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아름다운 건축물 ②청라언덕과 계산동성당

대구의 근대를 품을 붉은 벽돌집

푸를 청(靑)에 담쟁이 라(蘿). 봄이면 담쟁이덩굴 푸르른 대구 청라언덕에는 오래된 붉은 벽돌집이 오순도순 자리 잡았다. 비슷한 듯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벽돌집은 지은 지 100년이 훌쩍 넘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원래 더 많은 집이 있었지만, 지금 남은 건 세 채뿐. 모두 20세기를 전후해 대구로 온 미국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다. 개항장 부산을 통해 대구로 온 선교사들은 청라언덕에 자리 잡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시신을 묻던 곳이라, 별다른 텃세 없이 이방인들이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청라언덕이란 이름도 이들이 언덕 곳곳에 심은 담쟁이덩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독특한 분위기

달구벌대로에서 언덕을 오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블레어 주택(대구유형문화재 26호)이다. 1901년 한반도에 들어온 선교사 블레어가 살던 집으로, 1910년경 지었다. 당시 최첨단 공법인 콘크리트로 기초를 다지고, 굴뚝이 높은 2층 벽돌집을 올렸다.

2층 박공을 대부분 차지하는 반원형 유리창이 눈길을 끈다. 이 창은 2층에 있는 선룸(sunroom)으로,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커다란 창은 당연히 환기에도 유리하다.

블레어 주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챔니스 주택(대구유형문화재 25호)이 있다. 이곳에는 선교사 챔니스, 미국 북장로회에서 세운 학교(현 계성중·고등학교)의 레이너 교장, 병원(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마펫 원장 등이 살았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풍 주택은 사람 인(人) 자 모양 지붕의 붉은 벽돌 건물과 평지붕의 흰색 건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뿐 아니라, 건축 분야 논문 소재로도 인기다.

챔니스 주택 아래쪽은 사시사철 햇살이 비치는 은혜정원이다. 청라언덕에 살던 선교사와 가족 14명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됐다. 그중에는 챔니스 선교사의 어린 딸 바바라도 있다. 1927년에 태어난 바바라는 석 달 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지역민에게 농사와 축산을 가르치며 선교 활동을 한 챔니스 부부는 1941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매일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양지바른 은혜정원은 겨울에도 햇볕이 따스하다.

은혜정원 북동쪽 스윗즈 주택(대구유형문화재 24호)은 여성 선교사 마르타 스윗즈가 살던 곳이다. 붉은 벽돌 건물에 기와지붕을 얹어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모양이다. 1907년 대구읍성을 철거하면서 나온 성돌로 기초를 쌓은 것도 눈길을 끈다.

집 주위에는 선교사들이 처음 가져왔다는 서양사과나무 3세목과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 기념 종탑도 보인다. 독신으로 살며 18년간 교육 선교에 헌신한 스윗즈 또한 은혜정원에 잠들었다.

선교사들이 떠나고, 현재 이들 주택은 대구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블레어 주택은 교육·역사박물관, 챔니스 주택은 의료박물관, 스윗즈 주택은 선교박물관이 됐다. 아쉽게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금은 무기한 휴관 중이다.

100년 넘는 근대 문화유산
미국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


대구의 근대를 품은 청라언덕은 중구 골목투어 2코스 ‘근대문화골목’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100여년 전, 청라언덕 솔밭길은 대구 3·1운동에 참여하려는 학생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동하던 비밀 통로 역할을 했다. 솔밭길은 지금 포장도로가 됐지만, ‘3·1만세운동길’이란 이름으로 그날의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3·1만세운동길을 따라 청라언덕을 내려오면 두 첨탑이 인상적인 대구 계산동성당(사적 290호)을 만난다. 이곳은 선교사 주택보다 8년쯤 앞선 1902년에 지어졌다. 1899년에 문을 연 목조 한옥 성당이 화재로 소실되자, 고딕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다시 지은 것이다.

당시 대구에서 활동한 로베르 신부가 직접 설계하고, 프랑스에서 자재를 들여와 지었다. 이후 몇 차례 증축을 거쳐 지금은 대구 가톨릭을 대표하는 주교좌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계산동성당에서 도보로 10분이면 닿는 대구근대역사관 또한 근대 문화유산이다. 화강암 기단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올리고, 독일산 흰색 타일로 마감한 건물이다.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해 이후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대구유형문화재 49호)으로 쓰인 이곳은 2011년부터 대구근대역사관이 됐는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실내 전시실도 원래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 높은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빛나고, 조선식산은행 금고실은 당시 사용한 두꺼운 철문이 달려 있다. 금고실 안에는 일제강점기의 각종 은행 자료가 보인다. 금고와 이웃한 부영버스 영상체험실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된 시내버스를 타고 대구 근대 거리를 달리는 체험이 가능하다.

이밖에도 대구 근대 교육과 문화의 다채로운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대구근대역사관이 들어선 곳은 대구 경상감영지(사적 538호)다. 경상도관찰사가 머문 경상감영이 대구에 자리한 것은 1601년(선조 34년)이다. 조선 초 경주에 세운 감영은 상주와 대구, 안동 등으로 옮겼다가 대구에 자리 잡은 뒤 조선 말 지방 제도 개편 때까지 한자리를 지켰다. 지금은 조선 후기 건물인 징청각과 선화당을 중심으로 경상감영공원을 꾸며, 대구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는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

가수 고 김광석이 태어난 중구 방천시장 인근에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있다. 1990년대를 풍미한 그의 전설적인 앨범 〈다시 부르기 1·2〉에서 따온 이름이다. 제방 아래 길지 않은 골목에 그의 모습과 앨범, 노래를 모티프로 삼은 벽화가 이어진다.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지나도 여전한 인기를 바탕으로, 김광석다시그리길은 해마다 15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거리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걷다 보면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청라언덕→계산동성당→대구근대역사관→경상감영공원→김광석다시그리기길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청라언덕→계산동성당→김광석다시그리기길→동성로→반월당 
둘째 날: 대구근대역사관→경상감영공원→대구문학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중구 문화관광 www.jung.daegu.kr/new/culture
- 대구트립로드 tour.daegu.go.kr
- 계산동성당 www.gyesancathedral.kr
- 대구근대역사관 artcenter.daegu.go.kr/dmhm
- 김광석다시그리기길 kimkwangseok.or.kr 

문의 전화
- 중구청 관광진흥과 053)661-2194
- 대구트립로드 053)803-3881
- 청라언덕 053)424-6407
- 계산동성당 053)254-2300
- 대구근대역사관 053)606-6430
- 경상감영공원 053)254-9404 

대중교통
[버스] 서울-동대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3~29회(06:40~다음 날 01:4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동대구터미널에서 동대구역으로 도보 약 500m 이동, 대구도시철도 이용, 청라언덕역 하차, 청라언덕까지 도보 약 8분.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대구도시철도공사 053)643-2114
[기차] 서울역-동대구역, KTX 수시(05:05~23:00) 운행, 약 1시간45분 소요. 동대구역에서 대구도시철도 이용, 청라언덕역 하차, 청라언덕까지 도보 약 8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대구도시철도공사 053)643-2114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김천 IC→신천대로 경상북도경찰청 방면 왼쪽 고속화도로→신천대로 북구청 방면 오른쪽 고속화도로→성북로 북구청 방면 우회전→침산로 침산네거리 방면 좌회전→달구벌대로 신남역·성서 IC 방면 우회전→청라언덕


숙박 정보
- 공감게스트하우스 본점: 중구 중앙대로79길, 070-8915-8991 
- 호텔라벨라: 중구 동성로4길, 053)428-9992 
- 미드타운호스텔: 중구 중앙대로77길, 053)719-3450

식당 정보
- 고향뜰(대구버섯전골): 중구 서성로, 053)257-6700
- 남문납작만두(납작만두): 중구 명륜로, 053)257-1440
- 삼송빵집 본점(통옥수수빵): 중구 중앙대로, 053)254-4064

주변 볼거리
향촌문화관, 달성토성, 이상화 고택, 대구약령시한의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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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