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치매 회장' 진실게임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8.03 17: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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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삿돈 꼬불친 회장님 세컨드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재계에 한 판결이 회자되고 있다. 모 기업의 회삿돈을 빼돌린 사건인데, 그 전모가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우선 등장인물들이 시선을 끈다. 병상에 누운 회장과 그의 후처,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가신 등이 주인공. 스토리 또한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A사장은 해외에서 잘 나가는 한국인 사업가다. 각종 대외 직함을 맡는 등 교민사회에서 유명인사로, 현지에서 호텔·부동산 개발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그의 성공 이면엔 놀라운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 한국에서 수상한 돈을 들고 해외로 나가 버젓한 사업가가 된 것이다.

전처 자녀들 고소

그가 큰돈을 쥐게 된 사건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A사장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홍콩 등 해외에 거점을 둔 모 해운업체 B회장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B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신임을 얻은 A사장은 B회장이 병상에 눕자 숨겼던 본색을 드러냈다. B회장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병세가 악화돼 치매 증세까지 보였고, 이 사이 A사장은 회삿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외국계 은행 홍콩지점에 2개 회사명의로 예금계좌가 있는 것을 이용, 예금인출 서명권자 명의를 바꿔 이 홍콩지점에서 인출하는 수법으로 B회장이 병상에 누워 있던 2001∼2005년 4년 동안 회사자금 1억1500만달러(당시 약 1330억원)를 빼돌렸다. A사장은 이 돈의 일부인 3000만달러(약 350억원)를 갖고 해외로 나가 호텔, 골프연습장 등 여러 사업을 벌였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한인사회에서의 영향력도 넓혀 나갔다.

이도 잠시. 그의 여유로운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B회장이 2007년 75세로 사망하자 상속권자인 자녀들은 재산 분배 과정에서 엄청난 돈이 증발한 사실을 알게 됐고, 갑자기 연락을 끊은 A사장을 의심했다. 자녀들이 수차례에 걸쳐 사실 확인을 요구했으나 A사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들은 결국 A사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해외에 있던 A사장에게 여러 차례 귀국할 것을 종용했지만 이 역시 응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인터폴을 통해 A사장을 수배하는 한편 현지에 협조를 요청했고, 외국인관리청은 A사장을 체포해 검찰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지난해 6월 해운업체에서 1억1500만달러의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A사장을 구속했다.

문제는 인출된 예금액 1억1500만달러 중 A사장이 사업에 쓴 3000만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8500만달러(약 980억원)의 행방이었다. 검찰은 A사장과 공모한 사람이 있다고 보고 추적에 나섰고, A사장 배후에 회장의 후처 C씨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B회장은 C씨와 1996년 결혼했고, 전처와 사이에 3명의 딸을 두고 있었다.

검찰은 두 달 뒤 A사장과 공모해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C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B회장이 전처와 결별한 뒤 재혼한 C씨는 범행을 공모·주도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C씨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이 치매 증세로 정신이 혼미해진 틈을 타 당시 비서였던 A사장과 범행을 모의했다.

후처-비서 회삿돈 1330억 빼돌린 혐의 기소
정신 오락가락한 오너 의사 관건…1심 무죄

검찰은 "C씨는 B회장이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워지자 회사명의 계좌 예금인출 서명권자 지위를 사임한다는 사임서와 자신을 남편의 회사 대표이사이자 새로운 예금인출 서명권자로 선출하는 내용의 이사·주주합동총회 회의록 등을 위조했다"며 "이를 증거 삼아 남편의 회사 권리관계에 관한 등록업무를 관장하는 미국 소재 L사에 권리 관계 변동을 신청해 문서가 진짜인 것처럼 꾸몄다"고 지적했다.

C씨는 인출한 돈 가운데 3000만달러를 B사장에게 주고, 나머지 8500만달러를 스위스 등 해외 은행 10여 계좌에 나눠 예치한 뒤 2010년 10월 싱가포르의 한 자산관리회사에 재산관리를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C씨가 빼돌린 돈의 일부를 자신의 성형비용 등으로 사용했다는 게 검찰의 전언이다.

A사장과 C씨는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하면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실제 검찰과 변호인은 재판에서 팽팽히 맞섰다.


재판의 관건은 B회장이 예금인출 서명권자 지위를 사임한다는 사임서에 직접 사인했는지 여부다. 검찰은 "A사장과 C씨가 뇌경색으로 판단 능력이 없는 B회장의 의사와 관계없이 몰래 서류를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은 "B회장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원은 A사장과 C씨의 손을 들어줬다. B회장이 정상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사임서에 직접 서명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최근 서류 등을 위조해 1330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A사장과 C씨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회장의 진료기록을 보면 사임서를 작성할 당시 뇌경색 등으로 인해 '예금 서명권자에서 사임한다'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였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사임서의 필적감정 결과 역시 B회장이 맞고, 다른 사람이 B회장의 서명을 흉내 낸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A사장과 C씨가) B회장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이용해 서류를 위조했다고 의심 없이 받아들일 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B회장이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자 예금인출 서명권자를 C씨로 변경하려 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류에 직접 서명"

다만 재판부는 "B회장이 더 간단한 방법으로 거래 은행과 서명권자를 바꿀 수 있었다는 점과 서명권자가 바뀐 이후 피고인들이 회사자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금의 흐름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사건 실체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재판 결과에 A사장과 C씨는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A사장과 C씨를 고소한 B회장의 자녀들 역시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미 고인이 된 '회장님 돈'을 놓고 벌인 양측의 불꽃 튀는 공방은 2심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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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