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말로 흥해 말로 망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

  • 김대환 기자 kdh@ilyosisa.co.kr
  • 등록 2021.08.30 12:02:05
  • 호수 13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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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뒤흔든 땅투기 스캔들

[일요시사 정치팀] 김대환 기자 = 대선후보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대선에도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친의 불법 부동산 거래 의혹이 그 이유. 의원직 사퇴는 본회의 의결이 필요한 만큼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귄익위(이하 귄익위)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현역 의원 12명에 대해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불법 의혹이 있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권익위가 발표한 명단에는 강기윤·김승수·박대수·배준영·송석준·안병길·윤희숙·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한무경 의원이 포함됐다.

KDI 출신 
경제전문가

발표 명단 인원 중에는 지난달 제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윤희숙 의원도 포함됐다. 그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강행하는 임대차 3법에 대한 ‘5분 비판 연설’이 화제가 되며 단숨에 보수의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권익위는 윤 의원 부친에 2016년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에 소재한 논 1만871㎡를 구매했으나 직접 농사를 짓지 않은 부분과 현지 조사 때만 서울 동대문구에서 세종시 현지 경작인의 집으로 잠시 주소를 옮겨 놓은 부분을 놓고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26년 전 결혼할 때 호적을 분리한 이후 아버님의 경제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공무원인 장남을 항상 걱정하시고 조심해온 아버님의 평소 삶을 볼 때 위법한 일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 믿는다”고 해명했다.


윤 의원은 1970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과 국가기관 자문활동을 수행한 경제전문가로 통한다.

KDI는 경제·사회 연구를 통해 정책 수립과 제도 개혁에 기여하는 것을 취지로 설립된 공공기관으로 일종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윤 의원은 대표적인 소신파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6년 박근혜정부 시절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저위) 공익위원으로 재직, 당시 최저위가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움직인다고 반발하며 사퇴했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은 포퓰리즘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일약 스타덤
내부 정보 이용한 부동산 투기 의혹

윤 의원의 저서 <정책의 배신>에서는 그의 경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지금처럼 노조를 통해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은 근로자들이 임금 협상 수단으로 최저임금 제도를 활용하는 구조에서는 고용이 불안한 저숙련 근로자와 미취업자들을 배려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구직자 대신 노사가 최저임금 정책을 결정하는 현재 구조는 합리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3선 의원인 이혜훈 전 의원의 뒤를 이어 서초갑에 공천된 윤 의원(62.6%)은 민주당 이정근 후보(36.9%)를 상대로 25.7%p 표차로 무난하게 국회에 입성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일각에서는 20% 이상의 큰 표 차이가 난 것에 대해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뿔난 강남민심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윤 의원은 선거 유세 당시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자산 가격이 공시지가에 너무 빨리 반영돼 서초갑 지역 주민들은 세금을 폭탄처럼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제20대 대선 출마 선언 때도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다시금 비판했다. 윤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으면 수요와 공급에 매칭이 안 되는 것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투기꾼 때문이라고만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5분 비판 연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대선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는 지난해 7월30일 국회 자유발언 시간에 민주당이 강행한 ‘임대차3법’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임대차3법은 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미한다.

8억 사서
현재 20억

당시 윤 의원은 임대차3법이 통과되면 전세 대란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달 26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 조사결과에 따르면 임대차3법 시행 이후 1년 동안 2·3·4분위 아파트가 5분위 아파트보다 높은 가격 상승률을 보였다. 초고가 아파트보다 중저가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가파른 주택가격 상승은 중산층과 서민층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매물이 사라지면서 주거 안정성도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윤 의원의 ‘5분 비판 연설’이 당 분위기를 바꾼 것으로 평가했다. 장외투쟁 대신 원내투쟁에 계속 힘을 쏟게 만든 것.

주호영 전 원내대표는 현실적으로 원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된다고 판단, 장외투쟁 카드를 고려하고 있었다. 윤 의원의 발언은 당내 장외투쟁 언급이 수그러들게 했고 원내투쟁을 강조한 주 전 원내대표에게 다시금 원내투쟁을 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당시 윤 의원의 연설을 기점으로 통합당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도 0.8%p 차로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TBS 교통방송의 의뢰로 조사한 지난해 8월 1주 차 주중 여론조사에서 통합당의 지지율은 3.1%p 상승했고 민주당의 지지율은 2.7%p 하락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은 윤 의원 발언에서 전율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진보논객으로 알려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비판이 합리적이고 국민 상당수 심정을 정서적으로 대변했다고 호평했다.

윤 의원은 지난달 2일 ‘경제 대통령’ ‘미래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문정부는 어떤 개혁도 하고 있지 않다며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부친의 불법 부동산 거래 의혹이 윤 의원의 발목을 잡았다.


윤 의원은 지난 23일 권익위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당 지도부에 밝혔다. 당 지도부는 만장일치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권익위가 제기한 윤 의원의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와 소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윤 의원은 대선후보 및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동산 문제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윤 의원 부친의 불법 부동산 거래와 관련해 내부정보 이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윤 의원 부친이 시세차익을 노리고 권익위가 문제 삼은 농지를 매입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세를 고려하면 약 8억원에 사들여 현재 시세는 약 20억원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의원직 사퇴
대선 불출마

윤 의원 부친이 해당 농지를 구매한 이후 농지 인근에는 국가스마트산업단지, 복합일반산업단지 등이 연달아 확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윤 의원은 부친이 땅을 취득할 때 세종시 반곡동에 있는 KDI 재정복지정책 연구부장으로 근무한 바 있다. 윤 의원 측이 내부정보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부분이다.

한 언론 보도에서는 기획재정부 장관 보좌관을 지낸 윤 의원의 제부 장모씨가 농지 매입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반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와 달리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라 기재부에서 미리 정보를 알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는 상황이다.


장씨는 해당 의혹에 대해 “세종미래일반사업단지와 세종복합일반산업단지는 각각 2014년 3월과 2019년 6월에 처음 고시됐다. 세종스마트 국가산업단지는 지난 2017년 7월 현 정부 들어서 추진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반산업단지 조성은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사업이고, 중앙부처 중 국토교통부 소관사항이라고 기사도 명시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윤 의원이 근무했던 KDI에 대한 부동산 투기 전수 조사를 촉구했다. 그는 KDI 근무자와 KDI 출신 공직자, 가족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윤 의원의 의혹들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건 윤 의원 측이 해명을 해야 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권에서는 윤 의원 사퇴 선언에 대해 쇼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했다. 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은 “사퇴 의사가 있다면 언론플레이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할 것이 아니라 국회의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주장했다. 사퇴 의사는 전혀 없으면서 사퇴 운운하며 쇼하는 것에 불과한 ‘속 보이는 사퇴 쇼’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부친 시세차익 노리고 농지 매입?
구매 이후 인근에 굵직한 산업단지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사퇴의 뜻을 관철시키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윤 의원의 사퇴는 쇼로 끝날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민주당 김성환 원내수석부대표는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의장한테 제출하더라도 의장이 그걸 본회의에 올린 사례가 거의 없다며 일종의 사퇴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야당의 대권주자들은 윤 의원의 사퇴 표명에 일제히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사퇴의 뜻을 한 번 더 재고해주길 요청했다. 

국민의힘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윤 의원은 정권교체와 향후 국민들을 위한 경제정책 수립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분이다. 사퇴 뜻을 좀 거둬주시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윤 의원이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회피하는 일부 다른 의원들의 행태와 큰 비교가 된다”며 “자식이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연좌제 망령의 부활”이라고 지적했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문재인 대통령도 농지법 위반에 대해 뭉개고 있는데, 본인 일도 아닌 부모님이 하신 일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뜻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밝혔다.

윤 의원이 사퇴 의사를 접지 않으면 본회의에서 의결이 필요할 전망이다. 현행 국회법 제135조에 따르면 국회는 의결로 의원의 사직을 허가할 수 있다. 다만, 폐회 중에는 의장이 허가할 수 있다. 의원이 사직하려는 경우에는 본인이 서명·날인한 사직서를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재적 의원 과반출석에 과반 찬성일 경우 사직을 허가한다. 본회의 의결 시 윤 의원의 사퇴는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게 공이 넘어간다. 민주당의 의지에 따라 윤 의원의 사퇴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내에도 부동산 의혹을 받는 의원들이 있어 윤 의원의 사퇴 선언으로 민주당이 난감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윤 의원은 여권에서 제기되는 ‘사퇴 불가능’ 의견에 “다수당인 민주당이 아주 즐겁게 통과시켜줄 것”이라며 “여당 대선후보를 가장 치열하게 공격한 저를 가결 안 해준다고 예상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쇼? 리얼?
강수 배경은?

윤 의원이 실제로 의원직에 사퇴하면 국민의당이 민주당에 비해 도덕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권익위 조사 결과에 따라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건 윤 의원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6월 권익위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 조사 결과로 나온 의원 12명에게 자진 탈당 권유 및 제명 조치를 내렸다. 당시 제명된 윤미향·양이원영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은 아직까지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kdh@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부동산 의혹 의원, 국민의힘 처리는?

국민의힘은 지난 24일 불법 부동산 거래 의혹이 제기된 소속 의원 12명에 대해 입장을 발표했다.

의혹이 제기된 12명의 의원은 강기윤·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한무경·안병길·윤희숙·송석준·김승수·박대수·배준영 의원이다.

국민의당은 강기윤·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 의원 등 5명에게 ‘탈당요구’를 했다. 당은 현재 당 윤리위원회가 구성돼있지 않기 때문에 당헌과 당규에 규정된 ‘탈당 권유’를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탈당 요구는 강제력이 없는 최고위 차원의 선언으로 따르지 않을 경우 10일 뒤 제명되는 탈당 권유와 다르다. 

국민의힘은 한무경 의원은 제명하기로 했다.

비례대표인 한 의원은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제명되면 무소속 신분으로 의원직이 유지된다. 한 의원의 제명안은 의원총회에서 표결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당은 안병길·윤희숙·송석준·김승수·박대수·배준영 의원 등 나머지 6명에 대해 본인의 문제가 아니거나 소명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문제 삼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안병길·윤희숙·송석준 의원에 대해 해당 부동산이 본인 소유도 아니고 본인이 행위에 개입한 바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김승수·박대수·배준영 의원은 토지의 취득 경위가 소명됐고 이미 매각됐거나 즉각 처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탈당을 요구한 5명의 의원과 제명 대상이 된 한 의원은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번에 발표된 12명 중 8명에 대한 권익위의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탈당 요구를 받은 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 의원 등 4명의 관련 내용은 당사자의 거부로 공개되지 않았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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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