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예능의 신' 스타PD 나영석의 '내일'

"아직 관찰 강세" 그리고 생짜 코미디를 보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유재석과 강호동. 예능 MC계의 두 거장이 있었던 만큼 예능 PD계에도 두 거장이 있다. tvN 나영석 PD와 MBC 김태호 PD가 그 인물이다. 국내 예능사에 깊이 남을 걸출한 작품을 만들어왔던 터라 누구 한 명이 더 뛰어나다고 하는 것이 무색한 상황이다. 두 PD의 공통점은 예능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왔다는 것이다. 기획부터 섭외 등 다양한 부분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나영석 PD는 다시 한번 도전의 문턱에 섰다. 

기존 예능 프로그램을 두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요즘 말로 '억지 텐션'을 끌어모아서 재미없는 것도 웃어주거나, 합을 맞춘 것임에도 마치 진짜로 속은 것처럼 연기하는 패턴이 시청자들에 읽혀서다. 

진짜로?
억지 텐션

요즘 시청자들의 눈이 높아지면서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린 것이 드러나는 예능 프로그램은 외면을 당한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리얼리티가 고스란히 전달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30세의 젊은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다큐멘터리형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초가 된 PD 중 한 명이 나영석 PD다. KBS2 <1박2일> 시절 나 PD는 출연진에게 가혹한 미션을 전달하면서 '출연진 VS 제작진' 구도로 긴장감을 만들었다. 

실제로 점심을 주지 않기도 했고, 게임에 패배하면 저녁조차 초라한 반찬을 제공했다. <1박2일>을 거쳐간 출연진은 제작진의 혹사에 당하지 않기 위해 몰래 음식을 챙겨오는 등 잔머리를 굴리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전파를 탔다.


출연진과 제작진 구도에서 꼭 제작진이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비가 쏟아지는 날 밤, 잠자리를 걸고 한 게임에서 출연진이 승리하면서 모든 제작진이 실외 취침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고, 5억원에 육박하는 자동차를 건 게임에서 출연진이 승리하면서 나 PD가 직접 무릎을 꿇는 일도 있었다. 

출연진과 실제로 벌이는 승부에서 리얼리티가 그대로 드러났다. <1박2일>에 이어 <신서유기>까지 흥행 요소 중 하나는 나영석 PD를 비롯한 제작진과 강호동을 비롯한 출연진의 치열한 수 싸움이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대결구도는 나 PD의 판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PD는 꾸준히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서왔다. <1박2일> 이후 배우들을 캐스팅한 tvN <꽃보다 할배>를 주축으로 여행 예능의 시대를 열었고, tvN <강식당> <윤식당> <윤스테이> 등을 통해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새로운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네이버tv를 통해 첫 공개한 <신서유기>로는 웹 예능의 기반을 닦았으며,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를 통해서는 이른바 유튜브 예능 전성기의 중심에 있다. 

MC로 나선 '출장 십오야' 콘텐츠 평가 10위
"유재석이라면 과연 어떻게 진행했을까요?"

그런 그가 새롭게 도전한 분야는 MC의 영역이다. <신서유기>에서 갈고 닦은 게임 진행 능력을 발휘하는 프로그램을 론칭한 것. 웹 예능 '출장 십오야'가 그것이다. 본격적으로 MC 롤을 맡기로 한 셈이다. 

시작은 배우 유연석 덕분이었다. 후배인 신효정 PD와 아이템 기획 회의를 하던 중 유연석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팀이 캠핑을 가는데, <신서유기>류의 게임을 해달라는 게 요지였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재밌겠는데'였다. 


"연석이한테 전화가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연석이도 그렇고, 드라마 팀이나 조정석도 잘 알아서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은 이벤트성으로 했는데, 막상 촬영해보니 괜찮더라고요. 제작진과 협의해서 '이거 확장해서 해보자'고 정했죠."

그렇게 '출장 십오야'가 탄생했다. 출연진에는 PD를 비롯한 제작진이 준비한 미션에서 승리해야 된다는 숙제만 주어진다.

유희열 대표를 비롯한 안테나 뮤직의 아티스트들, 이말년‧주호민‧김풍‧이용범 작가의 웹툰 작가들, 정종연, 이진주, 김민석, 유호진, 이태경, 박희연 PD 등 CJ ENM 소속 PD들,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꼽히는 tvN <빈센조>팀, 그리고 설명이 필요 없는 BTS까지 만났다.

국내에서 최고의 스타들을 섭외하는 데 엄청난 역량을 발휘한 나 PD의 능력이 '출장 십오야'에서도 발휘된 것. 

최종적으로는 배우 이병헌이 수장으로 있는 BH엔터테인먼트 소속 한효주, 한지민, 박해수, 김고은, 이진욱 등 배우들과 만났다. 

예능과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나 PD는 빼어난 진행 능력이 돋보인다. 출연자들의 텐션을 적정한 상태에서 유지하는 것은 물론, 특유의 단호한 게임 진행 능력이 빛을 발한다. 

심지어 친분이 거의 없는 웹툰 작가팀과 <빈센조>팀을 만났을 때도 나 PD의 진행 능력은 그 어떤 MC 못지않다. 다양한 게임을 준비해오는 것은 물론 그 안에서 어떻게 재미를 뽑아내는지에 대한 감도 탁월하다. 

탁월한
방송감

몇 차례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캐릭터를 빠르게 파악하고, 약점을 파고든다. 게임에 취약한 BTS 지민을 상대로 여유로운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이 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땡'을 외치는 장면은 백미다. 방송인 겸 PD의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제가 플레이어로서 나오는 것에 처음에는 고민이 없었어요. 다 아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슬기로운 의사생활> 팀부터, 안테나 뮤직도 유희열 대표와는 가까운 사이었고요. PD들은 더 편한 사람들이고요.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편하고 부담이 덜하거든요."

새로운 기획과 더불어 안정적인 진행 덕분이었을까, '출장 십오야'는 불과 5편 만에 콘텐츠영향력평가지수(CJ ENM 제공) 집계에서 종합 10위에 진입했다. 한 주 전보다 무려 17계단이나 오른 기록이다. 

<빈센조>편은 무려 16명의 배우를 상대로 게임을 진행했다. 전문 MC가 아닌 나 PD에겐 매우 어려운 난이도의 숙제였다. 그럼에도 모든 장면이 명장면에 가까웠다.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등에 뒤처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제가 진행을 잘했다고 여겨진다면, 아마 그건 한정된 영역이라서 그럴 거예요. <신서유기>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외부에 나가서 하는 거라서, 사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거든요. MC라고 지칭하기엔 부족하죠. MC는 여러 분야의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건데, 제게 그런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에요. 잠깐의 외도로만 즐겨주시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 친분이 깊지 않은 웹툰 작가들과 <빈센조>, BTS와 게임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나 PD는 BTS 촬영을 앞두고 "'만약 유재석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만 하다 잠이 들었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MC 겸 PD
"힘들어요"

"이게 지인만 갈 수는 없으니까 점점 확장됐어요. 아는 사람이 있는 필드에 마실 나가듯 나가보자는 게 저희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모르는 판에도 가게 된 거죠. 자연스럽게 확장이 됐는데, 지금은 매우 불편해요. 사실 진행 롤을 이어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걸 언제 그만둘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하."

나 PD에 따르면 '출장 십오야'의 선물은 대부분 제작진이 구입한다. 맥주와 치킨 등만 PPL이다. PPL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PD 중 한 명일 뿐 아니라, 브랜드명을 게임의 도구로 사용한 것도 그가 최초다. 최근 '출장 십오야'에서 맥주를 따르는 장면을 매우 깔끔하게 삽입한 것도 나 PD 사단의 센스다. 

"아무래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사실 '출장 십오야'에서 선물로 활용되는 것들은 다 저희가 사는 것이에요. PPL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많으면 좋을 텐데요. 아무래도 유튜브 콘텐츠는 광고를 활용하는 부분에서 제한이 덜하니까 편하게 하는 편이에요. 더 많은 광고를 유입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는 것 맞습니다."


<신서유기>를 통해 네이버tv로 예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렸고, '아이슬란드에 간 세끼'를 통해 유튜브 스핀오프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미 자리를 잡은 TV PD가 뉴미디어에도 손을 뻗친 것. '출장 십오야' 외에도 '언제까지 어깨 춤을 추게 할 거야' '마포멋쟁이' '이식당' '라끼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뒀다.

새로운 플랫폼에 진출하는 것에 가장 선구자적인 행보를 보인 그다. 

"사실 그런 류의 플랫폼을 잘 몰라서 시작하게 된 게 많아요. 잘 모르니까 오히려 공부하기 위해서 시작한 거죠. 새로운 미디어가 출발하게 되면, 올드 미디어와는 자연스러운 긴장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요즘 느끼는 건 뉴미디어와 올드 미디어 간의 시청층이 다르다는 거예요. 뉴미디어는 취향에 특화돼있다면, 올드 미디어는 거대 자본이 투입된 작품을 원하는 거 같아요. 새로운 플랫폼은 계속 배우려고 해요."

유튜브 꽉 잡은 나 PD, OTT도 도전
새 예능 <스프링캠프> 벌써부터 화제

나영석 PD는 CJ ENM과 JTBC의 합작 법인인 티빙에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했다. 제목은 <스프링캠프>다. <신서유기>의 멤버들의 캠핑생활을 관찰 예능 형태로 찍는 셈이다. 

"<신서유기> 멤버들이 봄 소풍을 떠나는 콘셉트예요. OTT가 미래 대세 플랫폼이기 때문에 관심이 생겨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의 새로운 도전의 패턴 중 하나는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다. tvN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꽃보다> 시리즈는 나 PD의 주 무기였던 여행 예능을 색다르게 바꾼 것이었다. <윤식당>의 경우에는 새로운 포맷에 이서진, 윤여정, 정유미와 같은 익숙한 얼굴을 캐스팅했다.

콘텐츠가 새로워지면 인물을 익숙하게 넣고, 콘텐츠에 큰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인물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스프링캠프>는 새로운 플랫폼과 콘텐츠이기 때문에 익숙한 인물을 배치했다. 강호동과 이수근, 은지원, 규현, 피오, 송민호, 안재현이다. <신서유기>를 통해 오랫동안 합을 맞춘 예능인들이 캠핑을 통해 편안한 모습을 그린다는 게 <스프링캠프>의 기획 의도다.

"<신서유기>를 하면 어디 가서 게임을 통해 왁자지껄하면서 노는데, 새로운 플랫폼으로 왔으니까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그들이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캠핑이라는 틀 안에서 <신서유기> 멤버들의 편안하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만들었어요."

OTT는 기존의 TV 매체와는 다른 결을 지닌다. TV는 매주 시청률을 통해 결과를 얻는 데 반해 OTT는 오랫동안 저장되면서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는 형태의 플랫폼이다. 일희일비 하지 않아도 되는 플랫폼인 셈이다.

"PD는 모두 시청률의 노예예요. 하하. 거기에 얽매여서 조마조마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시청률이 없기 때문에 좀 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티빙이라는 플랫폼은 우리가 만든 결과물을 지금 당장 볼 수도 있지만, 1~2년 지나서도 즐길 수 있어요. <스프링캠프> 같은 편안한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언제든 들어와서 보고 대리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선택했어요."

MBC <무한도전>을 시작으로 버라이어티가 활성화됐고, <아빠 어디가>를 통해 관찰·여행 예능이 붐을 일었다. 트로트가 다시 한 번 붐을 일으키면서, 현재 방송가는 다양한 장르가 혼재된 채 진행되고 있다. 예능의 패러다임을 바꿀 다음 장르는 어디가 될지 물어봤다.

아이템 혼재
다음 장르는?

"그런 걸 예상하기란 사실 쉽지 않죠. 각자 PD들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장르를 해요. 거기서 우연히 터지기도 하는데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방송 전체로 본다면, 우리나라의 버라이어티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인 것 같아요. 관찰 장르가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강세인데요. 훨씬 더 많아지고 확장될 것 같아요. 또 반대로 유튜브를 보면 한동안 잊혀진 생짜 코미디도 인기가 많아요. 트렌드가 돌고 도는 거니까, 코미디가 들이닥칠지도 모르겠네요."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