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일이냐 삶이냐’ 유아인의 속내 

“내 인생의 관찰자가 됐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유아인은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2003년 열일곱의 나이에 KBS2 <반올림>을 시작으로, 수많은 작품서 뛰어난 연기를 펼치며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매 작품 열정을 보인 그는 방송과 영화계서 캐스팅 0순위였다. 배우로서 커다란 명예인 칸 영화제에 초청돼 레드카펫도 밟았다. 스스로 “세속적인 성공은 충분히 이뤘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삶은 비교적 풍요로워 보인다.
 

▲ ▲배우 유아인 ⓒ고성준 기자

유아인은 새로운 성공을 노리고 있었다. 경제적 성공을 넘어서 더 단단하고 깊이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몸부림 중이었다. 오락물에 가까운 영화 <#살아있다>를 선택한 이유도 변화와 맞닿아 있다. 삶에 있어 더욱 깊이 고민 중인 유아인의 속내를 살펴봤다.

배우 유아인의 작품은 대부분 무겁고 깊었다. 선생 말을 지지리 안 듣는 고등학생(<완득이>)과 의상부터 언행까지 모든 것이 불량한 성균관 유학생(<성균관 스캔들>)을 넘나들었고, 나라가 망하는 것에 인생을 베팅해 큰돈을 거둬들인 주식 재벌(<국가부도의 날>)이자, 인간에게 치욕을 주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재벌 2세(<베테랑>)이기도 했다.

스무 살이나 많은 유부녀와 사랑을 나눈 피아니스트(<밀회>)였으며, 배경이 조선일 때는 복잡한 사연으로 혼재한 사도세자(<사도>), 이방원(<육룡이 나르샤>), 숙종(<장옥정, 사랑에 살다>)이었으니, 그가 걸어온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은 파도가 몰아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유아인이 이번에 선택한 작품은 <#살아있다>다. 정체불명의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뜯어먹기 시작하면서 아파트 인근이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전화와 인터넷 등 모든 통신이 끊긴 채 홀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영화 <부산행>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까지,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한 좀비물이다. 좀비가 횡행하는 때에 사람 간의 유대감을 조명한 작품. 유아인은 극중 게이머이자 20대 청년 준우를 연기한다. 


이제껏 복잡한 내면을 표현해온 유아인은 <#살아있다>에서는 다소 선명하고 단순한 성향을 가진 준우를 표현한다. “비교적 가벼운 오락물을 선택한 것 역시 도전이었다”는 유아인은 긴 러닝타임의 중반부까지 혼자 이끌고 간다. 그 홀로 있는 시간이, ‘자가격리’를 쉽게 볼 수 있는 요즘가 긴밀히 맞닿아 있어, 공교로운 공감이 일어난다.

가족이 외출한 사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좀비들로 인해 오랫동안 홀로 아파트 안에 갇혀 있었던 준우의 일상으로 꽤 오랜 시간을 채운다. 다소 모험적인 선택이었음에도, 영화가 전혀 지겹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아인의 입체적인 표현력 덕분 아닐까. <#살아있다>를 통해 또 한 번 진면목을 보인 유아인의 소회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웃음 짓는 배우 유아인 ⓒ고성준 기자

-지난 16일 처음으로 영화를 봤는데, 소감을 말한다면?

▲어려운 시기에 작품이 나오게 됐다.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고 계셔서 아직까지는 기대가 된다. <#살아있다>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공감대를 드리고 좋은 느낌을 드릴 수 있을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초·중반부까지 홀로 작품을 이끌어가는데, 부담감도 상당했을 것 같다.

▲사실 부담이 컸다. 그 부담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 정도의 미션을 돌파해나가는 재미랄까.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고, 장르적 특성도 살아있으면서 인물색도 강했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었다. 사실 나 혼자만 등장하기 때문에 초반부를 지루하게 느낄까 여전히 걱정된다. 그 부분이 지루하면 실패하는 영화다. 부디 많은 관객이 준우와 함께 호흡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유아인의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색이 분명했다. <#살아있다>의 준우는 그 색이 불분명하다. 일상에 있는 누군가를 표현하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꽤 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옆집 청년을 상상하며 연기했다. 물론 옆집 청년이라고 다 똑같지는 않다. 크게 거슬리지 않고 현실성이 살아있는 인물로 표현하려 했다. 게임 속에서 활약하고 장난치는 모습들을 상상하며 연기했다. 

-영화 내에서 표현하기 어려웠던 장면이 있나?

▲처음에 게임 화면 속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어려웠다. 게임을 하지 않아서 보통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더라. 일상적이고 평범함이 묻어나는 대사였는데, 그런 장면이 부담스러웠다. ‘하이하이’라는 대사는 현실성이 없고, 설정 같고 흉내 내는 모습 같았다. 

<#살아있다> 홀로 이끈 그만의 진면목
‘코로나 시대’ 공교롭게 공감 가는 영화

인물의 성향은 평범하지만 상황은 극단적으로 몰린다.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중점을 둔 부분이 뭔가. 

▲가장 염두에 둔 키워드는 편안함이다. 두드러진 매력이나 기운보다 편안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일상의 자연스러움과 극한의 감정으로 가는 과정이 리드미컬하게 자연스럽길 바랐다. 또 귀여움도 보여주고 싶었다. 애교를 잘 떨어서 나오는 귀여움이 아니라, 그냥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는 귀염성을 가진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극중 준우는 스트리밍을 하는데, 대사가 많지 않다. 충분히 대사를 넣어서 인물의 색을 넣어줄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없었다. 편집된 것인가?

▲<#살아있다>는 진행이 상당히 빠른 영화다. 캐릭터 소개가 아주 선명하게 나오지도 않고, 상황 설명도 크지 않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바로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어야 했다. 구체적인 설명과 표현들은 지양됐던 현장이었다. 

-이 영화는 좀비 혹은 괴생명체의 발생 근원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모호함이 크고 방향성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다. 

▲모호함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뭔가 명확해지면 막막함과 두려움이 더 약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근본적인 해결책과 답을 주지 못하고, 그냥 벌어진 사건이고, 상황에 맞게 일일이 대처하면서 살아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영화 내의 상황이 일어난다면 추측만 할 뿐 누구도 정답을 갖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오열 신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눈물인데, 해당 장면서 인물의 감정의 정도도 보이고, 후반부 상황이랑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더라. 오열신은 열심히 준비한 것 같았는데...

▲사실 그 장면은 욕심냈다. 대본에 그 정도로 잘 설명돼있지는 않았다. 되려 반대 의견을 가진 분도 많았다. 오열 후에 오히려 슬픈 정보를 인지하게 되는데, 그 전에 눈물을 터뜨리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고립된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잘못이나 슬픈 정보 때문이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으로 인해 만들어진 외로움. 그런 감정이 배설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정답은 없었다. 그래서 감독님께 혼자 리허설까지 해서 보내드리고 했다. 
 

▲ 배우 박신혜와 포토타임 갖는 유아인 ⓒ고성준 기자

-중후반부부터 박신혜가 등장한다. 박신혜와의 촬영은 어땠나?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했지만, 그런 점이 없어서 아쉬운 면이 있다. 되려 판에 박힌 현장서 만나는 것보다 이런 재미가 있는 현장서 만나는게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내가 의견을 피력할 때는 강하게 하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전혀 굴하지 않고 신혜씨도 자기 의견을 냈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의견을 내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는 재미가 있었다. 현장서도 일상서도 그런 사람이 훨씬 재미있고 좋다.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다. 의외의 선택이다. 심적인 변화가 있었나?

▲준우를 표현함에 있어 가장 크게 생각한 게 편안함이었던 것처럼 개인적으로도 편안함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 이야기인즉슨, 편하지 않게 살았다는 것이다. 불편해도 신념을 갖고 움직이거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것을 좋아했다. 계속 그렇게 살아가려면 쉬는 순간도 필요했다. 그런 생각들이 이런 오락적인 장르물을 선택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예능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다. 삶의 권태로부터 오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일종의 환기를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20대를 몽땅 연기에 투자했는데, 30대가 되고 나서보니 삶의 목적이나 방향성이 불분명해졌다. 지금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냥 불분명할래’라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잃었다고 했다. 좀 더 주체적인 삶의 변화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어떤 동기가 있었나. 


▲내가 생각해온 신념이나 목적이 동기가 분명하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주체적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 주입된 환상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성취했다. 그 성취를 위해 20대를 쏟았다. 그런데 그런 것들로만 살아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인가?

▲그냥 주변서 벌어지는 일이 삶이 되는데, 관찰자의 입장이 됐다. 내 인생에 내가 관찰자이자 주변인 같은 태도가 생겼다. 덜 애쓰고 살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다. 과거엔 모두 너무 잘하고 싶어했었는데, 이제는 좀 내려놓게 됐다. 예전에는 인터뷰할 때 똑같은 질문이 다섯 개가 나오면, 어떻게든 다른 대답을 하려고 했다. 이제는 그냥 허용치까지만 한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질 때가 있다. 실제로 숨이 가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목적 잃은 삶, 날 불안하게 해”
“삶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사랑”

번아웃을 느낀 것인가.

▲그런 것일 수 있다.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다. <버닝>이 생각난다. 버닝이 태운다는 의미인데, ‘우리가 태우고 있는 게 진짜 태워지고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도 든다. 부정적인 단어를 쓰고 싶진 않다. 남들처럼 살려고 쫓아가지 말자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된다. 

-유아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에너지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랑인 것 같다. 하하. 그게 맞는 것 같다. 오그라들어도. 사랑과 미움은 동시에 존재한다. 내가 어디에 집중할지를 선택하는 게 삶이면서, 내게 주어진 권한이다. 점점 의심스럽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가 택하고 기대할 수 있는 건 사랑 뿐인 것 같다. 그것을 위해 에너지를 많이 쓴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아인이 밝힌 SNS 설전 이유
“사회에 대한 애정 때문에…”

지난 2017년 유아인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트위터를 통해 설전을 벌였다. 멘션과 답글이 오고가는 과정에서 설전으로 크게 번졌다. 사람들은 소위 ‘애호박 대첩’이라고 명명했다.

“애호박으로 맞아봤음?”이라고 남긴 유아인의 글은 그를 폭력적인 인간과 여성을 혐오하는 인간으로 둔갑시켰다. 이후 네티즌들을 넘어 일부 셀럽들과도 다투기도 했다. 당시의 유아인이 보여준 전투력과 순발력은 그 분야에 상징과도 같은 진중권 교수를 뛰어넘을 정도였다.

일부는 그에게 환호하며 ‘빛아인’이라 칭했고, 반대 측에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로 그를 비난했다. 상처가 남을 법한 사안이었다. 잃을 것이 많은 스타였던 유아인은 왜 상처뿐인 싸움에 최선을 다했던 것일까.

3년 전 ‘애호박 대첩’ 화제
일부 셀럽들과 글로 다투기도

“그때 말고도 나는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에 발언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그 행위를 거리낌 없이 펼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 당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그렇게 한 거다. 그냥 그들을 소비자로 생각했다면, 쉬운 방법은 더 많았다. 많이 지쳤지만, 소통의 기회를 열게 되는 이유도 역시 사랑인 거 같다. 어떤 것이든 편견으로 판단한다면 뻔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사랑으로 진심으로 던진 것이다. 이제는 그런 똑같은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부당한 일 앞에서는 충분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기 바란다. 인터넷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대중에게 연예인으로서 가진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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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