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29.1℃맑음
  • 강릉 32.8℃구름많음
  • 서울 30.9℃맑음
  • 대전 32.7℃구름조금
  • 대구 32.0℃구름많음
  • 울산 28.4℃흐림
  • 광주 31.2℃구름조금
  • 부산 28.3℃구름많음
  • 고창 29.7℃맑음
  • 제주 26.9℃구름많음
  • 강화 27.2℃맑음
  • 보은 31.1℃구름조금
  • 금산 30.2℃구름조금
  • 강진군 29.8℃구름많음
  • 경주시 29.9℃흐림
  • 거제 27.6℃구름조금
기상청 제공

1333

2021년 07월30일 17시09분

화제의인물


<이슈&인물> '유비' 유상철의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URL복사

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 남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2002년 한일월드컵 영웅이었던 유상철 인천유나이티드 명예감독. 그는 쉰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에서 묵묵하게 투혼을 보여줬던 유 감독은 췌장암 병마와 싸우다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하고 싶은 축구 원 없이 해라.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마음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이 먼저 하늘나라로 간 유상철 전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에게 보낸 편지 마지막 문구다. 

국내외
추모 물결

유 감독이 지난 7일, 향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19년 11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1년7개월간을 투병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복통과 함께 황달이나 소화불량, 식욕부진, 피로감 등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히딩크, 손흥민, 이동국 등 축구계는 물론 정치권, 연예계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던 그였기에 많은 사람이 슬퍼했다.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도 온종일 선후배 축구인과 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쓴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황선홍 전 대전 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김남일 성남FC 감독,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안정환, 이민성 대전시티즌 감독, 현영민 JTBC 해설위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해외 축구계도 유 감독을 애도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7일 오후 월드컵 공식 계정에 유 감독의 선수 시절 국가대표 경기 출전 사진과 함께 “한 번 월드컵 영웅은 언제나 월드컵 영웅”이라며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유 감독이 현역 시절 활약했던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도 트위터를 통해 “지난해 홈 개막전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다”며 슬픔을 함께했다. 

2019년 가을. 축구계 내에서 ‘유상철 감독이 많이 아프다’는 소문이 돌았다. 10월경 유 감독은 가까운 기자들에게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달했다. 이후 유 감독은 ”괜찮아진다“는 말을 하며 기자들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건강하다”는 기사를 내달라고 유 감독은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유 감독의 몸 상태가 팬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2019년 10월19일 성남FC전이었다. 황달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성남전서 너무도 수척한 얼굴로 나타났다.

결국 성남전이 끝나고 나서 인천 구단에서 유 감독이 췌장암 4기라고 발표했다. 그의 병세가 알려지고 나서 바로 만난 상대는 수원 삼성. 당시 수원의 사령탑은 유 감독의 1971년생 동갑내기 이임생 감독이었다. 두 사람은 연령대별 대표팀부터 국가 대표팀까지 함께 한 절친한 친구였다.

2019년부터 췌장암 말기 투병
항암치료 하며 복귀 의지 보여

성남전이 끝나고 병원에 입원했던 유 감독은 수원전 사전 기자회견에서 “꼭 돌아오겠다고 선수들에게 약속했다. 다행히 약속을 지켰다”고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의연한 친우를 본 이임생 감독은 “사실 상철이에게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안아주기만 했다. 그래도 경기에서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이임생 감독은 유 감독이 힘든 상태로 벤치를 지키는 만큼 수원 선수들에게 골을 넣어도 세리머니를 자제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로 타가트가 선제골을 기록한 이후 세리머니를 하며 들뜬 모습을 보이려 하자 도움을 기록한 전세진이 다가가 이임생 감독의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0대 1로 끌려가던 인천은 후반 추가 시간에 명준재의 극적인 골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거둔 승점 덕에 인천은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리그 잔류를 확정할 수 있었다. 승부가 끝나자 이 감독과 유 감독의 감정이 표출됐다. 평소 생김새와 달리 잔정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 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유 감독을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던 유 감독도 친구의 마음에는 애틋한 감정을 표했다. 그는 “(이 감독과는)오랜 친구다. 덩치는 큰데 마음이 너무 여리고 눈물도 많은 친구”라며 “임생이가 내 걱정을 하는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유 감독은 시즌이 끝난 후 1월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직을 사임하고 명예감독으로 남으며 투병에 전념해왔다. 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그는 힘겨운 항암치료를 견디면서도 건강이 많이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방송과 유튜브 등에 출연해 축구인, 팬들과의 소통을 이어가기도 했다. 지난 시즌 인천이 또다시 강등 위기에 놓이자 감독직 복귀에 의지를 보이는 등 인천과 축구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 감독의 투병 소식이 알려진 이후 많은 이들이 보여준 반응은 ‘인간 유상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축구 팬들과 축구계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유 감독이 J리그 시절에 활약했던 요코하마 팬들까지 ‘할 수 있다. 상철이형’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일관계가 경색돼 민감할 때, 그것도 팀을 떠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선수의 투병 소식에 일본 팬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매너는 축구에는 국경도 편견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며 깊은 감동을 남겼다.

A매치 124경기
멀티플레이어

국가대표 경기를 뜻하는 A 매치를 100경기 이상을 뛰면 대단한 선수라고 인정받는다. 무려 124경기를 출장했던 유 감독은 한국 국가대표 역대 출전수에 차범근(136), 홍명보, 이운재(133)에 이어 5위에 랭크됐다. 124경기 금자탑을 쌓은 투혼의 멀티플레이어 유상철은 데뷔 때부터 화려했다. 

유 감독은 서울 은평구 응암초등학교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경신중학교와 경신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를 졸업해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1994년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다. 유 감독은 어느 포지션에서나 활약할 수 있는 선수였다.

대학교 1학년때까지만 해도 공격수로 뛰었으나 1993버펄로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수비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일찍부터 프로구단의 스카우트 표적이 돼왔다.

키 183cm의 탄탄한 체구에서 나오는 뛰어난 체력 덕분에 그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위치에서 뛸 수 있는 선수로 유명했다. 스트라이커,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등 소화가 불가능한 포지션이 없는 선수였다.

K리그에서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부문에서 모두 베스트 11에 선정된 2명의 선수 중 한 명이 유 감독이다. 그를 사람들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비수로 있으면서도 순식간에 상대 그라운드 깊숙하게 침투하는 것이 장기인 유 감독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때 일본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었다. 1996년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대회 때 비쇼베츠 감독의 선택을 받아 올림픽팀 멤버로도 활약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1위로 월드컵에 진출한 한국은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멕시코에 1대 3으로 역전패당한 한국은 2차전에서 네덜란드에 0대 5로 대패했다. 이 경기 이후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벨기에전 전반 7분 만에 뤼크 닐리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밀리기 시작했다. 감독도 없이 치르는 경기에서 4년을 기다린 월드컵이 허무하게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또다시 4년을 기약해야 했다.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둔 적 없는 한국으로서는 한 골이 간절했다. 후반 25분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골이 터졌다.

왼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하석주가 올려준 공을 유 감독이 슬라이딩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벨기에 골문을 열었다. 유 감독은 득점 후 포효했다. 한국은 이후 추가 득점을 거두지 못하며 월드컵 첫승 기회를 4년 뒤로 미뤄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했다.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상대가 멕시코전. 첫 번째 경기였던 프랑스전에서 0대 5 대패를 당한 뒤 최악의 분위기에서 상대하기에 멕시코는 버거운 팀이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유 감독은 전반 경기 중 상대 선수와 경합하다가 얼굴에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유 감독은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한국은 후반 11분 황선홍의 선제골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후반 36분 멕시코에 동점골을 내주면서 흔들렸다. 후반 44분 투혼의 결승골이 터졌다.

박지성의 코너킥을 유 감독이 완벽한 스파이크 헤더로 연결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당시 유 감독은 전반전부터 이미 코뼈가 골절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후에 거스 히딩크 감독은 “유상철은 가장 말을 듣지 않는 선수였다”며 “나를 벤치로 몰아내지 말라며 내 말을 끝까지 어기고선 후반전에 중요한 골을 넣었다”고 언급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건 2002년 폴란드 전 추가골이다. 황선홍이 선취골을 넣은 뒤 1대 0으로 앞서갔지만 불안한 한국팀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후반 8분, 유 감독은 강한 중거리 슈팅으로 폴란드 골키퍼 두덱의 방어를 피해 골네트를 갈랐다.

월드컵 첫 승
쐐기골 주인공

한국의 월드컵 첫 승에 가까워진 쐐기골이었고 결국 한국은 1승을 먼저 챙겼다. 

당시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휘젓던 유 감독의 세리머니는 아직도 국민들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이끌었고 숙원이었던 16강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유 감독은 황선홍, 홍명보, 이운재, 안정환, 김남일, 설기현, 송종국, 이영표, 박지성 등과 함께 4강 신화를 쓰며 한국 축구사에 족적을 남겼다. 당시 히딩크는 유 감독을 김남일과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했지만 상황에 따라서 공격수나 수비수로 활용했다. 

특히 큰 활약을 펼쳤던 것은 16강 이탈리아전. 당시 한국은 0대 1로 이탈리아에 뒤지고 있던 상황. 히딩크 감독은 후반전에 수비수 3명을 빼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 3명의 공격수 투입했다. 공격수 5명을 필드에 두는 전술을 쓸 수 있었던 데는 유 감독과 박지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 감독은 선발 때는 미드필더로 뛰다가 선수교체가 이뤄지면 백3의 좌측 스토퍼로, 홍명보가 빠지면 다시 중앙 수비수로 들어가 안정적인 수비수를 보였다.

결국 이날 유 감독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이탈리아에 2대1 역전승을 거둔다. 2004년엔 아테네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을 돕기도 했다. 2005년까지 대표팀을 뛴 그는 성인 국가대표로만 총 124경기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유 감독은 은퇴 후 3년 뒤인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1년에는 대전 시티즌(현 대전 하나시티즌)을 맡으면서 프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유 감독은 최용수 FC서울 전 감독에게 화가 났던 일화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털어놨다. 유 감독은 팀 사정상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최 전 감독에게 FC서울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를 추천받았다.

최 전 감독은 팀에서 출전을 잘하지 못하는 A 선수를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시켰는데 알고 보니 해당 선수는 디스크 부상이 있었던 것. 유 감독은 최 전 감독에게 부상선수라고 하자 최 전 감독은 자신도 몰랐다고 했다.

한일 월드컵 4강 ‘2002 스타’
“함께한 영광 기억하겠습니다”

훗날 유 감독은 “감독이 모르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억울해했다. 2014년부터는 울산대학교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뒤 2018년 전남 드래곤즈로 프로 무대에 복귀했으나 8개월 만에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듬해인 2019년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직을 맡는다. 

유 감독은 인천 감독 선임 직전 “실패한 감독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게 두렵다”면서 인천에서 재기를 노렸다. 시즌 중반부터 팀을 맡았기에 초반엔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세 경기 만에 제주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면서 인천 감독으로서 첫 승리를 거뒀다. 

여름 이적 시장 동안 당시 인천의 전력강화실장이었던 이천수 실장과 함께 김호남, 장윤호, 마하지, 케힌데 등 여러 선수를 보강하면서 K리그1 생존을 위해 애썼다.

시즌은 어느 덧 종반으로 향했고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됐다. 유상철호의 인천은 성남 원정에서 무고사가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1대 0으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날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을 비롯해 이천수 실장까지 오열하는 모습이 중계화면을 통해 팬들에게 전달됐다.

귀중한 승점 3점을 챙긴 팀의 모습치곤 묘한 분위기가 인천을 감쌌다. 이날 결승골을 넣었던 무고사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김호남도 “나중에 알게 되지 않을까”라며 자리를 피했다.

이후 유 감독은 병원에 입원하면서 잠시 훈련장을 떠났지만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다시 인천 훈련장을 찾았다. 췌장암 4기 판정 소식이 구단 공식 SNS를 통해 전해졌지만 유 감독은 자신의 말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듯 여전히 인천 벤치를 지켰다. 

유 감독은 2019시즌 최종전 경남FC와의 경기에서 0대 0으로 비기면서 K리그1 생존을 확정했다. 유 감독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킨 사람이 됐다. 생존이 확정된 뒤 인천 팬들은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피켓을 들었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유 감독이 건강상 이유로 감독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임 감독 선임을 서두르지 않았다. 함께했던 코치진에 대한 신뢰를 보내며, 지난 1차 태국 전지훈련도 기존 코치진으로 치러냈다. 

기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와 함께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잡고 접근한 끝에 임완섭 신임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이 과정에서 유 감독의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유나이티드 수뇌부는 새로운 감독을 찾으며 유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임 감독은 임 감독은 88학번이고 유 전 감독은 90학번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인천 팬들과 
약속 지켰다

과거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도 같이 선발됐을 정도로 잘 아는 사이며 서로 안부를 묻는 친한 선후배 사이였다. 또 임 감독을 코치로 데뷔시킨 사람이 바로 유 전 감독이다. 임 감독은 “유상철 감독이 건강하게 돌아오면 언제든 자리를 내어줄 마음이 돼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감독은 지난해 6월, 7연패를 책임지며 지휘봉을 내려놨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일요시사 주요뉴스

윤석열 띄우나? '추크나이트' X맨 추미애의 헛발질

윤석열 띄우나? '추크나이트' X맨 추미애의 헛발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굵직한 두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왔다.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사건과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사건이다. 연달아 나온 사법부의 판결에 여권이 수세에 몰리는 모양새다. 공교로운 점은 두 사건 모두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추크나이트(추미애+다크나이트)가 해냈다.’ 지난 21일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추크나이트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슈퍼히어로 다크나이트에 빗대 붙인 별명이다. 다크나이트는 DC 코믹스 캐릭터인 배트맨의 별칭이다. 모든 게 오비이락?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댓글 조작 공모 혐의로 기소된 김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지사 측은 상고심에서 김 지사가 킹크랩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한 원심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모 공동정범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 오해, 이유 모순, 판단 누락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서는 김 지사 측의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 제안이 지방선거 댓글 작업 약속에 대한 대가라는 특검 측의 주장을 받아들지 않았다. 김 지사는 2016년 12월4일부터 2018년 2월1일까지 ‘드루킹’ 김동원씨 등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기사 7만6000여개에 달린 글 118만8800여개의 공감·비공감 신호 8840만1200여회를 조작하는 데 공모한 혐의를 받았다. 또 경제적공진화를위한모임(경공모) 회원인 ‘아보카’ 도모 변호사의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 제공 의사를 밝힌 혐의도 있다. 1심은 김 지사에게 적용된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2년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봤다. “후보자가 특정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유리한 행위를 해달라고 한 정도로는 유죄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이 댓글 조작 공모 혐의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면서 김 지사는 도지사직을 상실했다. 여기에 1심에서 구속 수감된 77일을 제외하면 1년9개월여의 징역형도 남아있다. 피선거권도 박탈돼 형기를 마치고 5년 후인 2028년 4월께야 회복된다. 이번 판결로 김 지사의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드루킹 사건 수사 촉구·특검 합의 대법원 확정 판결로 책임론 부각 김 지사는 유죄 확정 직후 “안타깝지만 법정을 통한 진실 찾기는 더는 진행할 방법이 없어졌다”며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따라 제가 감내해야 할 몫은 온전히 감당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법정을 통한 진실 찾기가 벽에 막혔다고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며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김 지사의 대법원 판결에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야권 대선주자들은 문재인정부의 정통성에 의심을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도 촉구했다. 여권 대선주자들은 대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김 지사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별다른 입장은 내놓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지사의 유죄 확정으로 난감한 분위기다. 흥미로운 부분은 김 지사의 혐의가 드러나고 기소돼 유죄 확정까지 이르게 된 과정이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은 2018년 1월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기사에 문 대통령과 정부를 비방하는 댓글 매크로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이 여권 지지층에서 제기된 것.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당 대표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추 전 장관은 당시 민주당 최고의원회의에서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댓글은 인신공격과 욕설, 비하와 혐오의 난장판이 돼버렸다”며 “익명의 그늘에 숨어 대통령은 ‘재앙’과 ‘죄인’으로 부르고, 그 지지자들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농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가짜뉴스, 댓글 조작 신고센터’를 설치하는 등 당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드루킹 김씨와 민주당 당원 등 3명이 댓글 조작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여기에 김 지사가 이들과 댓글 조작을 공모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여권에서 제기한 의혹에 여권 인사가 걸려든 셈이었다. 야권은 국회 보이콧 등 총공세를 펼치며 특검 수용을 촉구했다. 정부 정통성 의구심 나와 민주당 지도부는 국회 정상화를 조건으로 ‘드루킹 특검’ 도입에 합의했다. 김 지사의 댓글 조작 공모 의혹이 불거지고 5개월 만인 2018년 6월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수사를 시작했다. 특검은 2018년 8월 김 지사를 기소했고 이후 35개월 만인 지난 21일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허 특검은 “이 사건은 특정인에 대한 처벌의 의미보다는 정치인이 사조직을 이용해 인터넷 여론조작 방식으로 선거운동에 관여한 행위에 대한 단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사실까지 인정하면서 그 의미를 축소해 대선의 대가로만 평가한 것이 아쉽다”며 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데 의견을 표했다. 김 지사의 댓글 조작 공모 의혹에 대한 수사 촉구, 특검 도입 합의 등이 추 전 장관의 당 대표 시절에 이뤄지면서 그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추 전 장관이 김 지사 유죄 판결의 ‘일등공신’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경선 레이스에 뛰어든 추 전 장관은 김 지사의 대법원 유죄 판결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특히 여권에서도 추 전 장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입지가 좁아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김두관 의원은 지난 22일 “유능하고 전도양양한 우리 젊은 정치 생명이 위기에 빠졌다. 이 대목에서 저는 같이 경쟁하고 있는 추미애 후보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화살을 돌렸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추 전 장관에 대해)노무현 탄핵, 윤석열 산파, 김경수 사퇴 이렇게 3번 자살골을 터트린 자살골 해트트릭 선수라고 얘기하고 좌충우돌, 통제불능이었다는 비판도 하더라. 저도 이런 부분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지난 대선을 주관했고 김 지사에 대한 특검 여부로 고심했던 당시 당 대표로서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김 지사의 결백함을 믿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김 지사의 말을 되새기며 언젠가 어떤 방법으로든 실체적 진실이 분명히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추 전 장관의 책임론을 부각하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드루킹 사건에 대한)수사만 촉구했을 뿐 수사의뢰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하면서 “(이 같은 보도가 계속될 경우)강력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고 경고했다. 같은 편도 비판하다 친문(친 문재인) 세력에서도 비판이 제기되자 언론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추 전 장관이 거론되는 사건이 또 있다는 점이다. 김 지사의 대법원 유죄 판결에 앞서 1심 판결이 나온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에서도 추 전 장관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해당 사건은 추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할 무렵인 지난해 3월 MBC의 보도로 촉발됐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는 지난해 2~3월 후배 기자와 공모해 수감 중인 이철 전 벨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를 상대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의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강요했으나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이 전 기자와 공모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언유착’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공모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전 기자와 후배 기자만 기소했을 뿐 한 검사장은 기소하지 못했다. 수사팀은 한 검사장에 대한 무혐의 결재를 요청했지만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처분을 유보하면서 ‘뭉개기 논란’도 불거졌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이 전 기자와 후배 기자에 무죄를 선고했다. 홍 부장판사는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해도 피고인들의 인식이나 중간전달자에 의해 왜곡돼 전달된 결과에 따른 것이라서 강요미수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전 기자 등이 취재윤리는 위반했다고 인정했지만 강요미수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한다고 본 것이다. 이 전 기자 등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당장 추 전 장관의 책임론이 제기됐다. 추 전 장관은 해당 사건을 두고 수사지휘권 발동 등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할 때에도 이 사건을 사유로 제기했다.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친정부 검사로 눈도장을 찍었다. 윤 전 총장은 거듭된 추 전 장관과의 갈등으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후 대선후보급으로 몸집이 커졌다. 지난해 3월31일 MBC는 이 전 기자가 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 전 대표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한 검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유 이사장의 비위를 털어놓도록 압박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했다. MBC 보도 이후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고발이 이어지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이 수사를 맡았고, 사건은 정진웅 울산지검 차장검사(당시 형사1부장)에게 배당됐다. 채널A 기자 사건도 1심 무죄 윤석열 징계사유로 밀었는데… 윤 전 총장은 측근인 한 검사장이 연루돼있다는 이유로 수사 지휘를 대검찰청 부장회의에 일임했고, 이 전 기자 측은 수사팀을 신뢰할 수 없다며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해달라고 진정했다.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두고 대검과 중앙지검, 수사팀과 법무부는 갈등을 빚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독립성을 부여해 달라며 사실상 윤 전 총장에게 항명했다. 추 전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서울중앙지검의 손을 들어줬다. 윤 전 총장에게 사실상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시그널을 준 것이다. 이후 검찰은 이 전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발부했다. 한 검사장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정진웅 차장검사의 독직폭행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 차장검사는 현재 독직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추 전 장관은 지난해 11월 6가지 징계 사유를 들어 윤 전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했고 징계를 청구했다. 이때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사건과 관련한 감찰 방해가 징계 사유로 포함됐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역시 해당 사건을 징계 사유로 인정, 정직 2개월을 의결한 바 있다. 윤 전 총장은 직무배제와 징계가 부당하다며 행정법원에 각각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처분 자체를 취소하라는 본안 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해 12월24일 “법무부 검사 징계위원회의 의사 정족수가 미달돼 징계위 결정 자체가 무효”라며 윤 전 총장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9일에는 윤 전 총장이 징계 처분을 아예 취소해 달라며 낸 행정소송의 첫 정식재판이 열렸다. 추 전 장관은 이 전 기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검언유착의 결과로 개혁이 더 절실해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의 완벽한 수사방해와 재판방해로 진실이 이길 수 없는 한심한 작태는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고 자신의 SNS에 썼다. 또 “검찰은 한 검사장의 휴대폰 압수 후 비밀번호를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핵심 증거물을 확보하고도 수사·재판에 증거로 활용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검사장은 이 전 기자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온 직후 입장문을 통해 “지난 1년 반 동안 집권세력과 일부 검찰, 어용언론, 어용단체, 어용지식인이 총동원된 ‘검언유착’이라는 유령 같은 거짓선동, 공작, 불법적 공권력 남용이 철저히 실패했다”며 “조국 수사 등 권력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회에 정의와 상식의 불씨가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판결로 잘못이 바로잡혀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거짓선동과 공작, 불법적 공권력을 동원한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추 전 장관, 열린우리당 최강욱 대표, 열린우리당 황희석 최고위원 등을 거론했다. 맹공격 끝에 역풍 맞았다 이 전 기자의 무죄 판결로 검언유착으로 불렸던 사건이 ‘권언유착’으로 비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전 기자는 지난 19일 자신과 이철 전 대표 사이에서 중간전달자 역할을 한 ‘제보자X’ 지모씨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소위 권언유착 사건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지씨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고 계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계류 중인 사건을 엄중 수사해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권언유착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