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정치판 뛰어든 안대희 전 대법관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04 13: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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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떼기당'과 손잡은 '국민검사' 도대체 왜?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안대희 전 대법관이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안 전 대법관은 날선 '차떼기' 수사로 '국민검사' 반열까지 올랐던 인물. 참여정부 땐 승승장구해 중수부장을 거쳐 대법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랬던 그가 퇴임 후 박근혜 대선후보와 두세 차례 만나더니 새누리당과 손을 잡았다. 도대체 왜….

지난달 27일 새누리당이 정치쇄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임명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때 '국민검사'라는 칭송을 받았고 대법관 자리까지 올라 명예로운 사람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쉽게 받아들였다는 점. 둘째, 자신이 진두지휘 한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의 대상이었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정치쇄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다는 점. 셋째, 대법관을 맡아 6년을 봉직하고 퇴진한 지 불과 48일 만에 대선 유력 후보의 선거캠프로 직행해 기대와 신뢰를 져버린 점이다.

퇴임하자마자
선거 캠프 직행

야당과 법조계 및 시민단체들은 안 전 대법관의 결정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역대 대법관 중 퇴임 직후 특정 정당으로 간 것은 최초일뿐더러, 이 같은 행보는 두고두고 구설수에 오를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 자리다. 이전 퇴임한 대법관들은 변호사 개업조차 잘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대법관직을 수행하면서 얻은 경험과 능력을 개인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와 사회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안 전 대법관은 2003년 대검 중수부장을 맡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당시로선 성역이나 다름없었던 대선자금 수사를 칼같이 단행해 재벌과 정치권 사이에 관행화 되어 있던 수백억원대 '대선자금 차떼기 비리'를 낱낱이 밝혀냈다. 이때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당'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겨줬다.

또 안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고시 동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도 예외 없이 수사 해 '노무현의 오른팔' 안희정(현 충북도지사)에게 두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기각해도 다시 청구할 정도로 확고했다. 이 같은 행보로 안 전 대법관은 '국민검사'의 반열에 올랐고 '안짱'이라는 팬클럽까지 결성되는 등 비리 척결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당시 한나라당은 "우리 한나라당은 이 잡듯 뒤지면서 한나라당 불법선거자금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는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안 전 대법관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안 전 대법관이 검찰 몫 대법관 후보로 발탁될 당시에는 이를 두고 '노무현 코드인사'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의 행보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바로 17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에 복당하면서 그해 11월 이회창 후보측으로부터 유세지원비 2억원을 받은 경위에 대해 안 전 대법관은 박 후보를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혐의로 결정내려 논란을 불러온 것.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박 대표의 해명은 수사 내용과 다르다"며 "나중에 한꺼번에 털고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지어 버렸다. 당시 대선자금 수사를 담당한 한 검찰 관계자는 "대선자금 수사에서 유세지원비를 받아 문제가 된 것은 박 후보가 유일했다. 만약 수사가 더 진행됐다면 박 후보는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안 전 대법관이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지금의 박근혜는 없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때의 인연이 이번 인선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노무현 코드인사서 새누리당 빅카드로
박근혜 삼고초려… 막후 거래 여부 주목

지난 7월10일 안 전 대법관이 대법관 자리를 퇴임하면서 '자연인 안대희'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를 의식했는지 그는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미국 스탠포드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체류할 계획을 세웠다고 알렸다. 또 원래 일정대로라면 안 전 대법관이 정치쇄신위 위원장으로 임명 된 8월27일은 그의 출국 송별모임이 잡혀있던 날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기간이던 7월 말, 그리고 지난달 24일 두 차례에 걸쳐 박 후보를 만나고 나서 돌연 마음을 바꾼 것이다.

박 후보에게 있어 껄끄러울 법도 한 안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은 새누리당의 개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2003년 안 전 대법관은 대대적인 차떼기 수사를 벌여 당시 한나라당 전체를 초토화시키며 궁지로 몰아넣었다. 당시 박 후보는 '천막당사 체제'로 전환해야만 했다. 그런 과거가 있음에도 박 후보가 '삼고초려'를 하며 안 전 대법관을 맞아들인 것은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된다. 반면 친노로 각인돼 있던 안 전 대법관이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 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이다.

지난달 27일 임명 당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 전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법조인이었기에 새누리당 측의 정치쇄신특위 제안을 쉽게 수용하기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박 후보가 직접 두 차례 찾아와 정치쇄신특위를 맡아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결국 합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차떼기로 대표되는 구태정치는 계속되고 있다"며 "내가 한 번 근절 대책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정치부패 없는 나라,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안 전 대법관은 정치판에 뛰어든 배경에 대해 "첫 만남에서 박 후보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미국에 가야 한다는 일반적인 얘기만 하고 회동이 끝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 분이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성, 한 번 한 말은 지킬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깨끗하고 맑은 나라를 만드는 데 내가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이 자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원수를 사랑하라"
박근혜 '빅카드'

어떤 부분에서 진정성을 느꼈는지에 대해선 "제가 대도부문(大道無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박 후보는 깨끗한 정치, 바로 가는 나라, 질서가 잡힌 나라 이런 말을 많이 했다"며 "뜻이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치쇄신특위의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위원회인만큼 소속 위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측근 비리, 권력형 비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고 법원·검찰 등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 문제, 공천 비리 문제 등을 근절시킬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를 둘러싼 부정, 권력형 비리 등을 볼 텐데 박 후보의 측근이라도 예외 없다"며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으로 박 후보의 친인척이 제외된다면 이 자리에 내가 있는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해보면 안 전 대법관이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직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내건 조건 중 하나는 '전권위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법관의 새누리당 정치쇄신위 위원장 발탁을 두고 민주통합당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안 전 대법관이 참여정부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승승장구해 대검중수부장에 이어 대법관 자리까지 오르게 된점을 들며 일종의 배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그 방법이 옳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 용납되지 않는다"며 "과연 사법부의 최고 권위자인 대법관을 역임하고 이렇게 빨리 정치권으로 갈 수 있는지 모든 법조계가 망연자실하고 있고 국민들도 역시 실망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꼭 논란이 되는 인사밖에 하지 못하는지 유감스럽다"며 "아무리 궁하다 해도 이런 국민도의와 질서를 파괴하는 박 후보의 인사를 보면 그가 대통령이 되기라도 하면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최고의 '전관예우'가
최고의 '방패막이'로

참여정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낸 판사 출신 박범계 원내부대표는 "안 전 대법관이 썼던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치적 데뷔를 했다"며 "어제 예결위에서 대법원 행정처장에게 '과연 대법관을 역임하신 분중에 이렇게 빨리 곧바로 정치적 데뷔를 한 사례가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런 사례가 없다'라는 답변이 왔다"고 전했다.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안 전 대법관이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고도의 정치적 당파성이 요구되는 자리로 옮겼다"며 "대검 중수부장과 대법관을 지내 최고의 전관예우를 받을 예정이었던 분이 이젠 박 후보의 친인척과 측근 비리의혹을 은폐하는 방패막이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이나 독일의 연방대법관이 선거캠프 참모로 뛰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마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지방선거에 출마한 것과 같다"면서 "안 전 대법관은 최고법관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관은 퇴임한 후에도 어느 정도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데 대법관 자리를 정치적 목적으로 삼은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대법관이 퇴임 직후 특정 정당에 간다면 그가 대법관으로 있을 때 한 판결과 인사는 과연 믿을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대법관은 공직의 마지막"이라더니 48일 후
"최고법관을 지낸 사람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반면 이러한 야당과 법조계의 반응을 두고 새누리당은 "안대희 전 대법관의 영입이 민주당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 지 짐작이 된다"며 "비난만 일삼지 말고 인재 영입을 실패한 자신들의 부족함을 탓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안 전 대법관은 2002년 대선 당시 정치권의 압력에도 대선자금 수사에 나서 국민의 갈채를 받았던 분"이라며 "국민들과 새누리당은 안 전 대법관이 앞으로 전개할 정치쇄신 의지와 사법정의 구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안 전 대법관은 새누리당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더 이상 공직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며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우리 사회에 공헌을 하고 또 박근혜 후보의 정치쇄신에 공감해서 새누리당에 참여한 안 전 대법관을 전직 대법관의 정치참여라는 이유로 비판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대법관 퇴임 이후 부적절한 행보로 한바탕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안 전 대법관의 과거는 어땠을까. 그의 과거를 살펴보니 17대 대선 당시 박 후보에 대한 석연치 않은 수사를 제외하곤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청렴했던 법조인으로 나타났다.

안 전 대법관은 1955년 3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때 서울로 올라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거친 후 1975년 제17회 사법고시를 25세의 젊은 나이로 합격해 당시 최연소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인천지검·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중수부장, 부산고검·서울고검 검사장, 대법원 대법관 등을 두루 역임했다.

서울지검 특수부장 재직 때는 서울시 버스회사 비리 사건, 대형 입시학원 비리 등을 지휘했고, 인천지검 특수부장 당시 바닷모래 불법 채취 사건 등을 수사해 검찰 내 특수 수사의 일인자로 '특수통' 으로 통했다. 부산고검 검사장 재직 때는 조세포탈 이론과 수사 실무에 관한 '조세형사법'을 출간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장이 된 그는 2003년 당시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또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성역 없는 수사를 벌여 국민적 신뢰를 얻어 국민검사로 불렸다.


강직 모범 법조인
정치판에서 행보는?

안 전 대법관은 자기 관리에도 투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대법관으로 내정될 당시 서울고검장이었던 그의 재산 신고액은 2억6000만원으로 법조계 고위공직자 가운데 가장 낮은 신고액. 또 안 전 대법관은 지난 7월10일 퇴임사에선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한없이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유지해야 한다"며 "대법관은 모든 공직의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력만 보면 안 전 대법관은 보수 정당의 '정치 개혁'과 비교적 잘 맞물리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직 대법관이 퇴임한 지 48일 만에 유력 여당 대선 후보 캠프의 핵심 중 핵심으로 직행해 사법부의 전체의 신뢰를 흔들고 사법부가 정치에 예속된 느낌을 준 점 만큼은 두고두고 비판거리가 될 전망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 프로필>

▲1955년 경남 함안 출생

▲경기고 졸

▲서울대 행정학 중퇴

▲국립사법관학교 수료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대검찰청 중수부 과학수사지도과 과장

▲인천지검 특수부장

▲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수사 1·3과장

▲서울지검 특수 1·2·3부장

▲대검찰청 중수부 부장

▲부산고검 검사장

▲서울고검 검사장

▲대법원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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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