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수홍에 주어진 배신과 사랑

잃어버린 30년과 차곡차곡 쌓인 30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 방송계에 대표적인 성실의 아이콘이자, ‘순수청년’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방송인 박수홍이 안타까운 사연에 휘말렸다. 누구보다도 가족을 아끼는 마음을 방송에서 내비쳤던 그가 친형과 형수로부터 배신당한 사연이 전해졌다. 박수홍의 기획사 대표였던 형이 30년 동안 횡령한 금액은 확실치 않지만, 100억원대에 근접할 것으로 추정된다. 
 

▲ 방송인 박수홍 ⓒMBC

물질의 욕심이 너무 지나칠 때 천륜마저 거스르기도 한다. 그런 경우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지나친 ‘물욕’
‘천륜’ 와르르 

직장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수익을 버는 연예인이다 보니 종종 가족과 불화를 겪기도 한다. 자신의 재능으로 일궈낸 재산을 가족이 남들에게 퍼주다시피 하거나, 때론 당사자도 모르게 잇속을 챙기기도 한다. 뒤늦게 진실을 발견하고 부모와 의절한 연예인도 여럿 있다. 

최근 방송인 박수홍에게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박수홍의 기획사를 운영해온 형(본명 박진홍)으로부터 약 30년간 일하며 모은 돈을 모두 빼앗긴 일이다. 

박수홍은 오래전부터 형에게 경제권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엔터테인먼트 대표임에도 경차를 타고 다닐 뿐 아니라 형수마저도 흔한 가방 하나 없이 종이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검소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배신의 초석이었다. 말이 1인 기획사지 사실상 박수홍이 버는 돈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쳤던 형은 재테크 명목으로 수많은 상가와 아파트를 사들였다. 월세만 무려 4000만원에 이른다는 후문이다. 이 모든 명의는 돈을 번 주체자인 박수홍이 아니라, 형과 형 가족의 이름으로 돼있었다. 

박수홍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해 초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몰랐던 법인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부터다. 자신의 지분은 하나도 없고 오롯이 형 가족의 지분으로만 채워진 법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때부터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동생 몰래 세운 법인이 들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과 그의 가족은 이때부터 박수홍과의 연락을 끊는다. 1년 동안 박수홍과는 연락이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을 통해서만 형에게 연락이 닿는 형태다. 그간 자신을 철석같이 믿어왔던 동생의 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오랫동안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박수홍이 세무서를 통해 전달한 소명자료 요구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언론사를 통해 박수홍 흠집내기에 돌입했다. 스스럼없이 천륜을 거스르는 행동에 대중도 놀라고 있다.

기획사 대표 역임한 형의 참혹한 배신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잠도 못 잤다”

SBS <미운 우리 새끼>를 비롯해 MBN <동치미> 등 각종 프로그램의 MC를 오랫동안 맡았던 박수홍은 평소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꺼내 놨다. 가끔 가족들의 이해되지 않을 행태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기저에는 가족에 대해 애틋함이 묻어있어 그들만의 문화로만 여겨졌다.

최근 방송된 <동치미>에서 박수홍은 속내를 전하며 눈물을 터트렸다.


반려묘 ‘다홍이’의 이야기를 꺼내던 중 박수홍은 “제가 가장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어요. ‘이래서 사람이 죽는구나.’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어요. 제가 잠을 못 자니까 고양이가 와서 저보고 자라고 눈을 깜빡깜빡하는 거예요. 얘(다홍이)를 자랑하려고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댓글에 ‘수홍씨가 다홍이 구조한 줄 알죠? 다홍이가 수홍씨 구조한 거예요’라고 남겼어요”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30년차 베테랑 방송인이 촬영 도중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낸 것. 
 

▲ 방송인 박수홍 ⓒ다홍이랑엔터테인먼트

패널들은 ‘갑자기 왜 이래’라며 박수홍의 갑작스러운 오열에 어리둥절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눈물의 배경에 이런 충격적인 사연이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평소 바른 행동 덕에 순수청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젠틀한 이미지의 박수홍이기에 대중이 받은 충격도 컸다. 

박수홍은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오랜 시간 방송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한때 최고의 MC로서 활약했음에도 30세가 넘어서야 겨우 빚을 청산했다. 돈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아끼고 사는 것이 몸에 뱄을 뿐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늘 짓눌렀다고 한다. 

힘든 시기를 함께 잘 이겨내 온 형제들이었기에, 감히 자신의 돈을 횡령할 것이라는 의심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박수홍이었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보여주듯 행동해온 형의 가족들이어서, 선량한 마음의 박수홍은 30년 동안 건물이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생각조차 안 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에 대한 믿음은 비수가 되어 부메랑처럼 날아왔다. 30년 동안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 

박수홍은 지난달 31일 설왕설래가 오고 가던 자신의 스캔들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경제적인 피해를 본 것과 더불어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믿음
배반

“그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다시 한 번 대화를 요청했다”고 밝힌 그는 “마지막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다면 가족으로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전 재산을 자신과 형 사이에 7:3으로 나누겠다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총재산이 100억원대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에 미뤄보면, 형에게 꽤나 큰 금액을 줄 의향이 있었던 듯 보인다. 

그럼에도 형은 오히려 박수홍의 여자친구 문제를 들먹이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직접 나서지도 않을뿐더러, 지인을 내세우는 치졸한 방법으로 이른바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동생에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모든 유산을 조카에게 물려줄 것”이라며 형의 가족을 제 가족처럼 사랑한 박수홍이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법적 대응 및 언론 보도를 자제한 이유는 조카 때문이었다고 한다. 현재 어른들의 다툼에 조카까지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 크게 괴로워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상대는 모든 것을 걸고 가족을 배반했지만, 박수홍은 마지막까지도 인간적인 도리를 다하려는 듯하다. 마치 선과 악의 다툼을 보는 것 같은 형세다. 모든 정황이 밝혀지면서 대중은 그를 향해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다.


비록 가족으로부터 배신당했고 30년 동안의 노력이 단숨에 사라진 슬픈 상황이지만, 반대로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은 방송인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고 있다. 
 

▲ 눈물 흘리는 박수홍 ⓒ방송화면

박수홍의 유튜브 채널 ‘검은 고양이 다홍’의 영상 댓글에는 그간 그에게 인간적인 따뜻함과 고마움을 느낀 사람들이 미담 릴레이를 하듯 속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룹 멜로망스 김민석을 비롯해, 오래전에 함께 방송했던 작가와 스태프, 웨딩사업 관련 업체의 막내 스태프, 건물의 보안요원, 크리스마스를 맞아 어린아이들과 돈가스를 먹으러 갔던 가족,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 방송에서 만난 방청객까지 모두 박수홍과의 인연을 고백하고 있다.

모두가 그의 따뜻한 성품에 감동했다는 것. 

박수홍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먼저 허리를 90도 굽히며 상대에게 다가갔다. 혹여 타인이 불편함을 받을까 걱정하는 듯, 자신을 더 낮추고 편하게 다가갔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차마 말을 걸지 못하는 여학생에게 ‘왜 나랑 사진 찍자고 말 안 하냐’며 손을 건넸고, 업무상으로 알게 돼 차마 쉽게 말을 못 거는 광고 브랜드 담당자에게는 “이럴 때 못 찍으면 평생 못 남겨요”라며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뜨거운 응원
미담 릴레이

편의점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에겐 자신의 물건을 사면서 커피와 박카스를 전했고, 녹화가 2시간가량 지체되자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방청객들에게 직접 다가가 머리를 숙여 죄송함을 전했다.

한 어린 출연자가 밥을 못 먹었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자신의 도시락을 전했고,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스태프에게 먼저 다가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박수홍이었다. 

이외에도 미담은 끊임없이 나온다. 모두 하나 같이 박수홍과 만남을 자신의 인생에 중요했던 순간처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박수홍에게서 느꼈던 인간적인 따뜻함을 마음 한쪽에 두고 있다가, 그가 힘들어하자 진심으로 응원하기 위해 꺼내놓는 모양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 실제 친구들과의 미담도 다양하다. 2018년 방송된 <해피투게더-프렌즈>에서 박수홍의 친구로 나온 A씨의 일화는 감동적이다. 다리를 다친 A씨를 위해 친구들과 노는 것을 포기하고 등교부터 하교까지 늘 부축하며 지냈다는 것. 
 

모델 학원을 다니기 위해 새벽 신문 배달을 하며 모은 돈으로 학원비를 낸 일화도 있다. 자신이 필요한 게 있으면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얻어내는 강인함도 있는 그다.

이토록 미담이 많은 연예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도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먼저 남을 배려하고 챙기는 것을 실천하며 살아온 듯 보인다.

대중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에는 성품 이외에도 방송인으로서 다양한 매력 덕분이다.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베테랑 MC답게 안정적으로 진행한다. 방송을 오랜만에 찾은 게스트나 패널이 어색하지 않도록 대화를 이끌고, 누군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정중한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
 
<동치미>나 JTBC <TV 정보쇼 알짜왕>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는 최적의 재능을 발휘하며 맹활약 중이다. 그와 함께 진행을 맡은 동료 MC들 역시 편안하게 박수홍에게 기댄다. 또 최근 방송을 시작한 SBS <뷰티 앤 더 비스트>에서는 천재 반려묘 다홍이와 보내는 일상을 솔직 담백하게 꺼내 놓는다. 

구김살 없는 서글서글한 성격을 바탕으로 방송에 임하는 진솔한 그의 모습에 잔잔한 미소가 절로 띠어진다. 길고양이였던 다홍이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힘든 와중에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서사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수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안겨주고 있다.

충격 소식에 쏟아지는 ‘미담 릴레이’
배려와 존중의 30년 ‘응원하는 대중’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이른바 ‘샌드백’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야생과 같은 예능에서 짓궂은 농담을 일삼는 탁재훈, 김희철, 김종국 사이에서 늘 놀림을 당하는 역할이다. 다소 기분 나쁠 법한 놀림에도, 언제나 웃음과 장난기 섞인 서운함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그다. 

멀쩡한 허우대에 선한 인상, 잘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어딘가 빈틈이 있는 그는 강력한 입담을 자랑하는 예능인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다. 그 놀림이 박수홍도 크게 싫지는 않은 듯 웃는 얼굴로 응대한다. 

이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졌다. MBC <라디오스타>나 KBS2 <해피투게더>에서 동료들과 출연했을 당시에도 놀림을 당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김구라나 김수용에게 놀림을 당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는데, 그때마다 당황하는 척하면서 톡톡 튀는 입담을 보이며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김수용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농담과 박수홍의 리액션이 어우러지는 영상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강력한 웃음을 준다. 

KBS 공채 개그맨 7기 감자골(김국진‧김용만‧김수용‧박수홍) 친구들이나 <미운 우리 새끼>의 멤버들, 윤정수와 손헌수 등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 모두 박수홍의 인간적인 면모를 칭찬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예의를 갖출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그의 모습을 존중한다고 한다. 
 

▲ 방송인 박수홍 ⓒ김영준스튜디오

이 같은 그의 매력을 알기에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박수홍에게 힘이 되는 말을 건네고 있다. 꼭 미담이 아니더라도, 그를 향한 응원글은 포털사이트나 SNS 등 박수홍과 연관된 모든 댓글창에 남겨지고 있다.

무려 20년 동안 보육원에 1억원 이상을 기부했으며, 친분이 깊은 동료 박경림과 함께 이방인의 심정을 느낄 다문화가정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연예인이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선한 영향력을 펼쳐온 그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는 박수홍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아깝고, 가족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가 쉽게 지워지지 않겠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함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지 않을까 기대되는 점도 있다. 

물욕 때문에 천륜을 거스르는 가족으로 파생된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여론은 일방적으로 박수홍의 편이기는 하나, 오래전부터 사기를 칠 마음을 먹은 사람이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면,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영향력
악을 누를까

그럼에도 진실은 거짓을 이기기 마련이고, 선도 궁극적으로는 악을 제압한다. 선의 위치에 놓인 박수홍이 기필코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이 한가운데로 모이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이번만큼은 주위를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이겨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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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