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3사 'LTE요금제'의 비밀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8.30 14: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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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G처럼 쓰다간 훅 간다" 데이터 소모속도 '빠름~빠름~빠름~'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통신3사가 LTE가입자수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카카오톡 등 데이터기반 메시징·음성서비스에 밀려 수익에 차질이 생기자 '무제한데이터서비스'를 없앤 LTE서비스가 '구세주'로 떠오른 것이다. 치열한 마케팅 공세에 LTE가입자 1000만명 시대로 접어드는 가운데 대다수의 LTE사용자들은 데이터 소모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나섰다. 하지만 통신3사는 이 같은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언론으로 '꼼수'까지 부리며 어떻게든 LTE가입자수를 늘리려 혈안이다.

지난 21일을 기점으로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3000만명을 넘어서며 국민 10명 중 6명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됐다. 통신업계는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이처럼 급속히 증가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4G(4세대) LTE(롱텀에볼루션) 시장의 확대를 꼽았다. 지난해 말부터 LTE가입자수가 급속도로 늘어나 지난 17일 920만명을 돌파했다. 이 추세라면 내달 안에 LTE가입자 1000만명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사용자 세 명 중 한 명은 LTE서비스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 3000만명
LTE가입자 1000만명

최근 SK텔레콤·KT·LG유플러스(이하 이통3사)는 LTE가입자수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해 7월 LTE서비스가 상용화된 데 이어 지난달 말 LTE 전국망이 완성되면서 마케팅전쟁은 더욱 치열해진 양상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 덕에 이통3사의 지난 2분기 마케팅 비용은 사상 최대, 실적은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그 여파로 2분기 영업이익은 국제회계기준(K-IFRS)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SK텔레콤은 3846억원, KT는 3717억원, LG유플러스는 3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2.8%, 14%, 94.8% 떨어진 수치다.  

순이익도 뚝 떨어졌다. SK텔레콤은 작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1206억원을 기록했고 LG유플러스는 321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아예 적자로 돌아섰다. KT 역시 아직 2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증권가는 KT의 순이익이 2분기에 바닥을 찍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LTE가입자 유치 경쟁이 너무 치열한 나머지 제 살을 깎아 먹고 있는 것이다.

이통3사가 이처럼 모든 것을 내걸고 LTE가입자 유치에 애를 쓰는 건 무제한데이터서비스를 없애버린 LTE서비스가 가입자당평균매출액(ARPU)을 증가시켜 장기적으로 순수익을 대폭 높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LTE서비스가 시작되던 당시 무제한데이터요금제를 없앤다는 소식에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강한 우려를 표했다. LTE서비스가 3G WCDMA보다 4배 이상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만큼 데이터 소모속도도 3G보다 몇 배는 빠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무제한데이터서비스를 즐기기 위해 3G서비스를 고수하려는 이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당시 갤럭시노트, 갤럭시S2, 옵티머스 LTE 등 최신 단말기로 교체하려면 LTE요금제가 강제되어 많은 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LTE서비스에 가입해야 했다. 최신기기를 공짜로 준다며 2G 및 3G에서 LTE서비스로 전환을 유도하는 통신3사의 안내전화는 예나 지금이나 극성을 부리고 있다.

통신3사, LTE 가입자 선점에 모든 것 걸었다
LTE에 '무제한데이터요금제' 없는 이유 "있다"

이통3사의 적극적인 마케팅 공세에 LTE가입자는 1000만명을 바라보게 됐다. 동시에 LTE서비스에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포털에서 'LTE 데이터 소모량' 등으로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LTE의 빠른속도는 만족스럽지만 그만큼 데이터가 소모속도가 너무 빨라 제공되는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특히, 휴대폰 공동구매 사이트로 잘 알려진 '뽐뿌'를 중심으로 이 같은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아이디 agaxxx는 "LTE는 빠른 만큼 데이터 소모량이 폭탄"이라며 "체감하는 데이터 소모속도가 3G에 비해 몇 배 이상 빨라 동영상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한다"라고 성토했다. 아이디 kokoxx는 "속도가 빨라 동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데이터 소모량이 턱없이 많은 것 같다"며 "데이터 전송방식이 3G와 다른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외에도 "3G 쓰듯 LTE를 썼더니 하루 만에 데이터 1GB 우습더라" "핫스팟으로 옥션 쇼핑검색 3시간 했더니 데이터 5GB가 빠져나가서 놀랐다" "유튜브에서 10분짜리 고화질 영상 두 개 봤을 뿐인데 300MB나 소모됐다" "멋도 모르고 개그콘서트 동영상을 2시간 동안 봤더니 한번에 900MB가 줄었더라" 등 수많은 사례가 올라와 있다. 또 한 블로거는 벤치비(모바일속도측정프로그램) 테스트를 통해 데이터 소모량이 3G보다 5배 많은 것을 보여주며 "광고를 보면 '겁나 빠른 LTE'라면서 속도 경쟁을 하지만, '겁나 빠르게 데이터 요금을 빼먹겠습니다'라 말을 하는 것과 같다"며 꼬집었다.

쇼핑검색 3시간에
5GB 빠져나가기도

실제로 이통3사의 LTE 데이터 전송속도는 최근 최고 50MBps까지 자랑한다. 즉 30MBps로 고화질 동영상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10초만 지나도 300MB가 소모되는 셈이다. 따라서 웹서핑을 하다 실수로 동영상을 클릭하면 즉시 취소했다 하더라도 상당량의 데이터가 순식간에 날아가게 된다. 또 만에 하나 주머니 속에서 잘못 클릭되어 많은 용량의 동영상이 다운되는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라도 하면 단번에 한 달분 데이터를 모두 날려버리거나, '폭탄요금' 통지서가 날아오는 참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데이터 소모속도가 빠른 원인을 직접 밝혀내려는 이들도 생겨났다. 아이디 네모xxx는 "같은 페이지를 볼 때 LTE가 3G보다 속도가 빠른 건 데이터가 전송될 때의 패킷 크기가 커졌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예를 들어 3패킷단위의 페이지를 볼 때 3G는 최소단위인 3패킷만 쓰지만 LTE는 기본으로 움직이는 패킷 단위가 10패킷 정도로 크기 때문에 같은 페이지를 보아도 차이 나게 되는 것"이라며 나름대로 근거를 대며 주장했다.

이를 두고 통신업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LTE와 3G는 데이터 차감률에 차이가 없다"며 "단지 속도가 빨라 소모되는 데이터양도 많은 것으로 체감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취재기자의 "데이터 계산방식에 시스템적으로 차이가 전혀 없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LTE사용자들은 데이터 소모속도가 3G와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LTE서비스 사용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데이터 소모량이 많은지 확인하는가 하면, 데이터를 아껴 쓰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데이터 폭탄요금'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특히 LTE사용자가 지켜야 할 철칙 중 하나는 언제 어디서든 일단 무료 와이파이가 잡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라 한다. LTE사용자에게 '무료와이파이존'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트래픽 폭증 걱정하더니 이젠 적게 쓴다고 걱정
무제한데이터 3G도 곧 2G운명 맞게 될 것

그런데 지난달 모 언론에서 '62요금제 가입했는데…데이터 반도 못써'라는 제목으로 위에서 언급한 LTE사용자의 의견과는 정반대 성격의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물론 이통3사의 입장을 적극 반영한 기사였다.

기사에 따르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3사 LTE가입자의 월평균 데이터 소진량은 2.06GB 수준"이라며 "LTE폰 사용자들이 처음 가입할 때는 무제한 데이터 수준인 62요금제에 가장 많이 가입하지만 사실은 제공한 데이터의 절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데이터를 너무 많이 쓰는 것도 문제지만 데이터를 쓰지 않는 것도 문제"라며 "통신3사는 적정한 데이터 사용량을 위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기사 밑엔 기사내용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350여개가 넘는 반박 댓글을 달아놓을 만큼 논란이 뜨거웠다. 아이디 ekanxxxx은 "62요금제 8개월째인데 난 데이터 항상 모자라는데 데이터 줄이려는 수작이네"라는 의견을 남겼고, jsh1xxxx는 "내 손안의 영화관 LTE라고 광고해 놓고 주는 데이터는 고작 6GB, 한 편에 2GB가 넘는 영화를 어떻게 받나?"라고 꼬집었다.

이 외에도 "82요금제 13GB 주는데 아끼고 아껴 써도 지금 500MB밖에 안 남았거든?" "사람들 저것밖에 안 쓰니 과부하 걸릴 일도 없겠네, 62요금제에 무제한 만들라" "오버 될까 봐 항상 사용량 체크하면서 노심초사하는데, 조사에 신뢰도가…. 통신사 소속 기자인가?" 등의 다소 과격한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영화 한편 못 보는
내 손안의 영화관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데이터무제한요금제 폐지' 논란에서 당시 이통3사들은 한목소리로 "무제한 데이터 서비스로 인해 트래픽이 폭증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며 "앞으로 출시될 LTE뿐 아니라 3G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도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LTE서비스를 확장하는 과정에선 사용자들이 데이터를 너무 적게 쓴다고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LTE서비스를 사용하면 데이터가 부족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해 LTE가입자수를 늘리려는 숨은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LTE 요금제는 단계별로 제공되는 데이터양에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통3사마다 다소차이가 있지만 기본 월 6만2000원이 청구되는 62요금제를 선택해야 6GB라는 넉넉한 데이터를 제공받는다. 한 단계 아래인 52요금제가 제공하는 데이터는 2~2.5GB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고, 42요금제는 또 1.1~1.5GB 수준으로 떨어진다. LTE서비스는 데이터 소모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62요금제 이하로는 동영상은커녕 웹서핑도 마음 놓고 못할 수준의 데이터가 제공되는 셈이다. 이처럼 이통3사 모두는 요금제별 제공되는 데이터양에 차등을 두어 사실상 62요금제 이상을 강제하고 있다.

종합하면 이통3사가 바라보는 LTE에 대한 입장은 명확해 보인다. 바로 가입자로부터 더 많은 요금을 거둬들이는데 LTE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


실제로 이통3사는 스마트폰이 활성화 되어 음성서비스 매출이 한계에 다다르자 데이터서비스를 통해 매출을 올리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2009년 말 아이폰이 도입되면서 국내에도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3G 데이터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요금제가 정착단계에 접어들었고 이통3사는 무제한요금제를 내세워 데이터 요금 폭탄에 대한 불안감을 씻어내며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LTE서비스 실체
'빨리 쓰고 많이 내라'

최근 들어 국민 10명 중 6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정도가 되자 무제한데이터요금제를 없앤 LTE서비스가 황금어장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통3사는 LTE가입자 선점에 사활을 걸었다. 더 빠른속도는 결국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LTE요금제하에선 데이터요금을 3G보다 훨씬 비싸게 지불해야 하는 형국이다. 이것이 바로 LTE서비스의 실체인 것.

한편 우여곡절 끝에 무제한데이터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3G도 머지않아 2G처럼 사라지게 될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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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