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추억> 인도 남자 하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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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1.01.25 10:13:31
  • 호수 13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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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팀 

▲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결승전을 앞둔 인도와 네덜란드 대표팀

[JSA뉴스] 올림픽 역사 속에는 ‘인크레더블 팀’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낸 팀들이 존재한다. 올림픽 하키를 지배했던 인도 남자 하키 대표팀의 황금기에 대해 알아보자.

거의 한 세기 전(정확히 93년 전)인 1928년, 인도 남자 하키 대표팀은 암스테르담에서 첫 올림픽 무대를 경험했다. 인도의 하키 협회 창립 후 단 3년 만에 참가한 올림픽이었지만, 인도 대표팀은 첫 출전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황금기

거기에 더해 조별 리그 경기에서는 상대를 상당한 점수 차로 모두 꺾었다(오스트리아전 6-0승, 벨기에전 9-0승, 스위스전 5-0승). 결승전에서는 개최국 네덜란드를 3-0으로 격파하는 압도적인 실력도 보여줬다.

제이펄 싱 먼다의 리더십 아래 인도는 첫 올림픽 참가에서 한 골도 내주지 않으며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으로 하키 종목의 강자라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이후 수년간 이어지는 유산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 이후의 업적들로 인도 남자 하키 대표팀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4년 후, 1932 로스엔젤레스에서 인도 하키 팀은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이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키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다이안 찬드는 올림픽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줬다. 개최국 미국을 상대로 24-1이라는 대승을 거두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4-1의 점수 차는 지금도 올림픽 남자 필드하키에서 최다 점수 차 기록으로 남아 있다.

찬드는 그 경기에서 8득점을 올렸고, 또 다른 인도의 스타, 루프 싱은 10골을 기록했다. 찬드가 대표팀의 주장으로 참가했던 1936 베를린에서도 역사는 되풀이됐다. 일본(9-0)과 미국(7-0)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인도는 개최국과의 결승전까지 단숨에 올라갔던 것이다.

결승전에서도 인도는 독일을 8-1로 꺾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내준 한 골은 대회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실점이었다.

베를린 올림픽 결승전의 8-1 점수 차도 지금까지 올림픽 결승전 최다 점수 차 승리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결과로 인도는 올림픽 3연패라는 업적을 달성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다음 올림픽은 12년이 지난 뒤에야 열리게 됐다. 1948년 런던에서도 인도 대표팀의 활약은 변함이 없었다.

키샨 랄의 지도하에 인도는 오스트리아를 8-0으로, 아르헨티나를 9-1, 그리고 스페인을 2-0으로 꺾는 놀라운 출발을 기록한다. 자신감으로 가득한 인도 대표팀은 다시 한 번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의 상대는 1908‧1920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홈팀, 영국이었다.

50년대 장악…계속되는 금메달 행진
80년 이후 하락세…강력한 팀 재구성


많은 사람들이 접전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결승전은 예상과 너무도 달랐다. 일방적인 경기가 펼쳐진 가운데 인도가 개최국 영국을 4-0으로 꺾고 네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해 버린 것이었다.
 

▲ 1936 베를린 올림픽 결승전, 인도와 독일의 경기.

인도의 우승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1952년 헬싱키에서 인도는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6-1로 꺾었고, 인도 하키의 또 다른 영웅 발비르 싱 시니어는 결승전 5득점을 올리며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

1956년 멜버른 조별 리그에서 인도는 아프가니스탄을 14-0, 미국을 16-0으로 꺾었다. 올림픽 조별 리그 역사상 가장 큰 점수 차의 승리를 거두게 됐다. 준결승에서 독일을 넘어선 인도는 결승에서는 파키스탄을 만나게 됐고, 경기에서 유일한 골을 성공시키며 1-0 승리와 함께 금메달을 차지했다.

인도 남자 하키 대표팀은 만나는 상대로 모든 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이었다. 그 결과 올림픽 6연속 금메달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거의 30년간 놀라운 성공을 거둬온 인도였지만, 올림픽 30경기 무패 행진은 1960년 로마에서 파키스탄에 1-0으로 패하며 깨졌고, 인도는 32년 만에 처음으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1962년 아시안게임 결승에서도 파키스탄에게 2-0으로 패하는 것으로 인도 하키의 황금기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명예 회복의 기회는 곧바로 찾아왔다. 1964년 도쿄에서 조별 리그로 홍콩, 벨기에,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캐나다를 꺾고 준결승에서는 호주를 3-1로 꺾은 뒤 결승에서 파키스탄을 1-0으로 꺾었다. 1960년 로마 결승전 패배를 설욕하고 다시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도 남자 하키는 1968년 멕시코, 1972년 뮌헨에서 2연속 동메달만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인도 남자 하키의 마지막 올림픽 금메달은 1980년 모스크바였다. 이후 1984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차지한 5위가 지금까지 인도 남자 하키의 올림픽 최고 성적이었다.

기대

주장 만프리트 싱 아래 강력한 팀이 구성된 지금의 인도 남자 하키는 다가올 도쿄올림픽에서 다시 놀라운 성적을 낼 수 있을까. 올림픽 남자 하키 부문에서 인도가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팀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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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영부인은 통신상 기밀을 요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저 ‘대통령의 아내’다. 비화폰이 필요하지도 않고 쓸 일도 없다. 김건희씨는 그 어떤 영부인과는 달랐다. 윤석열정부 초부터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정치권을 포함해 이곳저곳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비화폰은 통화 녹음이 불가능하고 내용도 암호화된다. 정부와 대통령실 경호처·안보 담당 고위 관계자, 군·정보기관에 근무 중인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민간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김건희씨는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비화폰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지켜졌던 관행을 파괴하고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수사기관·정치권 등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수사 개입 정황 확인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씨가 사용했던 비화폰 통신 기록 확보에 나섰다. 정민영 특검보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지난주 대통령실과 국방부 군 관계자 비화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당사자 21명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및 대통령경호처로부터 제출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외압이 의심되는 기간 비화폰 통신 기록을 분석하며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 특검보는 김씨도 비화폰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본인에게 지급된 것”이라고 전했다. 특검팀은 지난 2023년 7∼8월 소위 ‘VIP 격노’ 이후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된 배경에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정점으로 한 수사 외압과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미 윤 전 대통령과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인물의 자택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해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들이 당시 보안성이 높은 비화폰을 사용해 연락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통신 기록 확보에 추가로 나선 것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일반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들은 어느 정도 확인됐는데 중간중간 비화폰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누구와 어떤 시기에 수발신이 이뤄졌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채상병 특검, 윤·김 통신 기록 확보 조태용·김태용 등 “VIP 격노 사실” 앞서 특검팀은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 통신 기록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고, 경호처 측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특검에 제출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비화폰 기록을 모두 넘겨받아 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이 됐던 2023년 7월31일 VIP 격노 회의 전후 기간 이들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씨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 전 사단장 구명을 위해 “내가 VIP(윤 전 대통령)한테 얘기하겠다”고 지인에게 말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부터 넘겨받아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비화폰 기록을 토대로 김씨가 이 전 대표와 어떤 통화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씨의 비화폰 사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석열정부 이전엔 대통령 부인이 비화폰을 상시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경호처 출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부인이 비화폰을 쓰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여러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관행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 경호처는 “비화폰은 국가정보원의 ‘국가정보보안 기본 지침’ 등을 근거로 한 대통령경호처의 내부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며 “김씨에 대해서는 관련 내부 규정에 따라 제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에게 지급된 비화폰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송수신 통화와 문자메시지 발송만 가능하다. 그의 비화폰 기록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씨의 비화폰 기록에 대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도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어서다. 지난해 7월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백 수수 사건으로 검찰 출장 조사를 받기 전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30분 넘게 비화폰으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부 맞다” 줄줄이 실토 또,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10월 김 전 수석이 당시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비화폰으로 2차례 통화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한 김씨의 비화폰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특검팀은 최근 조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7시간가량 조사했다. 조 전 원장은 2023년 7월31일 오전 11시쯤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이 해병대수사단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을 당시 배석한 것으로 알려진 7명 중 한 명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육군 중장·현 국방대학교 총장)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해 대통령실 내선전화(02-800-7070)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조 전 원장은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국가안보실 회의 참석자로만 보면 4번째다. 정 특검보는 “해병대수사단이 이첩한 수사 기록의 회수와 관련해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확인할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으로 순직 사건 기록을 이첩한 당일 임 전 비서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과 연락하며 수사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 전 비서관 등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이 대통령실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북경찰청 사이에 다리를 놓아 이첩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정황을 파악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16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하던 박모 총경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며 이 전 비서관이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박 총경은 대통령실과 국수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23년 8월2일 이모 전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에게 전화해 유 전 관리관의 연락처를 전달하고 경북청이 연결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과장도 특검에 출석해 박 총경이 이 전 비서관 이름을 언급하며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기록을 이첩한 직후 2023년 8월2일 오후 1시21분 이 전 비서관과 통화하고 뒤이어 오후 1시42분 유 전 관리관에게 전화했다. 누구와 통화했나 유 전 관리관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임 전 비서관으로부터 경북청에서 전화를 걸어올 것이란 말을 들었고, 경북청 관계자와 통화하며 수사 기록 회수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유 전 관리관은 노모 당시 경북청 수사부장과의 통화에 대해 “경북청에서 ‘아직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회수해 갈 것인가’라고 물었고, 판단하기론 ‘항명에 따른 무단 이첩이라 회수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유 전 관리관과 경북청의 통화 이후 해병대수사단에서 이첩한 수사 기록은 같은 날 오후 7시 20분쯤 국방부검찰단에서 회수했다.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8명으로 혐의자가 적시된 해병대 수사 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를 거쳐 2명으로 축소돼 경북청에 다시 보내졌다. 특검팀은 수사의 초점을 점차 국방부검찰단의 수사 기록 회수와 국방부조사본부의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 확인으로 옮기고 있다. 정 특검보는 “기록 회수와 재검토 등과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면서 “수사 초반에 비해 기록 회수나 (조사본부) 재조사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김진락 전 국방부조사본부 수사단장(육군 대령)의 2023년 8월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에서 자필로 작성한 20여쪽 분량의 수첩을 확보해 국방부의 외압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 아닌 2023년 초부터 사용 “문제 생기거나 위기 때마다 애용” 국방부조사본부는 2023년 8월9일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해병대수사단 수사 기록 재검토에 들어갔고 닷새 후 임 전 사단장 등 6명을 혐의자로 판단한 중간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국방부조사본부는 총 6차례에 걸친 보고서 수정을 거쳐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적시한 재검토 결과를 경북청에 재이첩했다. 김씨와 비화폰으로 통화한 인물들은 모두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다. 복수의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은 에 김씨가 윤 전 대통령이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비화폰으로 김 전 수석과 조 전 원장 등과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한 인물은 윤석열정부 초대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했다고 한다. 김씨가 비화폰을 많이 사용하던 시기는 2023년 초부터다. 특검팀도 2023년 3월부터 김씨가 비화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정황을 포착했다. 일각에서는 김씨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지난해 9월부터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사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과 김씨가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직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연남 역할은? 한 정보사 관계자는 “김씨의 어머니인 최은순씨의 내연남 의혹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노상원을 후원하던 사람이라는 풍문은 많이 알려진 얘기”라며 “노상원과 내연남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내연남이 노상원에게 돈을 퍼줬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내연남이 노상원과 비화폰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무속과 고민 상담 등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