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공놀이'로 만든 뜨거운 감동 <골 때리는 그녀들>

악바리 그녀들이 뭉쳤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아무리 대중이 사랑하는 스포츠 중 하나로 축구가 꼽히긴 하지만, 그래 봐야 ‘그깟 공놀이’ 아닌가. 이게 뭐라고 눈이 붓고 발톱이 뽑히고 몸이 깨져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걸까.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출연진은 혼신을 다해 뛰고 또 뛰고 있다. 승리의 기쁨에, 때론 패배의 아픔을 못 이겨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린다. 승리를 향한 여성들의 뜨거운 열정이 새로운 여성 서사를 만든다. 대중은 ‘월드컵보다 재밌다’며 응원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로 불릴 만큼 서로 총과 칼을 들이밀며 싸워왔다. 냉전 시대를 거치고 세계 전쟁이 사라지면서, 인류는 축구로 전쟁을 대체하고 있다. 

간절함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아니면 세계 대회든 축구선수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심정으로 그라운드를 누빈다. 단 한 골로 나라의 영웅이 되고, 그 한 골을 막지 못해 대역죄인이 되기도 한다. 

이들을 응원하는 각국의 국민은 목을 찢어가며 응원하다 못해, 패배의 상실감을 못 이기고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때론 경기를 관전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한다.

일반 축구 클럽도 마찬가지다.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은 매주 전쟁을 벌인다. 스타급 선수는 그 지역의 우상이고, 못하는 선수는 돌팔매를 맞기도 한다. 인간이 전쟁 대신 축구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여자 축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리 예능이라도 축구가 끼면 사명감의 크기는 달라진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의 출연진은 각 직업군을 대표해서 경기장을 활보한다. 직업을 대표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있어서인지, 경기를 뛰는 출연진의 눈빛은 그 어떤 스포츠 선수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다른 분야에 지기 싫다”는 개그우먼 신봉선의 말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듯 보인다. 

<골때녀>는 박선영의 운동 능력을 알아본 SBS <불타는 청춘> 제작진이 기획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불타는 청춘’ 팀을 비롯해 개그우먼이 모인 ‘개벤져스’, 모델이 주축인 ‘구척장신’, 외국인 방송인의 ‘월드클라쓰’, 연기자들이 힘을 합한 ‘액셔니스타’, 스포츠 선수 및 관계자의 교집합인 ‘국대 패밀리’까지 총 여섯 팀이 리그와 토너먼트를 통해 최후의 승자를 가린다.

화제의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월드컵보다 재밌는’ 여자들의 축구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공개했다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골때녀>의 정규 편성은 지극히 예상된 흐름이었다. ‘불타는 청춘’ 팀의 박선영을 제외하고 다른 선수들의 몸놀림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공을 차는 선수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4팀에서 6팀으로 변화를 줬고, 팀마다 운동 능력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을 투입했다. ‘OO의 아내’ 혹은 ‘OO의 며느리’라고 하거나, 부족한 플레이를 남성과 굳이 비교한 해설 등 남성 중심의 시선이 있다는 비판을 받아들이면서 단점을 보완했다.

현재 배성재 캐스터와 방송인 이수근의 조합은 감칠맛이 있다는 평가다.

출연진은 승리를 위해, 패배의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방송 외 시간에도 최선을 다한다. 본업을 하는 시간에 잠시 짬이 나면 드리블 연습을 하고, 개인적으로 축구선수를 찾아가 레슨을 받기도 하며, 골키퍼의 경우에는 주요 대회의 승부차기 장면을 분석한다. 


축구를 향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자 선수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승부욕은 말할 것 없이 더 커졌다. 부상이 걱정될 정도로 몸을 던진다. 슈팅하고도 어느새 돌아와 수비한다. 종목은 축구지만, 농구 이상의 활동량을 보여준다. 

‘부상 투혼’은 어느 한 팀의 소유가 아니다. 다친 와중에도 뛸 수 있다며 오열하는 오나미, 위험하게 부딪혔음에도 툴툴 털고 일어나는 사오리, 양쪽 눈이 퉁퉁 부은 안영미, 남자도 피할 법한 묵직한 공에 기어코 머리를 갖다 대는 한채아 등 선수들의 집념이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한다. 

시청자들은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선수들의 포지션에 맞는 실제 축구선수를 잇는 별명을 붙여주느라 바쁘다. 슈팅을 하고 재빨리 돌아와 골키퍼가 찬 공을 가슴 트래핑하는 박선영에겐 ‘절대자’ ‘지배자’ ‘신계’ ‘타노스’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심장을 뛰게 만드는 건강한 투혼
매주 이어지는 각본 없는 드라마

축구선수 중에도 박선영 같은 활약상을 찾기는 힘든가 보다. 

6팀 모든 선수 중 가장 뛰어난 발기술을 보이는 남현희는 ‘남메시’, 배구선수 출신으로 마지막까지 공에 눈을 떼지 않는 구척 장신 골키퍼 아이린은 ‘데헤아이린’, 큰 키에도 안정적으로 볼을 다루는 최여진은 ‘진라탄 여브라히모비치’, 킥에 있어 일가견을 보이는 정혜인은 ‘혜컴’ ‘정혜인시녜’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경기가 끝날 때마다 별명이 제조된다. 

2002 월드컵의 주역인 감독들도 감동적인 여성 서사에 힘을 보탠다. 황선홍, 최진철, 최용수, 김병지, 이천수, 이영표 등 여섯 감독은 평생 쏟아부은 축구 노하우를 선수들에게 알려준다. 연습 과정을 보면 웃음기 없이 진지하다. 편안한 공간에서 보이는 선수들의 몸놀림은 매우 가볍고 강렬하다.

팀원의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고뇌하는 감독들 역시 <골때녀>의 매력 포인트다.

이들의 간절함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경기는 늘 ‘극장전’이다. 마지막 순간에 결과가 바뀌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매 경기 이어진다. 승부차기가 끝날 때까지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 감동의 파노라마가 이어지자 시청률도 고공 상승 중이다. 평균 시청률은 7%를 넘겼고, 최고시청률은 11%를 돌파했다. 

각종 지역에서는 여자 축구를 배울 수 없냐는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선수들도 하지 못한 스포츠계의 바람을 <골때녀>가 해내고 있다. 

극장골


축구를 통한 여성 중심의 매력적인 이야기, 사력을 다하는 선수들의 얼굴만으로 프로그램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제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포맷으로,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매주 전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