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를 만나다> 김태리의 성공 공식

혜성처럼 등장해 더 빛나는 존재감
작품마다 줄흥행, 연기는 매번 호평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김태리는 등장부터 드라마틱하다. 국내에서 거장으로 꼽히는 박찬욱 감독의 복귀작 <아가씨>에 무려 1500: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을 뚫고, 노출 연기도 감행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보인 김태리를 향해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매우 강렬했다.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빛을 잃은 배우들이 부지기수인 데 반해, 김태리가 써낸 서사는 데뷔 이후가 더 매력적이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했으며, 그 안에서의 보여준 연기는 매번 호평을 받기 충분했다. 신작 <승리호>에서도 김태리는 또 한 번 성공 공식을 써내는 듯하다. 

▲ 배우 김태리 ⓒ넷플릭스

배우 김태리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주체성이다. 서열이 낮은 하녀(<아가씨>)일 때도, 주위 친구들과 달리 민주주의를 억지로 외면하던 대학생일 때도(<1987>), 그는 당돌했다. 

재미와 주체성
단단한 신념

집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사회 초년병(<리틀 포레스트>)일 때도 매사 자발적이었으며, 나라를 지키는 독립운동가(tvN <미스터 션샤인>)의 얼굴에서는 당당함을 넘어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김태리가 연기한 역할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늘 올바른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인물이 정의로운 행동을 할 때도, 때론 정반대의 생각을 할 때도 김태리의 얼굴에는 늘 단단한 신념이 엿보인다.

이런 필모그래피가 가능한 이유는 김태리 자체가 시나리오를 볼 때 캐릭터의 주체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재밌는지와 연기하게 될 인물의 성향이 주체적이면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드러내는지를 확인한다고. 여러 고민 끝에 마음이 가는 작품의 키워드는 재미와 주체성이다.


신작 <승리호>와 장 선장도 김태리의 마음을 건드렸다. 특히 <승리호>를 연출한 조성희 감독은 김태리에게서 선장의 단단함을 봤다고 한다. 선원을 이끄는 리더인 선장은 건장한 체구에 카리스마를 갖춘 모습이 연상되는데, 조 감독은 야리야리한 김태리가 선장의 강인함을 표현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제 역할을 하는 선장의 이미지가 그려진 듯하다.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승리호>에서 김태리는 조 감독이 그린 독특한 이미지의 장 선장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핑크색 티셔츠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가죽 재킷을 입고 개성이 강한 선원들을 이끈다. 

조 감독은 김태리가 새로운 형태의 선장을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김태리는 자신과 선장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캐스팅 미팅 때 김태리가 조 감독에게 던진 질문은 “왜 제게 선장의 역할을 주시는 거죠?”였다. 

“미팅 때 감독님께 가장 먼저 여쭤봤던 게 ‘왜 저를 캐스팅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이었어요. 사실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었어요. 캐릭터는 좋았지만, 제 얼굴로 읽히지는 않았어요. 다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대사를 읊으면 자연스럽게 제 얼굴이 보이거든요. 쉽게 떠올려지기도 하고요. <승리호>의 장 선장에게서는 그게 잘되지 않더라고요. 의상에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전형적이지 않은 선장, 모든 공은 감독님”
“SF 장르 최초 타이틀…국가대표 된 기분”

다른 작품에서 선장은 과격한 이미지를 품고 있다. 눈빛이 강하며, 비교적 과묵하고 욕설에도 능하다. 힘으로 주위를 제압한다. 영화 <해무>의 김윤석이 대표적인 선장의 이미지다. 선장이라는 무게감은 키 166cm, 가느다란 몸매의 김태리가 가진 겉모습과 대척점에 있는 게 사실이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밌어서 작품을 하고 싶었지만, 저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저처럼 순둥순둥한 사람이 조종석에 있을 때 전형적인 강한 사람이 앉았을 때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설득이 돼서 작품을 했는데, 많은 분이 신선하다는 평을 남겨주셨어요. 이 부분은 전적으로 감독님께 공을 돌리고 싶어요.”


김태리가 연기한 캐릭터가 독특한 선이 있었던 만큼, 작품 역시도 서사가 있다. 영화 <박쥐> 이후 무려 7년 만에 국내 복귀작이었던 <아가씨>, 엄혹했던 시기 수많은 영화인이 힘을 모아 만든 <1987>,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 김은숙 작가의 첫 사극 <미스터 션샤인> 등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이 사연이 다양하다. 
 

▲ ▲ⓒ넷플릭스

<승리호>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한국 영화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만든 SF 판타지 장르다.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라고도 한다. 

우주 공간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승리호 선원들이 우연히 발견한 도로시(백예린 분)를 알고 위험한 거래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우주가 배경인 SF 장르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엄청난 분량의 CG로 인해 국내에서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장르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SF 판타지 영화가 우리나라의 언어와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
우주 활극

다수의 인종이 경제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백인을 상대로 인류를 구출해낸다.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승리호> 배우들은 작품 내외적인 의미가 상당한 이 작품을 홍보하면서 ‘마치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라고도 표현했다. 

“관객으로서 SF 장르를 좋아해요. 한국 최초라는 이름이 설렜어요. 사실 최초라는 이름이 붙으면 웬만해서는 다 잘된 거 같아요. ‘최초는 다 잘돼’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고요. 제가 이 자리에 없었어도 <승리호>를 즐겼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얼굴까지 있다면?’이란 생각에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네요. 작품을 하면서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CG 수준이 정말 좋아서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SF 장르의 촬영 기법은 일반적인 장르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 크로마키 세트에서 초록색 배경을 바탕으로 풍부한 상상과 함께 촬영해 나가야 한다. 눈앞에 상대가 없음에도, 마치 누가 있는 척 연기를 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있는 척 연기한다는 게 전문 배우에게도 매우 낯선 경험이다. 시선 처리도 매우 정교해야 할 뿐 아니라, 행동할 때 작은 차이만 있어도 화면에서는 크게 튄다. <승리호> 역시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고 한다. 

“어려움이 많았어요. 업동(유해진 분)이 있을 때도 찍고, 없을 때도 찍어야 했어요. 없이 찍는 게 진짜 OK 장면이에요. 유해진 선배가 업동이 모션을 했는데, 그건 CG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찍는 거였어요. 업동 없이 찍을 때는, 업동의 존재를 상상해야 했고, 만약 업동을 한 대 때렸다고 치면, 정확한 위치에 때려야 했어요. 현실적인 것들에서 많이 헤맸어요.”

<승리호>에는 걸출한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이야기의 화자 격인 태호 역에는 배우 송중기, 레게 머리를 딴 엔지니어 타이거 박 역할에는 <극한직업>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진선규, 장 선장이 승리호 선원 중 가장 먼저 픽한 로봇 업동은 유해진이 맡았다.

이 외에도 우주를 지배하는 설리반 역은 할리우드 배우 리차드 아미티지가 연기했다. 인물이 다양할 뿐 아니라 충분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탓에 캐릭터들의 서사가 매력에 비해 축소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태호를 제외한 장 선장과 타이거 박, 업동은 전사가 많이 나오지 않고 최소한으로만 배치된다. 

거장의 선택
영광과 부담


“저도 아쉽긴 하죠. 하지만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인물이 네 명 나오고, 아이도 나와요. 감독님께서 그리는 세계의 이미지가 있어요. 특정 부분을 부각하고 축소하는 건 감독님의 결정이죠. 전사는 정말 많아요. 다 들려주면 좋겠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 완결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줄어들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 ▲ⓒ넷플릭스

<아가씨> 박찬욱 감독을 시작으로 <1987>의 장준환 감독,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 이번 조성희 감독, 앞으로 나올 영화 <외계인>의 최동훈 감독과 작업을 했다. <미스터 션샤인>의 작가는 국내 최고 흥행작가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서로 앞다퉈가며 김태리를 캐스팅하는 모양새다. 왜 거장은 김태리를 선택할까. 

“그 이유는 전혀 모르겠어요. 그저 감독님들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작품을 많이 하셔서 저를 계속 써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외국 작품 말고, 한국 작품으로요. 훌륭한 연출력을 가진 감독님들께서 저를 써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제 복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거장과 작업을 하는 건 영광스럽기도 하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거장의 연출 속에서도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으면, 그때는 배우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매번 연기적인 측면에서 호평을 받는 김태리도 부담감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다만 부담감을 잘 떨쳐내고 다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아가씨>부터 <미스터 션샤인>까지, 다 부담감이 컸어요. 저는 부담감을 잘 느끼는 편이거든요. <승리호>도 정말 부담감이 컸죠. 제작비도 다른 영화에 비해 큰 편이고, SF 촬영 현장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고요. 그 부담을 어떤 식으로든 희석을 해야 해요. 부담감이라는 게 저한테는 원동력이 되지 않아요. 빨리 없애는 게 중요해요. 그런 감정에 허덕이면서 힘들어하느니, 이 인물을 어떻게 묘사할 건지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는 걸 배웠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특히 더 많이 깨달았어요.”

“나와 닮은 진선규, 스승은 유해진·송중기”
“언제나 느끼는 큰 부담감, 허덕이지는 않아”


배우들은 작품을 통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배우가 연기를 통해 관계를 맺고 끈끈하게 친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툼이 있는 경우 안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작품 자체가 우정의 실마리 역할을 한다. 송중기와, 유해진, 진선규, 김태리는 유달리 가까워진 듯 하다. 작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친분이 엿보인다. 

“저는 선규 오빠와 정말 닮은 것 같아요. <승리호> 캐스팅이 확정되고 촬영 전에 우연히 봐서 인사를 나눴거든요. 짧은 순간이었는데 정말 선한 인간성이 느껴지더라고요. 이 분하고 연기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막상 촬영할 때 보니까 선규 오빠도 저처럼 의심을 많이 해요. 감독님이 OK 사인을 했는데, 그걸 믿지 않아요.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늘 해요. 다음날까지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해요. 저도 그렇거든요. 더 잘해보려는 마음이 있어요. 끝까지 고민해요. 서로 연기에 대한 회의를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최고 연장자 유해진에게는 연기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받았고, 송중기에게는 리더쉽을 배웠다고 한다. 
 

▲ ▲ⓒ넷플릭스

“제가 장 선장이 아니라 다른 역할을 했어도 재밌었을 것 같아요. 근데 업동은 잘할 자신이 없어요. 업동은 시나리오에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풍부해졌어요. 유해진 선배님이 만드신 부분이 많아요. 아마 제가 했으면, 그렇게 풍성한 느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중기 오빠는, 스태프 한 명 한 명을 다 잘 챙겨요. 정말 어른스러워요. 중기 오빠가 진짜 선장 같아요.”

데뷔 5년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사이에 놀라운 건 꾸준한 성공 공식을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 출연한 모든 작품이 호평과 함께 높은 흥행률을 보였다. <승리호> 역시 넷플릭스 공개 후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조회 수 1위를 기록 중이다. 

그의 말처럼 인복이 있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도 있겠지만, 강인한 성격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낸 김태리의 힘도 기인한다. 특히 현장을 즐기게 되는 연기에 대한 애정이 성공 공식의 포인트로 해석된다. 

꿈꿔온
평생 직업

“학창 시절에 꿈이 있었던 학생은 아니었어요. 우연히 연극 한 편을 올리게 됐는데 그 과정이 모두 좋았어요. 밥 먹고 술 먹고, 밤새 소품 만들다 싸우고, 무대서 조명을 받고, 관객을 만나고 한 시간 넘게 서 있고요. 그리고 박수를 받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고 행복했어요. 금방 질리는 타입인데, 이 정도로 재밌으면 평생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도 어려운 구석도 많고, 헷갈리고 고민도 많은데요. 그런 어려움이 저만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그런 어려움을 축소해 나가면서 더 좋은 연기로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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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이 끝났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갈렸다. 각 정당은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역할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선거를 치른 정치권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방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대선 정국이 마무리됐다. 2022년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던 진보 진영은 3년 만에 다시 여당의 지위를 되찾았다. 보수 진영은 비상계엄과 탄핵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이 대통령 궐위로 치러진 보궐선거인 만큼 당선인은 인수·인계 기간 없이 바로 임기에 돌입했다. 또 한 번 정권교체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6개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한 지 60일 만에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지난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9.4%,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2%,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 무소속 송진호 후보는 0.1%였다. 지상파 3사(KBS·MBC·SBS)가 진행한 출구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였지만 당락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한국리서치·입소스·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서 본투표 당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25개 투표소의 투표자 8만14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0.8%포인트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이 대통령 51.7%, 김 후보 39.3%, 이 후보 7.7%였다. 출구조사와 비교해 이 대통령은 낮았고 김 후보와 이 후보는 더 득표했다. 이 대통령은 1728만7513표를 얻어 역대 대선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지만 과반 득표율에는 실패했다. 역대 대선에서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선관위가 지난 4일 오전 6시21분 이 후보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확정하면서 이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시작됐다. 임기 개시와 동시에 국군 통수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모든 고유 권한이 이 대통령에게 자동 이양됐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30년 6월3일까지다. 비상계엄부터 대통령 탄핵, 대선까지 숨 가쁜 6개월을 보낸 정치권은 대선 후폭풍에 직면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던 민주당은 3년 만에 여당으로 복귀했다. 민주당 단독으로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범진보 진영(192석)으로 보면 20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권’의 등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 이어 대선서도 패배하면서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당장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고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범진보 진영과 비교해 107석이라는 ‘초라한’ 국회 의석수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차지한 이재명정부를 견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3년 만에 정권 탈환 국민의힘, 총선 이어 또 졌다 대선 후폭풍이 걷히면 정치권은 또다시 ‘선거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가 예정돼있다. 채 1년이 남지 않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윤석열정부 임기 중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윤정부서만 두 번의 지방선거가 열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대선 전초전 격이었을 선거가 이재명정부의 첫 대형 선거가 된 것이다. 이미 여당이 행정과 입법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서 지방 권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재명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른바 ‘절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가능성은 작지 않다. 대선 이후 몇 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서 여당이 진 적은 거의 없다. 바로 직전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게 대표적이다. 2022년 6월, 윤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열린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서울·인천 등 12곳에서 이겼다. 민주당은 경기·광주·전남·전북·제주 등 5곳에서만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도 국민의힘이 완승했다. 전국 226곳 중 145곳에서 이겼다. 서울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17곳에서 승리했다. 2018년 지방선거서 서초구를 제외한 24곳에서 민주당이 이겼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열린 재보궐선거서도 7곳 중 5곳을 차지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출마한 인천 계양을과 제주을을 제외한 대구 수성을·경남 창원의창·경기 성남시 분당구갑·강원 원주갑·충남 보령·서천 등에 국민의힘 깃발이 꽂혔다. 지난 지방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정도로 네거티브가 난무했던 20대 대선 직후에 열리면서 당시 투표율은 50%를 간신히 넘는 낮은 수준이었다. 역대 지방선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새 정부 탄생과 거의 동시에 치러진 만큼 ‘허니문’ 성격이 강했던 점도 국민의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 민심이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계엄·탄핵 보수 폭망 불과 3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대선 승리를 등에 업고 지방 권력까지 차지했던 국민의힘은 순식간에 야당으로 전락했고 민주당은 기세를 탄 상황이다. 이재명정부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승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한 호흡으로 같이 나가려면 기울어진 지방 권력 구도를 돌려놔야 한다는 취지다. 내년 6월3일 열릴 지방선거는 대선 이후 1년 뒤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이전 허니문 선거와 비교해 기간이 긴 게 변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임기 초인 만큼 여당에 유리한 이슈가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두고 진행 중인 재판이 1년 내내 사회를 달굴 가능성이 크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4일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불소추특권도 사라졌기에 혐의가 더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심리 때부터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 철저하게 부인해 왔다. 재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 1심 선고까지는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도, 취임사에서도 내란 종식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서 진행한 취임 선서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내수 시장은 ‘폭망’ 상태에 접어들었고 외부에선 관세 등으로 시장을 흔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경제 이슈는 선거판을 늘 좌지우지했다. 텃밭 빼고 다 뒤집혀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먹사니즘’이라는 표현으로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가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취임 선서에서도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 기업인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비상계엄 사태 극복과 경제 회복을 전면에 내세워 민심을 다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견제론’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의회 권력과 행정부를 장악한 이재명정부를 지방 권력으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은 2028년, 이 대통령의 임기 중반 이후에나 치러진다. ‘거대 야권’ 국면이 이 대통령의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사이 판을 흔들만한 대형 선거가 없기에 보수 진영으로선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총선이 지방의회 상황에 영향을 받는 만큼 국회 의석 상황을 바꾸려면 지방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문제는 내부 상황이 지나치게 어지럽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서 배출한 대통령이 벌써 두 번째 파면됐고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국민에게 외면받았다. 보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총선 때부터 나왔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선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준 윤 전 대통령 측 세력과 결별하는 과정서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둘러싼 혈전이 예상된다. 새 정부 1년 만에 맞대결 3년 전에는 여당이 압승 대선을 완주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의원은 비록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대선 기간 내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을 모두 처리하고 난 뒤에야 보수 진영은 지방선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선 과정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선거에 임하거나 지지층만 믿고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이면 총선, 대선서 이어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대선과 8대 지방선거, 이번 대선서 각 정당 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보수 진영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인지가 드러난다. 국민의힘 후보로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이 대통령이 나선 20대 대선 당시 승부를 가른 건 ‘서울’이었다. 민주당은 선거를 치르면서 서울서 진 적이 많지 않았는데 2022년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로 민심을 까먹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50.6%, 이 대통령은 45.7%를 받았다. 표수로는 31만표 차이였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전체 표 차인 24만7000표(0.73%p 차이)보다 컸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을 필두로 강원·대전·충청·TK(대구·경북)·PK(부산·경남)·울산서 승리해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방선거 때에는 대선서 패했던 인천과 세종에서도 국민의힘이 이겼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국민의힘)이 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무려 20%p 차이로 이겼다. 대선서 45.6%(윤 전 대통령) 대 50.9%(이 대통령)로 5.3%p 차이가 났던 경기도조차 48.9%(국민의힘 김은혜 후보) 대 49.1%(민주당 김동연 후보)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번 대선서 국민의힘은 강원·TK·PK·울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서 졌다. 지역별로 보면 6곳에서만 김 후보가 이 대통령에 앞섰다. 국민의힘 텃밭이라고 불릴만한 지역과 보수세가 강한 지역서 선전했을 뿐 수도권과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충청권서 모조리 패배했다. 여러 차례 대통령을 배출한 전국 정당이 ‘영남당’으로 쪼그라든 순간이다. 안정론? 견제론? 발 빠른 인사들은 벌써부터 지방선거를 정조준하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대선 패배 연설서 “저희가 잘했던 것과 못했던 것을 잘 분석해 정확히 1년 뒤 다가올 지방선거서 개혁신당이 한 단계 약진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어느 정도 승부가 예측됐던 이번 대선과 달리 내년 지방선거가 진짜 대결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 국민투표 가능성 ‘동시에 진행될까?’ 이재명정부는 개헌을 할 수 있을까? 대선일로부터 꼭 1년 뒤인 내년 6월3일 열리는 9대 지방선거서 개헌 이슈가 다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후 첫 대형 선거인 만큼 이날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견은 대선 기간 내내 나왔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지난 4월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로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며 “대선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정 회장은 “느닷없는 계엄령이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며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결정적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87체제’ 종말 초읽기? 그러면서 “개헌 시점은 늦더라도 2026년 6월이어야 한다”며 “이번 대선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협력 아래 정부가 지원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칠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대선후보 당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