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추억> 대한민국 레슬링 심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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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0.10.26 10:27:32
  • 호수 12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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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들었다 놓은 ‘작은 거인’

▲ 한국 레슬링의 ‘작은 거인’ 심권호

[JSA뉴스] 한국 레슬링의 ‘작은 거인’ 심권호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인 선수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제패를 무려 2회나, 그것도 2개의 다른 체급에서 이뤄낸 것이다.

두 번의 올림픽, 1996 애틀랜타올림픽과 2000 시드니올림픽 모두 심권호가 멋진 업적을 달성한 경기다. 심권호는 1993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줄곧 한국 남자 레슬링의 간판선수다운 활약을 펼쳤다. 

두 체급 석권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95 마닐라 아시아선수권대회와 프라하 세계선수권대회, 1996 샤오산 아시안게임까지 모두 그레코로만형 48kg급 금메달을 차지한 심권호는 이어질 올림픽에서도 단연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그리고 마침내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금메달을 거머쥐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모두 우승한 선수의 자리에 올랐다.

이 금메달에는 특별한 의미도 있었다. 한국이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획득한 첫 금메달이자 대표팀의 올림픽 통산 100번째 금메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다. FILA(현 UWW)의 체급 조정에 따라 그레코로만형 48kg급이 아예 없어져버린 것이다. 심권호가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최경량급인 54kg급에 적응해야만 했다.

1996 애틀랜타, 2000 시드니 연속 제패
1993년 국대 선발 후 간판선수로 활약

쉽게 극복하기 힘든 무게 차이였던 만큼 심권호도 1년여의 시간 동안 부진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54kg급에서도 화려한 기록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최강자의 위용을 뽐냈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올림픽을 앞두고 1998 예블레 세계선수권대회와 방콕 아시안게임, 1999 타슈켄트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차지하며 메이저 대회를 석권까지는 올림픽 금메달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마침내 시드니 올림픽 결승전. 일찌감치 점수를 내며 승부를 결정지은 심권호는 이 승리로 48kg급에서 54kg급으로 체급을 바꿔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선수가 됐다.
 

많은 선수들이 은퇴 이후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택하는 것과 달리 심권호는 회사원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현역 시절 오랫동안 몸담았던 소속팀 주택공사(현 LH)에서 잠시 코치를 맡기도 했지만, 2012년부터는 LH에서 일반 사무직으로 재직 중이다.

회사 생활을 하는 한편 방송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는 선수가 아닌 해설자로서 올림픽에 함께했으며, 이후로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녹슬지 않은 체력과 특유의 유머로 많은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뒤이을 차세대 스타 누구?
전망 어두운 ‘효자 종목’

무엇보다도 2014년 대한민국 레슬링 선수 최초로 UWW 명예의 전당에 오르며 경량급 전설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그렇다면 심권호의 뒤를 이어 내년 도쿄에서 한국 남자 레슬링의 위상을 드높일 선수는 누가 있을까. 한국에서 올림픽 레슬링은 ‘효자 종목’으로 꼽히지만, 현재 한국 선수 중에서 도쿄올림픽 본선 출전을 확정지은 선수는 아직 없다.

한국 레슬링의 간판스타로 꼽히는 김현우(그레코로만형 77kg급)와 류한수(그레코로만형 67kg급) 모두 지난해 9월 카자흐스탄에서 있었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도쿄행 티켓을 확보할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당초 올해 초로 예정됐던 아시아 예선과 세계 예선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기 때문에 김현우와 류한수의 올림픽 출전 여부도 내년이 돼야 확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두 선수는 이미 올해 국가대표선발전에도 통과했고, 사실상 국내 최강자로서 도쿄올림픽 출전에 많은 기대가 걸려 있다.

명예의 전당

특히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그레코로만형 66kg급)과 2016 리우올림픽 동메달(그레코로만형 75kg급)의 주인공 김현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며 도쿄 올림픽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제게는 마지막 올림픽인 도쿄 올림픽의 취소나 연기 여부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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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