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 있는 섬 ④남해 노도

서포 김만중의 좌절과 꿈이 깃든 절해고도도

▲ 하늘에서 본 노도. 바다 건너 벽련마을이 보이고, 뒤로 금산이 병풍처럼 솟았다.

남해는 조선시대 대표적 유배지였다. 자암 김구는 〈화전별곡〉에서 남해를 ‘일점선도(一點仙島)’ ‘산천기수(山川奇秀)’의 땅으로 노래했다. 자암이 남해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면, 서포 김만중은 절해고도인 노도에 유폐돼 창작열을 불태웠다. 수려한 명소가 많은 남해에서 노도가 알려진 건 전적으로 김만중 덕분이다.

김만중은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3년 남짓 노도에 살다가 55세에 숨을 거뒀다. 남해군은 김만중의 유적과 이야기를 엮어 노도를 문학의 섬으로 조성했다. 김만중문학관, 서포초옥, 야외전시장, 작가창작실 등을 아기자기하게 꾸몄기에 문학 여행지로 제격이다.

▲ 벽련마을의 아담한 도선대합실

상주면 벽련마을은 노도를 바라보는 마을이다. 벽련항에서 노도로 가는 여객선이 다닌다. 도선대합실 앞에 방풍림으로 심은 팽나무 몇 그루가 우뚝 서 있다. 나무 그늘 평상에 앉아 노도를 바라본다. 섬이 삿갓처럼 생겨 삿갓섬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이 섬에서 노를 많이 만들어 노도라 했다. 김만중도 여기서 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

▲ 여객선에서 바라본 노도

김만중문학관

삐~ 기적을 울리며 여객선이 도착했다. 배는 잔잔한 물살을 가볍게 헤치고 5분 뒤 섬에 닿았다. 노도는 벽련마을에서 직선거리 1.3km에 불과하다. 지금은 이처럼 쉽게 갈 수 있지만, 서포에게 이 바다는 돌아갈 수 없는 장벽이었다.

김만중은 1686년 장희빈 일가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미움을 받고 평안도 선천으로 유배된다. 〈구운몽〉은 선천 유배 시절에 홀로 남은 노모를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다. 선천 유배가 끝나고 불과 4개월 만에 다시 남해 노도로 유배된다. 이번에는 죽을 때까지 그 공간을 떠날 수 없는 위리안치(圍籬安置)를 받았다.

▲ 노도선착장에 있는 ‘서포의 책’ 조형물

노도선착장에 도착하자 문학의 섬을 알리는 조형물이 반긴다. ‘서포의 책’은 왼쪽에 〈구운몽〉 본문을 발췌한 내용이, 오른쪽에 김만중 조형물과 앵무새의 부조가 있다. 조형물 아래쪽에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적혔다. 〈서포만필〉에 나오는 구절이다.

▲ 노도선착장에 있는 서포김만중선생유허비

이런 김만중의 주장은 성리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에 매우 파격적이었다. 서포는 송시열을 따르는 서인이었다. 송시열은 주자의 경전 해석을 조금이라도 달리 풀이하면 사문난적으로 공격했는데, 김만중은 뜻을 굽히지 않고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한글로 썼다. 국문학사에서 김만중을 높이 평가하는 점이다.

▲ 산비탈에 옹기종기 자리한 노도마을의 집

노도선착장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면 노도마을이 나온다. 한때 70여가구가 살고 초등학교 분교도 있었지만, 지금은 12가구 17명쯤 산다. 노도 주민에게 김만중은 ‘노자묵고할배’로 통했다고 한다. ‘놀고먹다’라는 뜻으로, 밤낮 저술에 매달리는 김만중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다.

▲ 작품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작가창작실

마을 끝 갈림길에서 오른쪽이 작가창작실, 왼쪽이 김만중문학관으로 가는 길이다. 먼저 작가창작실에 가본다. 조망이 시원한 길이다. 건너편 남면과 상주면 사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반대편은 여수 돌산도가 아스라하다. 펜션 형태 건물 3동이 작가창작실이다. 아직 입주한 작가는 없다. 이 멋진 공간에서 글을 쓰면 작품이 술술 풀릴 것 같다.

▲ 서포가 살던 초가 자리에 들어선 김만중문학관

다시 갈림길에서 10여분 산책로를 따르면 김만중문학관이 나온다. 문학관 왼쪽 수풀 안에 김만중이 직접 팠다는 우물이 있다. 물이 귀한 섬에서 여전히 찰랑찰랑 물이 가득하다. 문학관은 서포의 일대기와 작품 세계 등을 알 수 있는 전시실, 영상관, 전망대 등을 두루 갖췄다. 코로나19 때문에 개관이 연기돼 내년 봄 오픈할 예정이다.

▲ 서포초옥 위쪽 너른 공간에 야외전시장을 꾸몄다.

문학관 위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서포초옥이 나온다. 본래 문학관 자리에 김만중이 살던 초가가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겼다. 새 건물이라 서포의 흔적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서포초옥에서 150m쯤 더 오르면 너른 터가 펼쳐진다. 여기가 야외전시장으로 구운몽원과 사씨남정기원이 있다.

남해는 조선시대 대표적 유배지
김만중 이야기로 문학의 섬 조성


소설의 주요 장면을 모티프로 동상을 세워 이야기를 엮어간다. 동상과 설명을 보면 소설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 전망 정자에서 내려다본 두모마을과 금산

야외전시장에서 100m쯤 더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는 전망 정자에 닿는다. 봄철 유채꽃과 다랑논이 유명한 두모마을과 금산 쪽 풍광이 수려하다. 노도 둘러보기는 정자에서 마무리된다. 노도선착장으로 돌아가려면 길을 되짚어야 한다. 내년 봄에 트레킹 코스가 열리면 전망 정자에서 작가창작실로 곧장 내려갈 수 있다.

▲ 설리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노을

노도에서 나오자 해가 기울 시간이 가까웠다. 서둘러 설리해수욕장 쪽으로 차를 몰았다. 설리스카이워크는 솔정솔바람해수욕장에서 설리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자리해 노을이 멋지다. 설리스카이워크 앞에 도착하니 노을이 바다와 하늘을 시나브로 물들이고 있었다.

목도 뒤쪽 여수 돌산도로 해가 지는 풍경이 일품이다. 긴 다리처럼 생긴 설리스카이워크는 전망대 끝에 설치된 그네가 백미다. 11월 말이나 12월에 개장하면 그네를 타고 푸른 바다의 품으로 뛰어드는 듯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 잔디 사이트 위에 남해대교 모형이 돋보이는 남해보물섬캠핑장

남해보물섬캠핑장에서 묵었다. 남해군이 직영하는 캠핑장으로, 옛 분교를 리모델링해 아담하고 시설이 좋다. 이곳의 자랑은 운동장에 만든 잔디 사이트다. 푹신한 잔디를 밟고 노는 아이들 모습이 보기 좋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남해대교 모형이 재미있다. 다리 위에서 캠핑장과 사촌해수욕장 일대가 보인다.

▲ 남해 대국산성 성벽 위에서 본 풍경

남해 대국산성

마지막 코스는 설천면 진목리에 있는 남해 대국산성(경남기념물 19호)이다. 인적이 뜸해 가족이나 친구와 호젓하게 찾기 좋다. 남해현을 지키던 읍성으로 추측하는 대국산성은 대국산(376m) 정상 일대 약 1.5km를 둘렀다. 아담한 산성이지만, 조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남쪽으로 남해읍이 한눈에 잡히고, 북동쪽 멀리 지리산 능선이 아스라하다. 어깨춤 들썩이며 성벽 위를 걸어 남해 여행을 마무리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노도→설리스카이워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노도→설리스카이워크→남해보물섬캠핑장 
둘째 날: 보리암→남해 대국산성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남해문화관광 http://tour.namhae.go.kr
- 남해보물섬캠핑장 https://blog.naver.com/agong8623 

문의 전화
- 남해관광안내 1588-3415
-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055)860-8594
- 남해보물섬캠핑장 055)862-8623 

대중교통
[버스] 서울-남해,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6회(07:10~19:30) 운행, 4시간30분~5시간 소요. 남해공용터미널 정류장에서 남해-미조(두모·대량·상주) 농어촌버스 이용, 벽련마을 앞 정류장 하차, 벽련항선착장까지 도보 약 500m. 노도행 여객선 하루 4회(09:00~16:30) 운항.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남해공용터미널 055)863-5056 남흥여객 055)863-3507 벽련항여객선 010-4045-2720


자가운전
중부고속도로→통영대전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사천 IC→창선교→백련마을

숙박 정보
- 남해비치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남면 남서대로, 055)862-8880, www.bichihotelpension.com
- 남해스포츠파크호텔: 서면 스포츠파크길, 055)862-7900, www.namhaehotel.com 
- 아난티 남해: 남면 남서대로1179번길, 055)860-0100, www.ananti.kr/kr/ananti_namhae 
- 버드하우스캠핑장: 창선면 서부로, 010-7298-8702, http://xn--hy1b58lpof nseb9al4xvxlrb.com

식당 정보
- 서포밥상(멸치쌈밥·회무침): 상주면 남해대로1299번길, 055) 863-0588 
- 사랑채(멸치쌈밥·생선구이): 이동면 남해대로, 055) 863-5244 
- 평산횟집(모둠회·하모회): 남면 남면로1739번길, 055)863-1047 
- 우리식당(멸치쌈밥):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055)867-0074

주변 볼거리
설리해수욕장, 남해토피아랜드, 용문사, 남해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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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