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궁과 월지, 월정교

신라 천년의 밤을 만나다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18호)는 왕자가 거주한 곳이자,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연회를 베푼 곳이다. 676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규모가 크고 호화로운 시설을 갖췄다. 674년 월지를 만들고, 5년 뒤인 679년에는 궁궐을 정비하고 동궁을 지었다.

▲ ‘한국관광공사 야간 관광 100선’에 오른 경주 동궁과 월지

<삼국사기>에 “(문무왕 14년) 궁 안에 못을 파고 못 가운데 3개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개 봉우리 산을 만들었으며, 화초를 심고 기이한 동물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발굴한 토기 조각에서 이곳을 월지라 불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동국여지승람>에 “안압지 서편에 임해전이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안압지

조선 시대에는 월지를 안압지로, 동궁을 임해전으로 부른 것이다. 신라가 패망한 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폐허가 된 월지에 오리와 기러기만 날아다녔기에, 기러기 안(雁), 오리 압(鴨) 자를 써서 안압지라 했다. 신라가 번성할 때 월지는 화려하고 위엄 있는 곳이었으나, 멸망한 뒤엔 시인 묵객만이 안압지의 본모습을 알아봤다.

월지는 사각형으로 조성했는데, 서남쪽은 직선으로 건물을 들이고, 동북쪽은 곡선으로 3개 섬과 무산12봉을 연상케 하는 언덕을 만들었다. 직선 공간에는 동궁의 화려함이, 곡선 공간에는 자연의 수려함이 돋보인다.

1975년 월지의 물을 빼고 발굴 조사를 했는데, 여기서 유물 3만여점이 쏟아져 나왔다. 월지에 떠다녔을 나무배를 비롯해 금동초심지가위(보물 1844호), 금동삼존판불, 놀이용 주령구(주사위) 등 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볼 수 있다.


동궁과 월지는 첨성대와 함께 ‘한국관광공사 야간 관광 100선’에 오른 명소로, 어둠이 내린 뒤에 진가가 드러난다.

▲ 고대 교량 건축 기술의 백미, 월정교 야경

월정교는 통일신라 때 남천(옛 이름은 문천)에 세운 다리다. 월정교가 있는 남천 주변이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사적 457호)다. <삼국사기>에 “(경덕왕 19년) 궁의 남쪽 문천에 월정과 춘양이라는 두 다리를 놓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1986년 복원에 필요한 발굴 조사 과정에 월정교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월정교의 세굴 방지목이 발견됐다. 이를 토대로 다리 양쪽 교대와 날개벽, 4개 주형 교각이 있으니 길이가 60m 정도로 추정되며, 교각 사이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으로 보아 다리 위는 기와지붕을 인 누각이었을 것으로 알려졌다.

고증을 거쳐 복원한 월정교는 고대 교량 건축 기술의 백미로, 길고 곧게 뻗은 회랑과 웅장한 2층 문루가 장관이다.

▲ 낮에 본 월정교

월정교는 경주 월성(사적 16호) 남쪽을 휘감아 흐르는 남천 위로 조성해 월성과 남산을 이어준다. 월정교 관련 기록이 고려 충렬왕 때인 1280년에도 등장하니, 500년이 훨씬 넘게 남아 있었다. 남천은 원효대사의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신라 관리가 왕의 칙명을 가지고 오자 원효대사는 일부러 남천에 빠졌고, 관리들이 원효를 모시고 요석궁으로 가 옷을 말리게 했다. 원효는 궁에 있던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보냈고, 이어 설총이 태어났다고 한다.

월정교와 이웃한 곳에는 김유신의 집터로 알려진 재매정(사적 246호)이 있는데, 장군이 천관녀를 만나기 위해 천관사로 갈 때도 월정교를 건너야 했다. 신라에 유리구슬을 전한 아랍인이나 신라군의 출정 대열도 월정교를 건넜으리라.

▲ 굵은 기둥이 늘어선 월정교 회랑

월정교는 주차장 방면이나 교동 방면 어디서든 갈 수 있다. 넓은 진입 공간 너머로 월정교 현판을 단 문루가 우뚝 섰다. 문루를 지나면 남천 너머 기다란 회랑이 이어진다. 굵은 기둥이 늘어선 모습이 인상적이다. 교각 위로는 남천과 어우러진 풍경이 드러난다. 서쪽으로 남천 너머 선도산과 벽도산이, 동쪽으로 월성이 보인다.

한국관광공사 야간 관광 100선
화려하고 위엄 있는 신라의 모습

문루 2층은 월정교홍보관으로, 월정교의 역사와 복원 관련 내용을 전시한다. 옛 월정교의 세굴 방지목을 보면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월정교는 최근 야경 명소로 인기다. 월정교를 비추는 빛에 화려한 문루와 단아한 회랑이 돋보인다. 월정교 앞 징검다리나 교촌교에서 바라보는 월정교의 풍경도 일품이다.

▲ 황금빛으로 물든 첨성대

경주 첨성대(국보 31호)는 선덕여왕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관측대다. 정사각형 기단 위로 술병을 닮은 원통형으로 돌을 27단 쌓고, 정상부에 ‘정(井) 자형’ 석재를 얹었으며, 높이 약 9m에 이른다.

옛 기록에 따르면 사다리를 놓고 원통형 중심의 네모난 창으로 들어간 뒤,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하늘을 관측한 것으로 보인다. 밤이 되면 첨성대에 경관 조명이 빛을 발한다. 첨성대가 경주의 8색(적·홍·황·녹·청·자·금·흑색)으로 변신한다.

월정교가 있는 곳이 남천이고, 월성 북쪽으로 북천이 있다. 북천 건너편에 자리한 황성공원에 지난해 12월, 빛누리정원이 개장했다. 장미와 수국 꽃을 형상화한 2만여개 LED 조명과 화려한 연꽃 조형물이 눈에 띈다. 잔잔하면서도 웅장한 음악과 함께 천천히 바뀌는 LED 조명이 아름답다.

▲ 파도소리길 주상절리전망대에서 본 부채꼴 주상절리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경주 문무대왕릉(사적 158호) 남쪽에 경북동해안지질공원의 지질 명소 양남 주상절리군(천연기념물 536호)이 있다. 여기서 만나는 부채꼴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용암이 흐르다 둥그런 구덩이에 갇히거나, 둥근 통로를 따라 용암이 솟아오르다 식어 생긴 흔적이라고 한다.

부채꼴 주상절리를 제대로 보려면 파도소리길 주상절리전망대로 가자. 읍천항과 하서항을 잇는 1.7km 해안 산책로인 파도소리길은 지난해 태풍으로 일부 구간이 유실돼, 현재 주상절리전망대에서 하서항까지 출입을 통제한다.

양남 주상절리군

부채꼴 주상절리를 형상화한 주상절리빵도 맛보자. 베이킹파우더와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고, 물 대신 우유와 생크림으로 반죽한다. 구운 호두와 통팥 앙금이 들어가 마들렌 풍의 건강하고 맛 좋은 빵이다. 양남 주상절리군으로 가는 길에 본점이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파도소리길→문무대왕릉과 이견대→감은사지→국립경주박물관→대릉원→동궁과 월지→월정교→첨성대→빛누리정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국립경주박물관→대릉원→황룡사지와 분황사→동궁과 월지→월정교→첨성대→빛누리정원 
둘째 날: 선덕여왕릉→신문왕릉→원성왕릉→장항리 사지→골굴암→감은사지→문무대왕릉과 이견대→파도소리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경주문화관광 https://www.gyeongju.go.kr/tour 

문의 전화
- 경주시청 왕경조성과 054)779-6136~7
- 동궁과 월지 054)750-8655
- 빛누리정원(황성공원) 054)779-8772
- 주상절리전망대 054)775-6366
- 경주역관광안내소 054)772-3843 

대중교통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8회(08:10〜22:0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6회(08:40〜19:00) 운행, 약 4시간 소요. 경주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 경주고속·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11번·602번·604번·605번·607번 일반버스 이용, 동궁과월지 정류장 하차. 경주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 경주고속·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60번·61번 일반버스 이용, 황남초등학교 정류장 하차, 월정교까지 도보 약 800m.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경주고속버스터미널 054)741-4000 경주시외버스터미널 1666-5599 
[기차] 서울역-신경주역, KTX 하루 17~20회(05:15~21:30)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신경주역 정류장에서 700번 좌석버스 이용, 동궁과 월지 정류장 하차. 신경주역 정류장에서 60번·61번 일반버스 이용, 황남초등학교 정류장 하차, 월정교까지 도보 약 800m.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자가운전
동궁과 월지: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약 5km 직진→배반네거리에서 시청 방면 좌회전→박물관네거리에서 250m 직진, 우회전→동궁과 월지
월정교: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서라벌대로 약 2.1km 직진→오릉네거리에서 오릉 방면 좌회전→700m 직진, 국립경주박물관 방면 우회전→월정교

숙박 정보
- 리버틴 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경주시 태종로685번길, 054)620-8988 
- 블루보트 게스트하우스(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경주시 원화로, 010)2188-9049 
- 한옥인(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경주시 포석로1050번길, 054)749-8090 
- 신라가족모텔: 경주시 산업로, 054)743-8288 
- 지지관광호텔: 경주시 태종로699번길, 054)701-0090 
- 토함산자연휴양림: 양북면 불국로, 054)750-8700 
- 라마다호텔&리조트 경주감포: 감포읍 동해안로, 054)741-3000


식당 정보
- 국시집(손국시): 경주시 북문로, 054)773-3050 
- 백리향 황성본점(굴짬뽕): 경주시 황성로69번길, 054)741-0100 
- 고색창연(한우떡갈비정식): 경주시 보불로, 054)748-0952 
- 팔우정해장국(해장국): 경주시 태종로, 054)742-6515

주변 볼거리
경주 김유신묘, 경주 포석정지, 불국사, 석굴암, 황리단길, 경주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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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