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정치판 뛰어든 안대희 전 대법관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04 13: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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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떼기당'과 손잡은 '국민검사' 도대체 왜?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안대희 전 대법관이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안 전 대법관은 날선 '차떼기' 수사로 '국민검사' 반열까지 올랐던 인물. 참여정부 땐 승승장구해 중수부장을 거쳐 대법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랬던 그가 퇴임 후 박근혜 대선후보와 두세 차례 만나더니 새누리당과 손을 잡았다. 도대체 왜….

지난달 27일 새누리당이 정치쇄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임명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때 '국민검사'라는 칭송을 받았고 대법관 자리까지 올라 명예로운 사람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쉽게 받아들였다는 점. 둘째, 자신이 진두지휘 한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의 대상이었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정치쇄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다는 점. 셋째, 대법관을 맡아 6년을 봉직하고 퇴진한 지 불과 48일 만에 대선 유력 후보의 선거캠프로 직행해 기대와 신뢰를 져버린 점이다.

퇴임하자마자
선거 캠프 직행

야당과 법조계 및 시민단체들은 안 전 대법관의 결정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역대 대법관 중 퇴임 직후 특정 정당으로 간 것은 최초일뿐더러, 이 같은 행보는 두고두고 구설수에 오를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 자리다. 이전 퇴임한 대법관들은 변호사 개업조차 잘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대법관직을 수행하면서 얻은 경험과 능력을 개인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와 사회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안 전 대법관은 2003년 대검 중수부장을 맡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당시로선 성역이나 다름없었던 대선자금 수사를 칼같이 단행해 재벌과 정치권 사이에 관행화 되어 있던 수백억원대 '대선자금 차떼기 비리'를 낱낱이 밝혀냈다. 이때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당'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겨줬다.

또 안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고시 동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도 예외 없이 수사 해 '노무현의 오른팔' 안희정(현 충북도지사)에게 두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기각해도 다시 청구할 정도로 확고했다. 이 같은 행보로 안 전 대법관은 '국민검사'의 반열에 올랐고 '안짱'이라는 팬클럽까지 결성되는 등 비리 척결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당시 한나라당은 "우리 한나라당은 이 잡듯 뒤지면서 한나라당 불법선거자금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는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안 전 대법관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안 전 대법관이 검찰 몫 대법관 후보로 발탁될 당시에는 이를 두고 '노무현 코드인사'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의 행보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바로 17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에 복당하면서 그해 11월 이회창 후보측으로부터 유세지원비 2억원을 받은 경위에 대해 안 전 대법관은 박 후보를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혐의로 결정내려 논란을 불러온 것.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박 대표의 해명은 수사 내용과 다르다"며 "나중에 한꺼번에 털고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지어 버렸다. 당시 대선자금 수사를 담당한 한 검찰 관계자는 "대선자금 수사에서 유세지원비를 받아 문제가 된 것은 박 후보가 유일했다. 만약 수사가 더 진행됐다면 박 후보는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안 전 대법관이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지금의 박근혜는 없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때의 인연이 이번 인선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노무현 코드인사서 새누리당 빅카드로
박근혜 삼고초려… 막후 거래 여부 주목

지난 7월10일 안 전 대법관이 대법관 자리를 퇴임하면서 '자연인 안대희'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를 의식했는지 그는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미국 스탠포드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체류할 계획을 세웠다고 알렸다. 또 원래 일정대로라면 안 전 대법관이 정치쇄신위 위원장으로 임명 된 8월27일은 그의 출국 송별모임이 잡혀있던 날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기간이던 7월 말, 그리고 지난달 24일 두 차례에 걸쳐 박 후보를 만나고 나서 돌연 마음을 바꾼 것이다.

박 후보에게 있어 껄끄러울 법도 한 안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은 새누리당의 개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2003년 안 전 대법관은 대대적인 차떼기 수사를 벌여 당시 한나라당 전체를 초토화시키며 궁지로 몰아넣었다. 당시 박 후보는 '천막당사 체제'로 전환해야만 했다. 그런 과거가 있음에도 박 후보가 '삼고초려'를 하며 안 전 대법관을 맞아들인 것은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된다. 반면 친노로 각인돼 있던 안 전 대법관이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 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이다.

지난달 27일 임명 당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 전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법조인이었기에 새누리당 측의 정치쇄신특위 제안을 쉽게 수용하기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박 후보가 직접 두 차례 찾아와 정치쇄신특위를 맡아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결국 합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차떼기로 대표되는 구태정치는 계속되고 있다"며 "내가 한 번 근절 대책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정치부패 없는 나라,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안 전 대법관은 정치판에 뛰어든 배경에 대해 "첫 만남에서 박 후보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미국에 가야 한다는 일반적인 얘기만 하고 회동이 끝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 분이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성, 한 번 한 말은 지킬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깨끗하고 맑은 나라를 만드는 데 내가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이 자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원수를 사랑하라"
박근혜 '빅카드'

어떤 부분에서 진정성을 느꼈는지에 대해선 "제가 대도부문(大道無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박 후보는 깨끗한 정치, 바로 가는 나라, 질서가 잡힌 나라 이런 말을 많이 했다"며 "뜻이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치쇄신특위의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위원회인만큼 소속 위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측근 비리, 권력형 비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고 법원·검찰 등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 문제, 공천 비리 문제 등을 근절시킬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를 둘러싼 부정, 권력형 비리 등을 볼 텐데 박 후보의 측근이라도 예외 없다"며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으로 박 후보의 친인척이 제외된다면 이 자리에 내가 있는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해보면 안 전 대법관이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직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내건 조건 중 하나는 '전권위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법관의 새누리당 정치쇄신위 위원장 발탁을 두고 민주통합당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안 전 대법관이 참여정부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승승장구해 대검중수부장에 이어 대법관 자리까지 오르게 된점을 들며 일종의 배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그 방법이 옳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 용납되지 않는다"며 "과연 사법부의 최고 권위자인 대법관을 역임하고 이렇게 빨리 정치권으로 갈 수 있는지 모든 법조계가 망연자실하고 있고 국민들도 역시 실망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꼭 논란이 되는 인사밖에 하지 못하는지 유감스럽다"며 "아무리 궁하다 해도 이런 국민도의와 질서를 파괴하는 박 후보의 인사를 보면 그가 대통령이 되기라도 하면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최고의 '전관예우'가
최고의 '방패막이'로

참여정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낸 판사 출신 박범계 원내부대표는 "안 전 대법관이 썼던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치적 데뷔를 했다"며 "어제 예결위에서 대법원 행정처장에게 '과연 대법관을 역임하신 분중에 이렇게 빨리 곧바로 정치적 데뷔를 한 사례가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런 사례가 없다'라는 답변이 왔다"고 전했다.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안 전 대법관이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고도의 정치적 당파성이 요구되는 자리로 옮겼다"며 "대검 중수부장과 대법관을 지내 최고의 전관예우를 받을 예정이었던 분이 이젠 박 후보의 친인척과 측근 비리의혹을 은폐하는 방패막이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이나 독일의 연방대법관이 선거캠프 참모로 뛰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마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지방선거에 출마한 것과 같다"면서 "안 전 대법관은 최고법관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관은 퇴임한 후에도 어느 정도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데 대법관 자리를 정치적 목적으로 삼은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대법관이 퇴임 직후 특정 정당에 간다면 그가 대법관으로 있을 때 한 판결과 인사는 과연 믿을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대법관은 공직의 마지막"이라더니 48일 후
"최고법관을 지낸 사람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반면 이러한 야당과 법조계의 반응을 두고 새누리당은 "안대희 전 대법관의 영입이 민주당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 지 짐작이 된다"며 "비난만 일삼지 말고 인재 영입을 실패한 자신들의 부족함을 탓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안 전 대법관은 2002년 대선 당시 정치권의 압력에도 대선자금 수사에 나서 국민의 갈채를 받았던 분"이라며 "국민들과 새누리당은 안 전 대법관이 앞으로 전개할 정치쇄신 의지와 사법정의 구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안 전 대법관은 새누리당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더 이상 공직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며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우리 사회에 공헌을 하고 또 박근혜 후보의 정치쇄신에 공감해서 새누리당에 참여한 안 전 대법관을 전직 대법관의 정치참여라는 이유로 비판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대법관 퇴임 이후 부적절한 행보로 한바탕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안 전 대법관의 과거는 어땠을까. 그의 과거를 살펴보니 17대 대선 당시 박 후보에 대한 석연치 않은 수사를 제외하곤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청렴했던 법조인으로 나타났다.

안 전 대법관은 1955년 3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때 서울로 올라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거친 후 1975년 제17회 사법고시를 25세의 젊은 나이로 합격해 당시 최연소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인천지검·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중수부장, 부산고검·서울고검 검사장, 대법원 대법관 등을 두루 역임했다.

서울지검 특수부장 재직 때는 서울시 버스회사 비리 사건, 대형 입시학원 비리 등을 지휘했고, 인천지검 특수부장 당시 바닷모래 불법 채취 사건 등을 수사해 검찰 내 특수 수사의 일인자로 '특수통' 으로 통했다. 부산고검 검사장 재직 때는 조세포탈 이론과 수사 실무에 관한 '조세형사법'을 출간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장이 된 그는 2003년 당시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또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성역 없는 수사를 벌여 국민적 신뢰를 얻어 국민검사로 불렸다.


강직 모범 법조인
정치판에서 행보는?

안 전 대법관은 자기 관리에도 투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대법관으로 내정될 당시 서울고검장이었던 그의 재산 신고액은 2억6000만원으로 법조계 고위공직자 가운데 가장 낮은 신고액. 또 안 전 대법관은 지난 7월10일 퇴임사에선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한없이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유지해야 한다"며 "대법관은 모든 공직의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력만 보면 안 전 대법관은 보수 정당의 '정치 개혁'과 비교적 잘 맞물리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직 대법관이 퇴임한 지 48일 만에 유력 여당 대선 후보 캠프의 핵심 중 핵심으로 직행해 사법부의 전체의 신뢰를 흔들고 사법부가 정치에 예속된 느낌을 준 점 만큼은 두고두고 비판거리가 될 전망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 프로필>

▲1955년 경남 함안 출생

▲경기고 졸

▲서울대 행정학 중퇴

▲국립사법관학교 수료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대검찰청 중수부 과학수사지도과 과장

▲인천지검 특수부장

▲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수사 1·3과장

▲서울지검 특수 1·2·3부장

▲대검찰청 중수부 부장

▲부산고검 검사장

▲서울고검 검사장

▲대법원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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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