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기획> 초등생 스마트폰 중독 실태

빠지면 못나오는 손안의 늪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아이들이 스마트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돼있다. 초등학생 대다수가 이미 스마트폰의 노예로 전락한지 오래다.  

A씨는 초등학생 아들의 원격수업을 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아들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원격수업을 잘 듣고 있는지 확인을 위해 방문을 살짝 열어보면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고 있었다. 

“24시간도 
모자라요”

아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A씨는 “수업 때만이라도 집중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A씨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엄마도 종일 스마트폰 하잖아요”라며 반문했다. 

학부모들은 스마트폰에 노출돼있는 자녀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원격수업에 접속한 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바로 유튜브를 본다” 등과 같은 하소연이 쏟아진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시간을 정해두고 사용했지만,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 후부터는 수업을 핑계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딴짓이 늘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아이의 스마트폰 과의존 때문에 진도가 뒤쳐질까 걱정이다. 또 다른 학부모는 “방에서 공부하고 숙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한테 피드백을 받아보면 문제를 다 틀렸더라”며 “방에 CCTV라도 달아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했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우려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학생들이 원격수업에 참여해도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지까지는 파악할 수 없어서다. 한 현직 교사는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을 계속할 텐데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온종일 손에 폰 끼고 사는 아이들  
음란물 쉽게 접근…범죄 노출 우려도

이처럼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전자기기를 활용한 원격수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초등학생들이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회피수단의 도구로 스마트폰을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 비해 아이들의 외부활동이 현저히 줄었고, 스마트폰을 대체할 만한 놀잇감이 없는 점도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이 발생한 이유로 꼽힌다.

한 전문가는 “스마트폰으로 접근 가능한 콘텐츠가 다양한 데다 조작도 쉽다”며 “클릭 한 번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고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 초등학교 4~6학년 2723명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학생의 87.7%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 10명 중 6명(59.7%)은 스마트폰을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이용한다고 응답했으며 ‘유튜브’(34.7%)와 게임(30.2%)을 스마트폰의 1순위 기능으로 꼽았다.


응답자 3명 중 1명(34.5%)은 “스마트폰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물건”이라고 답했다. 초등학생 10명 중 1명(11.8%)은 “유튜브를 보는 것이 가족과 여행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응답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5월 전국 학령 전환기(초 4학년, 중 1학년, 고 1학년) 청소년 129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습관 진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전체 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이 증가한 가운데 전년 대비 초등학생의 증가가 두드러졌고, 남자는 연령이 낮을수록 여자는 연령이 높을수록 과의존 위험군이 더 많았다.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청소년의 과의존 위험군이 증가했다. 학교별로는 중학생(8만5731명), 고등학생(7만5880명), 초등학생(6만7280명) 순으로 과의존 위험군이 나타났다.

초등학생의 경우 남녀 청소년 모두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율이 지난해에 비해 수치가 증가했다. 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유형은 동영상(영화, TV) 시청, 게임, 메신저 등의 순이었다.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이처럼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초등학생이 겪고 있는 스마트폰 과의존 유형은 다음의 3가지로 나뉜다. 

사용 시간 조절능력 부족으로 인한 자제력 문제, 스마트폰 사용이 주요활동이 돼버리는 현상, 신체적·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면서도 계속 이용하는 유형이다.  

스마트폰 과의존에 빠지게 되면 시간 구분이 모호해져 사용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이 저하된다. 연령이 어릴수록 이 같은 조절 능력은 떨어진다. 초등학생은 충분한 인지적‧정서적 발달단계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터넷 게임 등의 유혹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탓에 쉽게 스마트폰에 빠져든다.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접속해 위안을 얻는다. 

보상심리를 추구하는 것도 자제력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적 성격은 자기조절에 어려움을 보여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은 현실에서 느끼지 못한 욕구 해소를 경험하게 한다. 우울증이나 자존감 저하로도 이어진다. 자기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는다. 장시간 스마트폰의 활용은 인간관계 결핍을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또 초등학생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여러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음란물 노출 =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로 초등학생이 음란물 등 유해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쉽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초등학생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과거에 비해 음란물에 접근하기 용이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성에 대한 인식이 완전하지 않아 음란물을 실제 현실과 혼돈할 우려도 있다. 이는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음란물에 접촉하게 되면 대부분 계속 보게 되고, 점점 빠져들게 된다. 빠져 나오고 싶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일부 초등학생은 음란물에서 본대로 실행하고 싶어 한다.

정부도 초등학생들의 음란물 접촉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일각에서는 초등학생이 음란물에 대한 과의존 상태가 발생하면 정상적인 성장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 사춘기를 겪게 되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음란물 과의존이 채팅 애플리케이션 사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성매매 노출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기 몸을 찍어서 채팅방에 보내기도 한다. 해당 채팅방에는 조건만남을 매개하는 업체가 상당히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계기로 성매매, 조건만남까지 이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어른도 민망
음란물 넘쳐

▲자극적 콘텐츠 =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 높은 개인방송의 시청과 과금 문제도 심각하다. 대부분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으로 개인방송을 시청한다. 

초등학생이 자극적인 영상 등에 노출되면 폭력적‧선정적인 콘텐츠를 그대로 따라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해당 방송의 문제점이 뭔지도 모른 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문제의 발언들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도 문제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에는 한 학생이 스마트폰 라이브 앱에 접속해 1억3000만원을 결제하는 일도 벌어졌다. 스마트폰은 어머니 통장과 연동돼있었다. 해당 금액은 전세보증금으로 넣어둔 돈이었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인터넷 개인방송 및 동영상 사이트의 경우, 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규제 정책을 만들어 관리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 정책이 초등학생을 차단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폭력 = 스마트폰 과의존은 사이버폭력 문제도 발생시킬 여지가 있다. 사이버폭력은 SNS 등을 활용해 피해자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학폭의 경우 하교를 하면 물리적인 가해 행위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사이버폭력은 시공간의 경계가 없다. 어디서든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종류도 다양하다. 채팅방에서 한 명을 집단으로 욕설하는 ‘떼카’, 채팅방에서 나간 학생을 끊임없이 초대해 욕하는 ‘채팅 감옥’, 피해 학생만 두고 모두 나가는 방식인 ‘방폭’ , 데이터를 빼앗는 ‘데이터 셔틀’ 등이 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사이버폭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익명성과 비대면성에 의존해 발생하는 점이 특징이다. 

초등학생이 사이버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잘못된 행동’임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주목해야 할 점은 초등학생의 사이버폭력이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가상현실의 폭력이 현실 상황과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부모님보다 더 믿고
선생님보다 더 따라

스마트폰을 활용한 초등학생의 사이버폭력은 현재도 만연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고학년일수록 사이버폭력의 경험 비율이 높아진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사이버폭력으로 자살충동을 느끼는 학생까지 나타난다는 점이다. 비도덕적인 행동 경험이 초등학생들에게 도움을 미친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게다가 초등학생 스스로도 고학년이 될수록 사이버폭력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이 될 수 있고, 피해 학생도 가해 학생이 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사이버폭력은 피해자의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가해 학생을 따라 쉽게 가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가만히 거기에 반응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은 어른들이 만들었다. 손에 쥐어 준 것도 어른이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빠져 산다면 아이들은 결국에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도 잊는다. 학교 교육은 치유적인 활동을 더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것으로는 스마트폰 과의존을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전문가는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방법은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거나 왜 조절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끼면 교육에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과의존은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예방과 치료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들은 초등학생에게 일정한 교육을 적절한 시기에 제공함으로써 스마트폰 과의존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지’ 인지할 필요성이 있으며 불필요하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이 요구된다. 

초등학생 시기는 가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때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 간 원활한 관계가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에 준다고 강조한다. 스마트폰 과의존에 탈피하게 하려면 아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스마트폰 사용에 부모가 관여할 수 있는 여지와 개입 효과를 키워야 한다.

그냥 이대로 
놔둘 것인가

한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아동·청소년들의 놀이문화이자 소통 수단이라는 점을 부모세대가 우선 인식해야 한다”며 “스마트폰 문제가 자녀만이 아니라 가족 공동의 문제라는 인식이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아동·청소년 스마트폰 과의존 해결에 누군가가 강제하는 ‘외적 강제’보다는 스스로 과의존을 회피하고자 노력하는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며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청소년에게 내적 동기를 부여하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마트폰에 빠진 ‘스몸비족’

서울시민 10명 중 7명이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스몸비족’인 것으로 조사됐다. 스몸비족이란 스마트폰과 좀비를 합성한 단어로 스마트폰 화면을 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들을 빗댄 말이다.

서울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빅데이터와 딥러닝 활용한 서울시 보행사고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69%가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보행 중 타인의 스마트폰 사용으로 충돌 위험을 겪었다는 시민도 74%로 나타나 인식 개선 및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령별로는 30대의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률이 86.8%를 기록해 가장 높았다. 20대가 85.7%, 15~19세 84.0%로 뒤를 이었다. 50대는 55.6%로 나타났으며, 60세는 50.0%를 나타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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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