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으로 떠나는 미식 여행

‘찐’ 대게의 참을 수 없는 유혹

경북 울진은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힘들다.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기찻길도, 하늘길도 없다. 충주에서 영주를 지나 울진으로 들어가는 국도36호선이 아니면 삼척에서 내려가거나 영덕에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도 울진에 가야 하는 이유는 대게 때문이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을 자랑하는 ‘대게의 고장’ 울진은 시원한 바다 풍광과 함께 미각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게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제철이다. 대게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울진으로 가야 한다. 죽변항과 후포항은 모락모락 올라온 김으로 뒤덮이고, 귀한 대게를 맛보러 온 상춘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람도 따스해서 여행하기 한결 좋다.

▲ 암컷과 몸통 세로 길이 9cm 이하 대게는 잡지 않는다.

국가브랜드대상

쫄깃하고 고소한 울진대게는 국가브랜드대상을 4년 연속 수상할 정도로 명성이 높다.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게가 울진의 특산물로 나올 만큼 역사도 깊다. 울진대게가 오늘날까지 명성을 유지한 데는 주민들의 노력이 한몫했다.

울진 어민들은 품질이 좋지 않은 대게 유통을 자율적으로 규제한다. 11월이면 대게를 법적으로 잡을 수 있지만, 울진에서는 12월부터 조업한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해 암컷과 몸통 세로 길이 9cm 이하 대게는 잡지 않고, ‘물게(속이 차지 않은 대게) 팔지도 사지도 말기’ 캠페인을 하는 등 울진대게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각별히 노력한다.

울진 여행은 오전 9시 죽변항에서 시작한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대게 경매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배에서 위판장으로 옮긴 대게를 바닥에 일사불란하게 진열한다. 대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배를 위로 향하게 놓는다. 위판장 바닥을 메운 싱싱한 대게가 내뿜는 붉은빛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문도 모르고 잡혀 온 대게는 다리를 치켜들고 발버둥 친다.

▲ 눈치 싸움이 한창인 대게 경매장

경매 시작 전, 대게의 상태를 확인하는 중매인들이 분주하다. 매서운 눈으로 색을 살피고, 손으로 만져보기도 한다. 빨간 모자를 쓴 경매사가 호루라기를 불면 중매인들은 서둘러 값을 제시한다. 짜릿한 긴장감이 돌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최고가를 쓴 중매인에게 낙찰되면 싱싱한 대게를 운반하는 이들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다리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대게를 통에 담는다. 다리가 하나라도 떨어지면 값이 내려가기 때문. 다리가 떨어진 대게는 무더기로 쌓아놓고 따로 경매한다.

바닥에 떨어진 주인 모를 다리만 주워 가는 이도 있다. 한쪽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불을 피워놓고 다리를 구워 먹는다.

바다와 미각 여행을 함께 
짭짤하고 고소한 맛 자랑

활기찬 대게 경매를 구경하고 나서 대게를 먹어보자. 죽변항과 후포항 근처에 대게를 바로 쪄주는 집이 모여 있다. 싱싱한 대게를 고르면 찜통에 15~20분 찐다. 대게는 찌는 동안 내장이 흐르지 않도록 배가 위로 향하게 놓는다. 찜통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침이 꼴깍 넘어간다. 먹기 좋게 손질된 몸통과 다리를 차례로 맛본다.

▲ 쫄깃한 대게 속살과 게딱지에 담긴 볶음밥

대나무처럼 긴 다리도 문제없다. 손으로 살짝 꺾어서 잡아당기면 하얀 속살이 쏙 빠져나온다. 짭조름한 바다 향이 배어 다른 양념은 필요 없다. 눈을 지그시 감고 풍요로운 맛을 즐기면 된다. 통통한 살을 발라 먹은 다음에는 게딱지에 담긴 볶음밥이 기다린다. 대게 내장에 참기름과 김 가루를 넣고 볶은 밥까지 먹으면 미식 여행이 완성된다.


쪄 먹는 대게를 ‘찐’으로 치지만, 울진에서는 대게를 활용한 다채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고소함이 배가 되는 대게버터구이는 젊은 여성이 특히 좋아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대게를 오래 보관하며 먹기 위해 만든 게짜박이도 별미다. 대게비빔밥과 대게물회, 게살비빔만두를 찾는 이도 많다. 주전부리도 있다. 반죽에 대게 살과 대게 가루를 넣은 울진대게빵이다.

▲ 거일마을에 있는 대게 조형물

대게 요리를 맛본 뒤에는 대게 원조 마을인 거일마을로 향한다. 평해읍 거일2리로, 마을 지형이 게 알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거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일마을에는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대게 조형물, 대게 원조 마을 유래비와 어부상이 있다.

거일마을에서 약 23km 떨어진 곳에는 울진대게 최대 서식지 왕돌초가 있다. 왕돌초는 수중 바위 군락으로, 해양 생물 120여종이 사는 ‘어족 자원의 보고’다. 매년 2~3월 후포항과 거일마을 일원에서 울진대게와 붉은대게축제가 열렸으나,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취소됐다.

▲ 이현세만화매화벽화거리에서 벽화를 사진으로 담는 관광객

거일마을에서 북쪽으로 가다 보면 오산항이 나온다. 오산항을 품은 매화면에는 이현세만화매화벽화거리가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 <남벌> 등 이현세 작가의 대표작이 떠오른다. 걸어가면서 읽는 벽화 만화, 새마을호 객실을 개조한 ‘남벌열차카페’, 이 작가 작품의 명장면으로 꾸민 만화도서관도 들러볼 만하다. 봄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 산책하는 즐거움이 더하다.

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왕피천케이블카를 만난다. 왕복 1430m 거리를 오가며 맑은 왕피천과 탁 트인 동해를 만끽한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에서 운이 좋으면 바다와 강이 만나는 왕피천의 은어도 볼 수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뿐만 아니라, 해맞이정류장에서 5분 정도 떨어진 망양정에서 보는 경치도 아름답다.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인 망양정에 오르면 장애물 하나 없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탑승장은 엑스포정류장과 해맞이정류장 두 곳이지만, 탑승권은 엑스포정류장에서 판매한다.

▲ 울진의 새 명소로 떠오른 국립해양과학관

국립해양과학관

마지막 코스는 울진의 새 명소로 떠오른 국립해양과학관이다. 지난해 7월 개관한 해양과학 전문 교육·체험 기관으로, 바다의 다양한 모습과 주제를 담은 전시 공간이 여러 곳 있다. 길이 393m 해상스카이워크, 수심 6m 아래 수많은 해양 생물이 공존하는 동해를 관찰할 수 있는 해중전망대 등도 갖췄다. 국립해양과학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관람을 하루 3회(회차별 100명, 예약 필수)로 제한하며, 해중전망대와 VR어드벤처, 영상관은 당분간 운영하지 않는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죽변항→후포항→이현세만화매화벽화거리→왕피천케이블카→국립해양과학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후포항→거일마을→이현세만화매화벽화거리 
둘째 날: 왕피천케이블카→죽변항→국립해양과학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울진군 문화관광 http://www.uljin.go.kr/tour/index.uljin
- 왕피천케이블카 http://uljincablecar.com
- 국립해양과학관 http://www.kosm.or.kr 


문의 전화
-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054)789-6890~3
- 죽변수협 054)783-8234
- 왕피천케이블카 054)782-9330
- 국립해양과학관 054)780-5000 

대중교통
[버스] 서울-죽변,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7회(07:10~ 20:05) 운행, 약 3시간50분 소요. 죽변정류소에서 죽변항까지 도보 약 900m.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자가운전
서울→영동고속도로→풍기 IC에서 풍기·소백산국립공원 방면 고속도로 출구→봉현교차로에서 안동·영주·봉화 방면→오루숲교차로에서 울진 방면→죽변항길 방면→죽변항

숙박 정보
- 백암스프링스 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온정면 온천로, 054)787-3007 
- 호텔동네여관223: 울진읍 울진중앙로, 054) 783-8500 
- 울진그랜드호텔: 울진읍 현내항길, 054)781-9901~2 
- 고래꿈호텔: 울진읍 울진북로, 054)783-0542 
- 무인텔9: 근남면 울진북로, 054)781-0009 
- 시선호텔: 죽변면 죽변중앙로, 054)783-7145

식당 정보
- 대게앤쿡(대게찜·대게버터구이): 후포면 후포로, 054)788-7878
- 후포항(대게찜·대게회): 후포면 후포로, 054)787-3389 
- 이게대게 왕비천점(대게찜·게살돌솥비빔밥): 근남면 불영계곡로, 054)787-8383
- 망양정회식당(해물칼국수·물회): 근남면 망양정로, 054)783-0430 
- 정훈이네횟집(육수물회·회덮밥): 죽변면 죽변중앙로, 054)782-7919

주변 볼거리
등기산스카이워크, 후포리벽화마을, 성류굴, 월송정, 백암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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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