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속 휴가철 신풍속도

떠나라! 조심해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여름 휴가 시즌이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해외여행 계획을 앞두고 들떠있겠지만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늘었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휴가 기간을 집에서 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만 코로나19가 시작된 봄도 즐기지 못한 만큼 짧게나마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연령대에 따라 다르지만 캠핑부터 해외여행까지 여러 개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여행 신풍속도다.

코로나19에 따른 여행 신풍속도의 중심에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이 자리잡고 있다. 스테이케이션은 집에서 머무르는 ‘집콕’과 같은 말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단순히 집에서 휴식을 하는 것과 달리 즐길 거리를 집으로 끌어들여 휴가 형태로 즐긴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진화된 집콕
먹거리 위주

스테이케이션과 집콕의 작은 차이 때문에 다를 게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테이케이션과 집콕은 분명 다르다. 형태만 놓고 본다면 작은 차이지만 소비 형태 범위까지 확대하면 차이는 커진다.

집콕의 경우 ‘먹거리’ 위주 소비 외엔 별다른 소비가 없다. 반면 스테이케이션을 위해선 먹거리는 물론 다양한 주변 도구, 소위 즐길 거리 구매도 늘어난다.

라면을 끓여먹어도 기존 냄비가 아닌 코펠을 활용하고, 집 앞 마당서 간이 수영장을 꾸미는 식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특히 장소도 무조건 집이 아닌 캠핑과 펜션 등을 이용하는 형태도 넓은 범위서 스테이케이션에 해당한다.


잡코리아는 최근 직장인 1023명을 대상으로 여름휴가 계획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여름휴가를 갈 계획이 있다는 답은 9%에 그쳤다고 밝혔다.

‘올해는 따로 여름휴가를 가지 않겠다(22.9%)’ ‘겨울휴가 등 아예 휴가를 미루겠다(6.4%)’ ‘휴가를 내서 자녀 등 가족을 돌보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2.6%)’ 등 올해 여름휴가를 포기했다는 응답은 31.9%였다. ‘아직 미정,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 등의 대답은 59%를 기록했다. 

설문대로라면 10명 중 1명은 여름휴가를 떠나고, 3명은 휴가를 포기한 상태다. 6명의 경우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휴가에 대한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명 중 1명 떠나’ 스테이케이션 등장
자동차 숙소로 진화 중…‘차박’도 인기

코로나19의 위험도를 낮추는 형태의 휴가를 즐길 곳이 있다면 휴가를 떠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스테이케이션이 최근 여름휴가의 신풍속도 속 중심에 자리 잡게 된 이유다.

실제 캠핑 등을 통해 한 공간서 머무르며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스테이케이션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코로나19 여파로 사람들이 북적이는 호텔·리조트보다 한적하게 지낼 수 있는 펜션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티몬이 최근 올해 4∼5월 숙박 상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펜션·캠핑의 비중이 52%를 기록해 호텔·리조트의 48%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4월 펜션·캠핑 매출 비중은 작년 동기 대비 13% 늘었다. 코로나19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조용히 휴가를 보내려는 고객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게 티몬의 설명이다.

▲ ⓒ고성준 기자

야놀자가 사용자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티몬의 매출 분석 결과와 비슷했다. 지난 3∼5월 펜션의 이용 건수가 작년 동기 대비 105% 증가했다.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를 설치한 야놀자 제휴점서 언택트 체크인을 한 고객은 지난 5월 기준 설치 제휴점 예약자의 절반을 넘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봄을 즐기지 못한 이들이 보복적 소비 형태로 관광지 위주가 아닌 도심과 떨어진 야외 펜션 및 캠핑에 나선 이들이 늘어다는 것이다. 레저업계는 이 같은 추세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캠핑이 일상에 파고든 건 이미 수년 전 일이지만 최근엔 즐기지 않던 이들까지 캠핑에 뛰어들고 있다.

일례로 지난 3∼5월 캠핑용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6월 들어 캠핑용품 매출 상승세는 가파르다. 홈플러스의 경우 이달 1∼5일 캠핑 관련 제품 매출은 전년 대비 169% 증가했다.

관광보다 캠핑
아웃도어 판매

캠핑 관련 용품 판매가 증가하자 유통업계는 캠핑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는 물론 롯데·신세계백화점 등 백화점은 캠핑용품, 아웃도어 의류 등 할인 판매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주류업계는 쿨러백(Cooler Bag)과 무거운 짐을 운반할 수 있는 트레이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캠핑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자동차서 숙박을 해결하는 ‘차박’도 올해의 여행 트렌드로 부상 중이다. 차박은 2030 젊은층 사이서 특히 인기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엔 ‘#차박’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만 11만개가 넘는다. 네이버 검색어 트렌드를 보면 지난 3월서 5월까지 ‘차박’ 키워드 일일 검색 횟수는 지난해 대비 4.6배 증가했다. 

차박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인 ‘차박캠핑클럽’의 5월 신규 회원은 코로나 확산 전인 지난 2월(2600명)에 비해 6배 이상 증가(1만6600명)했다.

차박의 인기는 쇼핑 트렌드서도 실감할 수 있다. 위메프는 4월 한 달간 차박 캠핑 용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텐트를 치지 않고 차량 내에서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차박매트’ 판매는 7.4배까지 늘었다.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하기 위해 차박 전용 텐트를 찾는 소비자들도 증가해 ‘차박텐트’ 매출은 2.3배 증가했다. 차량 내에서 시가잭이나 USB 포트로 전기를 공급해 사용하는 ‘차량용 냉장고’는 약 두 배, 차량에 거치해 사용할 수 있는 ‘차량용 테이블’은 1.7배 판매가 늘었다. 

▲ 휴가철 여름 바닷가 풍경

한 항공권·호텔·렌트카 예약사이트가 올 5∼6월의 항공권·렌터카 검색량 추이를 분석한 결과, 올여름 제주도 지역의 항공권 검색 비중 및 렌터카의 검색량이 전년 대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이트에 따르면, 한국인 여행객이 지난 5월 가장 많이 검색한 상위 10개 노선 중 5개 노선이 모두 ‘제주’행 항공편으로, 1위 서울∼제주도 노선 항공편 검색 비중은 전년대비 33.9%포인트 급증했다.


해수욕 신호등
홈캠핑도 유행

다음으로 부산∼제주(+6.4%포인트), 청주∼제주(+5.0%포인트), 대구∼제주(+4.0%포인트), 광주∼제주(+2.3%포인트) 노선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국내 저비용 항공사들이 제주도행 특가 항공권 이벤트를 연달아 내놓은 것도 제주도의 인기가 전년보다 더 주목받게 된 요인으로 보인다.

제주 내 렌터카에 대한 관심도 눈에 띈다. 5월25일서 6월21일 사이 약 한 달간 사이트서 검색된 제주도 지역 내 렌터카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1% 늘었으며, 비슷한 기간(5월22일∼6월21일) 검색량은 전월 대비 18% 증가했다.

제주도 여행지의 수요 증가와 렌터카의 검색량 증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안전한 여행을 하고자 하는 여행객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로 밀집된 곳을 피하는 게 생활 지침이 되면서, 여행지서도 렌터카를 빌려 이동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국 해수욕장의 혼잡도를 신호등처럼 볼 수 있는 ‘해수욕장 혼잡도 신호등’도 생긴다. 전라남도 지역 해수욕장에는 예약제가 시범 실시된다.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18일 이 같은 내용의 ‘해수욕장 이용객 분산 대책’을 발표했다. 해양수산부는 신종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여름철 해수욕장 이용객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다.


해수욕장 혼잡도 신호등은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30분마다 혼잡도를 색깔로 표시하는 서비스다. 적정 인원 대비 혼잡도에 따라 100% 이하는 초록색, 100% 초과∼200% 이하는 노란색, 200% 초과는 빨간색을 나타낸다.

적정 인원은 백사장 내 2m 거리 유지를 기준으로 1인당 소요 면적(3.2㎡)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해수부는 신호등 서비스를 위해 통신업체인 KT가 보유한 빅데이터 정보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해수욕장 갈 땐 ‘신호등·예약제’ 기억 
코로나 후 첫 휴가철 방역 정책 분수령

해수욕장 혼잡도 신호등은 다음달 1일부터 해운대, 광안리, 다대포, 경포대, 대천 해수욕장 등 10개 대형 해수욕장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된다. 해수부는 다음 달 중순까지 시행 대상을 전국 50개 해수욕장으로 늘릴 계획이다.

‘호캉스족’에게 올여름은 다양한 패키지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고를 수 있는 기회다. 서울 신라호텔은 야외 수영장 ‘어번 아일랜드’와 ‘루프탑가든’ 이용권, 2인 숙박과 조식 등을 묶은 ‘어반 루프탑 가든’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은 해운대 하늘과 바다를 야외서 조망할 수 있는 오션풀 루프탑 이용과 라이브 뮤직 파티 ‘선셋 파라다이스’ 티켓 등이 포함된 ‘얼리 서머’ 패키지를 마련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객실과 오아시스 야외 수영장, 풀사이드 바비큐 뷔페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오아시스 풀사이드 바비큐 패키지’를 내놨다. 

▲ 워크스루 선별진료소서 검체 체취하는 ⓒ문병희 기자

호텔 수영장 이용이 꺼려지는 이들을 위한 패키지도 다양하게 구성돼있다. 켄싱턴호텔 여의도는 7월31일까지 ‘한강 피크닉 패키지’를 선보인다. 디럭스 객실 1박, 조식 2인, 피크닉박스, 크루즈 이용권 2매, 뮤지컬 <김종욱 찾기> 초대권 2매로 구성한 상품이다.

홀리데이 인 인천송도가 마련한 ‘송도 겟어웨이 패키지’는 객실 1박과 조식 2인, 센트럴파크 패밀리보트 이용권 1매, 워터보틀 1개 등을 제공한다. 

이것저것 신경 쓰기 싫을 때는 ‘홈캠핑’으로 여행 기분을 내볼 수도 있다. 작은 텐트나 캠핑의자를 집 베란다나 옥상, 마당 등에 설치하고, DIY 에탄올 난로나 1인용 화로 등을 켜면 집에서도 ‘불멍’(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아직 위험해
알고 즐겨야

코로나19 유행 후 처음 맞는 여름은 여러 모로 전과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감염경로를 모르는 ‘깜깜이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서 이번 휴가철 인구 이동은 향후 방역 정책 수준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대영 경기연구원 전략정책부 연구위원은 “주요 관광지의 경우 입장객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온라인 사전 예약 시스템을 구축해 ‘2m 거리두기’가 가능한 수준서 하루 입장객 수를 관리하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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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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