던 중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문 총재 가족도 피난길에 올라 월남하게 된다.

남쪽의 끝 부산까지 내려와 터를 잡은 문 총재는 1954년 5월 스스로를 '메시아'라 칭하며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현 통일교)를 창립했다. 그리고 예수가 이루려다 실패한 이상세계를 문 총재 자신이 지상에서 이루겠다는 교리를 내세웠다.

이때 문 총재는 기성 교회에 염증을 느끼던 기독교 신자들을 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55년 이화여대 여성 신학자 김영운 교수가 통일교로 개종한 사건을 계기로 기독교재단인 이화여대와 연세대의 학생 및 교수 20여명이 통일교에 입교한 것이 밝혀졌고 재단 측은 이들 모두를 퇴학·퇴직시켜버렸다. 그 여파로 문 총재도 이듬해 구속됐다.

절대순결, 절대사랑
3만쌍 합동결혼식 화제

개신교 세력의 거센 탄압에 국내 선교가 막혀버린 문 총재는 돌파구를 찾아 1958년 일본에, 1959년엔 미국에 각각 선교사를 파견해 본격적인 해외선교에 나섰다. 1961년엔 오랫동안 통일교에서 2인자로 군림했던 박보희씨가 주미대사관 무관보좌관으로 발령받으면서 통일교는 미국 선교에 날개를 달게 됐다. 미국에서의 왕성한 선교활동으로 1970년대엔 4000만달러를 지불하고 뉴욕의 43층짜리 호텔 건물을 사들여 통일교 세계본부로 사용할 만큼 자금 규모를 키웠다.

또 당시 미국에서 강조된 반공정책에 동조해 대도시에서 대규모 반공시위를 이끌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 문 총재는 1982년부터 <워싱턴타임즈>를 창간해 극우보수 인사들의 입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활동 중 그는 탈세 혐의로 댄버리교도소에 수감돼 13개월 동안 복역하고 85년 출소하기도 한다. 통일교에 따르면 문 총재는 평생 6번 옥살이를 하는 시련을 당했다고 한다.

문 총재는 1990년에 이르러선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세계평화 등을 논의했다고 알려졌다. 문 총재는 자서전에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과 수교할 것을 촉구했다고 언급했다.

한 해 뒤인 1991년 11월30일 평양을 방문해 당시 북한에 생존해 있던 여동생을 상봉하고 흥남까지 헬기를 타고 가 '마전 주석공관'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당시 문 총재는 김 주석과 금강산 개발투자 등 다양한 대북투자 사업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총재는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북한에 조화를 보내기도 했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자 문 총재는 2003년 9월부터 2004년 5월까지 7차에 걸쳐 '이스라엘 평화대행진'을 열기도 했다. 이는 예루살렘 성지를 두고 오랜 갈등을 겪어온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시크교·힌두교 등 각 종단 대표자들이 이스라엘에 모여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또 2003년부터 시작된 세계클럽축구대회인 '피스컵'도 9·11 테러 이후 평화를 염원하는 문 총재에 뜻에 의해 열린 것이라 한다.

문 총재는 2005년 천주평화연합(UPF)을 창립한 데 이어 2010년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된 유엔을 대체할 평화기구가 필요하다면서 '부모 유엔'을 창설하기도 했다. 이렇듯 문 총재는 세계평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교, 나아가 세계의 연례행사가 된 '합동결혼식'도 그 규모가 엄청나져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합동결혼식은 1960년 스물세 살 연하인 한학자(둘째 부인)씨와 함께 통일교 내 '참부모'가 된 후 '순결한 가정'을 기치로 열게 된 것으로 1961년에는 참여자가 36쌍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수만 쌍으로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1992년 8월 서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3만쌍 국제 합동결혼식은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2001년엔 아프리카 잠비아의 가톨릭 밀링고 대주교가 문 총재가 맺어준 한국인 여성과 합동결혼식을 했는데 이에 로마 교황청이 반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통일교에 따르면 지금까지 비신자를 포함해 5억쌍이 절대순결과 절대사랑의 참가정 서약을 하는 축복결혼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것도 통일그룹 것이라고?…종교단체야 재벌이야?
그가 떠나며 남긴 300만 신도와 수조원대 자산

통일교의 경전으로 불리는 <원리강론>에 따르면 통일교는 기독교 교리에 세계평화와 철학을 보태고 그 바탕은 가정의 순결이라는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행복한 가정과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에 입교해 신도수가 늘었다는 것이 통일교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통일교는 성경이나 예수의 가르침보다는 문 총재의 가르침에 더 초점을 두어 교단 설립 당시부터 이단 논쟁을 달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여 년 만에 전 세계에 걸쳐 300만 신도를 거느린 신흥종교로 성장한 것이다.

통일교의 교세가 이토록 급증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교의 교리도 훌륭하지만 문 총재의 반공성향이 박정희 및 레이건 부시 2대의 반공코드와 잘 맞았기 때문이라는 평이다.


통일교는 종교집단으로 시작해 경제, 문화, 예술, 언론, 교육 등 다방면에 사업을 확장하며 거대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통일그룹의 계열사로는 일화, 일신석재, 세일중공업, 성일기계 등 15개 분야의 기업 외에도 국내 일간지 <세계일보>, 미국 일간지 <워싱턴타임즈>, 세계 4대 통신사 중 하나인 <UPI통신> 등 세계 각지에 굵직한 언론사를 거느리고 있다. 또 경복초, 청심국제중·고, 선화예고, 선정고, 선문대 등 여러 학교를 운영 중이고 의료법인 청심국제병원과 리틀엔젤스예술단, 유니버설발레단 등 문화예술단체도 소유하고 있다.

통일교의 총자산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대략 한국 2조4000억, 일본 2조, 미국 1조, 기타 5000억원 해서 총 6조원 상당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에 소유한 주요 부동산만 해도 여의도 통일교 세계본부 건축예정지(약 1500억), 세계일보 부지(약 1000억), 청평유원지(약 500억), 선문종합대학(약 500억), 도원빌딩, 강남 센트럴시티, 강남 신세계 백화점, 반포 메리어트호텔 등이 있다.

전 세계 6조원 자산
누가 어떻게 관리하나?

문 총재는 14남매를 두었다. 통일교회의 핵심축인 종교부문은 7남 문형진(33) 통일교 세계회장이 맡고 있다. 문 총재는 생전에 유서를 통해 7남 문 회장을 자신의 종교적 후계자로 지명한 바 있다. 3남 문현진(43)씨는 통일교 산하 기업군인 UCI 회장이고, 4남 문국진(42) 통일그룹 회장은 교계 재단 산하 기업들을 맡고 있다. 5남 문권진씨는 미국 체류 중이며 장남과 차남, 6남은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한학자씨는 선문학원 이사장과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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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