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기업’ 신성통상의 위기

공들여 쌓은 탑 ‘휘청휘청’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애국 마케팅으로 유명한 신성통상이 각종 구설수에 오르면서 오히려 평판을 깎아먹는 모양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실적 악화를 겪으면서 직원들을 당일에 전화로 해고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염태순 회장의 아들과 사위는 입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에는 국세청이 신성통상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더욱이 특별조사를 진행하는 서울청 조사 4국이 움직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이목을 끌고 있다. 

신성통상은 국내 패션업계의 ‘절대 강자’ 유니클로의 몰락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기업으로 꼽힌다. 신성통상은 일본 불매운동에 맞춘 ‘애국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은 탑텐을 운영하면서 ‘애국 기업’의 이미지를 쌓아왔다.

매출 오르는데 
이미지 바닥

지난 2019년 7월 일본 불매운동 직후부터 탑텐의 애국 마케팅이었던 ‘3·1운동 기념 티셔츠’ ‘광복절 티셔츠’ ‘독도 프로모션’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공헌이 재조명됐다. 누리꾼들은 ‘유니클로 대신 탑텐’을 외치며 자발적으로 구매를 독려했다.

이를 기점으로 유니클로가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신성통상의 SPA브랜드 ‘탑텐’은 나홀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탑텐은 2019년 국내 SPA 브랜드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실적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신성통상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신성통상은 지난해 하반기 635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11% 늘어난 규모다.


특히 탑텐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이 기간 탑텐의 생산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40.5% 늘어난 833억원을 기록했다. 5년 전인 2016년에 비해서는 두 배가량 증가했다.

동종업계 다른 브랜드들이 매출 감소로 일부 사업을 접고, 매장을 철수한 것과 대조적으로 탑텐은 매장 수를 빠르게 불려가고 있다.

탑텐의 작년 말 기준 전국 매장 수는 425개로, 6개월 만에 58개의 매장이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패션업 불황이 짙었던 때에도 공격적 확장을 이어간 것이다. 최근 5년 새 점포수가 3배가량 늘어났다.

신성통상은 패션업계를 휘몰아친 불매 운동과 코로나 한파에도 굳건히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미지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에 선방했지만 연이은 구설수
전화로 직원 해고…아들·사위는 입사

지난해 초 권고사직 이슈가 불거지면서 공들여 쌓아온 ‘애국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으면서 인력 감축을 추진했다는 것을 넘어 수출본부 소속 220여명에게 권고사직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팀장이 전화로 해고 통보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면통보를 선행하는 등 서류상의 절차가 선행돼야 하지만 신성통상이 직원에게 취한 조치와 같이 전화를 통한 당일 해고는 부당해고의 소지가 충분하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 신성통상은 이번 조치가 정리해고가 아닌 권고사직이라고 줄곧 강조하고 있다. 사전 해고 회피 노력 등을 의무적으로 강제한 정리해고가 아니기에, 이번 구조조정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신성통상 측은 부당해고 논란을 반박, 소문과 사실은 많이 다르다고 입장을 밝혔다. 신성통상 측은 “부당해고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코로나19 장기화로 베트남, 미얀마 공장 라인 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구조조정은 공장 셧다운 사태로 사업 실적이 악화하면서 내리게 된 조치”라고 설명했다.

논란이 된 한 커뮤니티 글도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신성통상 측은 해명했다.

신성통상 관계자는 “기존 논란이 된 게시글에서는 구조조정 규모가 55명 수준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 구조조정 대상은 수출사업부 전체 220명의 10% 수준”이라며 “이도 자진사퇴, 부서 재배치 등의 인원이 포함된 수치”라고 부연했다.

할인행사 남발
소비자는 불만

신성통상은 일방적인 사측의 해고도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신성통상 관계자는 “일방적인 권고사직이 아니었다. 직원과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었다”면서 “대화 과정에서 퇴직 의사를 밝힌 직원 의견을 수렴했다. 퇴직하는 20명 남짓의 직원에게는 퇴직 위로금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신성통상 염태순 회장의 외아들과 둘째 사위가 수출기업부에 입사해 재직 중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염태순 회장의 둘째 사위는 2019년 11월 신성통상 수출사업부 이사로 입사했다. 지난해 1월에는 염태순 회장의 외동아들 염상원씨가 과장으로 입사했다.

현재 신성통상의 최대주주는 비상장사인 가나안(지분 28.26%)으로, 가나안의 최대주주(지분 82.43%)는 아들인 염상원씨다. 염씨는 2009년 가나안 주식을 양도받았고 사실상 신성통상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

실제로 현재 신성통상 곳곳에는 오너가 일원 상당수가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성통상은 두 사람의 입사 시기와 구조조정안 검토 시기는 염연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데, 정작 오너가 일원은 ‘어려운 시기’에 입사해 근무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회사 내·외부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권고사직 이슈 이후에도 직장 내 갑질 사건 등 구설수에 오르면서 소비자들은 ‘애국 기업’ 신성통상에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일각에선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초저가’를 무기로 한 젊은 층 공량이 성공적으로 먹혀들면서 매출은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탑텐의 주요 제품은 1만~2만원대로 유니클로보다 싼 편이다. 여기에 할인행사를 거듭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탑텐은 지난해 9월 패밀리세일을 시작으로 10월 텐텐데이, 11월 블랙프라이데이, 12월 피크데이 등의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연거푸 진행했다.

그러나 숨가쁘게 반복된 할인행사의 최후는 소비자 불만의 폭발이었다. 거의 쉬는 기간 없이 이름만 바꿔 할인을 이어나가는 동안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소비자민원이 수개월간 폭주한 것이다.

이 기간 신성통상에는 ▲배송 지연 및 오배송 ▲고객센터 불통 및 연락두절 ▲교환·환불 처리 지연 ▲환불 누락 등 서비스와 관련된 소비자 불만들이 줄을 이었다.

신성통상의 공식 온라인몰인 탑텐몰은 할인행사 때마다 배송 문제와 1+1 기획상품 부분 발송 및 환불 문제로 소비자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럼에도 이전 행사의 민원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또다른 세일만 이어나갔다.


재계 저승사자
사정 정조준

신성통상은 지난해 10월 ‘텐텐데이’ 행사 진행 후 배송지연, 고객센터 불통 등의 문제로 대거 소비자 민원이 발생하자 당시에도 빠른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12월까지도 고객센터 및 시스템 안정화로 인한 뚜렷한 개선 효과는 보이지 않았다.

불만족스러운 서비스에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사이 신성통상은 내부적으로도 악재에 부딪혔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인 모양새다.

최근 연초부터 세무당국의 화살이 신성통상을 정조준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월말 서울지방국세청은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신성통상 본사에 조사4국 요원을 보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일명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조사4국은 정기 세무조사가 아닌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직이다. 통상 기업의 비자금·횡령·배임 등 특정 혐의가 있을 때 기획조사를 담당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번 신성통상의 세무조사는 정기 세무조사와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선 이번 세무조사가 신성통상이 현지법인 드림센토사를 모기업 가나안에 고가 매각한 것과 관련 매도 가격의 적정성 논란에 대한 조사가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세청 조사4국 투입…고강도 세무조사
부실법인 인수·재매각 등서 탈루 포착?

신성통상의 모기업인 가나안은 2002년경 자본금 32억원, 지분 95%로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인 드림센토사를 설립했다. 드림센토사는 가방 봉제업으로 출발했으나 신성통상이 인수하면서 의류 봉제업을 추가했다.

신성통상과 가나안의 결산 재무제표에 따르면 신성통상은 2007년 9월 드림센토사 지분 96.68%를 모기업인 가나안으로부터 54억원에 인수했다.

인수하는 사업연도(2007년7월~2008년6월) 드림센토사의 재무상황은 총자산 159억원에 자기자본 19억원, 매출 38억원, 순손실 16억원을 보였다. 신성통상이 인수한 후에도 드림센토사는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신성통상은 인수한 인도네시아 드림센토사의 부실이 깊어지면서 이 회사를 인수한지 10년도 못 돼 다시 모기업인 가나안에 되팔았다.

신성통상은 2016년 11월 가나안에게 드림센토사 지분 96.68%를 150억원에 재매각했다. 신성통상이 가나안으로부터 인수한 54억원에 비해 3배가량 높은 가격에 재매각한 것이다.

드림센토사 인수 후인 2009년 6월 말 회계연도에는 신성통상이 드림센토사에 지급한 대여금 등 261억원을 출자전환 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림센토사 경영실적은 매년 순손실을 보이며 2007년 인수 당시보다 재무상태가 더욱 악화됐다.

재매각 직전년도(2016년 6월) 드림센토사의 재무상황은 자기자본 32억원, 순손실 71억원이며 재매각하는 해에는 자기자본 -76억원, 순손실 35억원을 보이고 있다.

세무회계 전문가들은 이처럼 특수관계인 사이에 재무제표 상의 기업가치와 큰 차이가 나는 기업양수도 거래가 이뤄질 경우 세무 및 회계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세청이 특수관계자 간 기업인수 과정에서 조세탈루 혐의가 없었는지 점검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고가 매각
탈루 관련?

신성통상은 드림센토사의 부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가 매각을 통해 150억원에 고가 매각했다는 것은 모기업에 부실을 떠넘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매각을 통해 신성통상은 무려 3배의 차익을 얻었다. 세무당국은 이 과정에서 탈루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

신성통상 관계자는 “세무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맞다”며 “이와 관련된 기사가 나왔지만 조사가 진행 중이라 알고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밑바탕 삼아 용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대권 도전 과정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었다. 장 대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빙글빙글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6일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광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들은 장 대표 일행의 참배를 막았다. 결국 장 대표 일행은 추념탑 앞에서 5초 동안 묵념한 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콘셉트 다른 행보 장 대표의 참배 시도엔 ▲국민 통합 ▲호남 구애 및 지역 현안 해결 ▲강경 보수 이미지 희석 등 이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후 행보는 참배를 시도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광주북부경찰서는 장 대표 등의 참배를 막은 시민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은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위였고, 각종 욕설과 모욕으로 일관된 폭언·폭력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며 “시민을 가장한 과격 단체와 특정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 대표의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내란 특검에 체포됐다가 이틀 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돼 석방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둔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체포하라”는 내용의 비상계엄 동조 게시글을 올리는 등 행동으로 말미암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대회를 진행하던 중 황 전 총리 체포에 대해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으면서 “전략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장 대표·황 전 총리의 행적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구호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사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웨스트윙>에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매튜 산토스가 상대 후보 에릭 베이커의 약점을 감싸는 연설을 한다. 에릭 베이커는 부인의 만성 우울증을 숨겼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자, 매튜 산토스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는데, 아닌 척 위선을 할 뿐”이라며 “지도자에게 완벽하다는 환상을 요구하면, 이는 단지 거짓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완벽한 후보·특혜를 줄 후보가 아니라 이상·희망·꿈을 공유하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우린 자랑스럽게 ‘나는 민주당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광주 방문 시도 이어“우리가 황교안이다” 트럼프 당선엔 30년 밑밥…어설픈 표절?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상대의 약점을 감싸면서 정치의 본질을 호소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폭력적인 정적 숙청을 요구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9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에 대해선 충청도에서 몇 안 되는 용꿈을 꾸는 분이란 평이 있었다”며 “그 용꿈을 망상에 가깝다고 보기엔 유연하게 정치를 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김도읍 정책위의장 임명 등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장외 집회 집착 ▲황 전 총리 두둔 ▲한 전 대표 퇴출 시도 등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보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와 황 전 총리 두둔이란 극단적인 행보를 불과 며칠 사이에 보인 것도 장 대표 특유의 빙글빙글 정치를 상징한다. 강경 보수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 대표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비교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엔 미국 민주당에 모여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유튜버 감동란의 개인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고, 특검법 3개에도 모두 찬성했다.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인데, 장애인이라서 배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할당을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일종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박 대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하게 경고할 뿐, 징계는 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의 발언과 장 대표의 미지근한 대응은 김 의원에게 강한 반감을 갖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여성이란 김 의원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박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에서 만성 구조화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쟁취는, 진보 진영이 신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월스트리트와 강하게 연계하자 국민이 여기에 반감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딕 체니 전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으로 상징되는 네오콘에 대한 반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대사 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강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미국 내 제조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내 중산층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막대한 세금을 대외 전쟁에 쏟아부었던 네오콘도 유권자의 큰 반감을 사서 몰락했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보수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네오콘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미국의 가치를 퍼트리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것 때문에 네오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엔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가 함축됐다. 미국의 역사는 이주·개척의 역사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찰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지역 강국 정도의 위상을 가졌고, 현재의 미국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주로 얻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가 흔하게 제작된다. 미국인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시리즈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은유해 제작됐다. 건국 신화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이 양대 시리즈가 신화로 통한다. 미국 고보수주의의 핵심은 다른 나라의 전쟁·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켜 대륙 내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세기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은 1823년 “유럽은 아메리카에 새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미국은 유럽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하에 서부 개척에 몰두했다.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미국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약 820억달러(약 113조4880억원)이고, 전비는 670억달러(약 98조4591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4월 608억달러(약 89조348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첨단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지자들을 달랠 거대한 쇼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 중 하나는 제1기 행정부 당시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다. 미국 내 블루칼라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실질적 효과와 정치적 이벤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일거양득 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망의 정치화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약 14조6942억원)를 요구했다. 내년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엔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달러(약 48조4948억원) 규모의 종합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또 우리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달러(약 36조7385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일본도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주일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려 매년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캐나다·그린란드·파나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그 인근 지역으로 사실상 영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에겐 영국·멕시코 등과 전쟁하면서 중·남부로 영토를 확장했던 19세기의 재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각국에 안기는 관세 폭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주민이 투표를 통해 미국 편입·독립을 결정한 상황에서 덴마크가 이를 방해하면 덴마크에 고액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를 군사·외교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관세 폭탄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당은 지난 6일 진행된 뉴욕시장·버지니아 주지사·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생활비 부담이었다. 뉴욕시에선 주거비가 급등했고, 뉴저지주에선 전기요금이 연 20% 상승했다. 특히 버지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 방침과 셧다운 여파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커피·바나나·쇠고기·견과류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이후 생활필수품 물가가 급상승한 여파로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상호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특히 쇠고기는 미국 축산농가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관세를 면제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겉’만 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권이 주도한 변화의 여파로 서민의 삶이 악화한 흐름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이들의 바람을 선동적 언어로 표현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불만 조직화한 트럼프 지지율↓ 원인 장동혁 30년 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개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강경 보수가 대규모 조직화한 영향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전한길씨 등이 주도하는 강경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이들의 언행은 강경 보수의 틀을 벗어나면, 조롱 대상이 될 뿐이다. 아울러 미국에선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장경제·기업 경영의 자유 등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양당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양당은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민감하게 여기면서 비판하는 각종 검열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셧다운제 도입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 논란 등 검열 논란은 정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미국에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영화계로 이어져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 영화에 유색인종 주인공이 발탁돼 큰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런 논란을 주도하면서 서민을 훈계한 대표 세력은 월스트리트·각계 엘리트·언론이었다. 이 논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 국민의힘은 각종 검열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 중엔 불법 이민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멕시코인을 경계하는 기존 유색인종 유권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흑인 중 8% ▲히스패닉 중 28% ▲아시아계 중 27% 등 득표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선 ▲흑인 중 13% ▲히스패닉 중 46% ▲아시아계 중 40%가 그에게 투표했다. 반면 장 대표는 지난 6일, 광주에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시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에 의해 옹립된 재선 의원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이는 전주보다 2% 낮아진 수치며, 지지율 42%를 기록한 민주당보다 18% 낮다. 심지어 전통적인 표밭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 42%를 얻는 데 그쳤다. 표밭도 위험하다 어설픈 표절은 죽도 밥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년 동안 누적된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은 후 유권자들이 향수를 느끼는 옛 로망을 자극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투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트럼프 벤치마킹’은 아닐까? 장 대표는 꾸준히 정체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에서 뭘 보고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