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정치판 뛰어든 안대희 전 대법관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04 13: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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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떼기당'과 손잡은 '국민검사' 도대체 왜?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안대희 전 대법관이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안 전 대법관은 날선 '차떼기' 수사로 '국민검사' 반열까지 올랐던 인물. 참여정부 땐 승승장구해 중수부장을 거쳐 대법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랬던 그가 퇴임 후 박근혜 대선후보와 두세 차례 만나더니 새누리당과 손을 잡았다. 도대체 왜….

지난달 27일 새누리당이 정치쇄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임명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때 '국민검사'라는 칭송을 받았고 대법관 자리까지 올라 명예로운 사람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쉽게 받아들였다는 점. 둘째, 자신이 진두지휘 한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의 대상이었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정치쇄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다는 점. 셋째, 대법관을 맡아 6년을 봉직하고 퇴진한 지 불과 48일 만에 대선 유력 후보의 선거캠프로 직행해 기대와 신뢰를 져버린 점이다.

퇴임하자마자
선거 캠프 직행

야당과 법조계 및 시민단체들은 안 전 대법관의 결정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역대 대법관 중 퇴임 직후 특정 정당으로 간 것은 최초일뿐더러, 이 같은 행보는 두고두고 구설수에 오를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 자리다. 이전 퇴임한 대법관들은 변호사 개업조차 잘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대법관직을 수행하면서 얻은 경험과 능력을 개인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와 사회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안 전 대법관은 2003년 대검 중수부장을 맡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당시로선 성역이나 다름없었던 대선자금 수사를 칼같이 단행해 재벌과 정치권 사이에 관행화 되어 있던 수백억원대 '대선자금 차떼기 비리'를 낱낱이 밝혀냈다. 이때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당'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겨줬다.

또 안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고시 동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도 예외 없이 수사 해 '노무현의 오른팔' 안희정(현 충북도지사)에게 두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기각해도 다시 청구할 정도로 확고했다. 이 같은 행보로 안 전 대법관은 '국민검사'의 반열에 올랐고 '안짱'이라는 팬클럽까지 결성되는 등 비리 척결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당시 한나라당은 "우리 한나라당은 이 잡듯 뒤지면서 한나라당 불법선거자금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는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안 전 대법관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안 전 대법관이 검찰 몫 대법관 후보로 발탁될 당시에는 이를 두고 '노무현 코드인사'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의 행보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바로 17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에 복당하면서 그해 11월 이회창 후보측으로부터 유세지원비 2억원을 받은 경위에 대해 안 전 대법관은 박 후보를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혐의로 결정내려 논란을 불러온 것.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박 대표의 해명은 수사 내용과 다르다"며 "나중에 한꺼번에 털고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지어 버렸다. 당시 대선자금 수사를 담당한 한 검찰 관계자는 "대선자금 수사에서 유세지원비를 받아 문제가 된 것은 박 후보가 유일했다. 만약 수사가 더 진행됐다면 박 후보는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안 전 대법관이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지금의 박근혜는 없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때의 인연이 이번 인선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노무현 코드인사서 새누리당 빅카드로
박근혜 삼고초려… 막후 거래 여부 주목

지난 7월10일 안 전 대법관이 대법관 자리를 퇴임하면서 '자연인 안대희'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를 의식했는지 그는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미국 스탠포드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체류할 계획을 세웠다고 알렸다. 또 원래 일정대로라면 안 전 대법관이 정치쇄신위 위원장으로 임명 된 8월27일은 그의 출국 송별모임이 잡혀있던 날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기간이던 7월 말, 그리고 지난달 24일 두 차례에 걸쳐 박 후보를 만나고 나서 돌연 마음을 바꾼 것이다.

박 후보에게 있어 껄끄러울 법도 한 안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은 새누리당의 개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2003년 안 전 대법관은 대대적인 차떼기 수사를 벌여 당시 한나라당 전체를 초토화시키며 궁지로 몰아넣었다. 당시 박 후보는 '천막당사 체제'로 전환해야만 했다. 그런 과거가 있음에도 박 후보가 '삼고초려'를 하며 안 전 대법관을 맞아들인 것은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된다. 반면 친노로 각인돼 있던 안 전 대법관이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 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이다.

지난달 27일 임명 당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 전 대법관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법조인이었기에 새누리당 측의 정치쇄신특위 제안을 쉽게 수용하기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박 후보가 직접 두 차례 찾아와 정치쇄신특위를 맡아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결국 합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차떼기로 대표되는 구태정치는 계속되고 있다"며 "내가 한 번 근절 대책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정치부패 없는 나라,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안 전 대법관은 정치판에 뛰어든 배경에 대해 "첫 만남에서 박 후보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미국에 가야 한다는 일반적인 얘기만 하고 회동이 끝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 분이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성, 한 번 한 말은 지킬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깨끗하고 맑은 나라를 만드는 데 내가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이 자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원수를 사랑하라"
박근혜 '빅카드'

어떤 부분에서 진정성을 느꼈는지에 대해선 "제가 대도부문(大道無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박 후보는 깨끗한 정치, 바로 가는 나라, 질서가 잡힌 나라 이런 말을 많이 했다"며 "뜻이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치쇄신특위의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위원회인만큼 소속 위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측근 비리, 권력형 비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고 법원·검찰 등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 문제, 공천 비리 문제 등을 근절시킬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를 둘러싼 부정, 권력형 비리 등을 볼 텐데 박 후보의 측근이라도 예외 없다"며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으로 박 후보의 친인척이 제외된다면 이 자리에 내가 있는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해보면 안 전 대법관이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직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내건 조건 중 하나는 '전권위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법관의 새누리당 정치쇄신위 위원장 발탁을 두고 민주통합당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안 전 대법관이 참여정부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승승장구해 대검중수부장에 이어 대법관 자리까지 오르게 된점을 들며 일종의 배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그 방법이 옳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 용납되지 않는다"며 "과연 사법부의 최고 권위자인 대법관을 역임하고 이렇게 빨리 정치권으로 갈 수 있는지 모든 법조계가 망연자실하고 있고 국민들도 역시 실망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꼭 논란이 되는 인사밖에 하지 못하는지 유감스럽다"며 "아무리 궁하다 해도 이런 국민도의와 질서를 파괴하는 박 후보의 인사를 보면 그가 대통령이 되기라도 하면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최고의 '전관예우'가
최고의 '방패막이'로

참여정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낸 판사 출신 박범계 원내부대표는 "안 전 대법관이 썼던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치적 데뷔를 했다"며 "어제 예결위에서 대법원 행정처장에게 '과연 대법관을 역임하신 분중에 이렇게 빨리 곧바로 정치적 데뷔를 한 사례가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런 사례가 없다'라는 답변이 왔다"고 전했다.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안 전 대법관이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고도의 정치적 당파성이 요구되는 자리로 옮겼다"며 "대검 중수부장과 대법관을 지내 최고의 전관예우를 받을 예정이었던 분이 이젠 박 후보의 친인척과 측근 비리의혹을 은폐하는 방패막이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이나 독일의 연방대법관이 선거캠프 참모로 뛰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마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지방선거에 출마한 것과 같다"면서 "안 전 대법관은 최고법관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관은 퇴임한 후에도 어느 정도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데 대법관 자리를 정치적 목적으로 삼은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대법관이 퇴임 직후 특정 정당에 간다면 그가 대법관으로 있을 때 한 판결과 인사는 과연 믿을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대법관은 공직의 마지막"이라더니 48일 후
"최고법관을 지낸 사람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반면 이러한 야당과 법조계의 반응을 두고 새누리당은 "안대희 전 대법관의 영입이 민주당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 지 짐작이 된다"며 "비난만 일삼지 말고 인재 영입을 실패한 자신들의 부족함을 탓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안 전 대법관은 2002년 대선 당시 정치권의 압력에도 대선자금 수사에 나서 국민의 갈채를 받았던 분"이라며 "국민들과 새누리당은 안 전 대법관이 앞으로 전개할 정치쇄신 의지와 사법정의 구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안 전 대법관은 새누리당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더 이상 공직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며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우리 사회에 공헌을 하고 또 박근혜 후보의 정치쇄신에 공감해서 새누리당에 참여한 안 전 대법관을 전직 대법관의 정치참여라는 이유로 비판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대법관 퇴임 이후 부적절한 행보로 한바탕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안 전 대법관의 과거는 어땠을까. 그의 과거를 살펴보니 17대 대선 당시 박 후보에 대한 석연치 않은 수사를 제외하곤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청렴했던 법조인으로 나타났다.

안 전 대법관은 1955년 3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때 서울로 올라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거친 후 1975년 제17회 사법고시를 25세의 젊은 나이로 합격해 당시 최연소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인천지검·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중수부장, 부산고검·서울고검 검사장, 대법원 대법관 등을 두루 역임했다.

서울지검 특수부장 재직 때는 서울시 버스회사 비리 사건, 대형 입시학원 비리 등을 지휘했고, 인천지검 특수부장 당시 바닷모래 불법 채취 사건 등을 수사해 검찰 내 특수 수사의 일인자로 '특수통' 으로 통했다. 부산고검 검사장 재직 때는 조세포탈 이론과 수사 실무에 관한 '조세형사법'을 출간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장이 된 그는 2003년 당시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또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성역 없는 수사를 벌여 국민적 신뢰를 얻어 국민검사로 불렸다.


강직 모범 법조인
정치판에서 행보는?

안 전 대법관은 자기 관리에도 투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대법관으로 내정될 당시 서울고검장이었던 그의 재산 신고액은 2억6000만원으로 법조계 고위공직자 가운데 가장 낮은 신고액. 또 안 전 대법관은 지난 7월10일 퇴임사에선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한없이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유지해야 한다"며 "대법관은 모든 공직의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력만 보면 안 전 대법관은 보수 정당의 '정치 개혁'과 비교적 잘 맞물리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직 대법관이 퇴임한 지 48일 만에 유력 여당 대선 후보 캠프의 핵심 중 핵심으로 직행해 사법부의 전체의 신뢰를 흔들고 사법부가 정치에 예속된 느낌을 준 점 만큼은 두고두고 비판거리가 될 전망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 프로필>

▲1955년 경남 함안 출생

▲경기고 졸

▲서울대 행정학 중퇴

▲국립사법관학교 수료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대검찰청 중수부 과학수사지도과 과장

▲인천지검 특수부장

▲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수사 1·3과장

▲서울지검 특수 1·2·3부장

▲대검찰청 중수부 부장

▲부산고검 검사장

▲서울고검 검사장

▲대법원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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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