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정치판 뛰어든 안대희 전 대법관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04 13: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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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떼기당'과 손잡은 '국민검사' 도대체 왜?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안대희 전 대법관이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안 전 대법관은 날선 '차떼기' 수사로 '국민검사' 반열까지 올랐던 인물. 참여정부 땐 승승장구해 중수부장을 거쳐 대법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랬던 그가 퇴임 후 박근혜 대선후보와 두세 차례 만나더니 새누리당과 손을 잡았다. 도대체 왜….

지난달 27일 새누리당이 정치쇄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임명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때 '국민검사'라는 칭송을 받았고 대법관 자리까지 올라 명예로운 사람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쉽게 받아들였다는 점. 둘째, 자신이 진두지휘 한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의 대상이었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정치쇄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다는 점. 셋째, 대법관을 맡아 6년을 봉직하고 퇴진한 지 불과 48일 만에 대선 유력 후보의 선거캠프로 직행해 기대와 신뢰를 져버린 점이다.

퇴임하자마자
선거 캠프 직행

야당과 법조계 및 시민단체들은 안 전 대법관의 결정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역대 대법관 중 퇴임 직후 특정 정당으로 간 것은 최초일뿐더러, 이 같은 행보는 두고두고 구설수에 오를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 자리다. 이전 퇴임한 대법관들은 변호사 개업조차 잘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대법관직을 수행하면서 얻은 경험과 능력을 개인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와 사회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안 전 대법관은 2003년 대검 중수부장을 맡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당시로선 성역이나 다름없었던 대선자금 수사를 칼같이 단행해 재벌과 정치권 사이에 관행화 되어 있던 수백억원대 '대선자금 차떼기 비리'를 낱낱이 밝혀냈다. 이때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당'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겨줬다.

또 안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고시 동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도 예외 없이 수사 해 '노무현의 오른팔' 안희정(현 충북도지사)에게 두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기각해도 다시 청구할 정도로 확고했다. 이 같은 행보로 안 전 대법관은 '국민검사'의 반열에 올랐고 '안짱'이라는 팬클럽까지 결성되는 등 비리 척결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당시 한나라당은 "우리 한나라당은 이 잡듯 뒤지면서 한나라당 불법선거자금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는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안 전 대법관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안 전 대법관이 검찰 몫 대법관 후보로 발탁될 당시에는 이를 두고 '노무현 코드인사'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의 행보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바로 17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에 복당하면서 그해 11월 이회창 후보측으로부터 유세지원비 2억원을 받은 경위에 대해 안 전 대법관은 박 후보를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혐의로 결정내려 논란을 불러온 것.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박 대표의 해명은 수사 내용과 다르다"며 "나중에 한꺼번에 털고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지어 버렸다. 당시 대선자금 수사를 담당한 한 검찰 관계자는 "대선자금 수사에서 유세지원비를 받아 문제가 된 것은 박 후보가 유일했다. 만약 수사가 더 진행됐다면 박 후보는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안 전 대법관이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지금의 박근혜는 없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때의 인연이 이번 인선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노무현 코드인사서 새누리당 빅카드로
박근혜 삼고초려… 막후 거래 여부 주목

지난 7월10일 안 전 대법관이 대법관 자리를 퇴임하면서 '자연인 안대희'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를 의식했는지 그는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미국 스탠포드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체류할 계획을 세웠다고 알렸다. 또 원래 일정대로라면 안 전 대법관이 정치쇄신위 위원장으로 임명 된 8월27일은 그의 출국 송별모임이 잡혀있던 날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기간이던 7월 말, 그리고 지난달 24일 두 차례에 걸쳐 박 후보를 만나고 나서 돌연 마음을 바꾼 것이다.

박 후보에게 있어 껄끄러울 법도 한 안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은 새누리당의 개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2003년 안 전 대법관은 대대적인 차떼기 수사를 벌여 당시 한나라당 전체를 초토화시키며 궁지로 몰아넣었다. 당시 박 후보는 '천막당사 체제'로 전환해야만 했다. 그런 과거가 있음에도 박 후보가 '삼고초려'를 하며 안 전 대법관을 맞아들인 것은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된다. 반면 친노로 각인돼 있던 안 전 대법관이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 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이다.

지난달 27일 임명 당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 전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법조인이었기에 새누리당 측의 정치쇄신특위 제안을 쉽게 수용하기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박 후보가 직접 두 차례 찾아와 정치쇄신특위를 맡아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결국 합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차떼기로 대표되는 구태정치는 계속되고 있다"며 "내가 한 번 근절 대책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정치부패 없는 나라,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안 전 대법관은 정치판에 뛰어든 배경에 대해 "첫 만남에서 박 후보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미국에 가야 한다는 일반적인 얘기만 하고 회동이 끝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 분이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성, 한 번 한 말은 지킬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깨끗하고 맑은 나라를 만드는 데 내가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이 자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원수를 사랑하라"
박근혜 '빅카드'

어떤 부분에서 진정성을 느꼈는지에 대해선 "제가 대도부문(大道無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박 후보는 깨끗한 정치, 바로 가는 나라, 질서가 잡힌 나라 이런 말을 많이 했다"며 "뜻이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치쇄신특위의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위원회인만큼 소속 위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측근 비리, 권력형 비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고 법원·검찰 등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 문제, 공천 비리 문제 등을 근절시킬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를 둘러싼 부정, 권력형 비리 등을 볼 텐데 박 후보의 측근이라도 예외 없다"며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으로 박 후보의 친인척이 제외된다면 이 자리에 내가 있는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해보면 안 전 대법관이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직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내건 조건 중 하나는 '전권위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법관의 새누리당 정치쇄신위 위원장 발탁을 두고 민주통합당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안 전 대법관이 참여정부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승승장구해 대검중수부장에 이어 대법관 자리까지 오르게 된점을 들며 일종의 배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그 방법이 옳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 용납되지 않는다"며 "과연 사법부의 최고 권위자인 대법관을 역임하고 이렇게 빨리 정치권으로 갈 수 있는지 모든 법조계가 망연자실하고 있고 국민들도 역시 실망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꼭 논란이 되는 인사밖에 하지 못하는지 유감스럽다"며 "아무리 궁하다 해도 이런 국민도의와 질서를 파괴하는 박 후보의 인사를 보면 그가 대통령이 되기라도 하면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최고의 '전관예우'가
최고의 '방패막이'로

참여정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낸 판사 출신 박범계 원내부대표는 "안 전 대법관이 썼던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치적 데뷔를 했다"며 "어제 예결위에서 대법원 행정처장에게 '과연 대법관을 역임하신 분중에 이렇게 빨리 곧바로 정치적 데뷔를 한 사례가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런 사례가 없다'라는 답변이 왔다"고 전했다.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안 전 대법관이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고도의 정치적 당파성이 요구되는 자리로 옮겼다"며 "대검 중수부장과 대법관을 지내 최고의 전관예우를 받을 예정이었던 분이 이젠 박 후보의 친인척과 측근 비리의혹을 은폐하는 방패막이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이나 독일의 연방대법관이 선거캠프 참모로 뛰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마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지방선거에 출마한 것과 같다"면서 "안 전 대법관은 최고법관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관은 퇴임한 후에도 어느 정도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데 대법관 자리를 정치적 목적으로 삼은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대법관이 퇴임 직후 특정 정당에 간다면 그가 대법관으로 있을 때 한 판결과 인사는 과연 믿을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대법관은 공직의 마지막"이라더니 48일 후
"최고법관을 지낸 사람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반면 이러한 야당과 법조계의 반응을 두고 새누리당은 "안대희 전 대법관의 영입이 민주당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 지 짐작이 된다"며 "비난만 일삼지 말고 인재 영입을 실패한 자신들의 부족함을 탓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안 전 대법관은 2002년 대선 당시 정치권의 압력에도 대선자금 수사에 나서 국민의 갈채를 받았던 분"이라며 "국민들과 새누리당은 안 전 대법관이 앞으로 전개할 정치쇄신 의지와 사법정의 구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안 전 대법관은 새누리당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더 이상 공직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며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우리 사회에 공헌을 하고 또 박근혜 후보의 정치쇄신에 공감해서 새누리당에 참여한 안 전 대법관을 전직 대법관의 정치참여라는 이유로 비판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대법관 퇴임 이후 부적절한 행보로 한바탕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안 전 대법관의 과거는 어땠을까. 그의 과거를 살펴보니 17대 대선 당시 박 후보에 대한 석연치 않은 수사를 제외하곤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청렴했던 법조인으로 나타났다.

안 전 대법관은 1955년 3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때 서울로 올라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거친 후 1975년 제17회 사법고시를 25세의 젊은 나이로 합격해 당시 최연소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인천지검·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중수부장, 부산고검·서울고검 검사장, 대법원 대법관 등을 두루 역임했다.

서울지검 특수부장 재직 때는 서울시 버스회사 비리 사건, 대형 입시학원 비리 등을 지휘했고, 인천지검 특수부장 당시 바닷모래 불법 채취 사건 등을 수사해 검찰 내 특수 수사의 일인자로 '특수통' 으로 통했다. 부산고검 검사장 재직 때는 조세포탈 이론과 수사 실무에 관한 '조세형사법'을 출간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장이 된 그는 2003년 당시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또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성역 없는 수사를 벌여 국민적 신뢰를 얻어 국민검사로 불렸다.


강직 모범 법조인
정치판에서 행보는?

안 전 대법관은 자기 관리에도 투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대법관으로 내정될 당시 서울고검장이었던 그의 재산 신고액은 2억6000만원으로 법조계 고위공직자 가운데 가장 낮은 신고액. 또 안 전 대법관은 지난 7월10일 퇴임사에선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한없이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유지해야 한다"며 "대법관은 모든 공직의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력만 보면 안 전 대법관은 보수 정당의 '정치 개혁'과 비교적 잘 맞물리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직 대법관이 퇴임한 지 48일 만에 유력 여당 대선 후보 캠프의 핵심 중 핵심으로 직행해 사법부의 전체의 신뢰를 흔들고 사법부가 정치에 예속된 느낌을 준 점 만큼은 두고두고 비판거리가 될 전망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 프로필>

▲1955년 경남 함안 출생

▲경기고 졸

▲서울대 행정학 중퇴

▲국립사법관학교 수료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대검찰청 중수부 과학수사지도과 과장

▲인천지검 특수부장

▲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수사 1·3과장

▲서울지검 특수 1·2·3부장

▲대검찰청 중수부 부장

▲부산고검 검사장

▲서울고검 검사장

▲대법원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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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